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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순간 저주받았다. (왕하 7;·1-10)

by 【고동엽】 2022. 9. 30.

축복의 순간 저주받았다.  (왕하 7;·1-10)


아람과 이스라엘은 항상 긴장관계였습니다. 아람 왕은 눈에 가시같은 이스라엘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람왕이 저 곳을 치려고 저 곳으로 가면 이스라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곳을 치려고 이 곳으로 가면 이 곳에 이스라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람 왕이 가는 곳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이미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이 말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간첩이 있다.>
그 때 신하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얼마나 영음을 잘 듣는 지 왕의 침실에서 하는 소리도 다 듣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사부터 잡아야 겠다. 엘리사가 어디 있느냐?>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도단성에 있나이다>
그래서 아람왕은 도단성을 둘러 쌌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적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아람왕 벳하닷은 새로운 전법으로 사마리아 성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이 사마리아가 항복할 때까지 포위하고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자기 군사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싸움 한번 하지도 않고 사마리아 도단 성안에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항복하고 나오기까지 포위하고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사마리아 성안에는 먹을 것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극심한 식량난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들만 살펴 봅니다.

1.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 되었습니다(왕하 6;25)
1 세겔은 노동자 한 명이 4일간 받는 금액입니다. 5만원 받는다면 1세겔은 20만원입니다. 그러므로 80세겔은 1,600만원입니다. 식량은 다 먹고 짐승은 다 잡아 먹고 이제 남은 것은 타고 다니는 나귀인데 나귀 머리 하나에 1,600만원이 될 정도로 심각하여진 상태입니다.

2. 합분태 4분의 1 가격이 5세겔이 되었습니다(왕하 6;25)
합분태는 전쟁할 때 먹는 식사입니다. 밥 한끼에 20세겔 즉 400만원이나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3. 말을 5마리만 남기고 모조리 잡아 먹었습니다(왕하 7;13)
만은 당시 전쟁에는 꼭 필요한 짐승입니다. 말없이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5마리만 남기고 잡아 먹었습니다.

4. 더욱 기절할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6;26-30)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한 여인이 달려오더니 하소연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옆 집 여인이 오더니 오늘은 네 아들을 같이 잡아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같이 잡아 먹자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제 내 아들을 그 여인과 같이 잡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 여인이 자기 아들을 숨기고 잡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판결하여 주옵소서.>

왕은 옷을 찢으며 울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엘리사가 이 말을 할 때에 아람왕이 가장 아끼는 장관이 나서더니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2)

이렇게 비난하고 믿지 못 하는 장관을 보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2)

그 날 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병거소리, 말 소리, 큰 군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쳐들어가지도 않았는 데 하나님이 이런 소리를 내주셨습니다. 아람 군대는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애급 왕과 헷 왕과 동맹을 맺고 3 국 연합군이 쳐들어 오고 있다.>
자기들끼리 이렇게 생각하고는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군량미, 무기 모든 것을 챙길 틈이 엾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가서 보니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보리값이 내리고 밀가루 값이 폭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아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왕은 그 장관에서 성문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아우성이기에 질서를 잡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장관이 성문을 꼭 지키고 있자 화가 나서 밟아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리사가 예언한대로 장관은 그런 기적으로 보기만 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왜 장관은 보기만 하고 죽었을 가요?

1.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엘리사는 당시 최고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말했으면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관은 믿지 못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는 이렇게 믿지 못 하는 장관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

믿음이 있었으면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12 정탐군 이야기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12명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정탐군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 왔습니다. 10명 정탐군은 다녀와서 믿음이 없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서 보니 아낙 자손 거인들이 살고 무기들이 강하고 성이 너무나 든든하니 가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인간적이었습니다. 믿음의 소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다 맞는 데 하나 보지 못 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이기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두 명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10명 정탐군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믿음이 생명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많이 학살한 곳입니다. 나는 아우슈비츠에 가서 보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 지 모릅니다. 그 곳에서 매일 수 천명을 학살하였습니다.
매일 연병장에 유대인들을 세워 놓고 독일군이 지나가면서 아무나 임의로 지명하면 그대로 독까스 실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유대인은 기도하면서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나는 안 죽는다.
그리는 죽지 않을 것같이 살았습니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작업장으로 끌려 가다가 길거리에 유리 조각을 보면 얼른 몰래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날카롭게 갈아서 수염을 깍았습니다. 항상 얼굴이 말끔하였습니다.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살 것처럼 살았습니다. 아침마다 연병장에서 독일군이 죽일 사람을 뽑아 갈 때에 그렇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싱싱한 그 사람은 차마 지적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장관은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2. 말을 잘 못 하였기에
장관이 축복 앞에서 죽은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말을 잘 못 하였기에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내일이면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을 때 기껏 말한다는 것이 이런 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래서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 것을 먹지는 못 하리라.>

믿지 못 하고 방정맞게 말하는 장관을 엘리사는 저주하였습니다. 축복앞에서 저주받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실의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 제자들의 말을 보면 믿음의 말을 하는 제자와 사실의 말을 하는 제자로 갈라졌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빈 들입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합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쓰시지 않았습니다. 안드레가 5병2어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어린 아이가 5병2어를 가지고 있는 데 이 것 가지고 어떻게 해보시지요.>
예수님은 사실의 말을 하는 제자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말을 하는 안드레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5병 2어로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믿음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장관은 기껏 한다는 말이 하나님을 놀리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나는 우리 어머니를 영영 잊을 수가 없습니다. 6.25때 해주에서 피난을 나오시다가 자는 데 안방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놀래서 심장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심장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문호야! 나는 내 몸을 잘 알아. 나 50을 못 넘겨...50을 못 넘겨...>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1000번도 더 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돓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느 날 호적등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만 49세 364일 15시간을 사셨습니다.
오후 3시에 돌아 가셨습니다. 9시간만 더 사시면 50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억울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내가 어머니 입술의 말을 바꾸어 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 내가 이런 영적인 법칙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말씀하시게 아였을 것입니다.
<문호야! 나는 내 몸을 잘 알아. 나 100살을 못 넘겨. 100살을 못 넘겨....>
이렇게 말씀하셨더라면 지금도 살아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관은 말을 방정맞게 하여서 죽었습니다.

어느 중환자가 병원에 왔습니다. 의사가 진단결과를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3개월을 못 넘길 것입니다>
그 환자는 자기가 죽을 날을 정확히 3개월되는 날에 표시하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에게도 그 날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그 날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양 쪽 신장이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하루에 투석을 4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2년 살면 많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런 말을 듣고도 늘 나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나을 것이다.>
그는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7년 동안 굿굿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장관처럼 방정맞은 말을 하지 않는 입술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입술을 늘 훈련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덴막의 동요작가 안델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10살 때였습니다. 글을 써서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썼니?>
야단만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었더니 반응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안델센을 인정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하여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안델센은 할머니에게 기분 나쁜 사실을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안델센을 데리고 꽃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막 싹트고 있는 꽃몽오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안델센아! 이 꽃몽오리 좀 보아라. 지금은 이렇게 보잘것없은 싹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주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 너도 그래. 지금은 보잘것없이 보이지만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가 한 마디 하여 준 것이 안델센을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2)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장관이 축복 앞에서 죽은 이유는 말을 잘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한 소년이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소년은 침묵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준비물을 가져오너라.>
17년 후 이 소년은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사형당하였습니다. 그의 최후 진술은 이런 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말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한 마디 말을 잘 못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3. 회개가 없어서
장관이 축복앞에서 죽은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요 1;8-9)

장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 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하고 보리 두 세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7;1)

이튿날 보니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빨리 엘리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선지자님! 잘못 하였습니다. 내가 선지자님의 예언을 믿지 못 하고 말을 잘 못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정말 잘 못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했으면 엘리사는 틀림없이 용서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관은 회개할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보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밟혀 죽는 아픔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을 붙들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회개는 빠를 수록 좋고 민감할 수록 좋다.>

엄격하게 말하면 장관은 믿음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못 하여 죽은 것도 아닙니다. 회개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관은 축복앞에서 축복을 누리지 못 하고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을 가요?
1. 믿음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2. 말을 잘 못 하여 죽었습니다.
3. 회개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기도문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받았으나 누리지 못 하고, 심었으나 추수하지 못 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포도를 심었으나 다른 사람이 따먹고, 집을 지었으나 다른 사람이 살게 되는 불행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아람 장군은 고생만 하다가 축복이 왔을 때 축복의 문턱에서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말을 잘못 하였기에,
회개가 없었기에 자초한 죽음이었습니다.

겨울이 물러가는 우수 절기의 이 아침,
온 성도들을 축복하시사
심었으면 거두게 하시고
축복을 받았으면 누리게 하시고,
보았으면 차지 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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