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히13:10-16)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입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삼대 요소가 있는데 기도와 헌금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찬송과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는 것들입니다.
땅위에 있는 모든 인생들은 예배를 통하여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6일 동안은 일하고 일곱 째 날은 쉬면서 예배하도록 이 날을 모든 민족들이 쉬게 하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예배드리는 날을 육체의 즐거움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날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님 오시기 전의 시대인 구약 시대에는 예배대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 된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어서 죄를 씻는 속죄의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속죄의 제사가 필요치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흘려 인생들의 모든 허물과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셔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죄를 씻는 제사가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 제사 대신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구약에서 드렸던 제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 가지 제사에 대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제사
본문 10-13 사이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속죄일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6장에 나타나는 속제일은 히브리 달력으로 7월 10일에 지켜집니다.
속죄일에는 세 종류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첫째는 수송아지며 둘째는 염소 셋째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입니다.
수송아지는 제사장의 죄를 씻기 위한 제물이며 제물을 잡아 피를 흘려 그 피를 지성소 앞 분향단에 일곱 번 뿌린 후에 분향단 뿔에 바릅니다. 그리고 제물의 내장에 있는 기름을 취하여 번제단에 태워 제사를 드린 후에 나머지 고기와 가죽은 성전 밖에서 불살라 버립니다.
두 번째 제물인 염소는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한 제물로서 수송아지 드리는 동일한 방법으로 드리며 제물의 기름은 태워 제사 드리고 가죽과 고기는 역시 진 밖에 내다가 불살라 버립니다.
세 번째 제물은 아사셀 제물이라 하며 제사장은 염소의 머리에 안수를 한 후 백성들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준비된 사람을 시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떠나 보냅니다.
속제일의 제사가 특별한 점은 제물의 피를 지성소 앞 분향단에 뿌리는 일입니다. 이 일은 1년에 한 차례 속죄일에만 지성소 앞까지 가지고 가서 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만 번제단에 태우고 나머지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 내다 모두 태운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다른 제사와 비교하면 아주 색다른 방법입니다. 아사셀의 제물을 광야로 내 보내는 것도 속제일에만 행하는 특별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속제일의 이 특별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12절은 속죄일과 예수님의 연관성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물의 거의 모든 것들을 영문 밖으로 가지고 가서 불사름과 같이 예수님도 예루살렘 영문밖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려 제물 되심으로 인간의 모든 허물과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영문 밖에서 피를 흘려 제물 되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파 이단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셨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주 넘어지고 죄 가운데 거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사람은 몸 전체를 다시 씻을 필요가 없지만 반복해서 발을 씻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죄 성을 가지고 있는 육체를 거느리고 사는 성도들은 또 다시 죄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더러워진 부분을 예수 앞에 나와 참회하고 자백하므로 깨끗함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큰 약점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여전히 죄 아래 머물러 있게 되고 죄가 있는 곳에는 더러운 곳에 파리가 들끓듯이 마귀가 틈타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본문 13절에는 우리가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설명합니까?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능욕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시키지 않고 내가 저지른 죄임을 자임하고 죄의 짐을 지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비아돌로로사)을 지나 갈보리 언덕에 올라가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에 이르는 제사입니다.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제사는 바로 죄를 자백하는 회개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부흥사인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의 인도로 오하이오 주 데이튼에서 9일간의 부흥회가 개최되었다. 부흥회 기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 어떤 남자가 그 지역의 한 가정을 찾아가 그 집 주부에게 말했습니다.
"부인께서는 저를 잘 모르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바로 지난 여름에 이 집에서 정원용 가구를 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며칠 전 로빈슨 목사님의 저녁 집회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훔친 물건을 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제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뒷날 그 여인은 그 때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러한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회라고 생각합니다."
회개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과거의 잘못된 일들을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회개의 제물을 가지고 거룩함에 이르는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눅 15장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회개를 잃어버린 교회, 회개를 잃어버린 성도들 사이에 머물러 계시렵니까?
이번 전 교인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는 거룩함에 이르는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찬미의 제사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는 기쁨이 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제사를 드린 사람은 반듯이 찬미의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의 장벽이 가로 놓여 있지 않은 성도들은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찬송을 부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찬송을 불러야 합니까? 성경은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처럼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 느낌도 감동도 없이 찬송을 부른다면 그 찬송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미의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종종 찬송을 부를 때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고난받으신 것을 노래 할 때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찬송을 하면 내 영혼이 맑아집니다.
찬송을 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합니다.
사울 왕이 악령에 사로잡혀 밤마다 괴롭힘을 당했는데 날마다 수금을 켜며 찬미의 제사를 드렸던 다윗을 불러 수금을 켜게 하자 악령이 떠나가고 단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삼상16:14-23). 마귀는 찬송을 무서워합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놓고 찬송을 부르면 마귀는 떠나가고 맙니다.
찬송을 부르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관리들에게 붙잡혀 억울하게 심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진이 일어나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손과 발을 얽어매었던 착고가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바울은 옥사장과 그의 가족을 구원시키고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한숨과 탄식만 하지말고 그럴 때일수록 바울과 실라와 같이 찬송하고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찬송하는 자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대하20:22-23에 보면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 족속이 연합하여 유대 나라를 침공해 왔습니다. 유다의 군사력으로는 한 나라를 상대하기도 힘든 터에 3개 연합군이 몰려오고 있으니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지시하기를 성가대를 앞세워 나가 적군 앞에서 찬송을 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성가대를 소집하고 군인들 앞에 세워 행진하게 하고 적진 앞에서 찬송을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이 에돔 족속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찬송을 자주 부르는 성도들이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이 적군 앞에서 찬송을 부를 때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칼자루 하나 안쓰고 찬송으로 적군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부흥사 무디목사의 유명한 찬송 인도자였던 생키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자주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 분의 작곡인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여’를 불러달라고 졸랐습니다. 생키가 그 찬송을 부르기를 마치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생키 선생님,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습니까?”“네, 있었습니다”“저는 그때 남군으로 참전했는데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파란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 날 밤이 보름달이었는데 제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겨냥해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부른 바로 그 찬송이었지요. 그런데 제 어머니께서 그 찬송을 자주 부르셨거든요.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자 저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생키는 너무 감격하여 자기 옛날 적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니 그가 나를 도왔도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고 내가 내 노래로 그를 찬양하나이다’(시편 28:7).
본문 성경에서는 이 찬미의 제사를 어떻게 드리라고 했습니까? 항상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행의 제사
한국 교회는 받는 것만 좋아하지 베푸는 것에 대해서 인색한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더 많이 받으려고 복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진정으로 복 받는 비결은 베푸는 데 있습니다.
16절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기도하는 것도 자신만 복을 받겠다고 자기 가족만 위하여 기도하는 영적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나눔의 기도 중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히13:1절에서는 "형제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성도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예배요 제사입니다. 예배는 어느 때나 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러나 선행의 제사는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나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선행을 베풀기 어렵다고 합니다. 가난하므로 선행의 제사를 드리기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은 평생 가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송명석 성도는 삼중고의 육체의 고통을 안고 사는 장애인입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고통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시력을 상실해서 지금 남아 있는 시력이 20%에도 못 미칩니다. 무릎 골절 병을 앓고 있어서 다리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돌보는 일을 합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공공근로의 일을 하면 그 수입으로 농아 교회인 에바다 교회를 돕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 줍니다. 교회 사택에는 수 없이 드나들며 필요한 것들을 사오거나 귀중한 것이 있으면 아끼지 않고 들고 옵니다. "이런 것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면 "목사님보고 가져오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보고 가져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송명석 성도야말로 하나님께 온전히 선행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입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경건 생활은 바로 어려운 당한 사람을 돕고 선을 행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아픔을 내가 겪는 아픔처럼 생각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9)
여러분은 장래를 위하여 어떤 투자를 하고 계십니까? 여러 가지 보험에 가입하셨습니까? 그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보험을 드는 것보다 더 확실한 보험은 없습니다. 선한 사업에 인색하지 않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어려움 당한 자를 동정하는 돕는 일을 하면 이보다 장래를 위하여 확실한 투자가 없으며 가장 수익성이 높은 보험에 가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라는 구두쇠 영감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죽어 갈 때 종들이 현관의 석조 마루에 무릎을 꿇고 죽어 가는 주인을 위해서 빌고 있었습니다. 구두쇠 영감은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일생동안 번 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목에 두르고 있던 열쇠를 풀어 곁에 선 종에게 주면서 침대 밑에 있는 돈궤를 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이 든 주머니를 자기 관속에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구두쇠 영감은 죽어 저승에 갔습니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연어 빵은 얼마죠?" "100원입니다" "저 사과는 얼마죠?" "100원 입니다" "저 햄버거는요?" "똑 같아요. 모두 100원 입니다." 구두쇠 영감은 빙긋이 웃으면서 무척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금 덩어리를 주머니에서 꺼내 약간의 식품을 사려고 하자 점원은 그런 돈은 받지 않는다며 "세상에서 배우지 않았군요." 하였습니다. 구두쇠 영감은 "내 돈이 충분치 않나요?" 하며 애원했으나 그 돈으로는 식품을 살 수 없고 세상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자선을 베푼 돈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원은 "영감님, 저 세상에서 남에게 준 돈 없으세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에게 베푼 돈이란 동전 일 푼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 명의 힘센 남자가 그의 팔을 붙들고 가장 고통받는 장소로 끌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우화에 불과하지만 확실한 진리는 선행의 제사를 드린 그 대가를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 (잠 19:17) 하나님이 운영하는 은행만큼 크고 안전한 은행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천국 은행에 저축하십시오. 저축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선행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이자율과 배당금이 가장 높습니다.
일본의 경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본 경제가 파산 직전까지 와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하냐하면 은행에 저축한 돈에 한 푼의 이자도 붙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정기예금은 은행이 파산할 때 정부로부터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보증을 해 주지 않는 다고 해서 이를 인출하여 일반 통장으로 옮기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일반 통장에 있는 것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천국 은행은 절대로 파산 당할 우려가 없습니다. 천국 은행에 저축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 졌느냐가 문제입니다. 천국 은행에 저축하고 천국 보험에 들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뿐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얼마나 선행의 제사를 드렸습니까? 천국 은행에 저축했습니까? 천국 보험은 지금 붓고 계십니까? 세상 보험을 해약해서라도 천국 보험에 가입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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