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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채무자 (롬1:13~17)

by 【고동엽】 2022. 9. 25.

복음의 채무자   (롬1:13~17)

우리 말 가운데 철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티를 벗고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철이 들어야 합니다. 나이가 든다고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철이 들어야 진짜 어른입니다. 그런데 철이 들면 제일 먼저 어떻게 될까요?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철들기 전에는 부모님 은혜 모르고 이것 주시오, 저것 주시오 계속 요구합니다. 그러다 철들면 은혜를 깨닫고 이제는 부모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까 애를 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철이 들기 전에는 하나님께 축복만 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러다 철이 들고 성숙해지면 은혜를 깨닫고 변화됩니다. 또 은혜를 알면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납니다. 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② 자족하므로 행복해집니다. ③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알기에 늘 감사하고, 자족합니다.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철이 들었습니까? 아니면, 아직 철이 들지 못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각자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인데, 선교주일로 지키며 제16회 선교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철이 든 성도들이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또한 성령 받은 성도들이 감당하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예비해 두신 더 큰 축복, 더 큰 더 영광의 세계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사도 바울의 고백 : 복음의 채무자
  본문 14절을 보면,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당시 로마 시대에는 문명화된 사람을 헬라인, 그 외에는 야만인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인은 지혜 있는 자, 그 외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결국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을 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람들에게 직접 빚을 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빚을 졌다면 하나님께, 예수님께 빚을 졌을 뿐입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몇 사람일 뿐 ‘모든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합니까?
  바울이 하나님께, 예수님께 엄청난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랑의 빚을 진 겁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직접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빚을 다른 사람들에게 갚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 빚을 진 것이 곧 사람들에게 빚을 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입양아 출신으로 크게 성공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우주항공연구소 수석연구원 최석춘 씨는 14세에 입양되신 분입니다. 그 전에는 거리를 헤매다 밤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리 밑에서 억지로 잠을 청했던 고아였습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미국의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 입양된 겁니다. 그가 성숙해지자 양아버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세 가지는 하나님을 믿은 것, 아내를 만난 것, 그리고 너를 양아들로 삼은 것이란다.” 이 말을 새겨들은 그는 한국입양홍보회(MPAK)를 창립하고 열심히 입양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신도 직접 한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실제로는 양아버지에게 빚을 졌지만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함으로 빚을 갚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빚을 진 것은 곧 사람들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빚을 갚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소원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파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이런 원리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마25:40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 우리 주변이 약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그것이 곧 주님께 한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28:19~20에는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하신 유언적 명령 이 나옵니다. 흔히 지상명령(至上命令 The Great Commission)이라 부르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눅15:10에서는 더욱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 받으면 하나님이 99명의 의인 때문에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복음 전파를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원리를 잘 알았기에 복음의 채무자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그의 선교 열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13절과 15절을 보면, 그는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심경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번번이 좌절되어서 로마에 갈 수 없었지만 앞으로 꼭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런 선교 열정이 있었기에 그는 세계를 누볐습니다. 요즘이야 비행기 몇 번 타면 세계 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당시는 얼마나 교통이 불편했습니까? 위험한 가운데 한없이 걸어야 했고, 배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당시의 세계 여행은 그 자체가 목숨을 건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와 유럽 곳곳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그토록 열망했던 로마에 죄수의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다 결국 순교합니다. 바울은 정말 복음의 채무자 의식을 갖고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의 생애를 빛나게 했고, 역사 속에 아니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의 주인공이 되게 한 것입니다.
[2] 우리도 빚진 자 :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빚진 자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바울만 복음의 채무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입고 삽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① 개인적으로 : 적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 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보면,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십자가 복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영생을 누리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성부 하나님은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엄청납니다. 더 나아가 그 복음을 나에게 전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지해서 거부하고 고집을 피우던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었고, 복음을 전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겹습니다.
  
  ② 민족적으로 : 우리 민족이 과거 역사와 문화를 자랑합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영적으로 보면 내세울 게 없습니다. 반만년 동안 한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채 우상을 섬겼습니다. 샤머니즘과 불교, 그리고 유교에 젖어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만일 그대로 방치되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주셨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은둔의 나라였던 조선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보면 ‘복음의 채무자’요,  민족적으로 보면 ‘복음의 채무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착각 속에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마치 저절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똑똑해서 복음의 진리를 터득한 줄 압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죄로 무지했던 나에게, 어둡기만 했던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롬10:13~15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 선교사를 보내주었고,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기에 우리가 복음 듣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꽤 잘 사는 축에 끼게 된 게 과연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특별히 이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우리 크리스천들조차 이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삽니다. 19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이 땅에 수천 명의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그 한 생명 한 생명을 생각하면 엄청난 일입니다.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 때, 우리 민족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종족’이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나 모슬렘 지역의 나라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 오지까지 목숨 걸고 찾아온 겁니다. 그렇게 와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그뿐입니까? 학교를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주고 개화를 주도했습니다. 한번 따져 보십시오. 오래된 학교 거의 다 선교사들이 세워준 준 겁니다. 오래 된 병원, 오래 된 단체, 거의 다 선교사들이 시작한 겁니다. 그 혜택을 우리 민족이 받은 겁니다. 크리스천만 받은 게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잘 정리해 주는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작년 선교축제 때 강사로 오셨던 이용남 선교사님의 책입니다.(이용남, 『복음에 미치다』. 두란노.)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 미처 몰랐던 내용들이 죽 나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나눠봅니다.
  영국인 로버트 토마스 목사(Robert Thomas 1840~1866)는 선교사로는 조선 입국이 불가능하자 중국에 머물며 조선어를 배우다 통역관으로 취직해서 1866년 미국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입국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입국하지 못하고 대동강변에서 포졸들에게 목이 잘려 피를 토하며 순교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포졸에게 성경을 전해주고 숨을 거둡니다. 그때 나이가 27세였습니다. 그 피가 오늘 우리 민족을 있게 한 겁니다. 그가 전해 준 한문 성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를 파송한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성도들은 그 소식을 듣고도 우리 민족을 미워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존 헤론 선교사(John W. Heron 1858~1890)는 입국은 조금 늦게 했지만, 파송 받은 것으로 치면 최초의 조선 선교사입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의대 수석 졸업생으로 교수 자리까지 보장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조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약혼녀가 있었는데, 만류하다 못해 같이 선교사로 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로로 병에 걸려 5년 만에 죽게 됩니다. 그때 그를 위해 고종이 땅을 준 게 바로 합정동의 ‘양화진 선교사 묘지’가 된 겁니다.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 Underwood 1859~1916)는 아펜젤러 선교사와 더불어 1885년 공식 선교사로는 최초로 제물포(인천) 항에 도착한 분입니다. 그는 새문안교회와 연세대 등 여러 교회와 학교를 세우며 우리나라 선교와 개화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선교사들의 생애가 하나하나 너무 귀하고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여성 선교사를 한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입니다. 그녀는 의료선교사였는데, 그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William James Hall 1860∼1894)와 그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며느리 메리안 홀(Marian Bottomley Hall 1896~1991) 등 온 가족이 양화진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홀 역시 의사였는데, 본래 중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제타가 조선으로 가버리자 선교지를 조선을 바꾸고 이듬 해 입국해서 결혼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거행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홀은 그 후 서울에서 선교하다 평양으로 옮겨갔는데, 청일전쟁의 와중에 전염병에 감염되어 불과 입국 후 만 2년 만에 순교합니다. 아내 로제타와 아장아장 걷는 아들 셔우드, 그리고 아직 태중에 있던 딸 에디스를 두고 간 겁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유복자인 딸 에디스마저 세 살 때 풍토병으로 죽게 됩니다. 로제타가 그 딸을 남편의 무덤 옆에 묻고 어린 아들 셔우드를 끌어안은 채 드린 기도가 너무 놀랍습니다! “하나님, 저와 셔우드 홀은 이 땅에서 오래 오래 사역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사용해 주세요!”
  이런 사연들은 끝이 없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이 민족의 오늘, 한국교회의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3] 빚을 갚는 길 : 선교 사명 감당    
  우리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이 엄청난 복음의 빚을 지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선교 사명을 감당함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대로 주님은 반드시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겁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이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철든 성도들이 해야 합니다. 철든 교회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모든 민족에게 선교해야 되지만, 특히 우리에게는 북한이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 민족이면서도 세계에서 모슬렘 나라들과 더불어 가장 복음 전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피를 나눈 동족이기에 그렇고, 세계 선교의 요충지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북한 선교를 통해 세계선교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북한을 우상종교화하고 전쟁 준비에 몰두하는 호전적인 북한정권은 괘씸합니다. 하지만 애매하게 고생하는 동포들과 지하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통일한국(Unified Korea) 이루고, 성서 한국(Bible Korea) 이루어 신앙으로 무장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복음화하는 선교한국(Mission Korea) 이루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1등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동족을 위해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강퍅한 유대인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우리가 감히 바울과 똑같은 고백은 못한다 할지라도 북한 선교를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나는 우리는 어떻게 세계선교, 북한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는 선교사’로 선교사로 헌신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보내는 선교사’로 선교를 위한 기도와 물질 후원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각각 부르심이 다르지만 둘 중의 하나는 감당해야 합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무관심하면 곤란합니다. 예외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5만 교회 1천만 성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만 6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세계 2위 선교대국입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면 여전히 부족합니다. 특별히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선교에 깜깜한 성도들과 교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큰 부담이 됩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내 인생 살기도 바쁩니다. 내 가정 돌보기도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또 우리가 선교 하다 보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원리는 저비용 고효율인데, 반대로 고비용 저효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다 보면 힘이 빠지고 주저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도 그런 과정을 거쳐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을 위해 수천 명 선교사들의 목숨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금이야 그럴 듯하지만, 초창기에는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은 결국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그리고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라도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기쁨과 영광을 주십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우리나라에서 선교를 하다 안식년이면 미국에 건너가서 선교 동원을 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보고를 받고 선교사들이 지원하기도 했지만, 막상 파송해야 될 교회와 성도들이 냉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선교를 위해 땅도 사고 건물도 지어야 했지만, 막막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격려하며 후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형 존 언더우드(John T. Underwood 1857~1937)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의 회사는 세계적인 타자기 회사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언더우드 타자기가 지금 연세대 <언더우드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선교는 ‘축복의 확대재생산’입니다! 축복받은 것으로 선교하면, 더 축복해 주시고, 더 선교하면 더, 더 축복해 주시고 ... 그래서 더욱 풍성해지고 기쁨이 있고 영광이 있고, 영원한 상급이 있는 것이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복음의 채무자로서 선교 사명에 반응하시고 기도로 물질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더 큰 축복과 기쁨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 우리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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