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이여 깨어나라! (사사기 16:18-22)
오늘은 삼월 첫 주일입니다. 이제 봄을 맞이해서 만물이 깨어나오고 약동하는 그런 좋은 계절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사계절이 분명하다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고, 또 변화를 통한 느낌도 다 다르게 느낄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씨앗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면 생명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봄은 많은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계절입니다. 오랫동안 겨울 잠을 자다가 따뜻해지면 다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되는 그런 계절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잠들고 나태해지고 이런 것들이 있다면, 이제 삼월과 함께 정말 약동하고 생동하고 활기찬 믿음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삼손이여 깨어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들릴라가 잠을 재웠습니다. 여자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가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두 눈이 뽑히고 놋줄이 묶여서 블레셋으로 잡혀갑니다. 감옥에서 물맷돌을 아주 비참한 처지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아주 경종을 울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나를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삼손아 깨어나라!” 이 삼손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시 한번 깨우시는 음성이 들려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삼손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그가 남보다 부족한게 있습니까? 하나님의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일천명을 때려죽일 수 있는 용사중의 용사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볼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모습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삼손이 여성을 좋아했습니다.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게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런 차원을 넘었습니다. 사사기 16:4-5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여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블레셋 여자입니다. 사랑해서는 안될 대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손이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영적으로 잠이 드니까 사랑하지 말아야 될 대상을 사랑하게 된겁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활을 잘못하면 딴 곳에 엉뚱한 곳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랑했다는 것은 마음을 빼앗겼다는 겁니다.
들릴라를 사랑했다. 사랑하지 말아야 될 대상에게 내 마음을 빼앗겼다는 겁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많습니다. 빼앗기지 말아야 될 대상에게 마음을 빼앗겼어요. 그것이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는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 블레셋 여자를 이용해서 삼손을 이제 이겨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삼손이 힘이 너무 세니까 이길 수가 없어서 여자를 이용하여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보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기어서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일천일백을 네게 주리라.”
은 일천일백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며 지령을 합니다. “너에게 빠져있는 삼손을 꾀어서 그 힘의 원천이 어딘지 알아내라.” 들릴라는 온갖 계획을 따 짜서 그것을 알아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보면 6-15절 사이에 세 번 시도를 하는게 나옵니다.
첫 번째 시도를 합니다. 삼손이 가짜로 가르쳐줍니다. 두 번째 시도를 합니다. “당신의 힘의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두 번째도 삼손이 엉터리로 가르쳐줍니다. 또 실패했어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또 묻습니다. “당신의 비밀이 어디 있느냐? 나에게 가르쳐 주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삼손이 또 거짓말을 합니다. 세 번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가 얼마나 집요한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두세번 해보고 안되면 쉽게 포기하는데 마귀는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15-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우리가 기도를 이렇게 해보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조라보세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들릴라는 삼손을 붙들고 물고 늘어졌어요. 날마다 바가지 끓고, ‘정말로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럴 수가 있는냐?’라고 하며 그를 제촉하고 조르고 또 졸랐습니다.
삼손이 죽을 지경입니다. 이 여자를 사랑하는데 이 여자가 이렇게 조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끝까지 비밀을 지키는게 어려워서 마침내는 그 비밀을 여자에게 다 얘기해 버립니다. “내 힘은 머리카락에 있다. 이 머리를 잘라버리면 나는 힘이 사라지고 만다.” 비밀을 말해 버렸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을 잠들게 만듭니다. 잠들어 있는 삼손, 푹 잠에 빠져 자고 있는데 사람을 시켜서 많이도 아닌 일곱가닥을 잘랐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님이 그를 떠났습니다. 보통사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소리칩니다. “블레셋 사람이 옵니다.” 삼손이 확 일어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영적으로 잠들어 있으니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는지 함께 계시는지 조차도 느낌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교회생활한다고, 예배드린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게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혹시나 지난 주간에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을지라도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함께 돌아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떠나신 줄 깨달았어요. 못했어요. 우리가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이 떠나셨음에도 그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니까 보통사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17절 보겠습니다.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삼손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시대에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고, 능력을 주셨고, 그 능력을 통해서 악한 영들과 싸워서 이기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도록 삼손과 같은 능력을 주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생각없이 살아간다면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뭐가 있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이 머물러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오늘 제가 묻습니다. 여러분은 약합니까? 강합니까?
약해서는 안되지요. 왜 약합니까? 내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떠나버리면 나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리라.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 나하고 차이가 뭐가 있느냐? 회사 가서 예수 안믿는 사람과 여러분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사업하는 사람과 여러분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달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직장에서 달라야 해요.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는 다르구나. 배운 것도 없는데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구나. 달라야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때에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따라합시다. “저 사람은 우리와는 다르구나!”
그런데 삼손이 뭐라고 합니까? “약하여 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지리라”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제대로 되고 살아있는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는 세상사람들과는 더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어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 버리시면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주일날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구별이 아무것도 없어요. 거짓말 할때 되면 거짓말 하고, 남을 속일 것 있으면 속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게 강한 것이 어디 있으며 남보다 뛰어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똑같아졌어요.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오늘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 내가 나를 보아도 다른 사람과는 다르구나. 얼마나 귀한 은혜입니까? 그런 은혜를 받고 가라는 겁니다. 예배 뭐하려고 드립니까? 다른 사람과 다른 힘을 받아서 강하여 져서 나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가 은혜를 사모해야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명 때문에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거둬가버렸습니다. 삼손에게 능력을 주셨는데 삼손이 그 능력을 주신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자기 육신을 위해서 사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주셨던 좋은 것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능력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포로가 되어서 두 눈을 빼앗겨 버립니다. 눈도 잃어버리고 명예도 잃어버리고 사사의 권위도 상실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도 땅에 떨어뜨리는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잠든 결과가 그 엄청난 비극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도 삼손처럼 되면 이와 같으리라. 너도 영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이런 삼손과 같아지리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영적으로 잠들면 그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 믿는 자들을 삼손처럼 비참하게 만들려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손처럼 되지 않으려면 그 귀한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귀한 사명자로서 정말 영광스럽고 정말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려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깨어있습니까? 오늘 부탁하는 것이 이겁니다. 내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잠자는 자의 특징입니다. “어, 내가 잤나?” 그럽니다. 안 잤다고 합니다.
늙은 쥐가 유언한 유명한 유언장이 있어서 제가 소개를 하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늙은 쥐가 후배들과 자식들을 다 불러놓고는 마지막으로 아주 귀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애들아, 내 말을 꼭 명심해라.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서운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고양이를 조심해라. 그런데 고양이는 잘 피해다니면 괜찮다. 나도 경륜이 쌓이니까 나중에는 고양이를 가지고 놀았다. 둘째는 쥐덫을 조심해라. 이것도 무섭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피해 다닐 수 있다. 나중에는 경험이 생기면 쥐덫안에 있는 고기만 빼먹고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쥐약을 조심해라. 이것은 조금만 맛보면 얼마나 달콤한지 그리고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가 대단해서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쥐가 별로 없다. 나도 한번 속아서 큰 일 날뻔 했고, 내 친구 몇 놈은 벌써 죽었다. 너희들이 쥐약을 조심해라. 쥐에게는 보기 좋은 아름다운 냄새가 있고, 맛을 보면 아주 매력적인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너희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쥐약 먹고 주기 쉽다.”
여러분,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 보기 좋은 것, 달콤한 것 가지고 유혹하지 맛없는 것 가지고 덫을 놓고 우리를 유혹하지 않습니다. 덫은 다 숨겨놓았습니다. 누가복음 21:34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귀의 전술은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듭니다. 개구리를 죽일 때 뜨뜻한 물에 던져 넣으면 20도만 되어도 개구리가 펄쩍하고 밖으로 뛰어나옵니다. 그런데 이놈을 찬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온도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도 뜨거워지기 때문에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조용하게 삼킨다고 합니다. 그냥 그대로 죽는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될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둔하여져 가는 사실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점점 영적으로 잠들어 가는 겁니다. 그러다가 엄청난 낭패를 당합니다. 오늘 저가 이 말씀을 드리는 목적도 바로 그럽니다. 이 마귀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해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잠을 빠지도록 역사해서 사명도 잊어버리고, 비참하게 만들려고 마귀는 역사합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 2:15-17을 보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겁니다. 디모데전서 6:17에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고 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과 영광과 돈과 쾌락을 사랑하는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의 특징입니다.
영적으로 제가 깨어있지 못하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그 길은 삼손의 길로 가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사랑하지 말아야 될 것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야 될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힘쓰고 애쓰고 살아갑니다. 그런 복된 사람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대상이 잘 못되면 그 때부터 인간은 잘못되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도 명예와 돈과 권력을 사랑하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천박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크리스찬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만,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살아있지 못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삼손의 길로 가고 마는 겁니다. 좋은 옷을 보면 환장을 하고, 나보다 좋은 것을 거진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그러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영적으로 잠든 분이 계신다면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에베소서 5:14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자지 말고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합니다.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안하고 살아도 전혀 관계가 없고, 편안하면 영적으로 잠든 겁니다. 성경을 안 읽고 살아도 전혀 배고프지 않으면 영적으로 잠든 겁니다. 위험한 겁니다. 지금도 좋은 신앙생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앞으로 정말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해서 잠들지 않고 깨어있어야 겠구나 결심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은혜로 살았습니다만 앞으로도 영적으로 잠들고 나태해지면 나도 삼손처럼 되겠구나! 그러므로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영적으로 깨어있고, 영적으로 깨어있기 위해서 힘써야 겠구나! 그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보면 깨어나라는, 우리를 깨우시는 직접적인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로마서 13:11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자다가 깰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자고 있더라는 겁니다. 오늘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벌써 창녀와 살면서 사생아를 낳았던 어거스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붙들고 그가 깨달아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잠자던 어거스틴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서 잠자던 자리에서 깨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3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2:26에는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깨어나야지 마귀의 올무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5-6에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다 자도 여러분은 자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교인이 잔다고 여러분이 자서도 안됩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본받고 살아가는 좋지만도 저 사람은 기도하지도 않고 살아가도 사업만 잘 되고 괜찮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죽는 길로 가는 겁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죽을 것 같이 되고 그러면 안되요.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마태복음 26:40-41에 겟세마네 동산에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을 때 “너희가 나와 함께 기도하자.” 예수님이 기도하고 오니 세 제자가 자고 있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잠시도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약하여서 깨어있지 못하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그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별수 있겠습니까? 왜 깨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따라합시다. “깨어서 기도합시다.”
깨어있는 신앙생활하자는 겁니다. 이것을 꼭 결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낮 예배만 와서 예배드리고 돌아가고, 그냥 내 마음대로 살아가면 어떻게 마귀의 궤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여러분, 보세요. 교통사고 중에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것이 뭡니까? 졸음운전입니다. 마빡이 원조는 접니다. 마빡이 알지요. 며칠전에 깨달았어요. 마빡이가 뭡니까? 막 자기 마빡을 치찮아요. 제가 운전을 할 때 졸음이 오면 막 마빡을 칩니다. 눈이 이렇게 내려오는데 아무리 마빡을 쳐도 소용이 없어요. 시뻘겋게 때려도 이놈의 눈꺼풀은 천근이예요. 그러다가 사고날 뻔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졸음이 오면 차를 옆길에 세워놓고 10분이나 15분 자야 됩니다. 자고 일어나며 머리가 맑아집니다. 여러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적으로 맑아져야 우리의 영적인 인생길을 사고나지 않고 잘 주행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를 잠들게 만듭니다. 딴 곳에 마음이 빼앗기게 만듭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삼손이 거기에 무너졌습니다. 잘 가던 인생길 꼬라박고 얼마나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졸면 이렇게 되고만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13편 3에 이런 귀한 기도를 했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저는 이 기도가 그렇게 좋더라구요.
주여, 두렵습니다. 나는 약합니다.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내게 충분히 있습니다. 오 주님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그래서 그는 밤에도 일어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육신적으로 좀 살만하니까.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으니까 하나님을 멀리하잖아요. 어느 순간에 무너질지 모릅니다. 바로 깨달으세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으세요.
잠들면 나중에 다 잃어 버립니다. 다 빼앗깁니다. 다 가져가십니다. 사명도 져버리고 되고, 비참한 인생,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서 두가지를 사용하십니다.
첫째는 말씀으로 깨우십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 깨어나는 사람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중간 중간 깜박깜박 졸수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예배가 왜 중요한가 새벽기도 와서 깨닫고요. ‘하나님, 내가 잠시 잠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세상에 빼앗겼습니다. 나를 깨워주십시오.’ 하나님이 깨워주실 때 깨어나면 축복의 대로를 열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야월교회 최장로님은 자기 딸이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교사 임용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임용고시에 합격은 했지만 임용되기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때 사립학교 교장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최장로님 따님이 아주 우수한데 우리 학교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2천만원씩받고 임용하는데 장로님 딸은 오백만원만 받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장로님이 오백만원을 준비해놓고 기다렸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오백만원을 가지고 목사님께 갔습니다. “목사님, 이 돈은 잃어버린 돈입니다. 이미 저는 잘못했습니다. 이 돈은 하나님께 드리고 딸의 장래는 하나님께 맞기겠습니다.” 한 달도 안 가서 신설공립학교에 교사로 임용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깨어나면 축복의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그러나 내 영이 어두워지면 잠들면 내 스스로 내 길을 가다가 하나님이 막으시면 누가 엽니까? 스스로 안 좋은 길로, 잘못된 길로 가더라는 겁니다.
둘째, 말씀을 듣고도 깨어나지 못할 때 하나님은 몽둥이를 가지고 쳐서 깨우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던져넣어서 요나를 깨우셨습니다. 깨로는 질병을 통해서 깨우십니다. 이번에도 임집사님 서울대학병원에서 만났습니다.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집사님, 그동안 하나님이 많이 말씀하셨는데도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옳습니다.” “이제 서원하십시오.” 아들의 간을 이식받아서 수술합니다. 내일 수술합니다.
하나님이 몽둥이를 가지고 우리를 깨우실 때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매를 때리셔서, 아프게 해서라도 깨우실 때 깨닫고 깨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나면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아요. 용서해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영적으로 강건해지고, 사명을 감당하게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구로써 아름답게 쓰임받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가 깨어날 때 임하는지 모릅니다. 깨어나는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주여, 나로 깨어나게 하옵소서!” 오늘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능력가지고, 전도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나라와 민족에 소망을 심어주는 정말 아름답고 영광스런 길을 달려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최낙보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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