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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강하게 하라 (여호수아 1장 1-18절)

by 【고동엽】 2022. 9. 21.

마음을 강하게 하라  (여호수아 1장 1-18절)


지금으로부터 한 십년 전 갓 스무 살에 불과했던 박세리라는 아가씨가 미국 LPGA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함으로써 전 국민의 마음을 한순간에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불어넣어 주면서 경제부흥을 이룩해 내었던 것처럼, 그 어린 박세리 선수는 당시 IMF 때문에 완전히 풀이 죽어 있던 국민들에게 '우리도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되살려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박세리 선수의 성장 과정에 대한 온갖 비화들 중에서 미국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되었던 유명한 것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그 어린 십대 소녀를 밤 11시에 공동묘지에 혼자 갔다 오게 함으로써 '담력 훈련'을 시켰던 일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스포츠는 일단 시작되면 종료될 때까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지만, 골프는 채 한번 휘두르고 한참 걸어가고 또 때로는 앞 조의 플레이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심적인 동요가 생길 여지가 아주 많은 운동입니다.
  실제로 루키들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1, 2위를 다투다가도, 바로 그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스리지 못하고 흔들리게 되는 바람에 노련한 선배들에게 대역전 당하는 경우가 흔히 생기곤 합니다.
  박세리 선수의 아버지는 그처럼 프로 골프에 있어서는 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는 까닭에 그런 특별훈련을 시켰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여호수아에게 그런 담력 훈련을 시키고 계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사실 지금 여호수아가 처하고 있는 상황이란 그야말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습니다.
  자신의 선배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는 이제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백 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야 할 중차대한 임무가 바로 자신의 두 어깨 위에 걸리게 되었으니, 이 루키 지도자에게 지워진 막중한 중압감이 얼마나 컸을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여호수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영적 담력을 배양시켜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대사를 앞에 두게 되면 그 누구라도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대사를 결코 이루어낼 수도 없을 것도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오늘도 교회를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왕국의 큰일들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성도는 그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신앙의 선배들과 함께 해 주셨음을 보고 성도는 마음을 강하게 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1절부터 6절에 기록하기를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그 후계자로 임명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사십년 광야 생활 동안 "모세의 시종" 즉 '모세를 돕는 자'로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그 직책에 대한 구체적인 모든 경험을 사십 년 동안의 실무훈련을 통하여 잘 쌓아 왔던, 아주 적절한 후계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업은 초보자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 곧 "광야, 레바논, 유브라데 강, 헷 족속의 온 땅, 해 지는 편 대해"까지 이르는 광대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그저 이스라엘 백성이 입주하기만을 기다리는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토착 이방 민족들이 이미 정착해서 살고 있는 땅이었으며, 이스라엘은 한 치의 땅까지도 다 싸워서 빼앗아야 할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광야생활하면서 여호수아가 경험해 보았던 업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임기 초기부터 이런 막중한 일을 감당해야 할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그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여호수아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반드시 이 백성으로 하여금 이 땅을 얻게 해 줄 지도자가 되고야 말 것이다."라고 그의 임직을 위한 권면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격려의 첫마디는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우신 지도자와 함께 계셔 주신다는 것은 여호수아에게 처음 주어진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모세가 시내산 가시떨기 불 가운데서 첫 소명을 받을 때에도 꼭 같이 해 주셨던 말씀이었고, 물론 하나님은 그 약속을 모세의 평생토록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바로 여호수아가 그 사실의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시종으로 사십년을 지내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 대선배 모세와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자기 두 눈으로 친히 목격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보았던 그대로, 애굽 바로 앞에서나 홍해 도하나 광야 40년의 온갖 난관과 역경 중에도 변함없이 함께 하시고 끝까지 승리하게 해 주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도 꼭 마찬가지로 도와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니 그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선배들이 길 닦아 놓는 것 따라가는 것과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몇 십 년 전 미국에 한국 식품점 하나 찾을 수도 없던 때에 이민 생활 개척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요즘처럼 웬만한 큰 도시에는 한국 식품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인 상가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잘 닦여진 상황에 미국에 가서 이민 생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거저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어렵고 두려웠던 때는 우리나라에 막 기독교가 들어오고 가문 정도가 아니라 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판을 치던 전 사회로부터 온갖 핍박과 박해를 당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때였습니다.
  그 신앙의 선조들이 투옥과 순교까지도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승리하여서 물려 준 이런 좋은 시대에 살게 된 우리들이 자기 한 사람의 신앙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두려워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 되겠습니까?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경향교회의 지난 34년을 돌이켜 보면 개척시절부터 시작하여 특별히 일견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대사를 치르게 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원로목사님과 장로님들과 모든 교인들과 함께 해 주심으로써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저는 경향교회의 2대 당회장이라는 과중한 사명에 많은 중압감에 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로 이런 1대 당회장님을 선배 목사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향의 선배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자를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생생한 체험으로써 증거해 놓으신 분들인 것입니다.

  바로 한 세대 전에 조국의 신앙 선조들과 함께 해 주셨던 하나님, 바로 우리 자신의 부모님들의 시대에 이 교회의 행보를 늘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어디로 사라지셨겠습니까?
  결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연속적인 국난과 큰 박해를 당할 때에도 끝까지 지키시고 승리하게 해 주셨으며 경향의 1세대가 IMF라는 큰 경제위기를 통과할 때에도 오히려 강서성전 건축이라는 쾌거를 이루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바로 우리와도 꼭 같이 동행해 주심을 확신함으로써 매사에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지키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만 순종하면 다 형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성도를 극히 담대하게 만들어 줍니다.

  7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에 "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두 번째 격려를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격려는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다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만 아니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라고 확약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성공을 보장해 주고 계셨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이 거창하고도 막중한 대사를 앞에 두고 조바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예 성공의 청사진을 미리 보여 주시면서 격려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어느 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여호수아가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묵상하고 그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기만 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나님 편에서 그 요령을 다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랄까봐 하나님은 재차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 담대해라, 대 정복 사업이라 해서 미리 두려워 할 필요도,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놀랄 필요도 조금도 없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 말만 그대로 지켜 순종하면 내가 반드시 너로 하여금 성공하게 해 주겠다."라고 반복 강조, 반복 보장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일이 아니냐?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하나님 아니냐?" - 정말 이 이상 어떻게 더 격려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내 인생이 성공할 수 있을까?' -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머리에 꽉 차 있기 십상입니다.
  '과연 경향교회가 하는 일이 제대로 성취될 수 있을까?' - 목사가 기도를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런 두려움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한 성공 여부 때문에 항상 마음을 조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자연히 '과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세상에는 지금도 온갖 종류의 성공 사례와 성공 원리를 가르치는 책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며 흔히 베스트셀러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성공하는 사람은 그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나 테이프 팔아서 돈 많이 버는 저자뿐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책들도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신자들이 자기 인생의 참된 성공을 위해서 혈안이 되어 추종할 책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책들이 가르치는 성공이라는 것은 그 개념부터가 순전히 세속적인 것으로서 오직 사람 보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길을 가르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참된 신자라면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는 인생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 사람이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사람으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지침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자'는 '내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따위의 헛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무슨 '성공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는 책을 비싼 돈 주고 사 읽을 필요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만사형통' 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다 있는데 왜 쓸데없는 방황이나 낭비를 하겠습니까?

  또한 세상의 소위 성공지침서라는 것들은 읽고 그대로 해 보았지만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읽고 순종해 보았지만 잘 안 되더라고 해서 무슨 환불요구를 하는 따위의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공의 보장은 바로 그 성경을 쓰신 저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라고 확실히 보증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범사에 형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심정으로 미래의 축복을 향하여 전진해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참된 주의 종을 모시고 있는 신자와 참된 신자를 이끄는 주의 종들이 피차 서로를 강하고 담대하게 격려해 줍니다.

  10절 이하 15절에 "10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11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2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13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15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같은 격려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신참 지도자로의 첫 업무에 당장 착수하여,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요단을 건너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게 될" 자신감이 가득 차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부가명령을 특별히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내렸습니다.
  이 지파들은 요단강 동쪽 편에 있는 땅, 모압과 암몬 지경에서 모세의 생전에 빼앗았던 땅을 이미 분배받은 지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요단강을 건너 새 땅을 정복하러 간다는 것은 적어도 이 지파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자기네 이익에 직접 연관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땅을 주실 때부터, 이런 때를 대비해서 미리 약속을 해 두셨습니다.
  즉 가나안 본토 정복전이 시작되면, 이들 역시 꼭 같이 전쟁에 참여하여 다른 지파들을 위한 땅을 확보한 후에 자기네 땅으로 돌아올 것을 먼저 서약시키셨던 것이며 여호수아는 바로 그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듣는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말은 아니었을 것이며 은근히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호수아의 명령,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제일 처음 내린 명령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16절부터 18절 말씀에 "16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라고 기록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제일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지파들의 반응은 '명하면 행할 것이요 보내면 갈 것이요 지시하면 청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전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오직 여호수아의 지도에 기꺼이 순종하기로 서약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만일 누구든지 여호수아의 지도권을 거역하면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자기네 입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왜 온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임기 첫 순간부터 이처럼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했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도 함께 할 것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성도의 당연히 취할 자세라고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기꺼운 순종의 서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라고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 또한 그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해 주신 말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것 역시 여호수아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대선배의 뒤를 이어 자기도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염려하고 있던 차에, 백성들이 그 모세를 따르던 자세와 꼭 같이 자기를 따르겠다고 서원하면서 "당신은 조금도 걱정하거나 약해지지 마십시오."라고 격려해 주는데, 여호수아가 어떻게 강하고 담대해지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새 지도자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참된 지도자란 확신 가운데서 역시 격려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그처럼 자기를 적극적으로 받들어 후원해 주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또한 말할 수 없는 용기와 큰 힘을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피차 이처럼 서로를 강하고 담대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자신이 섬기는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을 확신하면서 오직 성경이 명하는 대로 담대하게 이끌어가야만 성도들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 눈치를 보고 사람 형편을 먼저 살피면서 적당히 현상 유지하려는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 어떤 믿음직한 신뢰감을 결코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 그런 목사 밑에서는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중생 받은 교인의 눈에는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하나님 의지하고 말씀 순종하려는 각오가 똑바로 된 성도 한 사람이 교역자에게 주는 용기와 힘 역시 엄청난 것입니다.
  '저 장로가, 저 집사가, 저 성도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목사를 이처럼 존경해 주고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교인을 한 명 대할 때마다 목사는 얼마나 강하고 담대해지는지 모릅니다.
  단 한 명의 신실하고도 충성된 교인을 통하여서도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는 듯한 격려를 교역자들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인 눈치만 살피면서 말씀대로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역자. 선한 일을 권면하는 교역자를 귀찮게 여기는 교인 - 그런 관계로 지낼 바에야 서로 같은 교회에서 지낼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권면하며 명하는 교역자, 그리고 그런 교역자들을 진정 존경하고 순종하는 교인이 됨으로써 피차 서로를 강하고 담대하게 격려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세 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함께 해 주셨던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강해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말씀의 지시만 따르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아니 반드시 예외가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게 되어 있으니 담대하게 시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주의 군사된 성도들이 꼭 같이 말씀에 복종하며 주를 의지하는 자세로 따르고 있으니 또한 강하고 담대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사실상 여호수아가 당한 상황은 두려움에 잡힐 때가 아니라 가나안 입성이라는 축복의 성취를 바로 눈앞에 둔 소망의 순간이었습니다.
  약해질 아무 이유가 없고 또 결코 약해져서는 정말 아니 될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경향교회가 맞이한 시기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육관 구입이라는 대사를 맞이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 일이며 이 일 앞에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이 큰 축복을 스스로 팽개치는,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려운 것 계산만 할 줄 알고, 어떤 모험(risk)을 시도해 보겠다는 담력을 발휘할 줄 모르는 사람은 평생 아무 일에도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세상살이에 있어서도 상식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 역시 '강하고 담대한 마음' 없이는 아무 축복도, 부흥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함께 하셨던 교회사를 통하여, 정확한 지시와 약속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또한 함께 멍에 멘 교역자와 성도들 간의 격려를 통하여, 영적 담력을 더욱 크게 키워 나감으로서 담대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의 승리를 향하여 진군해 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석기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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