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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뜻은. (요6 : 34~40)

by 【고동엽】 2022. 9. 19.

내 아버지의 뜻은. (요6 : 34~40)

최근 영국의 과학자들이 양들을 복제하는데 성공함으로 전 세계를 흥분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에도 올챙이나 쥐를 복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인간과 꼭 같은 포유동물인 양을 복제하였다는 것은, 인간도 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의학윤리상 과연 이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생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앞으로 과학과 교회와의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과학과 교회와의 전쟁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문제로 심각했으나 결국 교황청의 무지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인간복제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과연 복제 인간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또 복제인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심각할 수 밖 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복제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가? 아니면 타락한 인간의 범죄적 행위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먼저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의 차이점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심리학은 인간이 내리는 결정을 하나의 개성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결정은 의지의 결단인 것입니다. 따라서 결정을 단순히 개성의 표현으로만 보는 현대 심리학의 경향은 큰 잘못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내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화)

어느 날 신부님이 두 수녀와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시골길인데 비포장도로에다고 산길이라 꼬불탕꼬불탕합니다. 그래서 오른 쪽으로 갈 때에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왼쪽으로 갈 때에는 왼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왼쪽에는 좀 못생긴 수녀가 앉았고, 오른 쪽에는 영화의 배우처럼 잘 생긴 수녀입니다. 그런데 그만 자동차가 왼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랬더니 신부가 기도하기를 [주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길은 항상 왼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기도하기를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우스개 소리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흔히 하나님의 뜻을 영원하신 뜻, 혹은 기쁘신 뜻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절대주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와 선과 진실하심과 항상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변덕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물론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 말씀 자체이신 주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알 수 없을 때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예화)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만큼 돈도 없고, 공장에 들어가 일할 만큼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진 기술을 배워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우 돈을 모아 사진술을 엮어놓은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실수로 인해서인지 사진술에 관한 책이 오지 않고, 발성법에 관한 책이 왔습니다. 다시 우송하려고 하니 우송할 돈도 없고 또 방법도 몰랐습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는 수 없이 책을 가지고, 발성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책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차리 맥카시입니다.

하나님의 뜻일 경우에는 실수를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형식화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왜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는가?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고,
둘째는 종교가 형식화되어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행자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이후에 율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고 있는 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사55:8)고 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은 내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들은 복을 받고, 행복과 보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톤은 사람의 생각으로 왕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아프리카로 가는 것이 낫다고 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잠언 16: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했고, 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화)

G.Taboloff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28살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카네기 홀에서 성황리에 데뷔했고, 86년도에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경연 대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대회는 마치 4년 만에 한 번 가지는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여기서 우승하면 전 세계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는 이 대회를 위해서 10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회전 하루 전에 모스크바의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웽” 하는 소리와 함께 벌이 새끼손가락을 쏘았습니다. 손가락은 금방 부어올랐고 감각도 잃었습니다.
심판자들은 연주를 며칠 연기시켜주었지만 그러나 낫지를 않습니다. 10년간 이 대회를 위해서 준비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4년 후에는 나이가 넘기 때문에 출전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은 다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길을 계획해도 하나님이 허락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했던 것입니다.

2.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1)첫째는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선교주일에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반복을 피하려고 합니다. 다만 우리는 내가 직접 [가든가 아니면 보내야] 합니다.

(2)다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땅을 정복하라”즉 땅을 경작하라, culture하라, 즉 문화명령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인 존재로 다시 회복하지 못할 때 인간은 파괴적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다 창조본능과 파괴본능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나야 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파괴적인 인간성 때문에 하는 일마다 죄요 우상이요 욕심이요 정욕적이요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문화명령은 복음 전파의 명령보다 먼저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명령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한 후에는 복음전파 명령을 우선적으로 한 것은 순서상 그런 것이지 사실은 문화명령이 덜 중요해서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의 하나는 문화명령인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문화를 창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셋째는 개인적으로 살전5:16-18절의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가 찾고 있는 기쁨이 그릇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감사와 불평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천국의 특징은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천국에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만나는 사람들 마다 서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있기를 바랍니다.

3.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은 본래는 “생령이 된지라”, 영적 존재였지만 “이는 육체가 됨이라” 즉 영성을 상실한 존재가 되어 항상 생각하는 것이 육적이고, 감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눈은 앞으로만 있어서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이 되는가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멀리 보시고, 전체적으로 보시는 하나님의 뜻과는 항상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현재적으로만 보지만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보시고, 인간은 나를 중심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중심으로 보십니다. 따라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마치 동과서가 먼 것같이 항상 다른 방향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교사로 있었던 경남 거창고등학교란 아주 작은 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한국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좋은 학교 중에 하나이고, 인간 교육을 중심으로 신앙중심의 교육을 하는 유명한 학교입니다. 저는 설립자인 전 영창 교장선생님 밑에서 1964년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직장을 구하는 열 가지 원리가 있는데 전부가 세상의 표준과 정반대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적으로 인기가 없고, 월급이 적으면 앞으로 희망이 있다. 아내가 반대하는 직장이면 더욱 틀림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시골의 작은 학교가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이지 지금 얼마나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4.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할 때에 주시는 축복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주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가지 면에서 주십니다.

(1)과거적인 면에서 주시는 축복

무엇보다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과거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는 다 과거가 있지만 그러나 다 십자가의 공로로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된 것입니다.

(2)현재적인 면에서 주시는 축복

현재적인 면에서 받는 최고의 축복은 주님과의 교통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의 척도는 교통의 발달에 정비례합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발달하였는가를 알려면 그 나라의 교통발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에녹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동행하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기도생활입니다. 다음은 말씀의 연구와 큐티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미래적인 면에서 주시는 축복

최고의 축복은 저와 여러분들을 영화롭게 하여 주십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처럼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에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들은 이 땅에서 살기에 합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 그대로는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새들은 하늘에 날아다니기에 합당하지만 물속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들은 물속에서는 적합한데 땅에서는 못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이 땅에서만 살 수 있지 이 모습 그대로는 천국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살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영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의의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의 의로 단장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래에 주실 축복입니다.

맺는 말

이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걸어가신 길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것이 지금은 내게 해가 되어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그릇이 되고, 채널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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