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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않는 사람들 (눅 18:1-8)

by 【고동엽】 2022. 9. 16.

낙심하지 않는 사람들  (눅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1-8)

서울에는 방이 많습니다. 찜질방, PC방, 노래방, 복덕방, 대화방, 다방 등. 그런데 최근 중국에는 이색적인 방이 등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름 하여 『눈물의 방』입니다. 난징시내 한 호텔1층에 쿠바라는 눈물의 방이 문을 열었는데 이곳은 울고 싶은 사람들이 실컷 울고 갈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고 합니다. 1시간 동안 실컷 울고 가는데 50위안(우리 돈으로는 7,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눈물의 방에 들어가면 사무용 책상 위에 빗과 고춧가루 물, 통마늘 등이 준비되어있고 울다가 집어던질 수 있는 유리잔, 인형등도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10여명이 찾아오는데 8명은 여자들이라고 합니다.

울고 싶은 사람이 많은 곳은 중국뿐만이 아닐 것 입니다.
인간은 울면서 태어납니다. 재벌 손자로 태어나고 대통령이나 왕의 아들로 태어나는 아이라도 히죽이 웃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모두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평생을 살면서 웃고 즐겁고 재미나고 행복한 날들보다는 걱정과 근심, 염려와 수고 때문에 한숨 쉬는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인들 한숨 쉬고 걱정하고 울면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그 일을 대처하는 태도는 두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였던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꾸려고 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세상일이고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일이 조금만 어려우면 포기해버리고 낙심하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망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다가 절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망하고 포기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머리를 쓰고 시간을 쓰는 그 노력을 희망하기 위해 쓰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희망을 품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이 쓴 『생각의 법칙(Thinking for a chang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 책속에서
"생각을 바꾸면 믿음이 달라진다.
믿음이 달라지면 기대가 달라진다.
기대가 달라지면 태도가 달라진다.
태도가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지만 실력이 달라진다.
실력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행동을 바꾸려고 시도하기 전에 마음부터 먼저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안될일을 되게 만들고 어려운 일을 쉽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적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14은 기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기도는 기독교인이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운 사건을 쉽게 푸는 적극적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동원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도도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같은 도시에 억울한 사건으로 고생하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재판관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그 과부는 아침저녁 재판관의 출퇴근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원한을 풀어달라며 귀찮게 굴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재판관이 과부의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언제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밝혀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힘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과부의 문제해결법을 통해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1. 번거롭게 했습니다.
5절을 보면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라고 했고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하고 소리 지르고 길목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와서"라는 말의 뜻은 끝까지 와서입니다. 들어줄 때까지 문제가 끝날 때까지 라는 것입니다.

이 과부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만한 능력도 없고 집안에 실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판관에게 줄을 댈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끈기 하나였습니다.

그녀가 재판관을 찾아가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청탁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판관은 남자 그는 여자였습니다. 재판관은 권력을 가진 사람, 그녀는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재판관은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여러 면에서 무시당하는 소시민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법적소송을 하고 민원제출을 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방법은 밀어붙이는 끈기작전이었던 것입니다.
"번거롭게 하고", "늘와서", "괴롭게 하리라"...
이보다 더 위대한 도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판관을 하나님으로 비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사건 설명서를 작성하고 소장을 제출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정에 출두하여 심문을 받고...이런 절차는 법이 정해놓은 절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건내용을 직접 입으로 소리쳐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변호사를 법정대리인이라 부릅니다. 원고가 됐든 피고가 됐든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대리인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내 사정을 말씀드리는 기도는 대리인보다 당사자가 더 힘이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내 사정을 말씀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시편 28:1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라고 했고 28:2을 보면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했고 28:6을 보면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30:2을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부르짖고", "내게 응답하시고", "내 간구를 들으시고", "내 하나님이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시편 28편이나 30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그는 기도할 때 대리인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다윗 주변에는 대리인으로 내세울 만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비서실장도 있었고 경호실장도 있었고 그의 신앙을 이끄는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직접 "내가", "내 소리로" "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신앙의 위대한 점이며 본받을 만한 점입니다.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 운전하는 것, 집을 지키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등은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 밥 먹는 것, 결혼하는 것, 죽는 것 등은 대신하지 못합니다.
인생사에서 중요한 것들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친지나 이웃이 기도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기도는 직접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안 믿고 다른 사람이 대신 믿고 내가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밤낮 부르짖으면 풀어주십니다.

7절을 보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한이란 간절한 소원과 기도제목을 의미합니다.
밤낮이란 시도 때도 없이, 라는 것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언제 어디서나 부르짖는 기도의 적극성을 뜻합니다.

우리가 늘 마시는 물을 어느 액체보다 점도가 낮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액체보다 끈적거림이 적다는 것입니다.
만일 물이 끈적끈적하고 걸쭉하다면 물이 주성분으로 되어있는 피가 13만 킬로미터가 넘는 몸 안의 모세혈관을 흘러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을 많이 마실수록 피의 점도가 물처럼 묽게 되어 혈관을 잘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영양분과 노폐물을 운반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의 원리와도 같습니다. 어떤 이유든 기도의 통로가 막히면 안 됩니다. 상한 감정이 기도를 막을 수도 있고 누구와 다투고 남은 감정의 불순물(찌꺼기)이 기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숨겨둔 죄가 기도를 막을 수도 있고 의외의 고통이나 실패가 기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어떤 사연이든 기도가 막히면 영혼의 삶, 즉 영적 삶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심각하고 힘든 문제를 풀어주는 최선, 최상의 방법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양면이 있습니다.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경우입니다. 운송수단으로 자동차만큼 편리한 도구가 없습니다. 아무 때 어디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로 일 년이면 전 세계적으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휴대폰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늘 켜놓지 않고 필요할 때 전화를 걸 때만 전원을 켜놓습니다. 어떤 날 선교회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삐삐하는 신호음이 들렸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전원을 끄려 하는데 다시 삐삐하는 신호음과 함께 문자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았더니 "오빠, 지금 전화 줘. 난 오빠꺼야."라는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기가 막히고 놀라웠습니다.

저는 외아들이어서 여동생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인들 가운데 저더러 오빠라고 할 정신 나간 교인도 없습니다. 헌데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무작위로 누구에게나 그런 메시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기 걸리면 80 지난 할아버지도 오빠가 되는 것입니다. 휴대폰의 경우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도라는 선물은 단한가지도 부정적 요소나 역기능이 없습니다.
100번 기도하면 100번 다 좋습니다.
아닙니다. 100번 기도하면 천가지 만가지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한번 기도안하면 천가지 만가지 나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충신교회는 두 가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운동이고 하나는 전도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그 어느 운동에 비길 수가 없는 운동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본문의 과부처럼 밤낮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낙심을 물리칩시다.
낙심 말고 기도합니다!  


출처/박종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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