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결론 (삼하5:10-12)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고, 기도를 하시면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 다. 그런데 저는 때때로 성경을 읽다가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더 이상 성경을 읽어갈 수 없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읽는 성경이 여러분이 읽는 성경과 다른 특별한 성경은 아 닙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침 일찍 사 랑하는 아들에게 장작더미를 지게하고 그 아들의 손을 잡고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눈물 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신약성경의 베드로는 사랑하는 선생님이 로마 병정에게 잡혀 끌려가 는데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 바짝 쫓아가지 못하고 멀찍이 쫓아갑니다. 대제사장의 집 뒤뜰에 앉아서 예 수님을 모른다 세 번씩이나 부인하다가 첫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 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대제사장의 뜰에서 고난을 당하시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님의 눈빛을 보면서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 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사무엘하 5장 12절 말씀을 읽어가면서 또다시 눈물이 나서 성경을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성경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 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하나님도 감당하기 어려운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다윗이 천신만고 끝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 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란 것을 알고 있 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지 300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 이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지만 다윗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살아가면서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당시는 무슨 뜻인지 몰랐던 일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주노동자 선교를 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인 중 아무도 왜 이 일을 하는 가에 대한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선교를 처음 시작할 때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 다. 이주노동자들을 데려다가 섬겨야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이 일이 선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역 사적인 의미는 더해질 것입니다. 신앙적으로도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당하는 환란과 어려움에 무슨 뜻이 있는지 지금은 모를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재미있는 일은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은 다 그 이유를 아는데 본인만 그 이유를 모 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과 어려움을 당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것을 압니다. 또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많은 고생을 하고 많은 어려움을 다 이기고 천신 만고 끝에 왕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다윗이 저절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온 갖 노력을 하여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미친 짓을 하기도 하고 배가 고파 빌어 먹기도 했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온갖 천대를 받으며 지냈습니다.블레셋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주민 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생 끝에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모든 일을 내세우 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해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원수라 할 수 있는 사 울을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옷 을 찢고 슬퍼 울며 금식을 했습니다. 사울의 장래를 잘치러 준 야베스 사람들을 선대했으며 사울을 죽인 자를 꾸짖고 벌했습니다. 여기에 고도의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윗은 왕이 된 뒤에 이와 같 은 지혜로운 자신의 처세와 덕을 쌓은 것에 대해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 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의 공을 이야기 하고 자기의 능력을 내세우 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을 알고 있다는 다윗의 고백에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베드로를 좋아합니다. 베드로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계산할 줄 모릅 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그에게 천국열쇠를 주시고 자신의 양떼를 맡기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 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베드로의 실수 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고 면박을 당한 일, 십자가를 멀찍이 따라 간 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 일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14장은 베드로가 물에 빠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쓴 복음서인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바다를 걸어가다가 물에 빠졌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창피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지도자인 베드로의 실수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가 뚜벅뚜벅 바다 위로 걸어오는 것을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이것을 본 베드로가 자 신도 걷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예수님이 허락하셨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경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만 우리는 몇 가지 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자랑스러운 마음 동료들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입니다. 물위를 걷는 자신이 대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물 위를 걷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걷는 것 처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평상시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베드로는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입니 다. 그 순간 베드로가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물 위를 걷는다고 생각한 순간 베드로는 물 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생각을 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나는 능력있는 사람이다. 내 힘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고 베드로처럼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때때로 당하는 시험과 부끄러움은 다 이러한 교만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 는 일인데 내가 잘나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물 위를 걷는데 내 힘으로 걷 는다고 생각할 때 물에 빠지게 되고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왕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 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을지 모르고, 먼 훗날 역사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알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 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다윗을 보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감동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고 또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가졌던 믿음 내가 한 것 은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것은 안다는 이귀한 신앙의 고백이 늘 여러분에게 함께 하 시길 바랍니다.
출처/인명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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