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들이 사는 집 (시84:1-4)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들의 구주로 보내주신 일과 그 다음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신 일입니다. 교회는 어느 인종이나 어느 문화나 어느 계급에 속한 사람을 막론하고 누구나 들어와서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과 그리고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빨리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1,23).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1999년 7월부터 “교회는 어떤 곳인가?” 라는 주제로 제가 여러 번 설교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교회는 다음과 같은 곳이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죄와 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교회는 은혜와 축복의 창고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교회는 피로 사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교회를 성막, 성전, 또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얼마 동안 “교회는 어떤 곳인가?” 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교회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키프리안이라는 초대교회 교부는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원조인 칼빈도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어거스틴을 비롯한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는 은혜의 보고 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라는 보배로운 창고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 교회가 흠이 없는 완전한 장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이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보배로운 곳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무시하고 함부로 비판하고 쉽게 떠나면 구원도 은혜도 받을 수 없는 불행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서론적인 말씀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모한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주 수요일 구역장 모임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 권사님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변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강변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강변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강변교회에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던 여러 가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저는 새벽마다 수지에서 강변교회를 향하여 운전을 하고 오면서 강변교회에 가까이 오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거의 매일 지닙니다. “아! 오늘도 하나님의 집에 오는구나! 아! 오늘도 주님을 사모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슴에 아늑함과 포근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사모한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한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몽땅 받았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몽땅 받았던 이유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한 평생 눈물과 회개의 제사를 드린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너무너무 사모하고 사랑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간절한 마음으로 앙망하고 사모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사는 것을 자기의 평생의 소원이고 평생의 기도제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한 열성이 자기를 삼켰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69:9). 사람들이 다윗보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했을 때 다윗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다윗은 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65:4). 이 고백들은 모두 다윗의 간절한 사모의 고백들이었습니다. 시84편을 고라 자손의 시라고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시84편도 다윗의 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시를 고라 저손이 다시 읊은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84편을 다윗의 시라고 생각하며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1-4,10-12).
다윗은 자기의 집보다도 자기의 궁전보다도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자기 개인의 소유를 모두 바쳐서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대상29:2-4).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다윗은 참으로 축복 받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몽땅 받았는데 후에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를 만큼 다윗은 대단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복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한나는 절기 때마다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며 기도를 하곤했는데 한번은 가정 불화로 인해 속이 너무 상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기도의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너무너무 기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한나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엄마의 젖을 뗀 후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3:1-4,10-11). 결국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집에 올라와서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강변교회에도 어릴 때부터 주일 아침에는 물론 주일 저녁까지 교회에 나와서 성경암송도 하고 노래도 하며 예배 드리는 예쁜 어린이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저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평생토록 받을 것입니다.
눅2장에 보면 안나라는 여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가 100세가 넘을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2:36-38).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구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일과 그 분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인데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났고 그리고 그를 세상에 증거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 생긴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말씀이 충만했고 교제가 충만했고 기도가 충만했고 성령이 충만했고 봉사가 충만했고 사랑이 충만했고 전도가 충만했고 찬양이 충만했습니다. 저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날마다 성전에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예루살렘 교회는 축복 받은 교회였고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축복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셋째,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한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모두 복 있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 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평생토록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자주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어릴 때부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교회를 사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아마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와 신학생 때까지 아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날까지 주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에 있었고 수요일은 물론 주중에도 교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여러 교회들을 거쳐갔지만 모든 교회들을 모두 귀중하게 여기고 모든 교회들을 모두 사랑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등한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모두 충실하게 했습니다. 그저 교회 가는 것을 좋아하고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좋아하고 교회에 가서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서울에서도 대구에 피난 가서도 왕십리에서 개척교회 할 때도 언제나 교회를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로 달려가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과 대학생과 신학생 때까지 아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날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를 좋아하고 교회를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집보다 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더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개 시대의 사람들이 교회보다 자기 집들을 사랑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학개1:9).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집보다 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더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의 죄인들이 들어와서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만져주시고 여러분들의 병든 몸을 고쳐주시고 여러분들의 죄 지은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의 이슬을 아침마다 내려주시는 시은소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함께 모여서 위로와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기쁘게 사는 행복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들이 들어와서 위로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정동기 김효진 선교사부부와 지수와 지운이도 나그네 선교사들로 우리 강변교회에 와서 위로와 사랑을 주고 받았습니다. 우리교회의 고등부에 정지수라는 학생이 있는데 아파서 고생하는 동생 지수에게 예쁜 그림을 그려서 주고 예쁜 편지를 써서 주며 위로와 격려를 한 일도 있습니다. 저는 그 그림과 그 편지를 읽어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글을 읽어 드립니다. “지수에게 안녕? 언니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 사실 나도 너를 잘 모르지만 우린 이름이 같은 정지수란다. 나는 강변교회를 다니는 고등학생이야. 아마 내가 너와 이름이 똑 같고 강변교회를 다니고 미술을 한다는 건, 내가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신, 예비하신 일일 거야, 언니는 하늘을 참 좋아해. 하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계시는 푸른 하늘을 너는 분명 새처럼, 천사처럼 날아갈 꺼야. 하나님께서 너를 안아주시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말이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지금은 많이 아프고 힘들지? 널 위해 기도할께. 지수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내가 그려준 그림을 보면서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지수야.. 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지수 언니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고 감동적인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수가 지수를 위해서 그린 하늘 그림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립니다. 너무 멋지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감동적인 그림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와 같은 위로와 사랑을 서로 주고 받는 행복한 곳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함께 모여 있다가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는 천국 가는 대기소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집보다 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더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교회를 싫어하고 무시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싫어하고 무시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을 사모하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죄인들의 구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에 우리 모두 여기 모여서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출처/김명혁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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