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사41:8-16)
▶신설동 설렁탕 집 이야기를 먼저 소개합니다. 신앙이 좋은 집사 님이 설렁탕 집을 권리금을 주고 모든 것을 그대로 주방장까지 인수받았습니다. 내일이면 이제 설렁탕 집을 운영하게 된 집사 님이 교회에 와서 간절히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예수님을 대접하듯이 하게 하여 주세요"
다음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첫 출근을 했습니다. 주방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하루 종일 팔 설렁탕 국물을 큰 가마솥에다 끓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고기 국물처럼 보이게 하려고 커피 후림을 약간 타서 뽀얗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본 집사 님이 혼자 중얼거리기를 "예수님을 어떻게 커피 후림을 탄 설렁탕 국물로 대접 하냐?" 그리고 그 국물을 아깝지만 다 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금일 휴업!>
식사 때가 되어 설렁탕을 먹으러 온 손님들이 왜 휴업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그대로 솔직하게 다 하자, 그 주변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데, '저 설렁탕 집은 진짜 고기국물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설렁탕집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어서 최고로 잘 되는 설렁탕 집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집트의 한 가난한 농부가 알라 신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돈 200파운드만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본 우체국에서는 수신자가 알라 신이므로 어디로 전해 줘야 할지 몰라서 계장에게 주었고 계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국장에게, 국장은 체신부 장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를 받은 체신부 장관은 그것을 대통령에게로 보냈습니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낫세르'는 그 편지를 뜯어보고는 농부의 사정을 매우 딱하고 불쌍하게 여겨 대통령 이름으로 100파운드를 우송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100파운드를 받고 기뻐하거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발대발했다고 합니다. "알라 신은 분명히 내가 요구한 200파운드를 보내 주셨을 거야. 그런데 대통령이 중간에서 100파운드를 떼어먹고 나머지 100파운드만 내게 보낸 거야"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제목소개!▶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이스라엘을 지칭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을 지렁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다른 짐승이나 곤충도 많은데 왜 하필 지렁이에 비유를 했을까요? 그것은 인간과 지렁이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지렁이는 시궁창에서 삽니다. 냄새나고 썩고 부패한 더러운 곳에서 삽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패한 사람, 썩은 사람, 죄악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 지렁이는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렁이는 눈이 없습니다. 사람도 빛에 거하여 의로운 일 행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타락하고 방종한 삶을 좋아합니다.
셋째, 지렁이는 무골 충이라 뼈가 없어서 징그럽습니다. 누가 지렁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사람도 줏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의리도 없고, 은혜도 모릅니다. 달콤한 유혹이 다가오면 쉽게 넘어가고 돈에 넘어가고, 권력에 넘어갑니다. 그래서 배신하고 배반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지렁이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렁이를 그렇게 무시할 것도 못됩니다. 지렁이는 세계적으로 1,800종에 달하고, 우리나라에만도 38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여자들이 바르는 립스틱의 원료가 지렁이랍니다. 지렁이를 말려서 가루를 내면 아주 보들보들하기 때문에 화장품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매일 지렁이를 바르고 사는 것입니다.
욥25:5절에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고 표현했고, 시22:6절에도 다윗 왕이 자신을 가리켜 '벌레'라고 한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 지극히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지렁이처럼 연약한 존재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뽑아 당신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할/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남 유다를 향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는 남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에 빠지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하신 백성은 아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다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비록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서 심한 고난을 겪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지렁이 같은 처지가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셔서 결국 대적에게 승리하게 해 주시고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같이 강하고 새로운 존재로 회복시켜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는 이 예언의 말씀대로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였지만, B.C. 538년 바사 고레스 왕이 칙령을 반포하여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택한 백성, 택한 사람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지렁이같이 비천하고 낮은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세 가지 이름으로 불러 주십니다(8).
①'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종은 주인의 명령에 죽고 사는 존재입니다. 종은 순종만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만 하면 승리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나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한 사명, 일감을 주시고 그 일에 순종하면 우리 모두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
②'나의 택한 야곱아!' 우리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존재입니다. 야곱은 성경 인물 중에 가장 치사한 인물입니다. '사기꾼, 거짓말쟁이, 속이는 자, 약탈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택함 받을만한 이스라엘이 된 다음에 택하신 것이 아니고 야곱으로 있을 때 택하여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 받아 물이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포도주가 됩니다.
③'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과 친구처럼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할/
2.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9)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멀리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하나님은 끝까지 찾아오셔서 우리를 택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다시스로 간 요나도, 결국 하나님이 일으키신 풍랑을 통해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다시스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아무리 도망을 쳐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회개시키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먼, 땅 끝인 갈데아 우르에서 택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택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게 하시고, 축복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말을 안 듣고 도망치고 불순종해도 부모는 그 자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리고 도망쳐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끝까지 자식을 사랑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것입니다.
신4:31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버림을 당하면 얼마나 외롭습니까? 사람에게 버림당하는 것도 비참한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다면 망하고 맙니다. 사울을 보세요!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려서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곧 심판을 의미하고,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사람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버리지 아니하시고 믿음의 분량 따라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면, ▶만사 형통하게 하시고(시106:5), ▶재물의 축복을 주시고(사45:3), ▶기도를 응답해 주시며(눅18:7),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십니다(롬8:28). /할/
인간들이 먼저 하나님을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떠나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렸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태양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빛을 주셔서 끝까지 우리의 생명을 보존케 하여 주십니다.
▶영국의 헨리 8세 밑에서 오랫동안 황제를 보좌했던 추기경 '울지'라는 사람이 마침내 왕의 신임을 잃고 대역죄로 체포되어 런던 탑,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평생 왕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자, 낙심한 채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왕을 섬긴 것처럼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았을 것이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탄식을 합니다. 사람을 섬기고 사람에게 버림을 당합니다. 돈을 섬겼는데 돈으로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권력을 섬겼으나 권력도 떠나고, 명예를 섬겼으나 명예도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이 세상 것이 다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당했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섬겨서 하나님 앞에 사랑 받고 칭찬 받고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10)
본문은 언제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언제 봐도 새 힘이 나고 살맛이 나서 신바람이 나게 하는 말씀이 바로 본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본문을 승리의 전화번호 24-4110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 생활이 지겹도록 계속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는 고국 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영 낯선 이국 땅에서 종살이하다간 끝날 것만 같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본문을 주셨습니다.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에 싸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소망을 안겨 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 어느 시대, 그 누가 들어도 동일하게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인 줄 압니다.
①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놀라지 안아도 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그때 바벨론 임금의 이름은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온 천하를 점령하고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자기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큰 금 신상을 하나를 세웠습니다. 사방에서 그 신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다 그 금 신상 앞에 꿇어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일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뜨거운 풀무 불 속에 집어던질 것이라고 엄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 가운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하는 세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금 신상 앞에 꿇어 엎드려 절하려 할 때 이 세 사람은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하여 왕 앞에 붙들려 왔습니다. 왕이 호통을 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조금도 굴하지 아니했습니다. 비록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뜻을 굽힐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자기들은 절대로 그 금 신상 앞에 꿇어 엎드려 절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평소보다도 풀무 불을 일곱 배나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세 사람이 풀무 불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얼마나 뜨겁던지 그 형을 집행하던 사람의 몸에 불이 붙어서 순식간에 그 사람을 불태워 죽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히 풀무 불 속에 던져진 사람은 세 사람이었는데, 네 사람이 자유스러운 몸으로 불 가운데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 세 청년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에서도 그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나서 메대의 왕 다리오가 바벨론을 물리치고 세계의 정복자가 되었을 때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자 굴에 던짐을 받았지만, 여기서도 다니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무서운 사자 굴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저 포항 종합 제철소에 있는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보라 하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또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사자 우리 속에 들어가 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풀무 불같이 뜨거운 시련 속에서도, 사자 굴같이 무서운 시험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 싸워서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②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굳세게 하리라' 믿음은 강함과 담대함입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가 지명이 되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수1:6-9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신앙생활은 마음공부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이 성숙한 것이 신앙입니다.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한결같이 가는 것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숙이라는 것은 마음이 커지는 것이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고, 또 마음이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말은 중심부라는 뜻입니다. 내 과거의 상태를 무엇이 결정했을까? 내 마음이 결정했습니다. 오늘의 나의 상태를 무엇이 결정합니까? 내 마음이 결정합니다. 내 미래가 어렵다. 내 미래가 확연치 않다. 내 미래가 불완전하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내 미래를 누가 결정할까요? 내 마음이 결정합니다.
마음만 건강하면 마음만 든든하면 마음만 강하고 담대하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마음만 너그러우면 마음에 평화가 있으면 마음에 풍요만 있으면, 죽고 사는 권세가 내 마음에 있습니다. 무릇 지키려면 내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계명도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마음이 첫째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생각)을 바꾸고 결단하고 일어서면 하나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기적은 그 때 일어납니다. 여기 '오른손'은 능력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③"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두려워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게 하십니다. /믿/
사43: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아무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으려면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총각이 처녀를 만나서 '자기는 내 거야'라고 말하고 결혼을 했으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능력의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가장 빨리 정상에 오른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두려움 가운데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성공하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담대함을 가지고 용기 있게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근심이 있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영양실조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양실조에 걸리면 비실비실 합니다. 빈혈이 와서 거리를 가다가도 푹 쓰러집니다. 사람은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여 비실비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반석 같아지면 담대한 인생, 풍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 두려움, 공포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우리는 반석 같은 삶,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에 가면 동부 끝에는 뉴욕이 있고, 서부 끝에는 로스앤젤레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쪽에서 저쪽 도시로 가려면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을 가야 합니다. 어쨌든 뉴욕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이고, 로스앤젤레스는 세계 영화의 중심지입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로 벌어들이는 돈이 뉴욕에서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돈과 맞먹는다고 하니, 경제적인 면에서는 두 도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도시는 외형적으로 볼 때 아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100층짜리 고층 건물들입니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50층짜리 건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지반의 차이 때문입니다.
뉴욕은 도시 전체가 암석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100층짜리 건물을 지어도 끄떡없습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는 지반이 약하고 지진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큰 빌딩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빌딩을 짓는다 해도 지진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하게 짓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그 위에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의심만 하고, 확신도 자신감도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베푸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담대한 믿음,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시지,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떠는 사람과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4. 네게 노하던 자, 다투는 자, 싸우던 자, 치는 자들이 멸망할 것이라!(11-13)
얼마나 신나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경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또한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에게 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며,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12:19)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인생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전쟁에서, 싸움에서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한 원수, 악한 마귀 사탄을 무력하게 만드시고 물리쳐 주십니다. 장애물, 위험 가운데서도 보호하여 주십니다.
또한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신28:7절을 보세요!“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얼마나 혼비백산했으면 올 때는 모여서 한 길로 왔다가 도망갈 때는 일곱 길로 뿔뿔이 흩어져 갔겠습니까?
수23:10절에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하나님께서 이렇게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이 어린 소년이었고, 골리앗은 장성한 거인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다윗이 던진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게 되었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 목을 베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육체적인 조건이나 군사적인 작전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막강한 백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두 가지 점에서 승리를 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죄악과 싸워 승리했으며, 둘째는 죽음과 싸워 승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죄악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죽음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 삶에도 승리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이미 승리했으며, 앞으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들과 인종차별주의자들 앞에서 한 마지막 연설은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악이 승리한 적은 있었지만 결국에 가서는 진리가 승리해 왔습니다. 우리가 진리 편에 서서 일을 한다면, 진리가 승리함과 동시에 우리도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불의가 득세하는 것 같고, 거짓이 이기는 것 같고, 사기꾼과 도적이 잘되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누가 승리합니까? 진리가 승리합니다. 선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승리를 보장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5.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라!(14-16)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지렁이같이 천박하고 연약한 존재도 타작 기계처럼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만 지렁이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지렁이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바벨론 군대와 맞서서 싸울 힘도, 군사도 없었습니다.
지렁이는 땅속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비천하고 무력하고 비참한 존재입니다. 이빨도 없고 다리도 없습니다. 햇볕만 강하게 받아도 죽습니다. 다른 대적의 공격을 받아도 대항해 싸울 수도 없고, 땅속으로만 도망하는 비겁자입니다.
오늘날에도 지렁이와 같은 존재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인간은 연약합니다. 싸울 수 없습니다. 비겁합니다. 떳떳하게 싸우지 못합니다. 병들고 죄짓고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택하셔서 축복하시고 능력과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누가 지렁이를 강력한 존재로 만들 수 있습니까? 누가 지렁이를 승리자로 만들 수 있습니까? 누가 지렁이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만들 수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렁이를 택하여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는 아주 튼튼하고 강한 무기로, 하나님께서는 지렁이같이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존재를 들어서 성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죄악과 싸워 이기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산을 내리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정도로 강력한 승리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원수와 싸워 이기고, 장애물을 다 쳐부수고, 불행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의 깃발을 날리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그들을 까부른 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 바람이 그것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흩어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심판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결국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시103:5절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새 중의 왕인 독수리 같은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겠답니다.
▶어떤 농부가 산에 갔다가 독수리 새끼를 잡아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닭장에 넣고 닭과 함께 키웠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먹이를 주는데도 독수리는 날이 갈수록 덩치가 점점 커졌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놀러왔다가 그 독수리 새끼를 가리키며 "저놈 독수리 아니야?" "응, 독수리이긴 독수리인데, 닭이야." "왜?" "닭하고 함께 자랐으니까 닭이지. 저 독수리는 날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닭이랑 똑같아" "무슨 소리? 독수리는 독수리지. 어떻게 독수리가 닭하고 있다고 닭이 되겠나?"
그래서 그들은 닭장 문을 열고 독수리를 하늘로 휙 집어 던져보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날아보지 못한 독수리는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던졌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던지자 독수리는 날개를 퍼드덕거리더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여러분, 이게 독수리입니까, 닭입니까? 여러분은 세상 사람과 섞여 있어도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날개를 쫙 펴고 날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처럼 살겠습니까, 닭처럼 살겠습니까?
여러분도 독수리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는 닭장 속에서 닭과 어울려 살았다 할지라도, 믿음의 날개를 확 펴면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독수리가 새 힘을 얻어서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새로운 힘을 얻어서 높이 올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면, 우리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되 어떻게 축복하십니까? 하나님은 욥을 축복하시되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욥42:10절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한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나서는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의 편지에서 "나는 지난 35년 간 사회혁명가로서 아무 것도 믿지 않는 허무주의자였다. 그러나 5년 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내 생애는 변화되어 절망과 허무는 사라지고 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였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면 기쁨이 넘쳐납니다. 행복한 삶,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삽니다.
▶프랑스의 한 중학교 교사가 생활기록부에 학생들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학생의 생활기록부에는 특별히 더 많은 내용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 학생은 우리 반에서 제일 키가 작고 병약한 아이이다. 이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는지 심히 염려스럽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 후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그 선생님이 그렇게 염려하던 아이도 나이를 먹어 73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73세 된 할아버지가 국민투표에 의해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이 되었고, 그의 생일은 국가 공휴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바로 현대의학의 아버지이며, 세균학과 많은 예방 접종 약의 개발자인 '파스퇴르'입니다.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고, 낙심하지 않았으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병약하던 아이가 가장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나 불행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낙심해서도 포기해서도 안되며,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가지시고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어느 마을에 소문난 지독한 술주정뱅이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아내와 자식들을 구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믿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또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 왔는데,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남편이 '뭘 하는 거야!'하고 고함을 치더니 이내 한쪽 구석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그때 한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다시 오신 단다. 오셔서 모든 사람을 다 심판하실 거야.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양같이 착한 사람은 오른편에 염소같이 나쁜 사람은 왼편에 두실 거란다. 그리고 나서 오른편의 선한 사람들은 다 천국에 데리고 가고, 왼편의 악한 사람들은 다 지옥에 보내신 단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막내아들이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 아빠는 염소야?" 그런데 옆에서 졸고 있던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순간, 아이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크게 확대되어 들렸던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변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고 타락했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자식들과 가정을 위해서 아주 헌신적인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답니다.
아무리 남편이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한다 할지라도 아내가 끝까지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면, 결국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행복과 승리를 보장하여 주십니다.
약2: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유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며, 죄인을 의롭게 만드시며, 버림당한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친구로 삼으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1970년대 미국에는 히피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면도도 하지 않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통기타를 치고 맥주를 마시면서 마리화나를 피웠습니다. 인생을 그냥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이 기도를 하던 중에, '하나님, 저 히피들도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히피들에게 찾아가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기도를 해 주자 한 사람, 두 사람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거리에서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욕도 하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냥 맨발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몸에서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자 기존의 교인들이 질색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우리 교회를 히피교회로 만들 겁니까? 냄새가 나고 더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들은 히피들을 받아주어야 할지, 말지를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그들에게도 사랑으로 주의 복음을 전파하자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히피들은 교회에 나오면서 점점 삶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성가, 가스펠송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모든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히피도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병든 사람도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도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자도 버리시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런 자들을 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습니다. 택하셔서 의롭게, 새롭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일꾼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6. 왜 우리를 축복하십니까? 그 분 안에서 즐거워하고 자랑하라고!(16)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자랑을 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복 받고 능력받고 승리자가 된 것을 반드시 자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APT가 넓은 것입니까? 화장실이 두 개, 세 개인 것이 자랑입니까?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자랑입니까? 자녀가 자랑입니까?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내가 되면 안됩니다. 그 자랑은 교만에 불과하고 허영에 불과하고 사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랑을 싫어하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랑의 중심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그분만을 자랑하는 성림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의 군대 (왕하6:14~19) (0) | 2022.09.12 |
---|---|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간의 실존 (롬1:24-32) (0) | 2022.09.12 |
자녀에게 (신 6:7-9) (0) | 2022.09.12 |
섬김의 도리 (마태복음 20:20~28) (0) | 2022.09.12 |
뺏앗지 못할 기쁨 (요 16: 12~24) (0) | 2022.09.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