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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롬 12:1-2)

by 【고동엽】 2022. 9. 10.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롬 12: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샬롬!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로 정한 '진보하는 교회'에 맞추어 시리즈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 목표에 따라 저는 먼저 '경건 생활에 진보하자'는 뜻으로 경건의 핵심인 '예배'에 관해 두 번 설교하였고, 지난 주일에는 '찬양'에 관해 설교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을 의지하여 다시금 '예배'에 관해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다시 구약시대로 되돌아가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자"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이 "우리 몸을 불태워 제사를 드리자"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사람의 몸을 불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늦둥이 외아들 이삭을 바치기를 명하신 적은 있지만, 여러분이 잘 다시다시피,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떠보시려는 의도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양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옛날 이방 사회에서는 실제로 사람을 제물로 바친 풍습이 더러 있었습니다. 특히 몰록 신을 믿는 사람들은 힌놈 골짜기에서 그들의 자녀를 불태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언제나 사람을 태우는 불이 타올랐습니다. 나중에 이곳은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장소로 생각되었고, 여기서 '불타는 지옥'이라는 생각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할 때, 이방인처럼 실제로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몸'이란 단순히 육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우리 전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우리 마음이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바울이 "특정한 장소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이제부터는 드리지 말고, 생활하는 중에 각자의 편리대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불신앙과 게으름을 둘러대기 위해 "굳이 교회당에서 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다.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대형 교회의 멋진 예배 장면을 안방까지 중계해 줍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작고 초라한 우리 교회의 예배보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드리는 예배가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런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빠지는 것보다는 이렇게 해서라도 예배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예배가 온전한 예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고 말합니다. 아마 그 당시에도 모이기를 싫어하고 혼자 조용히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몸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에는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와 찬양과 헌금을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컴퓨터로 자동으로 이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훌륭한 기도에 따라 함께 기도할 수 있고, 거기서 울려나오는 멋진 찬송을 따라 함께 찬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정성스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지,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해도, 성도들이 다 함께 한 곳에 모여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예배하는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원래 '분리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번잡한 일상 생활과 분리되어, 죄악으로 오염된 공간과 분리되어 예배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할 때까지 우리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생활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당 안에서만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주일의 예배는 평일의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회당 예배는 생활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도가 모이는 것은 흩어지기 위함이요, 흩어지는 것은 모이기 위함입니다.

저는 예배가 경건 생활의 심장과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맑고 좋은 피를 온 몸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는 함께 모여, 활기차게 드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피가 온 몸으로 흘러가듯이, 우리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다가 피는 다시금 심장으로 돌아갑니다. 더러운 피를 걸러내고 신선한 피를 공급받기 위해 심장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우리도 더러운 죄악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 다시금 교회당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기서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야만,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아들 내외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아버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서 언짢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니 너희들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곧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 밥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냐?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 그러니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희들이 교회에 다닐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들 내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 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산 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죽은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정성을 다해 사람을 섬기면, 그것이 곧 산 제사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도 감동할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드릴 영적인 예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몸가짐, 우리의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전체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목적은 가족을 부양하고 출세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성도가 일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일하기 전에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여러분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십시오. 독일어로 직장(Beruf)이라는 말은 소명(Berufung)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직장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부름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직장을 세상 사람처럼 단순한 호구지책이나 출세와 영달의 수단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직장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수단, 거룩한 소명으로 여기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직장을 통해 거룩한 산 예배, 생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능력, 직장, 일, 시간, 공간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리시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십시오. 여러분의 능력과 직장과 일과 시간과 공간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도로 돌려드리십시오. 하나님에게 온전히 바칩시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의 직장도 성직이 될 것이고, 여러분의 노동도 곧 예배가 될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다른 목사님께서 임시로 강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가 다 끝난 뒤에 그는 심각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본 교회 목사님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사님을 위해 신장 하나를 기꺼이 기증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심장을 기증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오늘 제가 가벼운 오리털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 오리털을 힘껏 불겠습니다. 그러면 이 오리털이 날아가다가 내려앉은 사람이 자기의 신장 하나를 목사님께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이 일에 순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그 목사님은 오리털을 손에 들고서 입으로 세차게 불었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고개를 들고서 과연 그 오리털이 누구에게 떨어질까 주의 깊게 바라보았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어떤 장로님의 얼굴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장로님은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오리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장로님의 입김에 그 오리털은 다시금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중에 빙글빙글 맴돌던 그 오리털은 이번에도 어떤 권사님의 얼굴에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도 깜짝 놀란 모습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아멘!" 그러자 그 오리털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모처럼 은혜가 충만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목사님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드리라는 뜻도 아니겠지요.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든, 목사님이든, 성도든, 말로만 사랑하지 말로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 마음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곧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산 예배를 통해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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