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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라. (출애굽기 4장 10절부터 17절)

by 【고동엽】 2022. 9. 6.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라.   (출애굽기 4장 10절부터 17절)


오늘은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과거에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보니까 역시 많은 성도들의 문제가 열등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매력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은 자기 외모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괜찮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사회적인 낙오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 평균 이상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는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잘 보니까 그것은 외적인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문제이고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속이 병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예를 들어서 화초에 관한 것도 지식이 있을 때 화초가 보이는 것이고 동물에 대해서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특별히 복음서를 보면 마태?마가?누가?요한이 있는데 원어성경으로 보면…… 특히 마틴로이드 존스 같이 의사 출신인 목사님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누가가 본 것이 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의사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병색이 돌았다, 어떻게 되었다, 어떻게 되었다…… 지식만큼 보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자기 속사람이 썩어 있으면 세상이 썩어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제가 그때 그런 얘기를 했었지요.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고 합니다. 한참 조사를 해 보았더니 아픈 데가 있을 리 없다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손가락이 아픈 것이었다고 합니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머리를 만지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을 만지니 가슴이 아프고 팔을 만지니 팔이 아프고…… 문제가 무엇입니까? 손가락이 문제입니다.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 문제입니다. 손가락 부러진 것 때문에 온몸이 다 부러진 것 같이 보이고 문제처럼 보입니다. 나의 태도가 바로 문제입니다.
오늘은 열등감, 무력감, 자기불신을 깨는 법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창조의식

모세,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왕궁에서 자랐고 사지가 멀쩡하고…… 처가살이 40년 한 것을 빼놓고는 괜찮은 인생 아닙니까? (성도들 웃음) 그런데 오늘 보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안 한다, 못한다, 말 못한다, 나는 말 못한다, 자꾸만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모세는 절대로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는 평균이상의 인생을 산 사람인데도 열등감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열등감을 벗어나는 길, 첫째, 비교의식이 아니라 창조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남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열등감에 빠집니다. 남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자기보다 나은 존재가 있거든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교만해지고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좌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함이나 열등감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식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비교 안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서있는 것이지요.
출애굽기 3장4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모세가 가는 귀가 멀었습니까? 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두 번 부르셨습니까. 하나님 버릇입니까?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 왜 두 번 불러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 부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세에 대한 애정의 표시입니다. 너무 예쁜 사람에게는 두 번 부르게 되지 않습니까? 혜연아, 혜연아…… 이렇게 두 번 부릅니다. 예쁠 때 그럽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살 때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양하고 사니 양이 음매~ 그러지 모세~모세~ 그럴 수 있습니까? (성도들 웃음) 아마 40년 동안 광야에 살면서 자기 이름조차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이름이 불리우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해 주는 방법입니다. “너는 나에게 있어서 독특한 존재다.”
저는 이번에 히딩크 감독의 능력 중의 하나를 보았습니다. 연장전 들어가기 전에 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한명씩 전부다 어깨 두드려 주었습니다. 정말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남자 아이들인데도 양쪽 볼을 쓰다듬어주더라고요. 알아듣는지는 모르지만 뭐라고 얘기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절대로 모아놓고 얘기하지 않고 한사람씩 한사람씩 해 주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제일 감격해 할 때가 언제이냐 하면 자기의 이름을 불러줄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 걸고 열심히 이름을 외우려고 합니다. 밤낮 “형제 이름 뭐야, 자매 이름 뭐야?” 그러고 다니니까 그것이 제 호라면서요? “형제 이름 뭐야, 자매 이름 뭐야?” 하는 것이 그 말이니까…… 이름 불러주려면 열 번을 묻고 스무 번을 물어서라도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이름 안 부르는 사람은 그래도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만 자꾸 물어보니까 몰라 보이지. 교인들 새로 오니까 죽을 때까지 계속 그럴 것입니다. 형제 이름 뭐야, 자매 이름 뭐야, 아줌마 이름 뭐야, 아저씨 이름 뭐야, 할머니 이름 뭐야, 할아버지 이름이 뭐야…… 계속 불러야지요. 이름 불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번에 제주선교 가서도 연계교회 목사님에게 ‘어이, 목사님!’ 그러지 말고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주세요. (성도들 웃음) 거기 담당하는 목사님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합니다. 이름을 빨리 외워야 합니다. 이름을 외우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그 사람을 무리 중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독특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등의식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 이냐하면 나를 많은 무리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독특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그런 비유 많이 했었지요. 상품과 작품의 차이가 무엇이냐! 상품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이것보다 저것이 더 좋다, 이렇게 비교가능한 것이 것이 상품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비누가 더 좋다…… 상품은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작품은 비교가능하지 않습니다. 옛날 동양화 얘기 많이 했지요. 김홍도의 작품이 뛰어난가 신윤복의 작품이 뛰어난가, 그러나 어떤 것이 뛰어난지 말할 수 없습니다. 김홍도는 김홍도 나름대로의 깊이가 있습니다. 신윤복은 신윤복은 나름대로의 해학이 있습니다. 누구의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홍도는 김홍도의 맛이 있고 신윤복은 신윤복의 맛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품으로 만들었습니까, 작품으로 만들었습니까?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왜 좌절합니까? 작품인데! 우리는 다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 독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것을 둘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 귀중합니다. 열 자식 중에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을 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전병욱 목사 같은 목사는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도 안하고 저는 제 자신이 되려고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우리 장로님들도 반대하시고 목사님도 반대하시고…… 목사님께서 반대했던 얘기가 지금도 가슴을 찌르고 있습니다.
제 목소리가 개그맨 최양락 닮았다고 도저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크게 웃음) 그래서 제가 한동안 얼마나 최양락을 의식했는지 아십니까? 의식적으로 최양락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했었습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혀 같지 않은데 자꾸만 같다고 하니까 가슴이 찔리고…… 왜 어린 청년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시는지…… 저는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최양락은 최양락이고 (성도들 아주 크게 웃음) 여러분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시는군요. (성도들 웃음)
저는 믿음의 종들을 하나님의 멋진 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귀중한 작품입니다. 제발 남과 같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개성을 가지고 뛰십시오. 다 똑같이 하지 마세요. 왜 다 똑같이 하려고 합니까? 유니폼같이 청바지 똑같이 입고 수영장 가서 수영복 위에 티셔츠 껴입으면 다 껴입고 그러지 말고 독특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 달라야지요. 제발 남이 입는 옷 입지 말고 개성을 가지고 입으세요. 우리 교회는 얼마나 개성이 있습니까? 제주선교 티셔츠도 1주일에 한번씩 바뀌잖아요. 태극기 넣었다가 뺏다가, 색깔도 바뀌고 자세히 보면 바뀐 점이 많습니다. 숨은그림찾기 같이 찾아보세요. 바뀐 것이 많습니다. 개성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을 이루는 것, 같은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10절에 나오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이것이 영어성경에 뭐라고 나왔습니까? masterpiece!(걸작품) 우리는 하나님의 masterpiece! 이 헬라어단어가 포이에마라고 했지요. 포이에마라는 단어에서 poem(시-詩)이 나왔습니다. 있는 그대로 뿌리로부터 본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시(詩)입니다. 우리는 시같이 살아야 합니다.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도 시같이 살아야 합니다. 절제미가 있고 수사법이 나와야 합니다. 똑 같이 하고 다니면 안 됩니다. 오늘은 이 모습 다음주에는 다른 모습, 아침에는 넥타이 매고 저녁에는 티셔츠 입고…… 왜냐하면 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독특성을 가지고 살아가면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나를 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 개성, 톡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깨닫는다면 그 사람이 자기 강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보십시오. 평등이라는 말, 오전에도 설교를 했지만 이상한 잣대를 가지고 비교하니까 평등/불평등이라고 하잖아요. 돈이라는 잣대를 놓고 보니까 돈 있는 자는 가진 자, 불평등하다, 우리 다 평등하게 만들자고 하게 되는데 아니, 돈만이 기준입니까? 그 자체가 얼마나 인간성을 상실한 것입니까? 돈이 인생의 다입니까? 돈이 인생의 다예요? 우리 교회에 부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부자층보다는 중산층에 행복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얼마나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이 많은지 아십니까? 돈이 행복을 줍니까? 돈은 우리를 좀 편하게 해 줄 뿐입니다. 돈이 있으면 편리할 뿐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데, 가난한 이웃 돕는 데에 편리합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편리하냐 불편하냐의 문제이지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나누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독특하게 만드셨습니다. 또 다른 말로 독특한 강점을 주셨습니다. 남들이 흉내도 못 내는 것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드러내야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강점 가지고 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내가 준 강점을 가지고 저 사람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탁월하게 예쁘고 멋진 사람도 남들에게 위로가 되지만 정말 험난하게 생긴 사람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사람 참 된장찌개 같이 생겼다.” 그러지요? (성도들 웃음) 두루두루 생겨서 두루두루 만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잘생긴 목사도 어필을 하는 부분이 있지요. “저렇게 예수 믿는 것이 신선하구나!” 할 수도 있지만 말씀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도 얼마나 은혜입니까? (성도들 웃음) 다른 생각하나도 안 들고 오직 십자가만 생각나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독특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 의식 가지고 서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가능의식

두 번째 가능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가능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너무 작게 봅니다. 본문 13절을 보니까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이 다 알아서 보내는 것이지, 감독이 나가라는데 선수가 보낼 만한 자를 보내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14절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는 모든 장치를 미리 다 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도록 만들고 나서 하라고 합니다. 누가 자기 능력 믿고 하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믿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쳐다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안 될 존재니까요. 문제를 바라보면 안 되지요. 문제가 너무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보면 문제가 문제 같습니까?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시각의 문제입니다.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 바라보는 것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눌려 사는 인생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뭐든지 다 됩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은혜가 역사하면 안 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지나친 겸손이나 자기비하는 교만과 불순종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개 조사를 해보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평균보다 아이큐가 높습니다. 아이큐가 70-80 되는 사람은 열등의식도 안 갖습니다. 이 사람들은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데 무슨 열등의식이 있습니까? 아이큐가 최소한 100은 넘어야지 비교라도 합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 머리가 나는 멍청해, 이런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평균이상의 아이큐는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머리 때문에 안 되는 인생은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대개 머리가 좋습니다. 머리 좋으니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모여서 자살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굉장히 좋다고 하는 카이스트, 이런 데서 떼로 자살합니다. 고민합니다. 나는 뭔가, 나는 쟤보다 못한데, 난 졸업해서 뭐할까, 40넘어서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될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마도 험난할 것이야. 이런 이럴 바에야 죽는 것이 낫지, 어디서 죽을까 물이 좋을까 불이 좋을까 물이 좋겠지…… 생각이 깊은 사람이 죽습니다. (성도들 웃음) 생각이 없는 사람은 “내가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합니다. (성도들 웃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서 있어야 합니다.
여기 보니까 모세는 절대 무력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22절을 보니까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40살 전에 다 배운 것입니다. 여기 부르시는 장면에서 모세가 몇 살입니까? 80세입니다. 그는 이미 40세까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습니다. 그는 말과 행사에 능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간신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어를 한다고 하면 간신히 영어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유창한 영어, 유창한 불어, 유창한 독어, 유창한 일본어, 유창한 중국어…… 다 잘했습니다. 게다가 매너까지 있었습니다. 촌스럽지도 않고 왕궁매너를 다 압니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 말고 더 있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는 자기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모릅니다.
우리 민족은 강한 민족이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을 제대로 준비시킨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 이렇게 평균 이상의 엘리트 교육을 받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사병으로 대졸 출신들이 가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군대 가보니까 사병 중에 박사학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장교도 아니고 사병이…… 그런 군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힘이 없다고 하고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에 쓰시고자 여러 가지 문제를 준비시킵니다.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을 품고 사랑할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아픔을 줍니다. 이 아픔을 통해서 아픔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는 일본가기 싫은데 이상하게 대학도 2차 지망에 한번 써본 일본어과에 붙습니다. “나는 일본어 안 할 거야!” 하면서도 계속 일본어 배우고 “나는 미국으로 유학 갈 거야!” 하는데 자꾸 일본어만 하게 되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일본어를 통해서 뭔가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취미로 자꾸 이발기술 배우는 사람 있습니다 주위에서 왜 배우냐고 하면 “나도 몰라!” 하면서 계속 이발합니다. 선교 가서 이발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뻔한 것입니다. (성도들 웃음) 하나님께서는 전반적인 것을 다 준비시키십니다.
저는 사실 유능한 장사꾼이 되려고 했습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소위 잡학에 강했습니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음악도 조금, 미술도 조금, 의학도 조금, 법률도 조금…… 저는 제가 전공하는 것에서 80학점 이수했고 60학점을 다른 과에서 다 들었습니다. 왜 그런 것을 공부했는지 아십니까? 이유는 장사 잘하려고입니다. 조금씩 다 배워서 아는 척 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장사 안 했습니다.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놓고 보니까 그것만큼 유리한 것이 없습니다. 장사꾼이나 목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성도들 웃음) 목사도 폭넓어야 되거든요.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려고 생각도 안했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과 의도와 욕심을 가지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다 준비시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십니다. 가능하니까 시키는 것 아닙니까?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필요 없습니다. 아멘하고 나가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만 하니까 시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전병욱 목사님 : 할만 하니까 시켰다!
성 도 : 할만 하니까 시켰다!

3. 사명의식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이 사명의식입니다.
사명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을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연약하다고 하는데 남자들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는 자기들이 다합니다. 여자대학 같은 데에 가 보면 자기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망치질 하고, 잡아당기고 들고 양쪽에 들고 험한 일 다 합니다. 그런데 남자 하나만 나타나면 다들 푹 쓰러져서 아이고 아이고…… (성도들 웃음)
사명의식입니다. 나밖에 없다는 의식을 가지면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얘기했지요. 이탈리아는 물려받은 역사가 있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우리나라가 정직하지 않다구요? 뭐 걱정이십니까? 정직한 나라 만들면 됩니다. 열심 있는 나라 만들면 되고 다른 나라의 강점들 다 흡수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일본의 강점, 미국의 강점, 독일의 강점 쫙 흡수해서 그대로 우리가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만의 강점 흉내 내지 못할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제일 강한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성도들 웃음) 바로 그 모습 들고 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책임지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왜 17, 18세기에는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화가, 위대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는데 최근에는 안 나옵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사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하나 물어 볼까요? 히딩크 감독이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한국에 남을까요, 떠날까요? (“떠나요” 하는 성도 있음) 어떻게 알아요? 신문에 났어요? (“예” 하는 성도 있음) 저는 떠난다고 생각을 했어요. 떠난다고 생각을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 사람이 56세거든요. 56세의 심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50대가 되면 돈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이미 필요한 만큼의 돈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사람 얼굴 보면 모릅니까? 그 사람은 무지하게 고독한 사람입니다. 무지무지하게 고독합니다. 그 사람은 고독해서 2년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자기 위안이 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히딩크가 남아 있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히딩크의 애인을 한국 여자가 하면 됩니다. (성도들 웃음) 그러면 남습니다. 그런데 너무 강적이 있지요. 엘리자베스…… (성도들 웃음) 분명히 갑니다. 히딩크가 2년 동안 버텼던 능력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사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작품을 만들어 보자!” 그러나 2년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그 이후 또 4년을 하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습니다. 정서가 공허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을 살면서 멋지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0년 단위로 명확한 사명 하나 붙들고 그것을 하나씩 이루어가면 됩니다. 내가 몇 년 살지 어떻게 압니까? 저는 20대에 20대의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30대에는 30대에 꼭 해야 될 것, 한국 교회에 예배부흥을 일으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가 40대에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한민국의 부흥입니다. 강점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다 일어나게 만들고 뒤에서 단점 잡고 늘어지는 놈들 밥줄 끊으려고 합니다. 다 강점 가지고 뛰게 만드는 것, 의욕적으로 뛰게 만드는 것, 애국하는 성도, 애국하는 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벌써 되고 있잖아요. 이제 10년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민 갔던 사람들 다 귀국하려는 것 아시지요? 여러분 냉소적으로 얘기하지만 몇 년 있다가 다시 얘기하면 또 뒤통수 맞았다고 할 것이죠? 이 나라에 의욕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뛰어야 합니다. 50대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가지고 뛸 것입니다. 평생이 길지 않습니다. 몇 가지 사명을 이루고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명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시대가 얼마나 천박해졌는지 돈이 있고없고를 가지고 사람들을 따집니다. 옛날에는 무엇을 따졌는지 아십니까? 사명을 가지고 사람을 따졌습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대사라고 했고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은 특사라고 했고 몰래 일하는 사람은 밀사라고 했습니다. 모두 사명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Mission을 가지고 일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 수위 같은 사람을 소사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소사도 생명 걸고 뛰었습니다. 소사 아저씨들은 생명 걸고 학교를 철통같이 방어했습니다.
저는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목사의 사명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 어렸을 때의 소사아저씨 만큼의 강한 사명감이 있는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누가 너 누구냐고 하면 사명으로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합니다. 내 이름은 뭐고 몇 살이고 영어로 소개하라고 할 때를 대비하여 맨날 그런 것을 외우고 있지요. 내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학교 졸업하고…… 그건 다 꽝입니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은 사명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내가 존재합니다. 내 존재목적이 이것입니다.” 사명이 내 인생에 불을 붙이면 불타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그 다음부터 한일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사명에 불을 붙어주는 것입니다. “네가 이스라엘의 200만을 건질 사명자다, 출애굽시켜서 가나안으로 이끌 사명자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 대신 나갈 사람이다.” 사명을 심고 심고 심으니까 불타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지금도 좌절하며 넘어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명에 충성하십시오. 나는 생명 걸고 찬양을 할 거야! 생명 걸고 팀을 인도할 거야! 생명 걸고 이 땅에 있는 법조계를 변화시킬 거야! 나는 생명 걸고 중학생?고등학생 건져낼 거야! 학교가 무너졌다고 하는데 내가 세울 거야! 내가 이 캠퍼스 변화시킬 거야! 사명에 불이 붙으면 그 다음부터는 무서운 인생이 됩니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의 10배, 100배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삼일교회의 모든 성도들 자기를 소개할 때에 사명으로 소개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너 누구냐고 물으면 삼일교회에 다니고 뭐하고 어쩌고 저쩌고 소속으로 얘기하지 말고 사명으로 설명하세요. 나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서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명을 무시하는 사람치고 큰 인물 된 사람 없습니다. 사명 붙들고 사는 인간치고 치졸하게 사는 인생하나도 없습니다. 영광스럽게 살고 싶습니까? 사명 붙들어야 합니다.
한수 알려 드리겠습니다. 남녀 간에 교제할 때 남자를 만났는데 나는 뭐 있고 뭐 있고 뭐 있고 그런 얘기 하면 만나지도 말아요. 내 사명을 쭉 얘기하면 “이놈 될 놈이군!” 만나지 말자고 해도 꽉 물고서 놓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 웃음)
하나님 앞에서 이런 믿음가지고 하나님 앞에 든든하게 서있는 은혜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자꾸만 열등의식의 사로잡혀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마귀가 던진 장난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태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귀중한지 아십니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나하나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절대로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제가 누누이 말 했지요. 나는 발톱의 때 만도 못하다? 벌레만도 못한 존재? 우리 선배들 그런 소리하는 것 제발 본받지 말아요!!! 왜 우리가 발가락 때만도 못해? 왜 벌레만도 못해? 훨씬 낫지!!!
제가 얘기했지요. 만일 제 딸이 와서 “나는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고요. 나는 벌레만도 못합니다. 나는 햄스터만도 못해요.” 햄스터??? 햄스터 수백 마리를 죽여서라도 딸을 살립니다. 아니 햄스터 수천 마리를 죽여서라도 살립니다. 화가 나지 않습니까? 네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 겸손하다고 하면서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자존심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예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할 수 있으니까 부르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축구도 패배의식으로 16강 이 정도로 목표 잡지 마세요! 우승입니다.
다음번 올림픽도 우승입니다. 다 우승입니다.
우승 안 되면…… 마는 거지 뭐! 그러나 목표는 우승입니다! (성도들 박수치며 웃음)
그리고 사명 가지고 자기 인생에 불을 붙이십시오. 사명에 불이 붙어있는 인생 ,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인생입니다.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도록 합시다.
사명에 불붙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면 가능합니다. 일을 이루는 종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창조의식, 하나님 앞에서 이런 창조의식가지고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축복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날 건져 주시고 내가 영광스럽게 쓰임 받게 해달라고 자기 자신의 인생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간구합시다!

출처/전병욱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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