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신10:17-19,눅10:33-37,딤전6:18-19)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여섯 곳을 방문하며 도움이 필요한 우리 조선족 동포들과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조그만 사랑의 손길을 펴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지난 9 년 동안 연변 지역에 살고 있는 가장 어려운 우리 조선족 동포들에게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전달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큰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중국 연변 지역에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기 피해를 당해서 풍비박산된 조선족 가정이 1만 8천 여 가정이나 있는데, 그런 가정들 중 5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변 지역에는 엄마 아빠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고아로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들과 학생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가정들 중 6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빠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이고 엄마는 북한에서 탈북한 북한 여자였는데 엄마가 중국 경찰에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 가서 엄마 없이 눈물로 살아가는 불쌍한 어린이들의 가정이 연변 지역에 940여 가정이나 있는데, 그런 가정들 중 9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변 지역에는 올 데 갈 데 없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우리들이 지난 수 년 동안 돕고 있는 노인들 10여명을 직접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고아 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학교와 소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과 담임 선생님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토끼를 기르고 오리와 닭과 칠면조와 기러기와 게사니를 기르고 물고기를 기르며 자활을 힘있게 하고 있는 농장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4박 5일 동안 하루에 13시간 이상씩 소형 버스를 타고 저들이 살고 있는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 다녔습니다. 되도록 많은 가정을 방문하려고 관광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잠깐 서서 두만강에 발을 담그고 북한 땅을 바라본 일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연변 지역에 있는 가장 어려운 가정들 120여 가정과 100여명의 학생들을 돕고 있는데, 이번에 가는 곳 마나 저들을 가장 좋은 식당에 초청해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일곱 번 대접하고 돌아왔습니다. 도문에서 40여명에게, 안도에서 40여명에게, 훈춘에서 50여명에게, 연길에서 80여명에게, 지신에서 30여명에게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연변 사범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피자를 처음 먹어본다고 말하면서 피자와 스파게티와 김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어린이들에게 스티커를 주곤 했는데 전지연이라는 소학교 학생은 한국에 친척이 있는 친구들이 스티커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스티커를 직접 만져보기는 처음인데 스티커가 이렇게 고울 줄은 몰랐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너무 어렵고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격려의 후원금을 조금씩, 조금씩 전달했는데 이번에 식사비를 포함해서 500여 만원이 들었습니다. 이 돈은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저에게 전해준 사랑의 헌물이었습니다. 이 헌물은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고 우리 조선족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의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연변 지역을 방문하게 된 주 목적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돕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돌아보는 것과 함께 우리가 정기적으로 돕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학생들 61명에게 '긴급 지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스스로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700만원을 가지고 가서 61명에게 선물과 함께 10만원씩 '긴급 지원금'을 전달했는데 이것이 저들에게 너무나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 700만원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500만원 강변교회가 200만원 후원한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긴급 지원을 받는 61명 중 몇몇 학생들을 만나보면서 너무 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고 금년에 또 한번 ‘긴급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슬픔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엄마가 북으로 잡혀간 불쌍한 어린이들의 슬픔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연변 지역에는 북한에서 탈북해서 조선족 아버지와 결혼해서 살면서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북으로 잡혀 간 가정이 조사된 것만 940여 가정이나 되고 엄마를 잃은 어린이들은 천 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엄마가 6,7년 전에 북한으로 잡혀간 어린이들도 있었고 2,3년 전에 북한으로 붙잡혀간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어린이는 엄마가 중국 경찰에 잡혀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국과 북한과의 정치적인 관계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지만, 또한 한국에서 탈북자들의 북한 실상 폭로가 이와 같은 체포를 자극했다고 현지인들이 말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탈북자들을 내 세워 북한의 인권 유린을 폭로할 때마다 북한 여성 체포가 연변 지역 전역에 철저하게 이루어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동북아평화연대의 연변 책임자인 배동걸 부장은 이 비극의 책임을 어느 정도 남한과 남한 교회가 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엄마가 북으로 잡혀간 소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용정 지신 마을에만 3명이나 살고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미향이, 금화, 선화 어린이들의 집을 모두 방문했습니다. 미향이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책상에 올라가서 엄마의 결혼 사진에 뽀뽀를 한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미향이와 금화와 선화의 집은 너무 가난하고 더러웠습니다. 아빠들은 모두 병에 걸려있었고 늙은 할머니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불쌍했습니다. 금화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슬픈 이야기입니다. 같이 동행했던 UBF의 총무 이옥기 목사님은 금화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용정 지신의 강금화 어린이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이다. 어머니는 탈북 여성이었는데 금화를 낳아서 키우다 이북으로 잡혀갔다. 중국 공안들이 갑자기 들이 닥쳐 집을 에워싸고 금화 어머니를 체포하여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 후 금화는 엄마 없이 자라기 시작했다. 아빠는 간이 병들어 얼굴이 검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병을 앓고 있었다. 할머니는 남루한 방바닥을 계속 걸레로 닦고 있었다. 김명혁 목사님은 금화를 옆에 앉히시고 스티커를 선물로 주시고 얼굴에 붙여 주시기도 했다. 또 크레파스를 선물로 주시고, 또 서동요 만화책 세 권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아버님께 드리도록 후원금도 주셨다. 선물을 받은 금화는 매우 기뻐했다. 주변에서 금화는 노래를 잘하니 한 번 불러 보라고 했다. 금화는 앞으로 나가서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노래가 하필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담긴 노래였다. 금화는 몇 구절 부르다가 그만 목이 메어 울기 시작했다. 맑고 티 없는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에 내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내 안경이 눈물로 얼룩지고 부옇게 되었다. 내 가슴도 이렇게 아프고 아려오는데 저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더하랴… 김명혁 목사님은 금화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11살 때 이북에서 넘어와 어머니 아버지 없이 살아오신 얘기를 해 주시고 금화도 굿굿하고 용기 있고 곱고 멋지게 자라야 한다고 격려해 주셨다. 온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금화를 데리고 손잡고 다니셨다. 그날 저녁에는 함께 지신교회에서 저녁식사를 목사님 곁에서 하게하고 식사 후에는 ‘좋으신 하나님’ 노래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시편 30편 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말씀을 통해 금화와 그곳에 있는 동포들이 슬픔과 어려움이 많지만 슬픔이 변하여 춤을 추게 하시고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다른 분들도 은혜를 많이 받았겠지만 강금화 어린이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 두고두고 기억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금화와 미향이를 바라보면서 너무너무 슬퍼서 가슴에 슬픔과 아픔을 가득히 안고 돌아왔습니다.
이와 같은 슬픔의 이야기는 금화의 이야기로 끝 나는 것은 아닙니다. 용정의 금화와 미향이와 선화도, 연길의 만호와 수영이도, 왕청의 화련이와 룡국이도, 도문의 광일이와 학범이도, 훈춘의 홍실이도 그리고 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그런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안고 눈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훈춘의 두만강 변에는 홍실이라는 소학교 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북으로 잡혀간 후부터 아버지는 정신 이상이 되었고 홍실이도 정신이 약간 이상이었습니다. 집은 집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돼지 우리처럼 더럽고 더러운 초가집이었습니다. 우리가 홍실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위에서 비가 새고 있었고 쥐들이 자주 나온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기가 막혀서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의 집 사람은 불쌍한 아이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했는데 홍실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었습니다. ‘긴급 지원비’ 10만원에다 후에 다시 20만원을 더 주고 왔는데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행했던 황규민 집사님은 이들을 바라보면서 지닌 슬픔과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사는 광일이와, 훈춘시 외곽에 사는 홍실이, 지신교회 근처에 사는 금화를 보고 온 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민족의 비극, 이보다 더 불행할 수 있을까 … 세상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라지만 그 헤어짐이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라, 조선 민족과 교회에 대한 징벌, 바로 '주님의 흩으심'이라면 …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 이상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두만강 가에 발을 담근 채 나는 사랑 없는 외식의 죄를 눈물로 고백하며 생이별한 아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엄마 노래를 부르다가 기어코 울음보를 터트린 8살 금화의 그 눈물 … 그것은 바로 피눈물이었다. 금화야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네 대신 내가 울어야 하는데 …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울어야 하는데 …… 울음 그친 금화가 티없는 얼굴로 김목사님의 손을 붙잡고 “Jesus I love you”노래를 따라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가에 아른거린다. 그런 형편 속에서도 밝고 맑게 자라주는 광일이와 홍실이, 그리고 금화가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는 이들 불쌍한 고아 어린이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들을 잠깐 둘러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연변 지역 방문을 하면서 이런 기도를 자주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건강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필요한 물질도 주시옵소서. 불쌍한 저들을 계속해서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저들과 북한 동포들을 눈물과 사랑으로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둘째, 사기피해를 당한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연변 지역에는 사기 피해를 당한 조선족 가정이 1만 8천 여 가정이나 되는데 이와 같은 사기 피해는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했고, 부모가 병들어 죽거나 헤어지게 했고, 그 결과로 아이들이 고아가 되게 했습니다. 사기 피해를 당한 후 빚을 갚지 못해 빚쟁이에게 얻어 맞아 병신이 된 사람들도 있었고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기 피해를 당해서 죽으려고 하다가 죽음 직전에 도움의 손길을 받아 살아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옥기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브로커를 통해 돈을 주고 한국 비자를 받고자 하다가 사기 피해를 당한 경우도 18000여 가정이나 된다. 이로 말미암아 충격을 받고 병든 경우가 허다하고, 어떤 분은 돈을 빌려서 브로커에게 주었는데 사기를 당하자,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 안 갚는다고 때려서 눈알이 빠지고 의눈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어른들이 병들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가정도 많았다. 이렇게 슬프고 아픔 당하는 가정을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에서는 지난 9년 동안 연변에 120여 가정, 러시아에 70여 가정을 후원해 왔다. 동아려 가정은 사기피해 가정인데 어머니는 지난해 루프스를 앓다가 돌아가셨고 현재는 뇌혈전으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아려는 지난 3년 동안김 목사님으로부터 학비 보조를 받아 예술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김 목사님을 만나자 아려는 목사님에게 안겼고 아버지는 꿈만 같다고 말하면서 뜨거운 감사를 김 목사님에게 표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동아려가 복음 찬송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를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아려는 연변대 음악부 성악 반에 실기시험을 합격하고 이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아인 렴춘희 학생은 3년 동안 학비 보조를 받아 대학 졸업반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양신복 학생은 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양신복의 어머니는 세차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부모도 못 도와주는 아이의 학비를 김 목사님께서 후원해주어서 신복이가 대학 3학년이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김 목사님에게 큰 소리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고아인 리예란은 학비를 지원받고 마침내 사범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훈춘의 오금숙씨 같은 경우는 사기 피해를 당한 후 죽고 싶은 생각까지 했는데 한국복음주의 협의회에서 영농자금을 지원해주어서 토끼 농장을 시작했다. 지금은 토끼뿐 아니라 오리, 닭, 칠면조, 양어장까지 갖춘 제법 큰 농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며 여러 불우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북한 탈북자들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이번에 동행했던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총무인 이현정 목사님의 글도 인용합니다.
“도문에 살고 있는 김광은 18살인데 할머니와 살고 있다. 6살 때 그의 아버지가 2만위엔을 사기 당해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하였다. 할머니와 함께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할머니는 중풍이시다. 또 김광은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다. 안도현의 박청은 소학교 3학년이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에 나오려다가 빚을 내었는데 사기를 당했다. 이 문제로 맞아서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서 온전치 못하다. 왕청현의 김군정은 소학교 1학년이다. 그는 건강한 부모가 계시고 할머니도 계신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한국에 오려다가 6만 위엔을 사기 당해 집을 빼앗기고 할머니가 살던 집에 와서 살고 있다. 부모는 농사일을 열심히 하지만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이영숙 회장의 말에 의하면 이런 사기 피해자가 18,000명이라고 한다. 믿기지 않는 숫자이다. 동족으로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낀다. 피해 가정들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들의 어려움에 동참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을 생각할 뿐 아니라, 동족의 허물과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영숙 회장을 비롯하여 지역 회장들이 대부분 동일한 사기 피해자들이었다고 한다. 왕청현의 한길자 회장이나, 훈춘의 오금숙 회장은 사기 피해 후에 죽으려고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분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당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헌신적으로 결연 사역을 돕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사기피해의 후유증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된 가정들이 연변 지역에 수 없이 많습니다. 저들의 슬픔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이현정 목사님이 지적한 대로 저들의 불행의 책임을 우리가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저들을 사기 쳤기 때문입니다. 이현정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동족으로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낀다. 피해 가정들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들의 어려움에 동참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을 생각할 뿐 아니라, 동족의 허물과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셋째, 엄마와 아빠를 잃은 불쌍한 고아들의 슬픔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연변 지역에는 부모를 잃은 불쌍한 고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홀 부모 아래서 사는 절반 고아들도 너무 많습니다. 저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살기도 어렵고 공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번에 우리들이 정기적으로 돕고 있는 고아학생들과 홀 고아학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번에 '긴급 지원'을 하게 된 고아들도 만났습니다. 대학생들도 고등학생들도 소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렴춘희도 리예란도 동아려도 량신복이도 그런 아이들입니다. 저는 고아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도 11살 때부터 한 평생 고아로 살아왔다고 말하면서 저들을 위로하며 격려했습니다. 몇몇 고아 학생들이 식사할 때마다 감사의 편지를 읽었는데 그 편지들을 그대로 읽습니다.
“김명혁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도문시의 조학금을 받는 친구들을 대표하여 저희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김명혁 할아버지한테 가장 충심으로 되는 인사를 드립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조학금을 받게 되는 우리는 모두가 엄마가 없거나 혹은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여기에는 가정의 경제곤란으로 하여 엄마, 아빠가 외국으로 가서 4,5년씩 소식이 없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혹은 경제난으로 하여 다투다가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아 할머니의 손끝에서 자라는 친구들도 있으며, 또 사고로, 병으로 하여 엄마를 일찍 잃고 아빠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김명혁 할아버지께서 엄마다운 사랑과 아빠다운 사랑을 물부으시여 멀리에서 걱정하시고 우리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 주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전번에 보내주신 할아버지의 사랑의 조학금으로 우리는 새학기 교재 값과 과외서적 값을 어렵지 않게 해결하였습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 가정에서는 새학기 어려운 고비를 쉽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우린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교과서를 들고 열심히 학습할 것입니다. 또한 서로 돕고 아끼는 인간애가 충만된 사랑의 마음을 키워 가는 것으로써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며 저희들도 남을 돕는, 남을 생각하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커가겠습니다. 김명혁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07년 5월 15일 도문시조선족실험소학교 조학생대표로부터 박미향”
“김명혁 할아버지를 비롯한 후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처음으로 드리는 편지입니다. 내가 2살 때 어머니께서 세상 떴고 뒷이어 아버지께서도 2002년에 병으로 세상을 뜨다 보니 저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사회상의 마음 고운 분들로 하여 나는 혼자가 아니며 나의 주변에는 아직도 마음씨 고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세상을 뜬 후 저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는 년세가 많은 탓으로 병도 많습니다. 여태껏 사회의 방조로 생활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김명혁 할아버지와 후원님들의 방조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꼭 학습을 잘하여 나를 도와준 모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으며 그런 분들과 사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김명혁 할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후원님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행복을 축원하고 하는 일마다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2007년 5월 16일 안도 4중 3학년 3반 손은화”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훈춘시 마천자향중심소학교 4학년 2반에서 공부하는 황해성입니다. 우리 집은 70 고령의 할머니가 계시고 어머니께서도 불구시고 아버지마저 병환에 계시다 보니 하루하루 생활하기가 너무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공부하는 저한테 3년 전부터 행운이 찾아 들었습니다. 나한테 학용품, 학잡비, 남부럼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바로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아버지, 어머니 못지 않는 사랑의 손길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전 아무 근심 없이 학생은 단지 학습만 잘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만 하면 되었습니다. 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소리쳐 울고 싶었고 마음껏 외치고 싶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다고. 이렇게 너무너무 행운스러운 나를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난 김명혁 할아버지의 사랑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2005년 전시 ‘백일장’ 작문 경연에서 전시 2등의 영예를 안아왔습니다. 학급에서도 학습 성적이 차한 학생이 있으면 열심히 도와주고 곤란이 있는 학생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면서 형제처럼 사이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난 김명혁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주신 사랑의 마음 잊지 않고, 할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인재로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도 명실에 부합되는 유용한 인재가 되어 나처럼 생활난으로 공부에 어려운 학생들을, 생활난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렵니다. 할아버지처럼 사랑을 온 세상에 주면서 살아가렵니다. 김명혁 할아버지, 그리고 제 부모님을 모신 이 자리에서 전 목청껏 웨치렵니다. 존경하는 할아버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의 하늘만큼 땅만큼 한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황해성”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는 고마움의 글들인지 모릅니다. 슬픔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글들입니다. 우리가 지난 9년 동안 편 사랑의 손길은 인도주의적 사랑에 그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고백하게까지 했습니다. 이영숙 회장은 물론 훈춘의 오금숙 회장은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높이 드러냈고 여러 학생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저들의 신앙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우리들이 베푼 사랑의 손길이 간접 선교의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동아려는 가슴에 뜨거운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번에 연변 지역을 방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와 사랑과 헌금으로 후원해주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현지에서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이영숙 회장님과 여러 지역의 회장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굿굿하게 자라가는 귀엽고 예쁜 연변 지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신 구약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을 향해서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병들고 슬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라고 가르칩니다.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슬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강도 만난 자의 슬픔과 아픔의 신음 소리를 직접 들었고 여러분들은 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제사장이 될 수도 있고 레위인이 될 수도 있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동행했던 이옥기 목사님은 연변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강도 만난 사람들 같이 보였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조금이라도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연변지역을 다녀보면서 그곳에 있는 많은 분들이 누가복음10:25-37절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북한에게 엄마를 빼앗긴 어린 아이들이 강도 만난 자들이고, 남한에 오기 위해 빚을 내어 브로커에게 준 돈을 빼앗긴 자들이 강도 만난 자들이 아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뇌출혈로 쓰러진 분, 각종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는 분, 빚을 못 갚는다고 맞아서 눈이 빠지고 실명한 분이 강도 만난 자가 아니겠는가? 누가 이들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자비를 베푼 자일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우리가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신다. 그동안 UBF에서도 후원을 해왔지만 이번 현지 방문을 통해 좀 더 후원을 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UBF 이현정 대표님과 상의하는 가운데 몇 가정이라도 더 할 방향을 잡게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이 세상에 더 오래 살지 모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동안에 누군가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면서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전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연변 지역에 결연 가정을 120 가정에서 170 가정으로 늘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50 가정을 더 늘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의 손길을 펼 수 있도록 필요한 건강과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꼭 같은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오늘의 선한 사마리아인들로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사랑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위로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눈물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소망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기쁨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구원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주님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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