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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중보기도 (출애굽기 32장 7 ~ 14절)

by 【고동엽】 2022. 9. 2.

모세의 중보기도  (출애굽기 32장 7 ~ 14절)  

시편90편을 보면 모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년 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누가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시편 90:10~20) 인간들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니, 하나님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조차 사랑하시는 분이며 죄인들의 죄악에 대해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끝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당신은 혹시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우습게 여기고 아직 회개하기를 미루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또는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고 그에 끌려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 하고 유혹을 받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출20:4~5)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매우 진노하셨습니다.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까지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진노하신 것은 저들이  부패하고 그들에게 명하신 길을 속히 떠났기 때문입니다. (8절)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은 저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9절)


목이 곧았다는 것은 교만하여 불순종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이 곧으면 숙일 줄 모르는 것처럼 심령의 목이 곧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행합니다.


로마서 2장 5절을 보면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 어떤 사람은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집 때문에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내릴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벌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하신 그대로 보응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사람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 고집이 세”라는 말을 듣는 다면 자신을 다시금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 좋은 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체면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고집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체면과 고집하고 영생을 바꾼다면 바꾸겠습니까? 하나님의 복과 영생하고 바꾸시겠습니까? 그렇지 마십시오. 고집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교만과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의 진노를 자꾸 쌓는 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각 사람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대로 보응하십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이 곧아지지 않도록 영적인 목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며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진노하신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으십니다. 그것은 모세의 중심을 테스트 해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에게 얼마나 지도자의 자질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는 흔히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결국 주님 기뻐하시는 지도자는 백성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60여명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나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인물이 많으니 감사할 일이지만 진정 그들 가운데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장수이므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피난민들의 생계를 염려하여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했으며 그리고 왕에게 ‘피난민들이 여수에 있는 돌산도로 들어가 살면서 농사를 짓도록 해 달라’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입영통지서를 발부해 큰 도시로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유니온 정거장에는 기차에 오르기 위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과 이들에게 따뜻한 차나 커피를 따라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밤늦은 시간까지 뜨거운 코코아를 쟁반에 들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코코아 잔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잘 다녀오세요. 그대들의 건승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아니십니까.” 그는 허허 웃으며 “날 알아보셨군요. 고맙소. 내가 끓여주는 코코아 한 잔은 미미한 것이지만 꼭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이 주인공은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였다. 사람을 사랑하고 인류 평화를 추구한 그는 뉴딜정책, 유엔 창설 등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초 4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과 섬김의 리더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에게도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입장에서는 매우 솔깃한 말로 들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지리 말을 듣지 않고 쉽사리 불평하며 자주 속을 썩이고 문제를 많이 일으킨 저들이었기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멸하고 대신 새로운 사람들을 세워 큰 나라로 만들어 주신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더 이상 저들에게 시달릴 필요도, 저들로 인해 속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문제가 많고 또한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가 남부시민교회 성도들을 다 없애고 새로이 너로 큰 교회가 이루게 하리라 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그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비록 그 백성들이 말씀을 피웠고 문제를 일으켰어도 괴롭게 하였어도 모세는 저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모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중보기도를 하였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1절)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백성이 되었다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말씀입니까? 가장 불쌍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없는 백성,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을 길이 없고 다만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이 아닌 주의 백성이라고 아룁니다. “하나님,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저들은 내 백성이기 전에 주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주님이 책임지시고 주님이 돌보셔야 할 백성이지 제가 어찌 저들을 돌보고 어찌 제가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주님께서 맡기신 일 잠시 감당하는 청지기 일 뿐이지 저들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저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고 우리를 황무지에서 물가로 옮겨 주셨고 주님의 자녀로 주님의 품안에 안겨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떠한 때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으로 결코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이 너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신다 해도 우리는 주님의 우리의 백성임을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호세아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은 호세아의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하시면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2:23절을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경험한 자는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충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비록 자기 백성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마음속에서 그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기에 질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출20:5) 그러기에 그 사랑에 의지하여 은총을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6,38~39)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진정 담대하게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에 근거하여 기도하였습니다.

12절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모세는 애굽인들이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비방할 것을 염려하여 간구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매우 소중히 여기십니다.
이사야 42:8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기를 원하십니다.(고전10:31)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모세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귀영화와 영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을 위하여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사야 48:9절과 같이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였습니다.


13절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간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근거로 기도할 때 응답을 받는 교회적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23: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조지 물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붙든 말씀은 시68:5절의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는 말씀과 빌립보서 4:19절의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따라 고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구하여 수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태영은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열여덟 살에 비로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상경하여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케이크 행상 등을 하며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찌들어지게 가난했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공하고 싶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가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빌사일삼" 사자성어도 아닌 이해할 수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묻자 빌립보서 4장 13절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청년 류태영으로 하여금 강력한생각을 하게 하여 덴마크에 유학을 다녀오게 되었고 이스라엘 최고 명문인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국립대학인 벤구리온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으며 그 때부터 류태영은 이스라엘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 되었고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나아가 이웃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출처/박승남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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