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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 : 38~46)

by 【고동엽】 2022. 8. 31.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 : 38~46)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배가 고플 때에는 동물처럼 먼저 먹는 것을 구하지만 그러나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면 성공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영웅칭호와 훈장의 영광을 위해서 인민들이 국가에 충성합니다. 남한에서는 상과 물질적 보상이란 영광을 위해서 생명 바쳐 일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영광은 꽃처럼 빨리 시들고 맙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무덤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들이 추구하는 영광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할 때에 우리들이 참 영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에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고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 땅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참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9:1절에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고 했습니다.

1.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그가 만드신 하늘과 땅에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번개와 천둥과 [광채]로 나타나기도 하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또 성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쉐키나 구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저들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출생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세례 받으실 때에도 음성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십자가(요8:39절). 또 주님의 수많은 이적을 통해서 예컨대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나사로의 살리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잘 나타났습니다.

다음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 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9). 또 주님의 부활과, 승천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참된 의미에서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 우리는 그 영광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시험이 우리들에게 자주 다가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 번째 시험에서 사탄은 세상의 영광을 다 보여주고, 타협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종교인들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구제할 때에 혹은 선한 일을 할 때에 나팔을 불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영광을 얻고 싶은 시험이 옵니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주실 때에는 그것은 정당한 영광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히2:7절에 보면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라고 했고,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에 참여하고 체험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2. 나사로의 살리심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내용은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창조하신 것에서도 나타나고, 더욱 분명하게는 구원해주시고 살려주시고 고쳐주시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불가능합니다. 현대 과학으로도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들을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사로의 살리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3)[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기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임 하셨다는 증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소경이 보고 절뚝발이가 걷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한 것입니다.

(4)성도들의 [부활의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주님은 세 번에 걸쳐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 회당장의 아들, 나사로의 경우입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사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부가 우리의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1)먼저는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영적 맹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보지 못합니다.

(2)우리의 [의심 때문]입니다.

한국의 KAL가 괌에서 착륙하려다가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후 캄보디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마치 안개와 같아서 앞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3)[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묻어두는 경우]입니다.

믿음이란 땅에 묻어두면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활용하여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돈도 사용해야 힘이 되고, 지식도 사용해야 힘이 되고,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으면서도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형식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형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형식은 위선자를 만들고, 죽은 신앙을 만듭니다.

(5) [지적인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에는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과 의지적인 세 가지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인 신앙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믿은 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믿어야 합니다. 온 몸으로 믿어야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1)아는 지적인 믿음에서 주님 앞에 엎드리는 [헌신적인 믿음]일 때입니다.
바로 마리아의 경우가 이런 헌신적인 믿음이었습니다.

(2)일반적인 믿음에서 [개인적인 믿음]이 될 때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받아는 들이면서 자신은 믿지 않는 경우에는 전혀 힘이 없습니다.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3)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붙드는 믿음]이 될 때입니다.
믿음을 영어로 Faith라고 하는데 그것은 Forsaking all, I take Him의 약자입니다.

5. 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비결은?

(1)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요17:22절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 화

어떤 어머님이 자신의 아들이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이 되어서 열심히 피아노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찾아가서 제자로 삼아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퇴한 노 교수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제자로 삼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노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자를 키울 것을 허락하여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이 젊은 청년은 노 교수의 지도를 받아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관중들은 곡이 끝날 때 마다 박수를 치며 열광을 하였습니다. 돈을 발밑에 수북이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계속해서 한 곳만 바라보면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 교수가 앉아서 듣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손은 건반위에, 눈은 노교수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노 교수는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가 있고, 발밑에 돈이 쌓여도 그곳을 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라. 명예와 돈을 바라보는 순간 내리막길을 가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의 영광과 부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지만 주님의 영광을 만을 위해서 위를 바라보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참 영광은 [구원과 함께] 받습니다.

딤후 2:10절에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3)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얻습니다.

오늘의 요절인 40절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습니까? 남이 믿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믿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내가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4)[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얻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의 영광이요 그 보증수표입니다. 엡3:13절,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사실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을 분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많이 당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지 말고, 소망 중에 기다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맺는 말

우리는 인생의 사는 목적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고백하고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구호가 아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실 때에 그의 영광을 위해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은 주님 안에서만 구원과 함께 얻을 수 있고,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참 영광은 이 땅에서의 고난과 시험이란 그릇에 담겨 주어지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 영광은 결과이지 결코 목적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어도 그것은 헛된 것이고, 아침의 안개처럼 살아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하고,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안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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