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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학 1:1-6)

by 【고동엽】 2022. 8. 28.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학 1:1-6)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미국 굴지의 플라스틱 회사를 이끌고 있는 스탠리 탐(Stanley Tam)은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그가 보내 온 선교 헌금으로 우리나라 국내에서도 주로 성결 교단입니다만, 3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간증을 통해서, 또는 그가 쓴 책 「하나님이 내 기업의 주인이십니다」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믿음의 감화를 끼치고 있는 귀한 분입니다.
세계적으로 성공을 한 그도 사업에 처음 손을 댔을 때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플라스틱 회사를 인수했을 때 이런 저런 어려움이 생기더니 결국은 부도를 내고 회사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는 깊은 좌절감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벽에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깊이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불현듯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모습은 바로 지금 자신의 처지와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도우심을 구하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속에는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물위를 걸어가는 베드로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제 손을 붙들어 주시면 저도 얼마든지 다시금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이제부터 제 기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만 내리십시오. 저는 절대적으로 순복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주식의 51%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회사 수익금 중 51%는 무조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기적적으로 그의 회사는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말 그대로 그는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다시금 물위를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약속한 그대로 많든지 적든지 간에 회사 수익금의 51%를 어김없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지금도 매년 수백 만 불씩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아예 회사의 정관과 유언장에 작성을 해 놓았습니다. 그의 회사 정문에는 큰 간판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회사 이름보다도 더 큰 간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Christ is the Answer, 그리스도가 해답이십니다."
이 간판을 보고서 회사에 들어와 상담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작정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산상설교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33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십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아낌없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하게 된 표면적 이유입니다. 2절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입니다. 3∼4절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하게 만든 결과입니다. 5∼6절입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안타까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의 심령 속에 황무해진 영적인 제단을 먼저 든든히 세울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다함께 마음을 같이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우리가 잘 건축해서 하나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 누리에 크게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한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1절 말씀입니다.

"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때는 바사 왕 다리오 2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고국으로 돌아온 지 18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 20년이 되도록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최초로 선포한 때가 언제였습니까?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였습니다. 초하루는 새 달이 시작하는 날로서 월삭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성전에 모여서 평상시에 드리던 상번제가 아닌 특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무해진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모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시겠습니까? 학개 선지자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의 이름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입니다. 스룹바벨은 유다의 총독 곧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유독 이 두 사람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먼저 바르게 서야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르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 백성"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실 때는 "내 백성"이라고 칭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실 때는 "이 백성"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말하자면 지금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섭섭한 감정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무엇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 건축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아직은 이런 저런 여건 때문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댔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반대가 너무 심합니다. 우리는 왕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이유가 하나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이유를 대든지 그것은 하나님 앞에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럴싸한 이유요, 변명이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오늘 본문 2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백성은 그저 "아멘" 할 뿐입니다. 순종할 뿐입니다. 절대 순복할 뿐입니다. 거기에 무슨 이유나 핑계가 필요하겠습니까?.
눅14장에 나오는 천국 잔치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종들을 보내서 손님들을 청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기가 밭을 샀기 때문에 보러 가야 한다고 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구실을 대면서 주인의 초청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종들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대단히 노했습니다. 그러면서 종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하였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전 건축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전 건축의 놀라운 축복을 믿음으로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한 채로 방치되고 있는 실제적인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3∼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사람들에게서 속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살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실질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판벽이라는 말은 널빤지로 벽을 둘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하였습니다. 지붕도 없습니다. 벽도 없습니다. 그저 성전 건축을 위한 지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보기에도 얼마나 흉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붕도 둘렀습니다. 벽도 둘렀습니다. 그리고 살아가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그 안은 아름답게 치장을 해 놓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해져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은 판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깊은 배신감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에스라1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뒤를 이어 바사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칙령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까? 바사 나라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시집가고 장가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자기들의 집을 지을 만한 충분한 땅이 부족했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에스라1장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금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고국 땅에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백성들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했어야 할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집을 짓느라 바빠서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탄식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이 백성이 나의 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자기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영국의 청교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항해하는 67일 동안에도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배 안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 성수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살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복을 내리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교회사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님은 최치량 장로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선교사님들을 도와서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를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천장에서 비가 새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다음날 월요일 아침 일찍 자기 집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있는 기와를 벗겨 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멀쩡한 기와를 왜 벗겨 내십니까?"
그때 최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비가 새고 있어. 내 집이야 비가 좀 새도 괜찮지만 어찌 하나님의 집에 비가 새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집의 기와를 벗겨 내서 하나님의 성전의 비 새는 곳을 막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황무한데 나는 어찌 홀로 판벽한 집에 거하겠느냐?"
이것이 바로 그 옛날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그토록이나 사모했던 다윗의 마음이요, 최 장로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하게 만든 결과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소위를 살펴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돌이켜보면서 잘못된 것을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이제는 바른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그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뒤바꾸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아니하고 황무한 채로 내버려둔 것이 바로 원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도 역시 황무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해진 삶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농사를 지을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양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뿌려 주셔야 농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고 있는데 어떻게 농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식량이 풍부했겠습니까? 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비가 내리지 않으니까 마실 물도 부족합니다. 마실 포도주도 없습니다.
넷째,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돈이 없으니까 제대로 의복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날씨도 춥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다섯째,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들어오는 것은 적은데 나갈 것은 많다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값싼 양철로 두레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잘 길을 수 있지만 오래 쓰다보면 양철로 만든 두레박은 우물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서 찌그러집니다. 그리고 두레박 밑은 녹이 슬어서 구멍도 생깁니다. 이런 구멍 뚫린 두레박을 가지고 물을 길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물이 가득 담겼지만, 올라오면서 다 새 버리고 올려보면 물이 밑바닥에 조금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한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멍 뚫린 전대와 같습니다. 구멍 뚫어진 두레박과 같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삶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축복의 샘물이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은 달랐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기름진 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풍성한 물과 번성하는 가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떠했습니까? 그는 전쟁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롯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재산을 한꺼번에 불어 버리셨습니다. 물거품처럼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 눈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예수님에게서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몇 명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 것이 무엇이 나쁜 일입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얻은 것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을 때, 153마리나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 베드로에게 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분명히 일깨워 주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육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다윗은 탄식하면서 그토록이나 간절하게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사모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그의 손에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등불이 영원토록 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가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있는 리버 사이드 교회를 웅장하게 짓고서 하나님께 헌당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록펠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진정한 교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돈을 들여서 이토록 엄청난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입고 있는 옷이 아버지가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귀한 몸을 감고 있는 옷을 잘 지어 드리는 것이 자식된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록펠러의 그 마음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5,000여 개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건강과 장수의 축복까지 아울러 주셨습니다. 그는 54세에 의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계속해서 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건강을 주시고 98세까지 건강한 몸으로 장수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하였거늘 우리가 이러한 때에 우리만 홀로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과연 가하겠습니까? 우리의 소위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의 심령에 허물어진 황무해진 영적인 제단을 먼저 든든히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엄청난 축복, 놀라운 사명인 성전 건축을 완수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누리에 크게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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