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 (마 25:14-30)
저는 운동 중에 축구를 참 좋아합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직접 동네 아이들과 내기 추구도 하였고, 그러다가 한동안 부상을 입어 고생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축구경기는 직접 선수들보다 관중들이 더욱 흥분을 합니다. 모두들 다 축구선수들보다 더 공을 잘 차는 사람들처럼 말들을 잘합니다. 행여나 선수가 실수를 하면 ‘저런, 저런’, 하면서 그 선수를 나무라기도 합니다. 축구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는 것은 박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90분 동안 조금도 한눈을 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격렬한 운동임으로 45분을 뛰고는 15분간 쉬었다가 다시 뜁니다.
그래서 축구경기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뉘어 집니다.
그 쉬는 시간을 하-프 타임이라고 합니다.
1. 인생을 넓은 잔디 축구장에서 펼쳐지는 축구 경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90분 동안 최선을 다하여 뛰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란 말입니다.
인생 한평생을 평균 80살이라고 한다면 40살까지를 전반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40대들이 특히 생각해야할 문제입니다.
인생 나이 40세까지는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려온 전반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생 나이 40살까지는 모든 정열을 자기 <성취>와 <성공>이라는 꼴 대를 향하여 달려온 세월입니다. 오로지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며 달려온 세월입니다. 그래서 아마 인생전반전에 몇 골 차 넣어 승리감에 젖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남들보다 앞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동창들의 모임에 가면 동기들에 비하여 빠른 승진과, 명예를 얻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40대에 벌써 돈도 좀 모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인생 전반전에서 승리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 전반전은 <성취>와 <성공>에 목표를 두었다면, 이제 후반전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후반전을 앞에 둔 하프타임을 맞이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쉬면서 전반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하프 타임입니다. 하프 타임시간에 고치와 감독에게서 지적도 받고, 새로운 전략도 세웁니다.
모두 후반전을 승리하기 위한 반성일 것입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앞둔 분들에게 오늘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사실 따져 보면, 전반전을 아무리 잘 뛰어서도 후반전에 실패하면 그만입니다.
그런 면에서 후반전이 더욱 중요합니다. 전반전에 몇 꼴 넣었어도 후반전에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전반전에는 졌더라도 후반전에 만회하면 역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반전이 더 중요합니다.
인생 전반전에서 승리했다고 자만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축구경기를 보면, 승리감에 도취되어 교만해진다든지, 안일해 지면, 후반전에는 승리할 수 없음을 보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 후반전이야말로 더욱 더 잘 뛰어야 합니다. 인생 전반전에서 실패한 사람이라 해도 후반전에 만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후반전에서의 역전이 더욱 더 극적입니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생 전반전에서 승리한 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후반전에 실패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면 전반전에서는 비참할 정도로 실패했지만 후반전에서 역전시킨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더욱 더 큰 교훈을 주고 있기에 오늘 우리는 인생 후반전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인물들 중에서도 후반전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솔로몬이요, 엘리제사장이요, 사울 왕입니다. 이들은 모두 전반전에서는 잘 뛴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의 경우 젊었을 때는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보면 사치한 생활에 눈이 어두워졌고, 많은 이방의 여인들을 궁녀로 끌어들여 나중에는 많은 이방 신들의 사당이 예루살렘 성에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결국 나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래서 인생 후반전을 잘 뛰어야 하겠습니다.
2. 인생 후반전에서 오늘의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흔히 인생 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이 나이에까지 이르도록 자신의 입지(立志)가 서지 못한 사람이라면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20대에 벌써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정신 연령이 덜 성장하였거나 미숙아일 경우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인생 나이 40에 아직도 아내 귀한 줄 모르고, 인생 나이 50에 아내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같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 남자들 아무리 큰 소리쳐 봐야 50이 넘어 60고개를 넘어서면 별 볼일이 없는 존재들이 되기 쉽습니다.
벌써 이 나이쯤 되면 할머니들은 그래도 쓸모가 있지만 할아버지들은 갈곳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공원에나 가고, 남산 기슭 돌담에 모여 햇볕이나 쪼이는 신세들이 되기 쉽습니다.
인생 40정도 살아 보았으면 그만큼 인생 전반전에서 다 거칠 것을 거쳤다는 뜻입니다. 이제 40세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후반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언제 타임아웃이 될는지 쫓기는 세월이 됩니다.
저는 요즘 너무나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도교회에 온지 벌써 18년이 지나 이제 19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할 당시만 해도 시장에 나가면 ‘아저씨’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아버님’이라고 하더니, ‘어르신’을 거쳐, 요즘에는 ‘할아버지’라고 하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유행가에 ‘내 청춘을 돌려 다오! 라고 하는 말처럼 억울하게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장로님들도 기도할 때마다 <젊은 종>이라고 하더니, 요즘은 <귀한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노(老)종이라고 할 것입니다. “웃지 들 말아요!” 여러분은 안 그럴 것 같습니까?.
모두 인생은 후반전을 잘 뛰어야 합니다. 후반전 중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타임아웃이 가까워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말씀에 경청해야 합니다.
인생 전반전에서 성취한 성공을 그것을 지키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없다면 그래서 인생 40대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 나이 40을 넘어서면 신앙이 없으면 허무감에 빠질 유혹이 많아집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달려온 내 인생의 보람이 무엇인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또 이렇게 허덕이며 쉴 줄도 모르고 달려온 인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등등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향락추구에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벌어놓은 것은 있겠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에 올랐겠다, 그리고 생활의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제부터는 성취와 성공보다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 쉬운 시기입니다.
그러면 이 후반전을 승리하려면 어떻게 자신을 지켜 승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늘의 말씀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3.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대하여 영적인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달란트가 무엇인가?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여 하겠습니다.
흔히 달란트라 하면 자기의 재능 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자기가 갖고있는 <끼>, 또는 <능력>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14절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달란트는 주인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것을 각각 그 종들에게 맡겼다고 하였습니다.
달란트는 무엇인가? 나의 것 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식입니까? 그것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 돈? 건강? 이것이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노력했어 얻은 것인데 왜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느냐? 한다면 주인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자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 준 선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마치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벌어놓은 돈! 나 죽으면 누구에게 갈는지 모르니 노세노세 젊어 놀아야겠다고 하면서 향락합니다. 권력도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었는데, 자기의 소유물로 알고 그것을 가졌을 때 마구 휘들어 댑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는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마음에 들게 그것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인생 전반전에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범할 수 있는 오해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성공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또 주인에 대한 의식이 있어도 편견으로 한 달란트 맡은 사람같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들인지도 모릅니다.
주인은 아주 굳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굳은 사람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혀 종들을 위할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라는 그런 의식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달라고만 한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요즘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신앙생활을 하느라고 하지만, 전혀 주인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마지못해 교회에 나와 예배는 들입니다 마는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고, 더더욱 감사할 줄 모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로 헌금생활에서 인색합니다. 자기 사위나 아들딸들에게 하는 것 보다는 몇100분, 몇 1000분의 일도 정성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의식이 그러했습니다.
주인에 대한 감사할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것을 다시 가져왔으니 도로 받으소서”라고 한 말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주인 관입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진정 네가 그렇게 나를 생각하였더라면 네 말대로 차라리 은행에 맡겼다가 이자라도 붙여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오늘도 인생 후반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주인에 대한 의식이 바로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의 것을 바로 관리해야 하겠다는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40대까지 인생 전반전은 성취와 성공을 위하여 달려온 세월이라면, 인생 후반전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세월을 살아야 할 것이란 말입니다.
무엇이 참된 가치인가?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을 인생 후반전에서는 깊이 생각하여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바로 안 사람들은 즉시 나가서 장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노력하였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돈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주인의 즐거움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주인께 대한 사명(使命)의식(意識)을 가지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칭찬은 많이 맡았건 적게 맡았건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종이 감히 어떻게 주인의 즐거운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누릴 은혜의 선물입니다.
죄악 많은 세상에서 한평생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하다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도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미 후반전을 뛰고 있는 성도 여러분!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의 경기장에서 타임아웃의 휘슬이 울리기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반전에 실패하였더라도 후반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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