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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 13:1-7)

by 【고동엽】 2022. 8. 27.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 13:1-7)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 중 하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선친이 그런 분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아버님이 학교 수위 노릇을 하실 때 교장실 연탄난로와 수위실의 연탄난로가 서로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장실의 난로 뚜껑이 깨져서 연탄가스가 새자 서무과장이 저희 아버님 비번인 날 와서 수위실의 난로뚜껑과 바꾸어 갔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아신 저희 아버님께서 깨진 난로뚜껑을 들고 가셔서 바꾸어 오셨습니다. 교장실로 가시는 길에 서무실에 들러 서무과장을 교장실로 거의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가셔서 ‘교장은 가스 맡으면 죽고, 수위는 가스 맡아도 사냐? 교장님 것 새로 사다 드려’라고 큰 소리를 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정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살다보니 저희 아버님과 같은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도 보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시는 분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반듯하시고 정의로우신 분들입니다. 말을 해도 대개 옳은 말과 바른 말을 하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교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목회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의로우시고 거의 언제나 옳은 말을 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교회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옳고 바른 말을 통하여 교회는 건강해지지 않았습니다. 반듯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진심이 없다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하여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어찌 보면 참 잔인합니다. 곪은 상처를 보면 서슴없이 칼을 들어 그것을 쨉니다. 쨀 뿐만 아니라 잘라내기도 합니다. 의사는 그런 면에서 냉정하고 좀 잔인(?)해야만 합니다. 의사가 인간적인 약한 마음에 환자가 아플 것을 염려하여 수술을 머뭇거린다면 병을 키워 환자를 위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의사들이 칼로 째는 것만 대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짼 후에 그것을 반드시 꼬맵니다. 꼬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꼬맨 상처가 잘 아물도록 상처가 잘 아물 때까지 치료합니다. 째는 시간보다 꼬매고 아물도록 치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어서 환자는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외과 의사와 같습니다. 옳지 못한 것을 보면 칼을 들어 서슴없이 수술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저들은 쨀 줄만 알았지 싸맬 줄을 모릅니다. 꼬맬 줄을 모릅니다. 꼬매고 치료할 줄을 모릅니다. 상처를 째고 싸매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수술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수술을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지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싸맬 줄 모르는 사람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말은 교회와 사람을 살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 수술의 성공률은 제로 입니다. 그는 사람과 교회를 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죽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대개 그것을 모릅니다. 왜? 자기는 옳은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옳은 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은 말을 다시 말해서 천사의 말을 사랑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목회하면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 중에 하나는 언로가 열려있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민주적인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교회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밑바탕 정신 중에 하나는 민주입니다. 저는 사람들끼리 민주적이어야만 진정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신본주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좀 어려서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이로는 34살, 만으로는 32살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어 나가는 제가 안스럽고 위태해 보였는지 많은 선배들이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일 많은 들은 조언 중에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당회는 은혜스러워야 해. 당회를 은혜스럽게 하려면 모든 회의를 만장일치로 해야 해.>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만장일치가 은혜스러운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은혜스러운 나라는 북한이고 세상에서 가장 은혜스럽게 정치를 하는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저희 교회는 원칙적으로 만장일치제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토론한 후 중요한 일은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명학교를 위하여 건물을 매입하는 일은 참 시간이 많이 걸렸던 일입니다. 의견이 하나로 일치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의견이 일치 되지 않는 당회가 건강한 당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 의견이 일치되는 당회가 건강하고 은혜스러운 당회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일치가 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의견이 일치되는 당회는 죽은 당회이고 잘못된 당회이고 그런 당회는 있으나마나한 당회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 당회가 좋은 당회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토론 시간을 거친 후 무기명 투표를 하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부목사님들을 투표에서 배재시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첫째는 목사는 실무자인데 실무자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부목사에게 투표권이 있으면 작은 교회는 몰라도 저희 교회처럼 장로님들보다 목사가 더 많은 교회는 모든 일이 목사 중심 특히 담임목사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언제나 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은 부목사님들이 빠진 상태에서 10명이 투표 하였습니다. 결과는 찬성 7 기권 2 반대 1 이었습니다. 저는 이 결과가 아주 만족 스럽습니다. 아주 건강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찬성하시는 분도 있고, 반대하시는 분도 있고,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 기권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지만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결정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이 일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회원은 이제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혹시 기권을 하셨고 반대를 하셨다고 할찌라도 당회가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가결을 하였으면 그때부터는 개인의 생각과 의사를 교인들에게 말씀해서는 안 됩니다. 당회가 결정한 것을 당회원의 입장에서 말씀해야만 합니다.




   선배들이 은혜스러운 교회와 당회를 위하여 조언해 주신 말씀 중에 하나는 회의를 간단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회의를 만장일치로 하라는 것과 맥이 통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안건을 꺼내든 반대가 없고 만장일치가 되니까 회의가 간단해 지고 빨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영웅적인 자기 목회를 자랑할 때 흔히 하는 어리석은 말 중에 하나는 <우리 교회는 당회가 10분이면 끝나> 하는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옳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은 하는 당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와 같이 목사가 개척하여 갑자기 크게 된 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든 사회든 교회든 언로가 막혀서는 안 됩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나라의 왕조가 500년, 1,000년을 가는 경우가 그렇게 흔치 않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왕조 중에는 500년 1,000년 가는 왕조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왕조가 그렇게 장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언로가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나라 충신들이 왕 앞에서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니되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충신과 간신을 구별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왕 앞에서 <아니되옵니다>를 말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왕 앞에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칠 수 있는 신하와 자기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신하를 충신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왕조가 그렇게 장수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 교회는 그런 면에서 크게 염려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주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토론도 없이 10분 안에 만장일치로 일을 결정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이나 당회원들이 대개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인 것 같습니다. 교회가 개혁적이지 못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것에 대하여 힘들어하시다가 저희 교회가 조금이라도 개혁을 표방하니까 그 때문에 저희 교회로 오신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교회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큰 장점 속에 우리 교회의 큰 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학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성장 속에 패망인지가 있다.> 성공 속에 패망인자가 있답니다. 그래서 30년을 넘기는 회사가 쉽지 않답니다. 우리 교회의 성장 요인 중에 하나는 개혁과 민주입니다. 개혁적이지 못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교회 안에서 숨이 막혀 있던 사람들에게 실제로는 완전하지 못하지만 그냥 말이라도 개혁과 민주를 이야기하는 교회가 생기니 그냥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듯 몰려온 것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입니다. 그것이 개척 6년 만에 주일 출석 5천 명의 교회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같은 우리 교회의 성장인자 중에 패망인자가 함께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와 같은 개혁적인 마인드 때문에 부흥하고 성장하다가 그와 같은 마인드 때문에 급격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마음에 새겨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 어느 교회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만장일치로 ‘지당하시옵니다’를 외치다가 북한처럼 무너지는 우리 한국교회의 현상이 우리 교회에는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교회도 무너질겁니다. 우리 교회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당회를 10분 안에 만장일치로 끝내는 일 때문이 아닐겁니다. 그것은 사랑 없는 천사의 말 때문일겁니다.

   천사의 말을 해도 소용없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사랑 없는 옳음은 옳음이 아닙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참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특별한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남달리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은 방언이거나 예언이거나 신유거나 하는 식의 은사를 대개 받았었습니다. 한 마디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 좋은 고린도교회는 그 믿음 때문에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받은 은사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은사가 제일 큰 은사인가를 가지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기가 받은 은사가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보다 더 큰 은사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은근히 깔보는 일이 교회 안에 일어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큰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그와 같은 일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와 같은 것에 대한 책망 중에 씌여진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모든 은사는 다 똑같다고 말씀합니다. 은사는 구별이지 차별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모든 은사는 다 똑같은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그러나 모든 은사에 뛰어난 큰 은사가 하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그래서 제일 마지막 절이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로 끝납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사랑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말씀하고 싶었던 더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난 주간 전교인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2,000명이 넘는 교인들이 모여서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수련회를 가졌었습니다. 여러분 이번 우리 전 교인 수련회의 주제가 무엇이었지요? 네. 친밀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에 가장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밀함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 말을 사랑으로 하십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랍니다. 옳은 말은 참을성 없이 함부로 쏟아 내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사랑으로 그 말을 숙성시켜 말을 한다면 아마 탈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지 않는 것이랍니다. 교만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옳은 말이라고 함부로 남의 인격까지 건들이면서 무례하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십니다. 상대방의 인격과 자존심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하십시다. 그게 사랑으로 하는 옳은 말입니다.




   은사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방언의 은사는 누구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가 중요한 것이지 방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은사를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은사인데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가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은사입니다. 이번 전교인 수련회 때 방언의 은사를 받으신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방언을 훈련하고 연습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은사는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받았답니다. 여러분 그것은 훈련하고 연습을 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방언의 은사를 사모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교회는 다른 어떤 은사보다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의 성장 속에 숨어 있는 패망인자는 사랑 없음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있으나 사랑은 없음입니다. 천사같이 늘 옳고 바른 소리만 하지만 사랑이 없어서 째기만 하고 싸매지는 못하는 사랑 없음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 교회의 모든 장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값싼 은혜와 사랑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무조건 째지 않고 싸매고만 있는 것은 안 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용기와 충심으로 째고 함께 아파하고 혹시 그가 상처 받지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며 가슴으로 품음으로 정말 이 시대에 건강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이동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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