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이 축복이어라 (시 50:22-23, 빌 2:12-18)
주일학교에 막 가려던 아이에게 엄마가 200원을 주었습니다. 왼손에 동전 하나를 올려주면서 이거는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이다. 오른손에 동전 하나 올려주면서 예배 끝나고 오면서 더운데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어라. 이 아이가 깡충깡충 뛰면서 헌금, 아이스크림. 뛰다가 그만 아이스크림 값을 하수구에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 찾다가 못찾았어요. 그러면서 이쪽 동전을 이쪽으로 옮기면서 하는 얘기가 “에이, 헌금이 하수구에 빠져버렸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보고 사느냐 여하에 따라서 불평하는 삶을 살수도 있고 감사하는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원망하는 삶을 살수도 있고 찬성하는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한 집에 진돗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고 잡종개, 소위 똥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진돗개는 늘 입만 벌리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주인은 내게 먹을 것 주고, 날 보호해 주고, 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줘. 우리 주인은 아마 하나님일 거야.?잡종개 소위 똥개는 늘 입만 벌리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주인은 내게 먹을 것 주시고, 날 보호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셔. 아마 나는 하나님일거야.?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한없는 교만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일년에 한번씩 우리가 보내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 주일은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경적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의미심장한 주일이기도 합니다.
닥터 스코프는 말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과 감사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죄인은 깨어있는 순간 고민하며 지내고 참된 성도는 눈을 뜨면 감사하며 하루를 열어갑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수도원에 들어오면 감옥으로 변하고 성도가 감옥에 들어가면 수도원으로 변한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하느냐, 불평불만의 생활을 하느냐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환경이 수도원이 될 수도 있고 감옥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감사와 찬양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은 맛을 잃어버린 신앙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면서도 물의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공중을 나는 새가 공기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살 듯이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말세가 되면 타락한 성도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이 “감사치 아니하며” 감사치 아니하는 시대가 올 것인데 그때가 되면 세상이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것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감사의 영을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감사절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주일 혹은 맥추감사주일 그러면 1년에 한번씩 특별헌금이나 하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귀찮아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감사절은 축복의 날입니다. 감사를 깨닫는 날입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음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매년 최소한 3차례에 걸쳐 절기축제를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첫 번째 축제가 유월절, 무교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처음난 것들을 죽이시기로 작정한 그날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집집마다 양 한 마리를 잡아먹고 사방팔방에 양의 피를 뿌리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양의 피가 뿌려진 집안을 보면 우리가 넘어가게 될 것이다. pass over. 그래서 유월절이라고 부르게 되는 거지요.
그 다음날부터 7일동안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즉, 누룩없는 떡을 먹었고 7일동안 집에서 누룩을 모두 제하여 버렸으니 이 절기를 무교절이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유월절의 의미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소나기와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절기라면, 오늘 교회시대에 많은 성도들, 사단으로의 소나기로부터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옥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멸망의 신이, 저주가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늘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함 받을 수 있습니까? 오직 흠과 티없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 유월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바로의 사슬로부터 풀려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마귀의 사슬로부터 해방을 얻었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천성가는 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신앙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해방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여전히 죄 짐에 눌려 신음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불평하며 살아가는 마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이것이 바로 마귀의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감격하며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찬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축복의 길로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다음날부터 지낸 무교절은 누룩없는 절기란 말입니다. 여기서 누룩은 좋은 의미로서의 누룩이 아니라 악덕과 죄악을 말합니다. 무교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하여 버렸습니다. 구석구석 숨겼습니다. 땅에 묻기도 하고 장롱 깊숙한 곳에 감추기도 했습니다.
누룩이 죄악을 뜻하기 때문에 누룩을 감춘다고 하는 것은 우리 죄악을 감추시고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악을 덮어주시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덮혀진 우리의 죄악과 허물과 악덕을 보지 않기로 주님께서 작정하시는 것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죄로부터 해방되셨습니까? 구원받으신 감격 속에서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의 죄악이 다 땅에 묻히고 새 존재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둘째로, 성도들이 즐겨야 될 절기는 맥추절입니다. 이 날은 유월절이 지난후 7주만에 지키는 절기라 하여 칠칠절, 오십일째 되는 날이라 하여 오순절, 첫 열매를 거두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라 하여 초실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뿌린 씨가 열매되어 그들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 첫 열매에 대한 감사를 의미합니다. 구약 맥추절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맥추절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신령한 첫 열매,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맥추절은 애굽에서 나온지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그 백성을 광야교회로 조직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교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모일 때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약교회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 교회를 통하여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며 이 교회 안에서 천성가는 복을 배우게 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살아가는 이 행복감 이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천국백성의 일원이 된 영광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깨닫고 살아가십니까? 이 교회에 한 가족이 된 것을 여러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십니까?
칼빈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된다. 진정한 효자는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이다.?
셋째 절기는, 수장절 즉,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월력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일년동안 가을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가을 들판에 초막을 짓고 일주일동안 야영하며 잔치하는 절기였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나그네로 초막생활을 하며 만나를 먹던 날들을 기억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고 하나님의 몸된 가족이 되었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고 일마다 때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간 순간 나와 동행하시고 지켜주심을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수장절은 말세 주님 재림시, 믿는 자를 다 거두어 드릴 심판날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오실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사모하고, 그날의 영광을 오늘 누리며 살아가는 기쁨을 표현한 절기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받아 주실 것이다. 나를 영원한 가족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그래서 하루 하루 종말의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리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3대 절기가 주는 의미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감사들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구원에 대한 넘치는 감격입니다. 소유나 존재냐 했을 때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것을 얻었느냐 잃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6개월동안 돈을 많이 벌었느냐 적게 벌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감사할 수 있으면 내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받은 구원의 선물도 귀중하지만 그것을 아름답고 귀하게 보존하는 것이 더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보존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우리가 얻은 구원을 이 땅에서 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구원을 상처 내지 아니하고 보자기에 잘 싸서 간직하고 누리는 비결이 무엇이냐?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령, 결혼기념으로 신랑이 해 준 보석반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져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제대로 된 사람이겠습니까? 아내로부터 결혼 예물로 받은 결혼반지를 전당포에나 걸어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부부간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금이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구원을 값싸게 다루거나 취급해서는 안된단 말이지요.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에 여러분은 얼마만큼 무게를 두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 인생생활에서 하나님의 사역, 이 교회 사역, 신앙생활, 여기에 우선순위를 얼마나 가치 있게 두고 살아가십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네가 감사치 아니하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오늘 나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라서 영원히 찢어지고 신앙이 찢어지고 사업이 찢어지고 가정이 찢어진 사람이 얼마입니까?
어떤 신자가 밤거리를 지나다 보니까 남루한 옷차림을 한 아이가 빵 가게 밖에서 창문 너머로 빵을 들여다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배가 고픈가 보다. 빵이 먹고 싶은가 보다‘ 아이의 손을 붙들고 빵 가게로 들어가서 맛있어 보이는 빵을 이것 저것 골라주었습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빵을 먹는 걸 보니까 얼마나 그 빵이 맛있어 보이는지, ?이 아이에게 더 많은 걸 사줘야 겠다. 케잌도 사줘야 겠다’ 싶었습니다. 손을 내밀면서 “얘야 나도 그 빵 좀 먹어볼까?? 그랬더니 가슴을 움켜쥐면서 ”싫어요?도망을 가더라는 것이지요.
지금 누리는 이 은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배고프던 과거에 자기가 얼마나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죄인이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더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손을 뿌리치고 “싫어요” 하고 돌아서는 철부지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정경 총회장을 지내신 박종현 목사님은 그의 어린시절 경험을 수필에서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여름날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집안 아저씨의 종아리 털을 뽑고 도망을 쳤더랍니다. 등뒤에서 아얏!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마 후에 재차 습격을 하고 달아났습니다. 아까보다 성난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편 아저씨의 너그러운 마음씨가 믿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또 잠이 들 무렵 세 번째 털을 뽑아 쥐고 달아났습니다. 아뿔싸! 아저씨의 관대를 너무 믿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저씨 벌떡 일어나더니 뒤를 쫓아와 구석구석 두들겨 패는데 얼마나 얼얼하게 맞았든지 환갑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얼얼해 진답니다.
기어이 얻어맞고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얻어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방관으로 오해 해서도 아니 될 것이고, 오래 참으시는 인내를 무관심으로 착각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찢으시면 싸맬 사람이 없습니다. 역으로 하나님께서 쏟아 부어 주시면 안 되는 일이 없고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맥추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영적인 축복이요 의미입니다.
첫째,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것이 저주요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앙의 표현이며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애완용 동물 가운데는 강아지가 있고 고양이가 있습니다. 고양이보다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즐겨하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사람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기억장치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강아지란 녀석은 주인이 열 가지를 잘못하고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 가지 잘해주는 것 때문에 주인을 졸졸 따르고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고양이란 놈은 열 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 싹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 때문에 토라져서 주인을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보면 강아지형이 있고 고양이형이 있습니다. 교회생활도 강아지형이 있고 고양이형이 있습니다. 고양이형의 신앙은 하나님이 열 가지 축복을 주다가도 한 가지 조그마한 고난을 허락하시면 그것 때문에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고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강아지형의 신앙에는 열 가지 어려움이 있다가 한 가지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면,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찬송합니다.
인간이 비참하게 되는 것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때입니다. 인간이 인격적으로 추해지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보답하지 못하는 때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기억하고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도 구원받은 현재의 삶에 감사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감사절은 축복의 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어렵고 곤고하고 가난했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건강하냐. 병들어 신음하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밥술이라도 먹고 사느냐. 가난하게 살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 나라가 평화스럽고 자유스러우냐.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오던 그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던 이 민족의 처절했던 운명을 생각하고 온 민족이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행복한 삶을 주시기 때문에 감사절은 축복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감사절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날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환경이나 외적인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속에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즐거움이 어디서 옵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인생이 즐거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는 불신앙인으로 감사함을 잃어버리는 메마른 심령으로 저주하게 될 것이다.?
내 남편이 감사하다 여겨질 때에 내 아내가 고맙다 여겨질 때에 그 남편, 그 아내가 감사하게 내 남편, 내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저희교회에 집회를 오셨던 한분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함께 늙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눈에서 눈물이 나와야 내 마누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을 볼 때에 눈물이 나와야 내 남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 10년, 20년 하는 사이에 함께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함께 몸이 늘어가면서 함께 늙어가는 아내 남편을 볼 때에 눈물이 안나면 그 잘못 된 눈깔들 빼버려. 그러시더라구요.
제가 우리 집에 가서 주무시는 우리 집 사람을 보고 내 눈에 눈물이 나나 봤더니 눈물이 안나요. 제가 쇼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내의 얼굴을 봐도 눈물이 안나면 눈깔 빼버려라 말씀하셨는데 이 눈깔 빼 버리시옵소서. 그리고 눈물나는 눈으로 바꿔주시옵소서.? 그랬더니 결혼했을 때에 - 학창시절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 어려웠던 순간 순간들이 기억이 납니다. 개척하면서 함께 울면서 기도했던 순간 순간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더라구요. 하나님 썩은 눈깔 뽑아 가시고 이제 사랑의 눈을 보내주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이 교회가 내 교회로 받아들여질 때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감사하게 여겨질 때에 그 부모가 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중고등부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주보 표지에 보니까 <5가지 헌금> 이란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① 선교헌금을 하는데 한 소년은 헌금을 넣고 나서 히죽거렸다. 그의 넣은 돈은 아현화로써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데 그 헌금이 어디에 쓰여지든지 내가 어떤 정성으로 드렸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②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헌금을 넣고 난 다음에는 아주 거드름을 피웁니다. 자랑스럽게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 아이는 구리화. 교만한 마음을 넣었다.
③ 마지못해 남들이 하니 어쩔 수 없이 넣었다. 싸늘한 마음, 쇠덩이 돈, 철화를 넣은 겁니다.
④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한 사람들, 동정심을 갖고 넣었다. 은화를 드린 것이다.
⑤ 주님 사랑합니다. 내 온몸을 주님께 바칩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수많은 친구들이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주님 사랑해서 드리는 예물은 금화를 드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사는 반드시 더 큰 축복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은 축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축복을 계속하여 받습니다. 감사를 잊으면 주신 축복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자에게 축복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축복은 받는 것보다, 축복을 감당하고 계속 누리는 것이 몇 배나 더 어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축복받는 연습이고 불평은 망하는 연습입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한없는 감사가 용솟음치고 있습니까? 구원받은 것이 참 감사하다. 행복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참 감사하다. 우리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참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건강한 기업을 주셨고 든든한 직장을 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신앙의 바른 비전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님 지금도 나를 인도하시고 동행하신다. 참 감사하다. 감사가 내 가슴속에 자리잡고 용솟음치고 있습니까? 축복받을 징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잊은 자를 찢으시겠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펄전은 또 말했습니다. “작은 믿음은 당신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큰 믿음은 천국을 송두리째 당신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종수라는 가난한 집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소원이 ?내가 의사가 되어서 돈을 벌면 가난한 내 어머니 속옷 한 벌 사 드려서 춥지않게 해 드려야지. 어머니랑 마주앉아서 돼지고기 실컷 한번 먹어보는 것‘ 이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정육점 앞을 지나는데 고기 사서 어머니랑 구워먹어야지. 아니야 한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 손에 쥐어드릴 거야. 그 어머니 손 붙들고 백화점에 가서 속옷 한 벌 사드려서 따뜻하게 해 드리고 어머니가 사서 구워주는 불고기 먹을 거야. 그리고 어머니에게 봉투 들고 달려갔습니다. 어머니 첫 월급 받았습니다. 어머니 손에 들려 드렸습니다. “어머니 나와 함께 불고기 먹으러 가요. 어머니 속옷 한 벌 사드리고 싶어요. 백화점에 가요.? ”종수야 기왕 믿을 바에 잘 믿자.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 거야. 타협하지 말고 깨끗하게 살자. 이건 네가 처음 받은 월급이지, 첫 열매야. 이것 우리 것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 바치자.? “어머니 십일조만 드리고 우리 불고기 먹어요.? ”아니다. 이것 첫 열매다. 우리 것 아니다. 종수야. 깨끗하게 살자.? 주일날 어머니 손 붙들고 가서 첫 열매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났을까요? 학장님께서 불렀습니다. 의사고시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금을 주는데 하나님 앞에 바쳤던 월급의 2배를 주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했지요. 송두리째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나를 1등으로 합격할 뿐만 아니고 상금을 주시는 구나. 너무너무 기뻐서 이제는 이걸 가지고 불고기 사들여야지, 어머니 속옷 사들여야지, 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어머니 제가 전국 의사고시에서 1등을 했대요. 어머니 이제 저와 함께 돼지불고기 실컷 배가 부르게 먹어봐요.?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봉투를 받아들었습니다. ”종수야 너 상금 타 본적 있니?? “네 처음인데요.? ”첫 상금이니까 첫 열매이구나. 이거 하나님 앞에 바치자. 그리고 주일까지 기다리다간 너 시험 들고 나 시험 들겠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어머니와 손 붙들고 재단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가 유명한 한국교회 커다란 영향을 남긴 원종수 권사입니다. 미국 의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원종수 권사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아 오신 분 계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구원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불평과 원망이 떠나고 한없는 감사와 기쁨이 살아나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 교회 행복한 교회 일원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며 행복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장래에도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도 우릴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당신의 왕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감사와 기쁨과 찬양과 영광이 회복되어지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류영모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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