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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고린도후서 12:5-10)

by 【고동엽】 2022. 8. 26.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고린도후서 12:5-10)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도 정말 부족함이 없고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3:3-6절에 보면 그가 예수님에게 사로잡히기 전에 어떻게 자랑하면서 살았는지를 상세히 알려줍니다. 특히 바울은 그 당대 최고의 학벌과 정치력도 겸비했던 분이고, 어디서나 인정받는 분이셨습니다. 바울의 말 그대로 정말 그는 자랑할 만한 사람입니다.

1.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가시를 주셨으니(7절).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가 전후 문맥으로 보아서 바울은 선교 여행 중에 겪은 수많은 환란으로 인한 몸의 질병 내지는 상처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로 말미암은 육체적 상처나 질병보다도 더 큰 것은 아마도 마음의 상처일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1:28절에 보면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마음에 받는 심한 스트레스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실 일평생 동안 바울을 괴롭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아마도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제자들의 무시였을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 전서 9장 1절 이하와 고린도 후서 12장 11절~12절을 보면 어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따라서 사도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만 하면 왠지 작아질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선교적 열정과 사명에 대한 헌신이 꺽일 수 밖에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물질 때문에 오해가 있었음 알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13절 ~ 17절에 의하면 바울과 제자들이 이(刵)를 탐하는 자들이란 오해를 받고 있었음을 엿보게 됩니다. 따라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이런 오해를 받게 되었으니 결국 이러한 편견과 오해로 인해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하고픈 마음이 사라지고, 회의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다른 말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단의 사자라는 표현입니다. 이 사단의 사자라는 표현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신앙적 의지를 꺾어 버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무시당한 것, 남에게 속임을 당한 것, 남에게 모함을 당한 것 등,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왔을 것입니다. 지나온 시절 동안 받은 이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지난 상처는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덮어버리고 억누른다고 해서 상처가 고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심하면 때론 자살로도 이어지고, 심한 우울증도 겪게 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도 하고, 신앙마저 저버리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물질이 부족하여, 때로는 자녀로 인하여, 때로는 남편이나 아내 시어머니와 며느리 때문에, 그리고 교회봉사를 하다가 여러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질병과 상처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하고 평생 마음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다고 그 마음의 상처가 없어집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그 해결의 길을 찾으시길 부탁드립니다.

2.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8절)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점인 육체의 가시를 떠나기 위해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 번이라는 횟수는 아마도 오랫동안 기도했던 큰 제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은 죽은 유두고도 다시 살리는 능력도 받은 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한 기도응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도바울이 기도를 잘못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간절하게 진심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응답이 없으면 우리는 실망할 수도 있고, 낙망할 수도 있고, 신앙의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단의 가시”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이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마음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 사도바울처럼 하나님께 기도해 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처럼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데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열정도, 신앙적 의지도 꺾여버리고, 세상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상처 때문에 삶에 대한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목숨마저 스스로 끊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니라(9절)
사도바울은 비록 육체의 가시를 고침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도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통해 그가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은 연약함이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하게 된 사실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동시에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나의 마음의 상처로 인한 연약함에 대해 깨닫게 될 때까지는 그것이 가시요, 사단의 사자로 보였으나, 자고하지 않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사도 바울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고통스러운 육체적 가시가 변하여 오히려 감사요, 기쁨이요, 자랑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되면 오히려 그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은 고통과 자신의 연약함을 인해 바울처럼 감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따라서 깨닫게 되는 시점이 언제인가가 문제입니다. 당장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됨으로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지만, 깨닫게 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것이 변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후서 4장 7절 이하에 의하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육체의 가시와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혹시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남몰래 눈물 흘리며 아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육체의 가시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내 몸에 연약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가 교만하지 않도록, 아니 내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도록 주신 선물이라는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출처/김주관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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