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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3.1절 설교

기독교와애국

by 【고동엽】 2022. 8. 24.

사1:10-17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 역사에서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애국 정신의 발로의 날이었습니다. 즉 민족이 애국 운동으로 뭉쳐진 대 역사적 사건의 날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지 9년만에 다시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뜻에서 일제의 총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맨 주먹으로 독립 만세를 방방곡곡에서 외쳤던 날이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이 운동에 참가했던 인원이 무려 200만 명이나 되었고, 피검된 자의 수가 46,000명이었고, 피살된 자가 무려 7,500명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민족적 항거를 일으킨 33명의의 지도자들 중에 16명이 기독교인 었고, 실제 이 운동에 조직적으로 참가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기미 3.1.운동은 실제로 교회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 가리켜 단순히 정치운동이 아닌, 민중 운동이라고 규정짓는 학자들도 있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한(韓)민족의 출애굽>(Korean Exodus) 운동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 말이 옳다고 봅니다.
삼일절의 거사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事件)이 아니라 신앙적 폭발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운동이 일어 난지 81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신앙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민족의 나갈 길을 신앙 인의 차원에서 스스로 결단해야 할 때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신앙 인의 애국은 어떻게 나타내어야 하겠는가?
즉 <기독교와 애국 운동>이 세상 사람의 것과 달라야 할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말씀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정치계에 많이 진출해 있고, 중요한 요소 요소마다 다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생각처럼 되어 가지 못하는가? 하는 것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기독교의 애국은 신앙(信仰)적 표현(表現)이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정치운동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 인은 진정한 애국자’라는 말이 있듯이 신앙 인의 애국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구호처럼 정치를 위한 애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신앙적 표현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적 표현이 애국 운동으로 나타날 때, 왕왕 현실의 정권과 충돌이 있게 됩니다. 즉 신앙 인의 애국 운동은 정권(政權)을 위한 것도 아니고, 출세와 권세를 누리려는 것도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의와 정의가 지배할 수 있는 나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잘 드러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예로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애국 운동을 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애국 운동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땅>과 <영토>와 <사회> 전체가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었습니다. 애굽이란 불 의한 세력 하에서 박해를 당하고 신음하는 택하신 백성들을 구출해 내려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이었습니다.
그것을 전달하고 그것을 고취시킨 것이 선지자들의 애국 운동이었습니다.

여러분! 구약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 민족의 율법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설사 팔았더라도 희년(禧年)이 되면 다시 옛 주인으로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땅의 귀속은 곧 영혼의 귀속으로 나타납니다. 희년의 복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의 외침은 개인의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물려준 땅과 영토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영토를 자신의 생명으로 지키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지금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적군의 침략을 당한다면 모두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솔선 귀국하는 것이 우리들과는 다른 점입니다. 땅을 생명으로 지키는 애국은 바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인의 나라 사랑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좀더 거슬려 올라가면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땅>을 주관하고 <자연>을 보존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인간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땅에 영토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땅을 잘 가꾸고 지켜 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땅,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신앙 인들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적게는 그 땅이 가정이요, 크게는 민족이요, 지구촌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2. 기독교의 애국은 공동체를 형성해 나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인의 애국은 단순히 자기 땅을 지키려는 국가 지상 주의 적인 이기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고 우주적인 신앙적 발로에서 울어 난 애국 운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의 애국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행동하지만, 그러기에 그러한 운동은 ?정치 집단? 이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 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의 애국 운동은 민족 공동체로서의 하늘 나라 시민 운동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순수(純粹)해야 합니다. 자신의 출세 영달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야 합니다.

세상의 정치가들이 말하는 애국은 정권(政權)욕에 있지만 그리스도 인의 애국은 하나님의 정의(正義)를 위한 공동체 형성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실현되도록 함에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함에 있습니다.
세상의 관헌들의 애국은 집단적 이기주의와 자파(自派)세력의 확대에 있지만, 기독교의 애국은 나의 주장과 나의 생각 대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항상 묻는 가운데서 자기 갱신(更新)과 자기 개혁(改革)의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인의 애국은 <소금>과 <빛>으로 자기를 내어 주는 희생일 뿐입니다. 소금이 필요한 것은 맛을 내기 위함이요, 소금이 있어야 할 이유는 부패가 생겨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빛이 필요한 것은 어둠이 있기에 불의가 있는 곳에서 자신을 태우는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인의 나라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를 사랑하였으나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 동족과 민족을 사랑하였으나 집단 이익이나 동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의 특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의 애국 운동은 세상의 정권욕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용을 당하기도 하고, 아니면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인의 애국 운동은 여(與)로부터도, 야(野)로부터도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들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지만, 저들은 모두 나사렛 예수가 자기들 편에 서 주지 않았을 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에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정권욕에서 이용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자기들 편에 서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자기들 편에 서지 않으면 핍박하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탄압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애국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려는데 있습니다.

3. 기독교의 애국은 언제나 <말씀>에 기초한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딤후3:16-17)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관념이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철학이 아니라 우리와 호흡을 함께 하는 역사적 인격의 하나님입니다.

그 인격의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 말씀은 언제나 옳고 진리요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모든 책망(비판)과 바르게 함(개혁)과 의로 교육함에 기초가 됩니다. 기독교의 애국은 어느 정치적 보수 한 사람의 명령이나 지시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집단 이익을 추구함에 다수결에 따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응답하는 양심의 행위일 뿐입니다.
양심(良心)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나 제도나, 사람은 없습니다.
양심의 주재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양심적 행동에 기초가 될 것뿐입니다.

말씀에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곧 정의 편에 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어 모든 선악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당신이 원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을 통하여 당신이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기를 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제일 큰 죄악은 인간을 학대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것, 바로 그것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본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없는 폭력과 인권 유린에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구원이요 애국 운동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정권을 두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 정권이 얼마나 인권을 존중하고, 그 정권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의를 실현하는가에 따라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은 말씀에 기초한 정의에 실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신앙적 표현이 애국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자신들을 되 돌아보는 계기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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