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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기억할 사람들 (마1:18-25)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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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기억할 사람들  (마1:18-25)

어떤 글을 보았는데 일년 중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달은 12월이며, 제일 좋아하는 날은 바로 성탄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경건해야할 날인데 더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은 우리 하나님의 아들 독생 성자가 탄생하신 날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고, 불신을 심판하시는 메시아가 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수많은 천군 천사들, 가까운 곳에서 나온 목자들과 또 멀리서 온 박사들처럼 우리도 아기 예수께 나아가서 경배드려야 합니다.

성탄의 바른 의미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임마누엘]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깊은 성탄의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말씀 즉 '로고스'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단순히 사람이 되신다는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영원하신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육신을 덧입으신 것입니다. 육신을 입었다는 말은 인간성 전체를 가진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 은혜를 입고서 줄곧 주님을 받들며 수종들었던 신실한 여인들이 여러 명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죽을 때까지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여성은 주의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한번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던 동방박사나 목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참으로 진실한 사람들이었고, 바르게 성탄을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 왕이나 예루살렘에 살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특히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실 것을 알면서도 그리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잘못 지킨 사람들을 통하여도 교훈을 받게 됩니다.

태초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시면서 하나님은 아주 적은 몇 분의 신실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사람을 택하시고 지목하여 불러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역사적인 구속의 사건에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실한 사람들을 불러서 아주 귀한 사역을 맡기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몇 몇 있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가룟 유다, 당시의 가야바와 안나스 같은 대제사장,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를 가능케 하는 악한 일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잘 하였기에 상급이 있거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은 악한 동기로 사단의 미혹을 받아 악역을 담당한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깊고, 사려 깊은 사람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고자 하는 이들을 불러 귀한 일에 쓰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이 언제 부르셔도 응답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을 자세히 읽어보면 많은 선지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갖은 핍박과 환난이 닥쳐온다고 해도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저 멀리 메시아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어보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총 456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이사야를 비롯한 예례미야 에스겔 다니엘 미가 같은 선지자가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언제나 예수님을 낳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의 엔도오 슈우사쿠라는 작가는 그가 지은 [성서 속의 여인들]이라는 책의 첫 부분에서 유럽인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세 가지의 여성상(女性像)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 유형은 여성의 청순함이나 순결함과 함께 모성(母性)을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형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여성의 어두운 부분 곧 여자들이 지니는 악(惡)의 원형인 하와 즉 이브형입니다. 셋째 유형은 육체적인 미(美)의 이상형인 비너스형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를 말할 때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마리아를 숭상하는 것을 보면서 반작용으로 우리가 경계하다 보니, 개신 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존재가 별로 부각되어 있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숭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본받을만한 좋은 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모범적인 인물로 설교하는 것처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사람으로 나시기 위해서는 한 분의 어머니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처녀여야 하였고, 자발적인 헌신이 없이는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사람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결혼 예식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드려 봅니다. 첫째는 약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약혼은 어릴 때 양친에 의하여 혹은 직업적인 중매쟁이에 의하여 어른들끼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약혼은 앞으로 결혼할 당사자 두 사람의 맞선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결혼은 나무나도 신성한 것이기에 어린아이들보다는 인생과 세상을 잘 아는 부모들이 알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인생사에 있어 너무나 진지하고 중요하고, 신성한 것이기에 인간의 애정이나 마음 같은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정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혼은 이미 맺은 약혼을 공식화하고, 랍비 앞에 가서 서약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알도록 널리 공포하고, 일단 정혼이 이루어지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집니다. 만일 약혼한 사이에 어느 쪽에서 상대를 싫다고 하면 파혼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혼한 후에는 이혼수속을 밟아야 헤어질 수 있지, 일방적인 말 한마디로 파혼이 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는 결혼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정혼한 후 일년 안에 좋은 날을 잡아 결혼해야 하는데 대개 일년이 끝나는 때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어려운 사람은 그냥 데려다가 살아도 되고, 잔치는 선택 사항이었습니다. 잔치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개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을 초청하여 잔치하며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부부로서 선포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죽으면 과부처녀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혼과 정혼을 비교해보면 정혼이란 사회적으로는 약혼과 같으면서 법적으로는 결혼과 같은 관계라고 할 것입니다.

자, 그런데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받은 자에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 이런 인사를 받아보기도 처음이고, 그런 말을 들어보기도 처음이고, 뜻밖의 인사이기에 두렵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었겠습니까?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함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말은 메시아의 별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다윗의 위를 계승한다고 믿었습니다. 자기에게서 태어날 아들 예수는 다윗의 왕권을 받아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인데 천사가 자기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정혼한 요셉이라는 청년이 있었지만, 아직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동정을 지닌 처녀였습니다. '동정녀'라고 함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결한 처녀를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부정모혈을 통해서 태어나는 법인데, 지금 천사는 자기에게 성령으로 아이가 수태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 위에 임하여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실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마리아의 신실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자기에게 쏟아질 엄청난 수모와 멸시를 각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가오는 많은 문제들, 인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처녀가 잉태되었다는 초자연적이고, 인간의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한 후에 깨끗하게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의 미래를 다 하나님에게 맡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어느 대학에서 "결혼 전 남녀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 조사에 46%의 여대생들이 "혼전관계는 해도 좋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마리아가 살던 시대의 어느 한 여성도 이런 자유분방한 태도를 인정할 수도 없고, 마리아는 46%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이상하게 신에 홀려서, 아니 희한하게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예,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바로 하나님의 세계는 이러한 이들의 자원하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는 '주의 모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귀한 것은 귀한 것으로 보고, 사람들 중에서 잘 믿은 것을 인정하고 높이 알아주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를 하나님으로, 신의 어머니로 받들어 모시거나, 숭상하고 영광을 돌리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좋은 면모는 알아주고, 우리도 본받고, 앞서간 성도들의 모범적인 성품이나, 헌신을 배우자고 말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좋은 신앙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그를 "주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가리켜 "여자 중 가장 복을 받은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마리아를 찬양하다 못해 그를 신의 어머니로 받들고, 그는 원죄도 없다고 까지 말한 천주교회의 교리는 잘못이지만, 마리아의 좋은 믿음까지 부당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받은 은혜와 복이 아주 크다고 하여 그녀를 찬미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신앙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를 이루시기 위하여 한 여인을 택하실 때 당시에 가장 믿음이 있고, 순종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믿음의 여인을 선택하려고 할 때 마리아를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동정녀 탄생을 우리의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것도 믿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도 진정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실 때 우리와는 다르게 오셔야지, 무얼 따질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신다고 할 때 정결한 처녀의 몸을 빌어서 오신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또 한 사람 의로운 사람 요셉에 대하여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다윗의 가문이었고, 지금 나사렛에서 살지만, 목수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정혼하였고 이제 양가의 허락을 받아 결혼식만 거행하면 마리아와 함께 살 수 있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미래를 위하여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정혼한 여인 마리아의 배가 하루 다르게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며, 이것이 어찌된 영문이지 알다가도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살이 찌는 것으로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동리에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여인, 자기와 평생을 함께 하자고 정혼한 여인, 동리에서 가장 현숙하였고, 신앙이 좋았다고 보았는데, 자기와 동침한 사실이 없는데, 그녀 안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기막혀 말이 안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세상에 이런 배신감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유대나라의 법대로 하면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신시킨 남자를 대야 합니다. 이 때 마리아가 정혼한 요셉이라고 둘러대도 요셉이 그런 사실 없다고 하면 마리아는 죽어야 합니다. 그 임신이 다른 유부남과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면 두 사람 죽어야 하고, 성폭력을 당하여 소리치고 구원을 요청했지만,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면 여자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남자의 이름을 대지 못하면 창기로 몰리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탄생에는 의로운 사람 요셉의 보호가 절대로 필요하였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그의 사려 깊은 태도로 인하여 마리아는 사회적인 심판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면 그도 살고 자기도 남을 정죄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요셉은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요, 신중하게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남에게 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루는 밤에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였습니다. 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다윗의 자신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나실 아기의 이름이 예수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이며 '그는 자기 백성을 저희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인류의 구원자로 태어나시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요셉은 이제 자기 부인에게서 태어나게될 아이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이시며, 그는 하나님이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대사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사야 7:14에 예언하신 것처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그 말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사8:10에 나타나는 말인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사명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원수 되었을 때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류는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가 낳은 아들로 소유하고 계시며, 우리도 역시 아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고 보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로,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함께 공유하고 보니, 예수님은 임마누엘이 되셔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포드라는 분은 "하나님의 선물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그것은 우리를 통해 당신 자신을 실현하시고 사물에 위압당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사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Calculative thinking] 라고 해서 이것은 계산적이고 타산적이고 추리적인 생각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입니다. 또 하나는 [inspired thinking]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영감적인 직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서부터 오는 영적인 직감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들을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영감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잠에 깨었습니다. 즉시 일어나 서둘러 주의 사자의 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서둘러 잔치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내를 데려왔지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자마자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집안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는 가문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에서 잘 사용하는 이름이 예수 즉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은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듣기만 하여도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설교 시간마다 예수만 외치고 예수님의 이름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낮고 천한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을 생각해보면 송구스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이 되셨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고, 잃어버린 동전 하나 버리시지 않고 찾아 나서시고,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영혼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주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 장애인 송명희 씨가 [그 이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설교가 버나드는 말하기를 "예수의 이름 속에 있는 그 비밀을 깨달은 자의 입 속에는 꿀송이처럼 달콤함이 있고, 예수의 이름을 듣는 귀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울리고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기뻐하는 신랑 신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섭섭함이 있습니다. 구원을 선포하는 성탄절을 마냥 즐거운 축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고 인간으로 좇아내는 아픔이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이요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고 따라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인간이 되시는 숭고한 헌신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랑이 있기까지 말없이 헌신한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사용하시느냐 하면 마리아와 같이 헌신적인 사람, 순종하는 사람, 자기의 소유를 말없이 내어놓는 사람, 요셉같이 의로운 사람, 성실한 사람 매사에 신중한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인간을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는 사람을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두고두고 요긴하게 그리고 때마다 일마다 쓰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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