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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제사를 드리자 (레23:15-22)

by 【고동엽】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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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추감사제사를 드리자 (레23:15-22)    
  
설교하는 제 마음 속에 간절한 기대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설교를 들으시고 설교를 기억하지 말고 설교하는 사람도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만이 여러분 마음 속에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믿고 자기 멋대로 신앙생활하다가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은 말씀의 개혁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시면 성경이 머리 속에 기억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한국은 제2의 종교개혁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말씀의 개혁이 우리 한남제일교회에서부터 일어나서 한국교회에 이러한 불이 붙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도 이 일을 위해 더 기도해 주시고 말씀을 통해 성경이 기억되도록 성경대로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주일이 맥추감사주일인데, 우리가 절기 예배를 잘 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절기 예배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맥추 감사절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감사절의 예배는 어떤 것이고, 어떤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을려고 합니다.

맥추감사절은 하루 행사입니다. 유월절이나 수장감사절은 1주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루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그 이유는 농번기로 바쁜 시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들을 잡아둘 수가 없어서 하루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바쁘면 그냥 두어야지, 하루만 하라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맥추 감사 주일이 낮잠 자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주간 하버드 의료진이 오후에 1시간 낮잠을 자면 잠을 안 자고 일한 사람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낮잠 1시간을 자면 게으른 것이 아니라 뇌가 더욱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고 난 오후 시간에 일을 더 잘해서 능률이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하루 쉬는 안식일의 개념과도 같은데, `하루의 안식이 있어야겠다` 밤에만 쉬는 것이 아니고 낮에도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휴게소가 있는데, 저는 휴게소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디를 가면 휴게소 갈 시간을 생각하고, 미리 그 시간을 생각하고 들어갑니다. 그 휴게소에 들어가 몸도 피로를 풀 뿐 아니라, 내가 지금 제대로 왔는지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맥추감사주일은 그런 의미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가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맥추감사절에 제사를 드리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아이들이 만납니다. 제가 찾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찾을 때는 겁이 나는 시간입니다. 십중팔구는 아빠 돈 합니다. 무엇이 필요하면 저를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기도 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는 십중팔구 도와달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께 우리가 도움을 받는 시간이지, 우리가 도움을 드리는 시간은 아닙니다. 이 시간 예배가 하나님께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받아야 합니다.

맥추감사절에 제사를 드리는데, 크게 나누어 네가지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을 종합하면 세 개의 제사를 드립니다. 이런 세가지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받는 것입니다. 이 맥추감사절에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통로라는 말씀입니다. 그 세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은혜받으려 하는데, 첫 번째는 감사, 두 번째는 헌신, 세 번째는 서원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감사의 제사인 소제를 드립니다.

우리는 감사의 제사인 소제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편50편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뿐더러 하나님은 그것을 행위가 옳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때에 행위가 옳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감사 말고 다른 자세로 만난다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닙니다. 원망불평으로 만나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닙니다.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불평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뿐더러 하나님은 우리가 옳은 행위를 보인다 생각하셔서 구원을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감사가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일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리교 신학대의 학장을 하셨던 윤성범 목사님의 책 속에 있던 내용입니다. 하루는 제자 목사님이 찾아왔는데, 근심어린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 아내가 목회를 열심히 하는 가운데,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자포자기 해서 누워있는데,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목사님이 말씀을 다 들으시더니, 깨끗한 노트 한 권을 주시며, 이것을 아내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 노트에 오늘부터 감사할 수 있는 내용들을 찾아서 쓰라고 했습니다. 이 사모님이 이것을 받아들고 쓰자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무엇을 쓰겠는가? 무슨 감사가 있겠는가?`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이라, 쓰기 시작하는데, 노트 한권을 다 썼습니다. 아직도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병이 나았습니다. 말문이 열리고 몸이 움직이고, 안의 썩었던 것이 다 제거되고, 건강한 몸으로 목회를 잘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감사는 능력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감사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옳은 것이고 구원주신다고 했습니다. 17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는 소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소제는 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물을 드는 것은 거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제는 들은 것을 흔드는 것입니다.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옆으로 흔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데, 굉장히 감사합니다 하고 요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감사제사의 방법을 생각해 보면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추수한 곡식 낟알을 빻아서 가루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가루 낸 밀가루를 갖고 빵을 만드는데, 누룩을 넣어서 만듭니다. 그때에 소제에 드리는 제사의 양이 얼마 정도나 되냐 하면,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라 했습니다.
일에바는 23리터입니다. 그런데 십분의 일에바는 2.3리터고 십분의 이 에바는 4.6리터입니다. 이것을 갖고 빵을 두 개 만들라 했으니, 빵 하나의 크기는 십분의 일 에바로 만드는 것인데, 2.3리터입니다. 우리가 그전에 학교 다닐때에 쓰던 커다란 주전자가 4리터입니다. 작은 주전자는 2리터입니다. 2리터의 밀가루에 누룩을 집어넣고, 반죽을 해서 빵을 만듭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2.3kg짜리 밀가루를 갖고 반죽을 해서 빵을 만들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집에서 쓰는 것 갖고는 어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물을 부면 보통 세배정도 부풀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두 개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하나가 이만하다고 보면, 2.3kg를 반죽해서 만들었다면 3kg는 넘었을 거란 말입니다. 3kg짜리를 하나씩 들고 흔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곡식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빻아야 합니다. 그냥 뭉쳐서 보지 말고, 이것을 쪼개서 보자는 말입니다. 저는 어제 심방을 갔다 오며 운전을 했습니다. 같이 온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참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운전하면서 이렇게 사고 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순천향 병원에 한번 가보십시오. 얼마나 환자가 많은지요.

과거에 병들었던 나였지만 간염의 균 하나도 남지 않고 깨끗해 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떤 분 손가락 하나 없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손가락이 다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뭉쳐서 보지 말고 우리의 삶과 마음을 작게 쪼개 보십시오. 밀가루를 빻을 때 맛있는 빵을 만들려면 아주 가늘게 빻아야 합니다. 마음을 빻으면 빻을수록 맛있는 빵, 맛있는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맛있는 인생을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영국의 신학자요, 유명한 성서주석가인 매튜헨리 목사님께서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돈지갑을 도둑맞았답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이 하나님께 네 가지 감사를 드리는데,

① 전에는 도둑맞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② 도둑이 내 생명은 뺏아가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③ 지갑을 도둑맞았지만, 내 전재산은 도둑 맞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④ 내가 도둑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어떻게 도둑을 맞았는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쪼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쪼개면 쪼갤수록 우리가 더 맛있는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신은 부서진 것을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낱알 그대로인 밀을 갖고는 빵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밀을 부수어 뜨려 밀가루를 만들어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마음을 부수고 잘게 빻아서 많은 감사로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그 인생은 맛있는 인생이고,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쁘게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마음은 들 수 있지 않습니까? 병들어도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 되면 흔들 수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우리 성도간에 맛있는 빵을 만들어 흔들 수 있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주실 것입니다.




둘째, 헌신의 제사인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를 위해 산다 생각지 마십시오. 내 욕심, 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것이 결코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조선일보를 보면 IMBC사장인 조정민씨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분이 워싱턴 특파원으로 MBC방송 앵커로 지금은 인터넷 MBC방송의 사장으로 소위 잘 나가는 분입니다. 나이는 52인데, 그만 사표를 냈습니다. 사표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 믿고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기자로 살면서 비판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력을 가졌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 자리에서 소주를 열병씩이나 마시고, 골프 나가면 골프도 잘 쳐서 사람들을 잘 사귀고,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사장까지 되었습니다. 어느날 예리한 비판력을 갖고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가는 아내를 보고, 왜 새벽마다 나갈까? 나같으면 안 갈텐데 하며 비판을 내리길, 둘중에 하나다. 첫째는 불륜이요, 둘째는 광신일 것이다. 그래서 이 아내의 불륜현장 또는 광신의 현장을 잡으려고 감시하기 위해 쫒아 나갔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쫓아나가면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님이 역사를 하셔서 그동안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언론의 기능은 비판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비판만 가지고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을 하다 보니, 자신의 삶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자기로 하여금 전문가가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자기 자신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을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대단히 여기고 사람들이 대단히 여기는 것을 자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속은 썩어들고 가고, 자기 자신의 아내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삶에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사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비전과 회복을 가져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무조건 내 말만 들어`라고 했던 자신이 이제는 끝까지 아내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판이 아닌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고, 50년동안 한시간씩 새벽에 예불을 드리며 다른 종교를 가졌던 어머니를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합니다. 자기가 근무하는 방송국에서 수십명을 전도하고 간증합니다. 이제는 더 주를 위해 살아야 겠다 결심해서 사표를 내고 9월엔 신학교에 입학을 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은 진정한 삶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겠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된 흠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번제는 제물이 짐승입니다. 그런데, 양 일곱 마리와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에 살아있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죽여야 합니다. 바퀴벌레만 봐도 겁이 나는데, 소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양 아홉 마리를 잡아서 목을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빼고 피를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기국 끓일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고기 피를 빼려고 물에 집어 넣습니다. 제사장은 처음에 찔러서 나오는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회중들에 뿌립니다. 그 광경과 제물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3주전 쯤 되는 것 같습니다. 위성방송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방송하는 것을 듣는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속썩이는 남편이 있었답니다. 이 남편이 하루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하면서 데려와 살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머리 잡고 싸우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신앙좋은 집사님은 `하나님, 드디어 나를 시험하시는 군요.` 하면서 이 여자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속 다 내놓고, 껍데기 다 내놓고, 체면도 없이 이 여자에게 극진히 잘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이 집사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으면서 `당신과 같은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내가 당신이 하는 모든 일, 당신 보기 미안해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으니 나는 당신 남편 없는 사이에 도망가겠습니다.`하고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일단 죽어야 합니다. 목도 없고, 껍데기도 없고, 내장도 없고, 피도 없어야 합니다. 완전히 깨끗해진 모습이 헌신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사심없이 욕심없이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헌신하고 난 후에 그 깨끗한 제물을 완전히 불로 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후에 대접도 없습니다.




헌신할 때에 사심도 없고, 욕심도 없고, 대접받는 것도 없는 것, 이것이 진정한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헌신하십니까? 미국의 미식축구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사람 가운데 쿠르드 워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상을 받을 때에 "오늘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과 나를 위해 기도한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분이 무명에 가까웠기에 최우수 선수상을 받으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상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분이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전도집회에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헌신한 크리스챤입니다. 나는 한낱 풋볼 선수가 아닙니다. 볼을 던질 때마다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시합 내내 이길까 질까 승부의 결과보다 이 경기를 통해서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대가도 없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느냐는 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많은 것을 바치고도 그 욕심, 사심 때문에 그 앞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헌신을 할려고 하면 깨끗하고 온전한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대가를 바라거나 대접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이요,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모습이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사도바울의 말씀의 실천입니다.




사심없고 욕심없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고 은혜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섬기시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키우시고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봉사하시고, 직장 생활하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더 사랑하시고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리라`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생명의 은혜가 늘 충만히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제사는 주님의 마음대로 살겠다고 서원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왜 서원제를 드리냐 하면 인간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왕이 자기가 키우던 원숭이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많이 봅니다. 큰 일에는 강하나, 작은 일에는 약합니다. 속죄제라고 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죄를 짓게 되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드려야 하고, 죄를 용서받고 난 후에 다시는 죄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화목제 속에는 소원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죄를 지어 용서받겠다`, 인간은 약합니다. 그래서 화목제를 드리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입니다. 하나님께 도움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화목제 속에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자발적 제사입니다.




창28장에 보면 야곱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이 잠자던 자리에 일어나 제단을 쌓으며 서원기도를 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하여금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 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반드시 십분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삼상1장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서원기도가 나옵니다. "한나가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께서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의 기도는 철저히 믿음의 기도인데, "여호와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한나가 서원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 그 서원기도를 귀하게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태를 여서서 오남매를 주시는데 삼상 5장21절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우리는 속죄제를 드려야 할만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죄 앞에서 깨끗하지 못한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생활도 죄 안 짓고 말씀대로 잘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맥추절을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오순절 날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이 말씀하시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니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120성도가 열심히 기도하는데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이 날이 성령강림절이고 오순절이고 맥추감사절입니다. 바로 이날입니다.




여러분 화목제를 드리면서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 믿은 자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도우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분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성령 안에서 모든 일을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행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성령 안에 늘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늘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서원제이고 화목제란 말입니다. 속죄제와 화목제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제일 처음에 드렸던 소제, 빵 만들어서 흔든 것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 한다는 화목제물로 드렸던 것을 성물이라 해서 제사장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존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너희들도 제사장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요즘 심방을 가면 야단도 맞고 반갑다고도 합니다. 반가워 해도 반갑고 야단을 맞아도 반갑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요즘 심방을 한번 다니는 것은 옛날과 달라 원거리를 나가면 한 집밖에 심방 못합니다. 가서 예배 드리고, 시간 되서 간단히 점심하고, 돌아오다 보면 5-6시가 되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원거리에서 오시는 분들을 보면 그것도 감사한데,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자주 못 오느냐고 야단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가 참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오늘 주보에도 나오는 조 집사님 남편되시는 분이 교회 안 나가십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데도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미안해서. 그런데, 심근경색이라 해서 간단한 수술이라 해서 들어갔습니다. 나와서 10분이 안돼 복수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고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빨리 와 주세요." 수술실 복도에서 울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수술하고 나와서 의사도 놀라고 본인도 놀라고 다 놀라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다음주까지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빨리 회복이 되는지, 들어갈때에는 죽는다 만다 둘 중에 하나라 하고 들어갔는데, 회복이 빨라서 오늘 이분이 남편 병원에 있어도 주일, 수요예배에 와서 예배드리고 가시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 남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주의 종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복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느냐 말입니다. 내 앞에 제사장을 많이 두고 사는 것이 늘 복인줄로 믿으시고 늘 좋은 관계 속에서 기도부탁하고 잘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바이블넷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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