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의지 합시다 박조준목사 설교자료
오늘 우리는 새천년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날을 마지하게 되었습니다. 새천년이라고 기대도 컸고 흥분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망도 많았고 지금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 때문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가운데서 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가운데서 3-4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이 시는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사람중에서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표현을 빌리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귀하게 그리고 높이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아주 젊은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도전을 당할 수가 없어서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민족의 장래를 심각하게 느껴 마지막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저 골리앗을 쳐 물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왕의 딸인 공주를 주어 사위를 삼겠다는 방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중에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울왕은 초조와 불안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때에 좋은 소식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골리앗의 도전자가 나섰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골리앗의 도전자를 만나 보자고 했더니 나타난 사람은 그가 기대했던 장수가 아니고 홍안 소년이었습니다. 순간 실망의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지만 그 대답하는 자세이며 확신에 찬 음성이며 빛나는 눈동자에 탄복을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축복하여 일선에 내 보냈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군대가 맥을 못쓰고 두려워하는 블레셋 적장 골리앗과 대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신앙으로 확신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무기란 한 손에는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양을 해치려는 맹수들을 물리칠 때 쓰던 물매, 그리고 주머니에는 냇가에서 주은 물매돌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골리앗이 아침과 저녁으로 싸움을 걸어도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검은개 하나 얼씬하지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의기 양양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주까지 해 가면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도전하는 골리앗에게 적수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골리앗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니 소년 하나낙 나오는데 그것도 무장을 한 것이 아니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골리앗은 어이 없고 자존심도 상해 무시하는 어조로 소리질렀습니다. "야, 이스라엘에는 오죽 사람이 없으면 저런 어린애를 전쟁터에 내 보내느냐? 어구나 너 나를 무엇으로 알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느냐? 너 나를 개로 알았느냐?"하며 어이없다고 "하 하 하 하" 웃어 제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전쟁 역사상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너 골리앗, 분명히 들으라. 너는 전쟁에 이기는 것이 칼과 창에 있는 줄 알지마는 내가 너로 하여금 전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 하면서 미리 준배했던 맷돌 하나를 꺼내서 물매로 골리앗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데 명중해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서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약속한대로 다윗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민심은 점점 다윗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이 들려 왔습니다. 이때부터 사울왕의 마음속에는 시기심이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사위인 다윗을 없애 버리려고 나섰습니다.
사무엘상 21장 10절에 보면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 용감한 다윗도 두려워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강한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용감한 것 같다가도 비겁해지는 때가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다윗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기억하시지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에서 수입해 온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아합왕이 이방여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그녀가 가지고 온 바알신을 섬기게 되고 권력에 아부하는 바알신 선지자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가슴에 불이 붙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 꼴이 되어가나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어 의분에 불타는 엘리야는 아합왕을 만나 엄히 책망하고 앞으로 3년 반 동안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이 있은 후 이스라엘 땅에는 비한방울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비가 적은 땅에 3년반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짐작 할 수 있지요? 문자 그대로 사막화되어 모두가 타버리게 되었습니다. 아합왕은 이것이 자기 잘못때문인 것은 모르고 엘리야의 저주의 예언때문이라고 만 생각해서 엘리야를 찾아 다녔습니다. 엘리야를 만나자 소리쳤습니다. "네 놈이 이 땅을 저주해서 다 죽게되었다. 네 놈을 아예 죽여 버리겠다"고 하며 호령을 쳤습니다.
이 때 엘리야는 우리가 참된 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가짜신 바알을 섬겨서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어느신이 참신인가를 겨루어 봅시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고 사는 바랑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아 놓고 바알이나 아세라가 참 신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이냐 하는 것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750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그것도 아합왕과 앙후 이세벨의 세력이 배경이 되어있는 그들과 담대하게 싸우어 통쾌하게 승리했고 그들을 한 칼에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는 문자 그대로 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왕후 이세벨에게 전갈이 왔습니다. "엘리야, 너는 내일 아침 네가 죽인 바알 선지자의 목처럼 되리라" 이 공갈을 받은 엘리야는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불의 선지 엘리야도 두려워할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운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성경에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라"했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린애 같은 일입니다. 어린애는 어두운데 혼자 있으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어두운데 혼자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내 심령의 상태가 아직 어려서 그럽니다. 어린때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까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내가 약할 때 두려워합니다. 우리 몸이 약해지면 백병이 침입하는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면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 그것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고 고난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울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약해지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로기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서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라"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음으로 주 안에 사는 사람의 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의지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해서 두려워합니다. 어떤이는 일평생 사는 동안 별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사시는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분은 만의 하나나 될까 대개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심지어 의식주가 문제가 될 정도로 생활난에 직면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제 신년초에는 구조조정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하고 생활대칙이 막연한 가정이 점점더 늘어날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집에 더 있을 수 없는 형편이되어서 노숙하는 분들도 더 많아 질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밖으로 나오겠습니까?
어떤이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병 때문에 고생하며 죽음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이는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명예 손상을 입고 아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고해도 치밀한 계획과 과단성있는 집행력과 근면과 성실로 일해 나간다고 하지마는 관계업체의 파산으로 소위 연쇄 부도가 나서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조금 잘못하면 마음이 약해지기 쉽고 두려워하여 아주 깊이 빠져 내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도 잠시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41:1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크더라도 그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그리고 오늘 주신 다윗의 간증을 기억합시다.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잘 극복하게 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전에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항도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아니하고 종살이를 잘 했습니다. 어두운 날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셉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당했습니다. 헤어나오기 어려운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를 잘 이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억울하게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편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형들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니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그처럼 애썼는데 그 보상이 이런 어려움만 당하게되니 그 마음이 착잡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가 당하는 어려움을 잠시 당하는 고통으로 여기고 잘 참았습니다. 그는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광명의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요셉을 높이들어 세우셨습니다. 외국인이요 종의 신분이었던 요셉.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하던 요셉이 애굽왕 바로의 버금가는 실권자인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젊은 날에 당한 어려움은 잠시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을 애굽에 가는 대상에게 종으로 팔았던 형들이 요셉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는 동생 요셉이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으니 원수를 갚을걸이라는 생각에서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요셉의 말 한마디면 형들에게 피레 맺힌 원한을 풀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서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들, 두려워 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감격하군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해하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잠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더니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주위 환경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주님의 능력의 팔에 의지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계신분 가운데도 지난 일년동안 뜻밖의 어려움을 당해서 두려운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더니 주님의 능력의 팔이 나를 안위해 주셔서 오늘의 축복이 있게 된 것을 c;험하신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나온 우리의 생애를 돌이켜볼 때 잠시 당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 때 일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도우심을 맛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믿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의 지은 죄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악인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거룩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상할대로 상하고 더러워 질대로 더러워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뿐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 형벌 앞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형벌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그는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 보기만 하면 이 죄의 형벌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참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면 아무리 큰 죄 아무리 더러운 죄 아무리 무서운 죄를 범했어도 주님께서는 결단코 내어 쫓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마지막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다. 빌립보 1장 6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이 일을 완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영혼은 이미 구언 받은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의 심령이 구원 받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일은 우리의 이 육체뿐입니다. 이 육체는 주님 오시기 전까지 믿지 않는 사람과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과로하면 피곤하고, 피곤하면 병들고, 병들면 죽을수도 있고 죽으면 그 순간부터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 마지막 날을 알리는 나팔소리에 우리의 이 몸이 홀연히 변화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 입겠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더구나 주님을 의지하면 죽음도 두려워 할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안에 있으면 죽음도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인간 생활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인생의 종지부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고통이 다 끝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의 영원하신 팔에 안기게 되는것입니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살아계신 주님을 의지합시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끝으로 이사야 12장 2절 말씀을 보십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다윗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내가 주를 의뢰하므로 두려움이 없으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두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므로 두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병들면 치료해서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병들기 전에 예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두려울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므로 두려운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 당하는 고난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시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샤야 4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것이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것이며 네가 불가운데 행할때에도 타지 아니할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천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두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두려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일은 21세기에 들어서는 의미 깊은 날입니다. 21세기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의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일을 당해도 두려움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가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두려워 주저하고 사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모세요,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 모세는 아무 두려움없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내가 주를 의지하므로 두려움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새천년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날을 마지하게 되었습니다. 새천년이라고 기대도 컸고 흥분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망도 많았고 지금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 때문에 근심과 걱정, 염려와 불안가운데서 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가운데서 3-4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이 시는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사람중에서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표현을 빌리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귀하게 그리고 높이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아주 젊은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도전을 당할 수가 없어서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민족의 장래를 심각하게 느껴 마지막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저 골리앗을 쳐 물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왕의 딸인 공주를 주어 사위를 삼겠다는 방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중에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울왕은 초조와 불안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때에 좋은 소식의 전갈을 받았습니다. 골리앗의 도전자가 나섰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골리앗의 도전자를 만나 보자고 했더니 나타난 사람은 그가 기대했던 장수가 아니고 홍안 소년이었습니다. 순간 실망의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지만 그 대답하는 자세이며 확신에 찬 음성이며 빛나는 눈동자에 탄복을 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축복하여 일선에 내 보냈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군대가 맥을 못쓰고 두려워하는 블레셋 적장 골리앗과 대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신앙으로 확신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무기란 한 손에는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양을 해치려는 맹수들을 물리칠 때 쓰던 물매, 그리고 주머니에는 냇가에서 주은 물매돌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골리앗이 아침과 저녁으로 싸움을 걸어도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검은개 하나 얼씬하지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의기 양양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주까지 해 가면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도전하는 골리앗에게 적수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골리앗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보니 소년 하나낙 나오는데 그것도 무장을 한 것이 아니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골리앗은 어이 없고 자존심도 상해 무시하는 어조로 소리질렀습니다. "야, 이스라엘에는 오죽 사람이 없으면 저런 어린애를 전쟁터에 내 보내느냐? 어구나 너 나를 무엇으로 알고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느냐? 너 나를 개로 알았느냐?"하며 어이없다고 "하 하 하 하" 웃어 제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전쟁 역사상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너 골리앗, 분명히 들으라. 너는 전쟁에 이기는 것이 칼과 창에 있는 줄 알지마는 내가 너로 하여금 전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 하면서 미리 준배했던 맷돌 하나를 꺼내서 물매로 골리앗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데 명중해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서 일약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약속한대로 다윗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민심은 점점 다윗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이 들려 왔습니다. 이때부터 사울왕의 마음속에는 시기심이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사위인 다윗을 없애 버리려고 나섰습니다.
사무엘상 21장 10절에 보면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 용감한 다윗도 두려워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강한 것 같다가도 약해지고 용감한 것 같다가도 비겁해지는 때가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다윗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기억하시지요?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에서 수입해 온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아합왕이 이방여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그녀가 가지고 온 바알신을 섬기게 되고 권력에 아부하는 바알신 선지자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가슴에 불이 붙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 꼴이 되어가나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어 의분에 불타는 엘리야는 아합왕을 만나 엄히 책망하고 앞으로 3년 반 동안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이 있은 후 이스라엘 땅에는 비한방울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비가 적은 땅에 3년반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짐작 할 수 있지요? 문자 그대로 사막화되어 모두가 타버리게 되었습니다. 아합왕은 이것이 자기 잘못때문인 것은 모르고 엘리야의 저주의 예언때문이라고 만 생각해서 엘리야를 찾아 다녔습니다. 엘리야를 만나자 소리쳤습니다. "네 놈이 이 땅을 저주해서 다 죽게되었다. 네 놈을 아예 죽여 버리겠다"고 하며 호령을 쳤습니다.
이 때 엘리야는 우리가 참된 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가짜신 바알을 섬겨서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어느신이 참신인가를 겨루어 봅시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고 사는 바랑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모아 놓고 바알이나 아세라가 참 신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이냐 하는 것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750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그것도 아합왕과 앙후 이세벨의 세력이 배경이 되어있는 그들과 담대하게 싸우어 통쾌하게 승리했고 그들을 한 칼에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야는 문자 그대로 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왕후 이세벨에게 전갈이 왔습니다. "엘리야, 너는 내일 아침 네가 죽인 바알 선지자의 목처럼 되리라" 이 공갈을 받은 엘리야는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불의 선지 엘리야도 두려워할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운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성경에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라"했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린애 같은 일입니다. 어린애는 어두운데 혼자 있으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어두운데 혼자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내 심령의 상태가 아직 어려서 그럽니다. 어린때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까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내가 약할 때 두려워합니다. 우리 몸이 약해지면 백병이 침입하는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면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 그것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고 고난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울 때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 하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약해지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로기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서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라"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음으로 주 안에 사는 사람의 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의지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해서 두려워합니다. 어떤이는 일평생 사는 동안 별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사시는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런분은 만의 하나나 될까 대개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심지어 의식주가 문제가 될 정도로 생활난에 직면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제 신년초에는 구조조정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하고 생활대칙이 막연한 가정이 점점더 늘어날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집에 더 있을 수 없는 형편이되어서 노숙하는 분들도 더 많아 질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밖으로 나오겠습니까?
어떤이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병 때문에 고생하며 죽음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이는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명예 손상을 입고 아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고해도 치밀한 계획과 과단성있는 집행력과 근면과 성실로 일해 나간다고 하지마는 관계업체의 파산으로 소위 연쇄 부도가 나서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조금 잘못하면 마음이 약해지기 쉽고 두려워하여 아주 깊이 빠져 내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도 잠시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41:1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크더라도 그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그리고 오늘 주신 다윗의 간증을 기억합시다.
"내가 두려워 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잘 극복하게 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전에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항도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아니하고 종살이를 잘 했습니다. 어두운 날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셉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당했습니다. 헤어나오기 어려운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를 잘 이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억울하게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편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형들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니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으려고 그처럼 애썼는데 그 보상이 이런 어려움만 당하게되니 그 마음이 착잡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가 당하는 어려움을 잠시 당하는 고통으로 여기고 잘 참았습니다. 그는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광명의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요셉을 높이들어 세우셨습니다. 외국인이요 종의 신분이었던 요셉.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하던 요셉이 애굽왕 바로의 버금가는 실권자인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젊은 날에 당한 어려움은 잠시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을 애굽에 가는 대상에게 종으로 팔았던 형들이 요셉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는 동생 요셉이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으니 원수를 갚을걸이라는 생각에서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요셉의 말 한마디면 형들에게 피레 맺힌 원한을 풀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서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들, 두려워 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감격하군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해하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잠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더니 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주위 환경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주님의 능력의 팔에 의지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계신분 가운데도 지난 일년동안 뜻밖의 어려움을 당해서 두려운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더니 주님의 능력의 팔이 나를 안위해 주셔서 오늘의 축복이 있게 된 것을 c;험하신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나온 우리의 생애를 돌이켜볼 때 잠시 당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 때 일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도우심을 맛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믿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의 지은 죄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악인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거룩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상할대로 상하고 더러워 질대로 더러워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뿐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 형벌 앞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형벌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그는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 보기만 하면 이 죄의 형벌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참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면 아무리 큰 죄 아무리 더러운 죄 아무리 무서운 죄를 범했어도 주님께서는 결단코 내어 쫓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마지막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다. 빌립보 1장 6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이 일을 완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영혼은 이미 구언 받은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의 심령이 구원 받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일은 우리의 이 육체뿐입니다. 이 육체는 주님 오시기 전까지 믿지 않는 사람과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과로하면 피곤하고, 피곤하면 병들고, 병들면 죽을수도 있고 죽으면 그 순간부터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 마지막 날을 알리는 나팔소리에 우리의 이 몸이 홀연히 변화하여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 입겠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더구나 주님을 의지하면 죽음도 두려워 할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안에 있으면 죽음도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인간 생활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인생의 종지부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고통이 다 끝나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의 영원하신 팔에 안기게 되는것입니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살아계신 주님을 의지합시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끝으로 이사야 12장 2절 말씀을 보십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다윗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내가 주를 의뢰하므로 두려움이 없으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두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므로 두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병들면 치료해서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병들기 전에 예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두려울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므로 두려운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 당하는 고난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시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샤야 4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것이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것이며 네가 불가운데 행할때에도 타지 아니할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천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두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두려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내일은 21세기에 들어서는 의미 깊은 날입니다. 21세기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의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일을 당해도 두려움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가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두려워 주저하고 사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모세요,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 모세는 아무 두려움없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내가 주를 의지하므로 두려움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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