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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가지'의 오해 요15:1~7

by 【고동엽】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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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iwnUIhxnJR0

 

◈'포도나무와 가지'의 오해      요15:1~7      -폴 워셔, 출처-

*원제목 : The Vine and the Branches

 

 

◑서론. 풍요와 진보를 조심하십시오.

 

▲호세아14:8절을 보십시다.

 

“에브라임(이스라엘)이 말하기를,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하는지라.              *'나는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라는 뜻

나God는 푸른 잣나무와 같으니, 너희는 나로 인해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브라임’이라는 말은 ‘풍성함 fruitfulness’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함’의 근원이 되셔야 하는데,

북이스라엘은, 다른 우상에게서 ‘풍성함 fruitfulness’의 근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14:8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내가 네 모든 풍성함의 근원이다.”

 

 우리는 물질적 풍성함으로부터 생기는.. 교만을 주의해야 합니다.

호14:8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풍성함'은, 또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시는 '풍성함'은

일차적으로 '주님과 교제로 인한 영적인 풍성함'입니다.

 

▲우리는 진보progress를 조심해야 합니다.

물질적 풍요, 진보... 이런 것들이 우리를 타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진보를

때로는 다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보progress로 인해 우리가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멀리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대단히 성숙하지 않으면, 진보하면 할수록(선진국이 되면 될 수록)

우리는 진보의 결과로,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우리는 미숙해서 자주 비틀거립니다.

   그래서 늘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시간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길만이..

   우리의 비틀거림 inconsistency(비일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 신자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풍요와 진보로 인한 교만으로 자고하다가는,

   망하게 되는데요... 어떻게 망하는지 아래에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풍요와 진보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충분한 영적인 성숙이 있기 이전의, 풍요와 진보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다 넘어지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기 때문입니다.  

 

 

◑1.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첫 번째 오해 - '열매'에 대한 오해

 

▲가지의 열매를 ‘풍요와 진보’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여러분, 요15장의 비유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가지가 맺는 ‘열매’를

‘풍요 또는 진보’로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설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일관성에 비추어볼 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맺는 포도열매는

1차적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갈5:22~23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들입니다.

 

     이사야서에도 비슷하게 '포도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사5:2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 justice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사5:7

 

     이사야서에도, 포도나무에게, 하나님이 바라신 열매는

     공평이요, 의로움이었습니다.

     물질적 풍요나 성공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풍요와 진보’의 열매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아직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가운데서, 그런 물질적 풍요를 간구합니다만, 

하나님은 좀처럼 우리 소원대로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다. 이 무응답이 오히려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1차적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주셔서, 우리가 먼저 성숙하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성숙된 다음에 2차적으로 ‘풍요와 진보’도 따라올 수 있겠죠.

 

만약 하나님이 포도나무 가지들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보다, ‘풍요와 진보’의 열매를 먼저 주신다면,

그 가지들은 아마 분명히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먼저 맺기를 소망합시다.

많은 신자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 거하여 열매 맺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9가지 인격적 열매보다

물질적이고, 진보적인 열매들을 먼저 맺기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의 그 소원을 잘 들어주시지 않지만,

만약 하나님이 우리 소원에 다 응답해 주셔서,

우리가 물질적이고, 진보적인(문명의 발달) 열매를 먼저 맺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쉽게, 북이스라엘처럼,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북이스라엘처럼,

물질과 풍요와 다산과 진보를 누군가 내게 허락해 준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우상과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온통 자기 소원과 관심이 풍요와 진보에 집중되어 있으면..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풍요와 진보보다, 하나님 자신을 구하십시오.

예레미야 2:13절은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니라”

 

여러분, 만약 성도가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구하지 않고,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 (물질과 진보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 성도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들을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까지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끊임없이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끊임없이 그 백성들이 추구하고 섬기는 우상을 깨어버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직 그를 사랑하신다면,

그를 징계하셔서, 모든 우상의 근원을 다 끊게 하시고,

오직 그가 그리스도만 집중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그리스도의 지속되는 사역, 그리스도의 십자가 등

오직 그의 관심이 그리스도에게만 다시 집중될 때까지.. 그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포도나무 밭을 황폐하게 하십니다.

렘17:5~6절을 봅시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는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그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소금 땅, 황무지에서 살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을 때,

만약 그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는 ‘혈육으로 권력을 삼는’ 사람이 됩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 행하지 않고, 사람의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소금 땅, 황무지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은 사람이 되려고 목표하십시오.

신자들이 포도나무 가지로서 열매를 맺고싶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은 인격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외적인 사역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씁니다.

 

또한 그렇게 외적인 사역의 외적인 열매가 맺혀서

사람들이 모이고, 목회사역이 바빠지면

뭐가 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전혀 닮지 못한 상태에서,

즉 자기의 옛사람이 거의 변한 것이 없는 가운데서,

목회적 열매가 많이 맺혀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다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외식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 결과, 그의 목회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타성에 젖게 되며, 늘 심령이 메마르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생들이, 스펄전과 같은 설교자가 되기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권면 드립니다.

정말 스펄전처럼 설교를 잘 하게 되기 이전에,

예수님의 형상과 인격을 닮은 변화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기를 먼저 바라십시오.

 

만약 그런 인격적 변화와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아래의 말씀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

 

 

◑2.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두 번째 오해 - '제하여 버린다'에 대한 오해

 

▲무릇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하여 버리시고...  15:2

포도나무 가지의 열매는, 1차적으로 성령의 열매, 인격적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 열매가 없으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그 가지를 잘라버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잘라버린다/제하여버린다’가 무슨 뜻입니까?

보통 ‘징계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뜻이 ‘지옥에 간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눈에 보이는 열매가 있든지/없든지

성령의 9가지 열매, 예수님 형상을 닮은 인격적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결국에는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만 다니면 지옥에 안 가고, 천국에 간다’라고들 생각 하지만,

요15:2절에서 예수님은, ‘(인격적)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은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본문의 포도원 비유에서, 어떤 가지가 잘려져 나갔다면,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어떤 가지는 잘려져 나갈 수/지옥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지’(교인)들은

    끊임없이 ‘풍요와 진보’를 구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생명)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영원히 ‘제하여 버려질’ 것입니다.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가지에 붙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교회에 오래 동안 다녔지만,

그 인격적 삶의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지만

풍요와 진보라는 자기 이기적인 목적으로 신앙생활 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다는 ..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이지만) 그 가지는 제해진다는(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식적 동의 정도로 예수를 믿으시면.. 아무 변화도 안 일어납니다.

속사람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 속 본질이, 예수의 생명으로 확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구하고, 생명을 구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속적인, 꾸준한 인격의 변화/성령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들은

풍요fruitfulness와 진보progress를 우선적/1차적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기 때문에,

그 포도나무의 관심이 곧 자기의 관심입니다. 그것은 곧 생명, 영생입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못한(설교자는 거듭남=회심으로 봄) 사람의 뚜렷한 특징은

자기 이기심selfishness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추구하는 것이 ‘복 받는 것, 즉 풍요와 진보’입니다. (생명, 영생과 반대)

 

이런 사람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사람은.. 그 관심이 주님의 관심과 일치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래 다닌 것, 교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것

   그것이 여러분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외적인 도덕성이 남보다 조금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하고 성령의 열매하고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적/본질적인 것이고,

   도덕성morality은 보다 외적인, 남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도덕성이 있었지만, 내적인 성령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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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한 목사님이, 50대 중반의 나이에 지난 화요일 소천하셨습니다. (10년5월경)

 

이 목사님이 임종 전에 갈라디아서 5장 22절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외우고 묵상하신 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사랑의 열매,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대했는가?

부끄러웠답니다.

 

희락의 열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하였는가?

주신 은혜에 만족하여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한 삶에서 막혀버렸답니다.

 

화평의 열매, 화평을 회복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사람들을 불러 화해하였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하나 하나 다 자신이 없더랍니다.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하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소천이 가까움)

 

그러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만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나 후회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지만 내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2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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