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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갈라디아서 2:11-16)
논지 : 성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성도는 사람의 뜻(세상)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세속적인 생각, 삶을 회개하고 개혁해야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수능시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수능시험을 보게 되면 성적이 좋은 학생들, 문과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대개 법대를 가고, 또 이과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대개 의대를 가고, 이렇게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법대를 나와서 판검사가 되든지, 의대를 나와서 의사가 되든지 하면 출세의 길이 보장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옛날 중세사회 유럽에서는 귀족 가문에서 아들들을 하나는 군인을 보내고, 하나는 성직자로 보내고,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그 사회에서는 군인이 되든지 성직자가 되면 사회에서 출세가 보장된 그런 사회였습니다. 중세사회 유럽의 교회는 권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왕과 제후도 굴복시키는 교회였구요, 심지어는 교회에서 종교재판을 하면 사형까지도 시킬 수 있는 그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재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위성직자들은 귀족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그 당시의 교회는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 방법대로 삶을 살아가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그것을 개혁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구원주신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는 오직 믿음 이것으로 개혁을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에는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에 순종한 베드로와 하나님께 순종한 바울이 아주 두드러지게 대조가 된 것이 오늘 본문말씀에 나옵니다.
가. 사람에게 순종한 베드로 (12-13)
1. 율법에서 자유한 베드로 (12a)
베드로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순종해서 그만 따라가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옛날에는 한군데 가만히 앉아서 안정되게 목회하지 않고 여러군데 다니면서 순회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면서 순회를 하면서 전도를 하는데, 소아시아 지역의 내륙지방 안디옥이라는 곳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유대인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만나고 그들에게 전도를 한 것이지요. 사도행전 10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욥바 피장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있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의미의 계시입니다. 이번 수요일날 제가 그 본문을 가지고 강의를 하게 될텐데,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차이가 없는 겁니다. 그 계시를 보고 난 다음에,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사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 집안 모든 식구들이 다 성령충만 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집안을 구원하셨으니 세례를 줘야겠다 그래서 세례를 줬습니다. (행10:9- )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께서 성령 부어주시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 때 경험하게 되었고, 그 다음서부터는 자유스럽게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식사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런 이들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 해왔기 때문에, 안디옥에 와서도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다 한 형제 한 가족이 되어서 같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게 된 것이지요.
2. 극단적인 율법주의자 (12b)
1) 그런데 그만 그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할례자라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야기합니다만,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이 그 자리에 왔습니다. 그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할례도 받아야 하고 율법도 잘 지켜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만 믿어서는 안되고 할례도 받아야 하고 율법도 지켜야 하고 다 그래야 한다, 그런 것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율법주의자들입니다.
2) 그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만,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 역시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을 해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만든 기준이 아니고, 자기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입니다. 아주 굉장히 경직되고 폐쇄된 기준을 만들어 놓고는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누구든지 다 그만 정죄하고 공격을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기준을 설정해 놓고는, 거기에 맞지 않으면 이단으로 정죄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극단적인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전부다 정죄를 합니다. 그리고는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지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고 이단이라고 그렇게 규정을 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아마 이 극단적인 율법주의 이 사람들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를 저지른다든지 허물이 있다든지 그러면, 그것을 그저 사랑으로 이해하고 덮어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허물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지요. 악의에 찬 소문을 퍼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베드로가 이방사람들과 식사하는 것을 봤어요. 그러면 이제 그 사람들은 이제 돌아다니면서 베드로가 이방사람들하고 식사한다, 율법을 어겼다, 베드로는 이단이다, 베드로는 교회 최고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이렇고 사방 돌아다니면서 예수살렘교회나 다른 교회에 떠들고 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많은 사람을 참새라고 이야기하지요. 어떤 분은 그 분한테 그만 잘못 허물이 걸리면 아홉시 뉴스에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방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고 퍼뜨리고 다니기 때문에 이건 뭐 신문에 나는 거나 주보에 나는 거나 비슷하게 그렇게 다 퍼뜨리는거지요. 예전에 어느 목사님이 점심때, 허름한 밥집에 가서 밥을 사먹었습니다. 뭐 싸게 먹으려니까 허름한 밥집에 가는거지요. 옛날에는 밥집에 겉에다가 뭐라고 써붙이냐면, ‘주류일절’ ‘안주일절’ 이렇게 써붙인단 말이죠. 그런데 밥 먹고 이렇게 나오는데 아홉시뉴스가 봤어요. 목사가 대낮부터 술 먹고 다닌다, 그래서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있지도 않은 것 가지고 만들어서 말을 퍼뜨리는 것이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통 있는 일입니다.
3. 외식하는 베드로 (12c)
1) 그런 사람들한테 걸리면 이제 온 교회에 다 베드로가 형편 없고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날것이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니까,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는 그만 움찔했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베드로가 이미 알고 있거든요. 그들의 입방에 걸리게 되면 큰일이다라고 생각해서 그만 베드로가 겁이 났습니다. 같이 앉아 식사하다가, 그 자리에 가장 좌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제일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만 슬그머니 피해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정죄하고 베드로를 이단으로 몰고 그래서 평판이 나빠질 것, 그런 것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나쁜 소문이 퍼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방 떠들면 베드로의 평판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명예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만 실추될 것입니다. 지도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중요한 문제들을 베드로가 조언도 하고 지도도 하고 결정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 교회 안에서의 권력이 그만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자기 평판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했고, 자기 지도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했고, 자기 권위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권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한 형제이기 때문에 같이 교제하는 것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그 다른 사람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극단적인 사람들의 판단에 걸릴까봐 그 사람들에게 그만 굴복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2) 그래서 이방인들과 식사하던 자리에서 떠나버리고 만 것이지요. 표리부동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기 믿음대로, 자기 신앙양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사람들한테 좋게 보이기 위해서 외식했습니다. 자기 믿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4. 악영향 (13)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가 이렇게 떠나가고 나니까, 다른 유대인들도 슬슬슬 눈치보고 다 떠나버리구요, 심지어는 바나바도 다 떠나버리고, 다 자기 신앙양심은 내 버리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쁜일은 참 전염성이 강해요.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한 사람이 게으름 피우고 요령 피우는 것을 보면 ‘나 혼자 이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뭐 있나’ 전염 되어가지고 똑같이 다 게을러져요. 남의 험담하고 나쁜 말 하면 그것이 얼마나 전염이 잘 되는지, 빨리 전염이 되지요. 베드로가 그만 위선적인 행동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다 전염이 되어서 다 똑같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유대인들이 다 떠나고 남은 이방인들은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베드로에게 교회에게 버려진 것 같은 상처를 안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교인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다른 모든 교인들은 그 교리상의 신학적으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잘 지켜야 구원 받는 것인가보다, 그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적용)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굉장히 많이 세속화가 되었습니다.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데, 그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나온 세상을 다시 따라가는 것이지요. 자기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세속화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세상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물질만능주의나 권력추구나 명예추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 보다는 세상에서 인기를 얻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세속하지요. 오늘날 교회에서 세속화 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가장 큰 심각한 세속화의 부분 가운데에는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옛날에 기독교인이 얼마 안되고 교회가 작을 때, 그럴 때에는 뭐 사람 숫자도 적고 또 물질도 없고 다 적으니까 뭐 특별히 명예랄 것도 없고 권력이랄 것도 없지요.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가졌다고 세상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요. 특별히 명예로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인숫자가 전국적으로 많이지고, 교회가 대형화되고 많이 사람이 모이고 물질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그만 점점 교회 안에서도 명예와 권력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추구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직분을 얻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표를 얻기 위해서 돈을 쓰는 일들도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교회에서 하는 겁니다.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요. 세상의 정치가들을 쫓아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듯이 교회에서 똑같이 밥을 얻어 먹는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세속화에 심각하게 물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세속화가 된다는 것은 교회로서 성도로서 타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니까 타락한 것이지요. 성도와 교회가 타락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속화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님께 순종한 바울 (11, 14-16)
1. 바울의 책망 (11, 14)
베드로가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사람 따라가는 것을 보고는 바울이 면전에서 책망을 했습니다.
베드로하고 바울하고는 굉장히 차이가 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 교회의 최고 지도자이고,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고 대사도입니다. 바울은 바나바를 쫓아다니면서 같이 사역에 동역하는 저 끝에 있는 사람이고, 한 때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바로 바울이에요. 대선배 중의 대선배, 최고의 권위자 베드로에게 책망을 하고 면전에서 질책을 했습니다.
아무리 대선배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여서 사람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저버리는 것을 보고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베드로가 그렇게 사람을 따라가니까 다른 사람들도 전부 세상적인 방법에 순종을 하게 될 것이고 교회 안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교회가 그만 연약해져서 무너질 위기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과감하게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지요.
2. 믿음으로 의롭게 됨 (16)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뭡니까? 베드로에게 다시 한번 회상을 시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도무지 의로울 수 없는 우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다 그렇게 구원받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 아닙니까?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한 형제자매고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실을 우리가 이미 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3.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삶(14)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세상의 제도와 전통과 관습에 굴복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까? 복음진리의 길을 따라가지 않습니까? 믿는대로 바로 행동하고 살지를 못합니까?
베드로와 모든 성도들을 책망을 했습니다. 바울은 개혁자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강한 개혁의 책입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잘못된 신앙태도와 잘못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바로 잡는, 개혁하는 책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적용) 교회라든지, 성도라든지,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않고 인간을 따라가고 세상에 굴복하고 세상에 타협하게 될 때에, 그럴 때에 개혁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지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교회와 우리 성도들 속에서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고인간의 제도, 전통, 관습을 따라 가는 요소들이 있다면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 속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들을 전부 내 버리고, 세상에 굴복하고 세상에 타협하던 것을 전부 개혁하고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리고는 이대로 나가서는 교회가 안되겠다 생각하고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교회를 일깨우고 회개를 촉구하고 잘못된 것을 개혁을 했습니다. 전부다 세상을 향해 나가고 있는데, 그것을 개혁하자고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고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게 된 것이지요. 교회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산과 계곡에서 종교개혁자들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위그노라는 신교도들은 보니까 교회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예배를 못드리기 때문에, 계곡에 산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또 군대가 잡으러 올까봐 한 사람이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양산을 쓰고 있어요. 양산을 펴고 있으면 괜찮다는 것이고 양산을 접으면 군대가 오니까 다 피하자,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예배 드리고 한 사람은 꼭대기에 올라가 있고 한 사람은 또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거예요. 그러다가 양산이 접히면 얘기하고 다 흩어지는 것이지요. 그런 핍박 속에서 자기들 신앙을 지켰습니다. 많은 교회와 많은 사람들이 다 세상을 따라가고 있을 때에 그것에 대항해서 그것을 개혁하기 위해서 위험하게 외롭게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종교개혁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교교회가 그렇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세상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세상을 따라간다면 그 교회는 멀지 않아서 타락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락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는 처음서부터 한목사님께서 얼마나 철저한 개혁자이신지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삶을, 그런 교회생활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개혁은 한번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 속에 혹은 우리 교회 속에, 교회 부서 속에, 그 부서를 맡은 분들 속에,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는 요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면, 그 모든 것들을 회개하고 개혁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교회가 되십시다. 우리 성도들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만 순종하고, 우리 속에 사람을 순종하던 것들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다 개혁해 버리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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