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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 (베드로후서 1:1-11)

by 【고동엽】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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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  (베드로후서 1:1-11)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할 수 있으면 모든 좋은 것을 다 갖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능하면 좋은 모든 것을 소유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예 가능성이 없어 포기할 따름이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어찌하든지 할 수 있는대로 좋은 것으로 소유하고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잘못된 일도 아니고 부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예도 얻고, 지식도 얻고, 재물도 얻고,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집, 넉넉한 자동차, 번쩍번쩍한 가구… 무엇이든지 가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존재가 우선이냐, 소유가 우선이냐를 묻는 철학자도 있었지만, 인간은 소유에 의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을 가장 확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가 무엇을 가졌는가?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결정짓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어떤 지위를 가졌는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졌는가?가 그의 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학벌이 있는가? 자녀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그의 친구가 어떤 사람인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이 소요한 것이 그 사람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인 것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나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하든지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존재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가지지 못한 자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 그것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난은 단순히 가난해서 문제가 아니고 가난은 존재 자체를 흔들어 버리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됩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천민 자본주의 사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가지지 못한 것은 무능 그 자체요, 수치요, 나아가 죄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감옥에 가도 할 말이 없고 대변해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가진 자는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대변해 줄 사람도 많고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도망가다 걸리면 얼마든지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전은 유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 때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하든지 가지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악을 쓰며 사는 것입니다. 죽자, 살자 공부하는 이유도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기 위한 것입니다. 공부를 해야 좋은 학벌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공부를 해야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고, 공부를 해야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공부만 아니고 다른 특기 하나만 있으면 뭐든지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하여간 이런저런 특기를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씨름 잘하니깐 국회의원 후보도 되더라구요. 막판 뒤집기로 현재 국회의원을 뒤집어서 이만기씨가 국회의원 공천자격을 따내었습니다. 하여간 어떤 특기 하나만 가지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공부만 아니고 여러 가지 특기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음악, 미술, 운동에 투자하는 이유가 그저 그것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우리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도 끝도 없는 소유욕에 낮을 보내고 밤을 지새웁니다. 그러면서도 늘 배고파하는 것이 오늘 이 땅에 사는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는 어떠합니까?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교회는 어디로 가고자 합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울산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려하는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이전에도 계속해서 가졌지만 앞으로도 가져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교회를 원하며, 어떤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가? 이 질문을 교회에 속한 자라고 하면 반드시 물어 보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교회가 그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에게 속했다는 말은 교회가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종류의 사람인니까?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 말로 표현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희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스스로에게물어 보시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인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질문을 받고 나는 나의 삶을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사는가? 그렇게 물어 보시면 내가 몇 퍼센트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장식에 가깝고 한번씩 생각해 보는 것에 그치고 이따금 생각나면 갈 수 있는 곳이고 여유가 있을 때 가 볼 수 있는 곳이고 조금만 다른 일에 바쁘면 교회에 안 가고,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은 후 순위로 미루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기에 좀 힘이 듭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삶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소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울산교회에 속한 교인들은 이 울산교회가 도대체 어디로 나아가고, 무엇이 되려하는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바로 나를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회에 속한 사람이고 내 삶이 교회 중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울산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가 되고자 하는가? “모르겠어요. 그것은 목사님이 아시지 내가 압니까?” “나 같은 평신도가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장로님이나 아시지 내가 그런걸 어떻게 압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이 없는 거의 동물에 가깝습니다”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 모두가 이 울산교회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대로된 삶을 사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어디로 가고자 하는것입니까? 오늘의 교회와 우리모두는 세상과 어떤 면에서 마찬가지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자신이 속한 교회가 모든 좋은 것을 다 소유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울산교회에 왜 왔는냐고 묻는다면 뭐 여러 가지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태어날때부터 여기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기에 왔다. 이사를 가다보니 근처라서 등록을 했다. 작은교회는 귀찮으니까 큰교회에 들어가면 좀 편안하니까”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나중에 종합해 보면 그래도 울산교회는 규모도 있고, 역사도 있고, 좋은 목사님도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교회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여기 있고, 그런 교회가 되기를 여러분들이 속으로 다 바랄것입니다.

그러데 여러분 오늘 울산교회가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 찾아오면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교회입니까? 만족을 시켜주고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라고 말할 자신 있습니까? 누가 그렇게 쉽게 그렇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순복음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장로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약점과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데 어디다 대고 그렇다라고 얼굴을 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별히 고려파 교인들은 그런 말을 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다른교회는 몰라도 우리교회는 아니다, 문제가 많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래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려파 목사일뿐 아니라, 고려파 목사의 아들이요, 고려파 목사의 손자입니다. 제가 우리교단에서는 최초 3대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를 조금 더 존경스런 눈으로 보아도 손해 볼 것 없습니다. 교단에서는 상당히 역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 아들 된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아주 소망스럽게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목사 아들이다 보니 어릴적부터 불편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주일학교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떠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가 떠들면 문제가 큽니다. “목사 아들이 되어가지고 그게 뭐냐?” 내가 목사입니까? 내가 목사아들이 된다고 작정하고 나왔습니까? 나와 목사아들은 내 의지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나한테 “목사아들 될래?”하고 물어보고 저를 낳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제가 목사아들 된 것이 그렇게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일학교 부장선생님 얼굴을 지금도 제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옛날에 마루바닥에 앉아 예배 드릴 때에 기도시간에 선생님들이 어렵게 기도하면 우리가 기도할 능력이 있습니까? 참을 기력이 없습니다. 한 10초 지나고 나면 생각이 많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죄가 아니고 기도하는 선생님의 죄가 많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있어야죠? 그래서 우리는 눈을 뜨고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부장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겐 손을 안 대고 나에게 손을 대는 겁니다. 막대기를 들고 저의 이마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기가 부어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거기다가 군대에 가서도 맞고 했으니까? 지금은 더하죠. 그래서 저는 그 상처가 그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때리면 다음 주일날 안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오면 경찰을 부를 겁니까?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런데 아무리 때려도 다음주에 확실히 나타날 사람, 목사 아들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 할것입니까? 그래서 저는 늘 맞는 일을 대표로 했습니다. 교회에 장미가 부러지고, 백합이 넘어지면 전부 제 잘못입니다. 할머니로부터 누구든지 걸리면 저만 나무랍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아들 된 것이 도무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중·고등부 내내 그 고민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잘 극복하고, 목사가 되고 보니 이것도 보통 불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뭐 교회가 이런냐? 무슨 교회가 이 모양인냐? 말입니다. 순교자의 후예로 태어난 고려파 교회가 왜 이 모양인가? 말입니다. 어떻게 이 교회 안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목사들이 애를 쓰고, 우리교단이 복음병원 경영하는데 거기에 무슨 관심이 목사, 장로들이 그렇게 많은가 말입니다. 이사를 세워 놓으면 신학교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복음병원만 들여다 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가면 차비도 주고, 치료도 공짜로 시켜 주고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한번씩 하고 싶어한다 말입니다. 이게 교회입니까? 그래서 저는 정목사님과 힘을 합하여 이것을 한번 뒤집어 엎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불만이 많습니다. 교회가 도무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초대교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도 많았습니다. 오늘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이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점은 1장에서는 인사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2장에 가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미혹시키는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2장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게 될 것이라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이런 거짓 선생들에 의해서 교회가 유린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유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더러운 것과 호색하는 것을 쫓고, 탐욕을 쫓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탐심에 젖어 있고, 호색하는 일에 빠져드는 이런 모습의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쫓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완전한 지식을 추구한다 하여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이것만으로 부족하고 완전한 영적인 지식 영지라 합니다. 이 영지주의가 판을 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벌써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탐심, 탐욕, 호색 또 다른 지식을 찾아 허덕이는 이런 모습을 보였더라는 것입니다. 오늘과 비슷한 양상이 벌써 일어났더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교회를 향하여 지금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3절 말씀을 다시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사도베드로가 교회를 향해서 안타깝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았으므로 그의 약속에 참여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이미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이 이어지는 4절에서 우리에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욕망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파괴될 것을 피하게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2장9절10절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력 위에 뛰어 나신 분이니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충만하여질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가 엄청난 속도로 60년 이후에 부흥하고 성장하였습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제가 80년 중반에 영국에 가니까 세계선교의 핵심인 영국의 어느 선교단체 보고회를 통해서 “이제 선교사로 갈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신자들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돈이 없다. 21세기 들어서서 돈도 가지고 있고, 선교사로 나갈 사람도 있는 곳은 어디이냐면 그것은 한국교회이다.” 그렇게 세계 앞에 보고서를 내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제가 제 귀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8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에 대해서 엄청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은 어떠합니까? 한국교회에 대해서 그런 소망의 소리를 들어 보기가 힘든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한국교회는 문제 투성이의 교회로 비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옷로비사건이 나니깐 어떤 불신 기자가 말하기를 “이번 옷로비사건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이 제일 피해를 보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하나님이 피해를 본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는 커녕 피해만 입고있는 이런 상황으로 지금 나타난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무엇이 이런 한국교회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습니까? 옷로비사건을 들여다 보면 문제핵심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드나들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권력자들이 있는 교회,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교회 자기의 소욕과 욕망을 채우려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하러 모인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로비 루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돈이 있으니 돈을 내고, 당신은 권력이 있으니 그 권력을 위해서 서로 잘 살아 보자. 서로의 욕망을 채워보자 이것이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기에 충분한 그런 형편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의 명예와 물질에 대한 욕망, 출세 욕망,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여러 욕망을 그럴듯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욕망, 심지어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욕망까지 큰 교회가 채워 줄 것으로 생각하고 몰려드는 것을 볼 수가 있다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욕망을 채우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사도 베드로가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예수 그리스도 그가 내게 모든 것이 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깨닫지 못하는 그 외의 무엇인가를 더 얻어려하는 그것을 채우기 위하여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를 향하여 오늘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분으로 믿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소리를 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가진 고급의 치장물 -잘 훈련된 목사도 치장물에 속합니다. 세속적 지위를 가진 장로들 다 교회의 치장물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교육봉사, 사회활동의 프로그램들에서 교회가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이름 있는 교회 지도자들 넓은 건물, 넓은 주차장, 곳곳에 교회 구석구석을 카페처럼 꾸미고 안락하게 만들고, 서로 잘 어울리도록 챙겨주고, 그렇게 해서 보다 고급스러운 사교장이 되도록 애를 쓰지 않으면 교회도 밀린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교회는 이제 설자리가 없습니다. 탄식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어 버렸다고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엽에 영국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럴 때 로이더존스 목사가 나타났고, 그는 복음만을 증거하고 영국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게 될 때에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던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이 오늘 교회가 사교클럽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모든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그저 어울어지게 하도록 애를 쓰면 교인들이 만족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가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그런 교회 있으면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여기 나이드신 분들도 있는데 옛날에 어려웠을때 교회보다 지금 예배당이 크니까 느낌이 좋고, 기분이 좋고,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다고 느끼시는 것입니까? 오히려 어려울때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을 때에 그저 엎드렸을 그때에 훨씬 교회가 더 좋았다 이런 느낌을 가지는 분은 없습니까?

인간을 누르고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죄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어 버리려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이런저런 허랑방탕한 짓을 하지만 결국 인간 가슴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어야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죄가 해결되어야 죽음의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죽음입니다. 그 죽음을 누가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그 죽음의 골짜기를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 죄의 그 짐을 벗겨 줄 수 있는 것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죄의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가 말씀 하셨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예수 그리스도 그를 소유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소유한 자는 천하를 소유한 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거듭거듭 말하고 역사가 거듭 밝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생을 걸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리인 것입니다.

제가 천안으로 이사를 가서 천안에 있는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천안에 기관 신우회가 모인다고 해서 한번 갔었습니다. 천안에서 꽤 큰교회인데 보통 주일날 2-3천명 모이는 그런 교회입니다. 주차장도 얼마나 크던지요 기관연합 신우회 집회라니까? 뭐 얼마나 모일까 했더니 그 큰 교회가 차고 넘쳤습니다. 알고 보니 한사람, 천안 검찰청에 지검장으로 온 ‘김인호’라고 하는 사람 때문에 그 모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고려파에 소속한 어느 교회의 권사님의 아들입니다. 지금은 통합측 교회에 있습니다만 이분이 천안 지청장으로 왔는데 목사님이 그가 천안으로 내려갈때 너 어떻게 사는지 보겠다. 했더니 이분이 와서 무엇을 했는냐면, 자기는 여기서 내가 뭘 할것인가? ‘이도시를 예수 믿는 도시로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이면 반드시 자기가 전도하고 싶은 사람과 식사를 하도록 결심을 했습니다.

주일이되면 서울에 있는 자기 교회에 가니까? 수요일에는 거기에 있는 사람을 그 지역교회에 인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마음을 드리고 있는 사람을 수요일에 식사에 청합니다. 한도시의 지청장이 청하니까 다들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서 식사하고 ‘당신네들 교회에 갑시다.’라고 합니다. 부임한지 5개월만에 100명을 교회로 인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내가 명색이 목사이고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사는게 뭐냐?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검사되고 지청장 되고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모신 그 사실 때문에 천하를 얻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 지역에 있는 총장들을 다 불렀습니다. 대학교가 12개인데 8분의 총장들이 거기에 참석했습니다. 소방서장, 등 기관장 몇십명이 전부 참석했습니다.. 지청장 검사가 오라고 하니까? 고발하면 죽으니까? 놀래서 왔지만 그는 자기의 그 지위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든지 주 예수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을 전해야 되겠다고 소망했습니다. 얼마나 제가 감사 하든지요,.

어떤 교회가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름다운 건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갖추고도 그 안에 들어가서 허허로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빈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학 박사가 매주일 아무리 설교해도 설교에 만족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가진 장로님들이 있어도 그 지도력에 있어서 별로 탐탁지 않을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조건이 절대로 사람을 모든 것을 소유한 느낌이 들게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울산교회는 모든 것을 갖추어 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사람의 기대는 더 커 가고 그래서 기대에 더 미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이 된다면 천지를 지으시고 이 땅을 통치하시고 그가 우리를 사랑하사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러나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내 영원한 소망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셔서 마침내 마지막 심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가슴에 소유한다면 여러분 부족한 것이 있을 수가 없을 줄로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타날 수 있는 교회로 여러분 부지런히 기도하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소유하게 되면 그가 누구든지, 가졌든지, 못가졌던지 배웠던지, 못배웠던지.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내가 사랑하는 주님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에 나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지, 어머니는 내 뜻을 몰라도 주님은 내 맘을 아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소유한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소유한 자가 모이면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좋아질 것입니다. 주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살만해질것입니다. 주님이 왕으로 역사의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저는 신학교에 있으면서 한 가지 목적을 세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학교에서 배출되어야 할 것인가? 논문도 쓸 수 있고, 설교도 잘하고, 몇 가지 목적이 있더라구요. 그런 사람입니까? 저는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그가 가진 재능과 모든 것을 가지고 그것 자랑하거나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가슴속에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모든 것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이 땅의 마지막 심판주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내게 소망을 보여 주시고 내게 영원한 삶을 보여 주신 주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이런 신학생이 나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갈수록 계산이 빨라졌습니다. 제 부친의 세대만 해도 계산을 잘 못했습니다. 헌신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계산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자살자 교회를 위해서 몸을 던졌습니다. 설교는 잘 못해도, 탁월하지는 못해도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교회는 나의 전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전부다. 이것이 확실했습니다. 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많이 배우고 똑똑해지다 보니까? 그것이 잘 안됩니다. 그것만 전부가 아닌데 할 것이 많습니다. 가질 것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가 눈에 자꾸 들어옵니다. 누가 내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를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교회는 그리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참으로 내 생명을 새로있게 하신 나를 새로 나게 하신 내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숨을 거두는 순간 그냥 빈손입니다. 계산 좀 해 보십시오. 무엇이 도리인 것입니까? 한줌의 흙이 되고 말것입니다. 무엇이 된다구요? 무엇을 가질 것입니까? 무엇을 누릴 것입니까?

내가 누릴 영광 무엇인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약속해 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 한분 만이면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보면서 그렇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먹고 살것입니다.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가만히 두어도 잘 살것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닥달하지 않아도 잘 살 것입니다. 너무 간섭하지 마십시오. 학교에서도 많이 듣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가 내 생애를 지배하면 내 생애는 하나님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라고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 삶을 보여야 아이들이 따라 할 것 아닙니까?

날마다 주 한분 만으로 만족하여 이런 사람이 되어 이 울산교회가 이 지역사회가 모든 것을 가진 저 사람들 무엇을 가졌길래 저렇게 자신 만만하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교회로 여러분의 교회를 세우고 이 땅을 새롭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감당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정근두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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