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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같은 남자 예수 (마 9:35-38)

by 【고동엽】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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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같은 남자 예수         (마 9:35-38)

공생애 동안 예수님이 살아가신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야 말로 남자 중의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용기가 있고 여유가 있고 의분이 있습니다. 백성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참 대단합니다. 남자 중의 남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주 따뜻하고 정감 넘치고 온유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치 “봄날 같은 남자 예수”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3년 동안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무지한 백성들을 가르치셨고 각종 병자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백성들이 지금 기진하고 지쳐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성경은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세상은 혼자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은 서로 도움 받고 도움을 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한곳에 모여서 삽니다. 그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기에 그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그가 존재하는 삶, 이것이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는 반드시 발휘해야 할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입니다.    

첫째로 “중보의 삶”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중보의 삶을 사셨습니다.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매일같이 고치고 위로하시고 먹이시고 격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백성들을 염려하고 고난 자들을 도와주고 희생하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성경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중보의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치시고 싸매셨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이시는데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유리하는 백성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 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기 “모든 약한 것”이라는 말은 지금 백성들의 앓고 있는 병, 인간의 무지, 한계, 그래서 모두 질병에서 속수무책이고 가난에서 속수무책으로 살고 있고 귀신들이 매달려서 불구덩이로 끌고 들어가도 속수무책으로 살아가는 이 인간의 무지와 무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인간의 굴레에 씌워 꼼짝을 못하는 삶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닌데, 아주 귀한 존재인데, 그런데 그 고귀한 사람들이 지금 저렇게 무지해서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또 “목자 없는 양같이 기진하였다”는 말은 당시 제사장들, 종교지도자, 정치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삯군목자들이었습니다.

그 백성들은 지금 “고생하며 기진”해 있습니다. 여기 고생이라는 말은 “에크레뤼메노이” 즉 “가죽을 벗기다, 칼로 썰다” 는 뜻입니다. 당시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이나 약탈 그리고 탈진 상태를 말하고 기진했다는 말은 회복이 불가능한 절망상태란 뜻입니다. 그런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를 성경 개역개정판에서는 “불쌍히 여기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 “민망히 여기시니”는 “에스플랑크니스데” “창자 속에서 동정심이 우러나와 마음을 움직인다. 는 뜻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한없이 울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인류애와 동포애와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병자들을 고치셨을 것이고 더 열심히 그 우매한 백성들을 가르치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봄날 같습니다. 따뜻하고 소망적이고 동정심이 가득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 이런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인류애와 동포애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사사로운 증오심이나 편견 그리고 이해관계나 이웃과 불화하는 요소들, 탐욕, 이기심 들이 모두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 동포애와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이 내 마음속에 있으면 나의 한계, 나의 고집, 인색함 등의 요소들을 밀어내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3년 동안 공생애 기간을 중보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이런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뜻을 이루는 삶은 예수님이 살아가신 중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예수의 정신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장 좋은 모임은 호스피스 모임입니다. 이 호스피스의 삶이 말하자면 중보자의 삶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곤비하고 초조하고 낭떨어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말기 암 환자들일 것입니다. 말기 암환 자에게는 그 옆에 누군가가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소망을 주고 격려를 주고 영혼을 안내해주고 두려움을 몰아내 주고 그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서 그 영혼으로 하여금 두렵지 않게 조용히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새신자들이 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참 서먹합니다. 그때 그들 옆에 붙어서 안내해주고 지팡이가 되어주고 함께 식사하러 가고 예배 때 함께 앉아주는 일도 알고 보면 중보의 삶입니다. 좋은 신앙선배로 인도해주고 먼저 온 사람으로 안내자가 되어 주는 일 이것이 먼저 된 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것이 중보의 삶입니다. 이런 역할은 모두 마음이 뜨거워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중보의 기도”도 있습니다.

중보의 삶이 어려우면 중보의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이 중보의 기도생활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살기는 참 힘듭니다. 예수님의 삶을 흉내라도 내야 하는데 그 흉내 내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차선의 삶이 있는데 그것이 중보의 기도의 삶입니다. 이 중보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내 중보기도 한마디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한마디의 뜨거운 중보의 기도가 엄청난 일을 해 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전 12장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하자 유대인들은 야고보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세를 몰아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그를 붙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 밖에 있는 성도들이 그 밤에 모여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습니까. 그 기도에 하나님이 그 밤에 개입하셔서 옥문을 열리게 해서 무사히 탈출하는데 성공하지 않습니까. 중보의 기도는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의 종이 중풍 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것이 안타까워 친히 예수님을 찾아가 내종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네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백부장이 그렇게 수고할 것 까지 없으니 말씀만 하셔도 내 종이 고침 받을 수 있다고 말씀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이 그 주인의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감동받으셨으면 끝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종이 병을 고치게 됩니다. 그 종이 고침 받은 것은 순전히 그 주인의 기도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보의 기도의 위력입니다.

중보기도 하면 가장 모범되고 극적인 기도의 모델이 출 32장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계명을 받으려고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산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야단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빨리 내려가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들에게 환멸느낀다. 내가 저들을 다 쓸어버리고 네 허리에서 나오는 자손만 살려서 가나안에 들여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황송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들을 다 죽여 버리고 내 자식들과 내 자손들만 남겨서 가나안에 들여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황공한 말씀입니다. 그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이조 시대 때 같았으면 모두 가문의 영광이라 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모세의 가슴이 미어져왔습니다. 모세는 지도자였습니다. 모세 자신이 봐도 이 백성들이 너무 타락했습니다. 이 백성들이 여기서 망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는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입니다. 지도자로서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세 가지 제목을 가지고 중보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가 지도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여기서 이 백성들을 죽이시면 애굽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면 이 백성들을 죽이려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요란하게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더니 죽이려고 끌고나갔구나 하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두 번째는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땅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세 째는 “그렇게 되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이방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조롱하고 우습게 여기시겠습니까”. 이것이 모세의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언제 정직하고 순종을 잘해서 인도하시고 돌보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까. 기왕에도 이 백성들이 타락했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는데 왜 여기서 죽이려 하십니까.”하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이 백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다면 나도 이 백성과 함께 죽겠으니 죽여주십시시요.”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날 그 모세의 중보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3년동안 이 중보의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백성들을 깨우치려 애쓰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듣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감람산에 올라가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내가 너희를 품었건만 너희는 듣지 아니하였다“(눅 13:34)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니 이 가슴이 얼마나 뜨거운 가슴입니까.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슴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가슴을 가지고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깊이가 있고 세련된 신앙인의 삶은 중보의 삶입니다. 남녀전도회는 모일 때마다 이 중보의 기도를 했으면 합니다. 남녀전도회는 모이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중보기도해 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권사님들은 예배마치면 금방 돌아가지 말고 다음 예배를 위해서, 설교하는 목사를 위해서 은혜를 끼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멀리서 오시는데 설교를 통해서 일주일을 힘 있게 살수 있도록 능력 있는 설교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어려움에 처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하는 한마디의 기도가 얼마나 그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겠습니까.

오늘 신앙을 가진 실업인들은 돈벌 생각만하지 말고 동료 실업인들에게 예수를 전하도록 중보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복을 받습니다. 일본에 가 보니까 요즘 VIP 전도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신앙을 가진 실업인이 믿지 않는 실업인 한사람을 초청하여 식사를 합니다. 그날은 그 초청자 한사람을 중심으로 만찬을 베풀고 대화하고 관심을 가지는 날입니다. 또 세 명이 믿지 않는 실업인 한사람을 초청하여 골프를 갑니다. 그날은 그 한사람을 주빈으로 세 사람이 온갖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 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VIP전도법입니다. 그 중보의 삶이나 기도생활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회사 사장이 종업원들을 위해서 이 중보의 기도를 하고 중보의 삶을 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 같습니까. 내 동료들을 위해서 그렇게 중보의 기도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오늘 믿는 젊은이들도 할 일이 많습니다. 오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젊은이는 한 순간 한번 실수하면 1년이 허비되고 2년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면 그 젊은이의 일생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 말은 아주 거창한 말이 아닙니다. 내가 내 동료에게 그런 관심과 기도한마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찰리 플럼(Charlie Plumb)라는 중위가 있습니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파일럿입니다. 그에게 꿈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종사로 꿈을 이루어 고국으로 귀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급하여 사모하는 고향 아가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갖고 월남전에 참전해서 첫 출격 때 격추당해서 부상을 입고 탈출했는데 결국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는 불구자가 되어 6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단 1초 사이에 모든 꿈이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6년 동안 포로 생활하던 중에 그 안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그가 한일이 무엇이냐 하면 그는 동분서주하면서 젊은이들만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계획하고 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입니다. “내가 알고 보니까 내 꿈이나 장래 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더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포로가 되고 불구자가 되는 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을 다 잃은 순간에 그는 그것들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만 찾아다니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 고백생활은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차가운 우리 가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 가슴속에 그 봄날 같은 그 따뜻한 예수님의 심장으로 갈아 끼워야 할 수 있습니다. 그 조종사는 포로 생활 중에 예수의 그 따뜻한 가슴으로 갈아 끼웠던 것입니다. 여러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봄은 겨울을 지나야 찾아옵니다. 봄이 되면 얼어붙었던 모든 대지를 녹여냅니다. 그리고 봄은 그 얼어붙었던 대지위에 꽃이 피게 합니다. 그것이 봄날의 위력입니다. 예수님은 얼어붙은 백성들의 마음에 이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봄날 같은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으로 소망을 주셨고 기쁨을 주셨고 꿈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신 예수님의 삶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갈 삶의 몫입니다.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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