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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요한복음 12:20-26)

by 【고동엽】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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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요한복음 12:20-26)

논지 : 성도는 자기를 희생하고 죽이므로 영광얻은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방법 따라간 것 회개.

가. 세상방법(20-22), 관심사

1. 우리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의 인간적인 인기는 절정에 올랐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쫒아 내시고, 놀라운 역사들을 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은 옛날의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다고 좋아하고 흥분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자가 우리 가운데에 다시 임하게 되었다고 다들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했을 때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메시아가 왔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식민압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굶주리고 있는 판에 많은 사람들을 간단하게 먹이실 수 있는 저 분이야 말로 우리의 왕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5)  

예수님의 인기가 굉장히 올라가는 가운데 절정에 이른 것은 가장 최근의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다니에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있었던 소식이고,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소식이기 때문에 그 소식은 예루살렘을 강타했습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이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고, 나사로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는 얼마나 유명인사 겠습니까?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들의 왕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는 “호산나” 찬송하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셔들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자기들의 왕, 자기들을 굶주림과 병중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식민 상태에서 해방시킬 왕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부 흥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 사람들은 제각기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애썼습니다.  

  2.오늘 본문에 나오는 헬라 사람들도 역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입니다. (20)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헬라 사람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빌립에게 접촉했습니다.  빌립이란 이름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은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헬라어와 헬라 문화에 능통하고, 능숙한 사람이었고, 아마도 헬라 사람들과 많은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을 통해 다리를 놓으려고 했습니다.(21)  빌립은 헬라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는 안드레에게 갔습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같은 고향 친구이기 때문에 고향 친구에게 가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면담을 주선해 주자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가서 면담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22)  인간관계 망을 통해서 만나기 어려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다리를 놓아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쓰는 방법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려 하는데, 만나기 힘들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다리로 해서 만나는 방법을 사용하지요.  지금 헬라 사람들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3.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우리가 짐작을 해 볼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해 동안 같이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어떤 서열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이 세 사람은 아주 분명히 서열이 결정된 듯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다른 제자들 보다 이 세 제자를 데리고 활동하신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 보다는 이 세 제자가 서열이 높았으리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제자들 중에도 은연중에 서열이 형성되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빌립이 안드레에 가서 의논하고, 다시 빌립과 안드레가 같이 예수님께 가서 면담 요청을 한 것을 볼 때에 아무래도 안드레가 예수님과 조금 가깝고, 빌립의 서열이 안드레 보다 낮았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우리 인간 사회 속에, 또 동물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서열이라는 것이 형성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서도 아마 서열이 형성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고, 예수님의 교훈을 들으며, 예수님과 같이 사역을 하는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인간적인 서열이 형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권력도 상당했으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마태복음 19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 주위에 어린 아이들이 안수기도를 받기 위해서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데리고 왔겠지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복잡한데, 애들까지 데리고 와서 시끄럽고 복잡해 지니까 제자들이 아이들을 꾸짖어서 다 물리쳤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13)   그런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짐작해 보기를 예수님의 인기가 대단하니까 예수님을 모시는 제자들의 세도도 대단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이고, 예수님을 추앙하고,  예수님께서 영광을 가지게 되니까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제자들도 역시 비슷한 명예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경으로 해서 세상적인 명예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모여오던 많은 사람들, 헬라 사람들, 심지어는 제자들 마저도 세상적인 인기와 영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 예수님의 (방법)관심사 (23-26)

1.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는 관심사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이나 주위의 모여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적인 모든 관심사와는 전혀 달리 예수님의 관심사는 “생명”이었습니다.  25절 말씀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 예수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생각하고 있는 최고의 영광, 제자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적인 영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이 생각하는 영광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이 예수님이 생각하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25)  이 세상에서의 인기나 명예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비한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영생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생명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 천하의 영광보다도 더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천하의 영광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천하의 여러 가지 영광을 얻는 다는 것은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고 나서, 다른 영광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최상의 영광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아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가장 최상의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최상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가장 최고의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영광을 세상에서 누린들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영광이고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입니다.  

2. 그런데,  이 최상의 영광인 영생을 얻는 방법이 오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주변적인 덜 중요한 것들을 희생해야만 가장 중요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의 밀알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다 잘 알 수 있는 자연법칙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썩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까지는 과정이 있는데, 땅에 떨어져서 썩어져서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있지만, 쌀독에 있는 밀알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자체가 생명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땅에 떨어지지 않는 밀알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흙 속에 묻혔지만, 그러나 그것이 썩지않고 그대로 있다면, 역시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에 떨어져야 하고, 낮아져야 하고, 썩어져야 하고, 죽어야 되고, 희생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자녀를 출산할 때에 죽을 각오로 해산의 수고를 해야 새생명을 출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곤충이나 짐승의 어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죽어져야 새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이렇게 죽어지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와 영광인 생명을 얻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리고 희생해야 합니다.  

3.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자연법칙을 따라갔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죽어가는 죄인들을 구원해서 새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우리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새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면서 많은 인기와 영광을 얻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희생하고, 죄인들의 생명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자신이 한 알의 밀알같이 땅에 떨어져서 썩어져서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죽어서 우리가 새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4.예수님 자신이 이렇게 한 알의 밀알같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새생명을 얻게 되고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에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방법에 따라 자기를 버리고 희생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는 자리에 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시고 높이 여기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 말씀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인기나, 세상의 영광이 우리의 최고의 관심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영광이 최상의 영광이고 최고의 관심사라는 것을 분명히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최고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라는 최고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인기들을 모두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회개

1. 저는 우리 교회 안에 한 알의 밀알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시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십 년 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밀알처럼 희생하면서 봉사하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부지기수로 많이 계십니다.  수십년 동안 구역 일을 돌보면서 구역 식구들을 마치 내 생명처럼 사랑하면서 돌본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수십 년 동안 교회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을 마치 내 자식과 같이 사랑하면서 생명을 키운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교회 구석구석에서 누가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산속에서 골방에서, 교회 구석구석에서 기도함으로 섬기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신앙과 인격이 훌륭해서 머리가 숙여집니다.  목사지만, 그 분들께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의 인기나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 예수님 따라가는 그런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 안에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 영락교회가 오늘날 바르고 견고한 교회로 든든히 서게 된 줄로 믿습니다.

2. 그러나 한편, 세상 영광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 성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따르기보다는 세상 인기와 영광을 더 좋아하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 가운데 슬금슬금 스며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영락교회가 큰 교회이기 때문에, 제가 영락교회 목사로서 어떤 모임에 가게 되면, 영락교회 목사라고 하면 앞자리로 나오라고 이끌어 줘서 나가게 됩니다.  영락교회 목사라는 자리가 세상적으로도 영예로운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교회의 여러 가지 모임에 가면 보통 앞자리에 나와 앉으라고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젊은 목사가 큰교회 목사라고 해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니까 죄송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 죄송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부끄러운 것은 마음 저 구석에 우쭐한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부끄러운 것은 간혹 앞자리에 나오라고 이끌어주지 않아서 뒤에 앉아 있을 때엔 왜 날 몰라주나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목사로서 영원한 생명이 가장 소중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으로서 예수만 바라보고 예수만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제 속에도 세상적인 영광같은 것이 스며들어오고 그것을 즐기는 일들이 기쁨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목사라는 자리가, 이 직분이 세상적인 직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 높임을 받는 직분이라는 사실을 한쪽 구석에서 즐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점점 우리 교회 안에 교회의 직분이 세상의 성공이나 출세같이 여겨지는 풍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을 맡는 것이 축하할 일이 되고 자랑스러운 일같이 여겨지는 분위기가 점점 만연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직분을 얻기 위해서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일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생각과 방법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는 그 순수함과 거룩함이 점점 훼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항존직을 선출하는 중에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중단하고 무효화하기로 당회에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체가 다 회개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회개의 기도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끄러운 결정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부터 고난주간까지 3주간 회개의 기도주간으로 선포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기간 동안에 우리 교회가 세속화된 것, 우리가 세상적인 생각에 물들어 간 것을 회개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어린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다 회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의 기도를 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때 깨닫게 하시고 각성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더 나아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터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각성케하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믿기는 우리가 이번 기회에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찢고 철저히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회복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회개의 기도주간이 다 끝나는 때가 4월 15일 부활주일이 됩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지요.  우리가 회개의 기도주간을 다 끝나고 부활절을 맡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소생케 하시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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