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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교회 (행 2:40 ~ 47)

by 【고동엽】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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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교회   (행 2:40 ~ 47)


우리는 그동안 사도행전 강해를 통해 한 가지 기도를 품었습니다. “성령이여 나를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불같이 바람같이 폭풍같이 비둘기같이 성령을 쏟아 부어 주옵소서. 약을 바르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힘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 권능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나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성령께서 이 일을 해주신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려면 우리가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고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아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내가 받아들임으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요3:6).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거듭날 수 없고 예수를 자신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구원받은 자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은 이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엡5:18).

   구원받아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여덟 가지 특징들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교회에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하신 것처럼, 우리는 성령님의 성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구원받아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본문에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절)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전에 모이기를 좀 더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힘이 없습니까? 성령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 노는 일에는 충만해도, 성령 충만이 없으니 교회에 가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매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교회의 모든 공 예배에 오고 싶어 합니다. 44절에도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서로 같이 있기를 원하며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유익과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찬송할 때도 좋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찬송하는 것이 은혜가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특별집회가 열려도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안식일 하나 충실하게 지키면 되지’ 정도입니다. 성령 대신 다른 것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을 위해 오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모이고 또 집에서도 모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46절). 집에서 모이는 것이 소그룹 즉 구역예배입니다. 주일, 수요일, 금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성령 충만을 얻고, 주중에는 각자의 동네에서 모입니다. 아직 구역에 속하지 않은 분들은 속히 구역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소속감은 구역에서 형성됩니다.

주일 대예배만 참석해서는 소속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몇 사람과 대화합니까? 보통 10명이 채 안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힘은 느껴도 소속감은 얻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대중 속에서는 고독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소속감은 구역모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역에 가면 신앙이 성장합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못갈 수는 있지만, 가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셔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과 구역과 소그룹에 힘써 모임으로써 성도의 교제를 강화하시기를 원합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좋아합니다. 본문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42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딤후3:16).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쓰신 책이기 때문에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성령님이 쓰신 책이 재미가 없어서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책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6권 전체입니다. 우리는 성경 배우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좋아하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거의 같습니다. 에베소서 5:18-21에 보면 성령 충만의 세 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첫째,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 즉 성령이 충만하면 함께 찬송하기를 좋아합니다. 둘째,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감사할 제목이 계속 나옵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즉 서로 인간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로새서 3:16을 보십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말씀이 충만해도 성령 충만의 세 가지 특징이 똑같이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의 결과는 같습니다. 말씀 충만 없이 성령 충만 없고, 성령 충만 없이 말씀 충만이 없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상한 체험을 통해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볼 수도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이 같이 가야 균형 있는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합니다.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제가 ‘기적’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성경에는 ‘기적’(miracle)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기사와 표적’(wonders and signs)이라고 했습니다. 또는 “능력”(power), 또는 “사역”(works)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기사’란 놀라운 일을 말합니다. ‘표적’이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기사와 표적’이란 내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안에서, 내 삶에서, 내 사건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능력의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나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해결하시고, 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모든 것들이 다 기사와 표적입니다. 물론 병이 낫는 것은 물론입니다.

때로는 고난 속에 있는 환자에게 이상한 평화가 있어서, 문병 간 사람들이 오히려 은혜 받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놀라운 평화와 감사가 있는 것도 모두 기사요 표적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일으키시는 기사와 표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성령이여 나를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이여,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 주옵소서. 성령이여, 제 인생을 온전히 이끌어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입술에 있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살 때 사람들의 존중을 받습니다. 겉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 삶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아 그 분을 존경하게 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에 생선 장사를 하시는 여자 분이 계셨는데, 그 분과 대화를 하면 제가 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 분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탁월한 영적 지혜를 그 분에게 주십니다. 늘 성령이 충만해요. 얼마 전에는 그 분이 뉴욕으로 이사하고 전화를 하셨는데, 통화를 하는 동안 제가 여전히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분의 자녀들도 아주 훌륭하게 컸습니다. 기적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이 다 기적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늘 체험하기 바랍니다.

   넷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찬양하기 좋아합니다. 47절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체험하니까 그 분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배드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마음이 상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고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하나는 예배하는 자입니다(요4:23). 예배 시간에 여러분이 그 자리에 없으면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그 친구 어디 갔어?” 저도 예배시간에 제 마음의 카메라로 쭉 돌며 사진을 찍습니다. 예배 후에 제 방에 가서 현상을 해보면 빈 자리가 있어요. 그러면 “아무개 집사님, 오늘 교회에 안나오셨나요?” 하고 묻곤 합니다. 대개 여러분이 앉는 자기 자리가 있지요. 여러분 자리에 여러분이 앉아 있지 않으면 제가 찾습니다. 목사도 이렇게 찾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찾지 않으시겠습니까? 찾으십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해서 예배드리기를 즐겨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이웃돕기를 좋아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절). 여기에서 ‘재산과 소유를 팔았다’란 뜻은 재산과 소유를 팔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재산’(possessions)은 무엇이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없는 것을 나누어주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넉넉히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쓸 것은 물론이고 남에게 줄 것까지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능력과 지혜와 믿음이 생기고 사람이 점점 좋게 변화되니까, 자연히 남에게 나눠줄 것들이 생깁니다. 돈이 아니라도 물건이 있고 기도도 줄 수 있습니다. 재능을 통해서 줄 수 있습니다. 성미도 줄 수 있습니다. 요즘 누가 쌀을 요청할까 싶지만 필요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2월에는 필요한 성미의 절반밖에 모이지 않았는데, 다행히 어느 분이 직장의 사장님으로부터 결혼식 화환 대신 돈을 받아서 그것으로 쌀을 사서 성미로 기증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주일에 집에서 나오실 때 성미 한 줌씩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심으면 반드시 납니다. 하나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하나님께서 열매로 돌려주십니다. 기도든, 사랑이든, 물질이든, 은사든, 시간이든, 돈이든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십시오. 남는 것을 나누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 쌓아놓기만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남는 것을 나누어 줍니다. 최근에 어느 선교회에서 바자회를 열어 집에서 쓰지 않지만 갖고 있는 것들을 서로 잘 나눠 선교자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제 아내도 바자회에 낼 물건을 열심히 찾더군요. 우리는 이제 줄 나이입니다. 이제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나눠줘야 됩니다. 그래야 가볍게 떠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더 풍성해집니다.

본문에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는 말은 재산이라기보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준 것이고 두 번째 ‘소유’란 표현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파는 물건들을 말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물건을 열심히 팔아 이윤을 남겨 그것을 필요한 분들에게 주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잘 하고 또 잘 되려면 지혜와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사업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여, 나를 충만케 하시고, 능력과 지혜와 돕는 마음을 주셔서 항상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여러분에게 늘 있기 바랍니다.

   일곱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함께 음식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46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이면 잘 먹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여러분의 구역 모임에서도 음식을 나누지요?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모임이니 아주 잘 차려야지’ 하면 그 다음 사람에게 부담이 됩니다. 다음 사람은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지’ 하게 되거나, 부담스러워서 아예 자기 집에서 모이는 것을 꺼려할 수 있습니다. 많이 잘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으면서 교제하고 성경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로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차리시기 바랍니다. 또 집이 작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일 복된 집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입니다. 아무리 잘 차려 놓은 큰 집도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 집 자랑만 잔뜩 한다면 그 모임에 가고 싶겠습니까? 비록 작은 집이라 해도 성령 충만하여 사랑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집이 좋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면 몇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첫째, 우리 가슴에 기쁨이 생깁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있습니다(46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행복한 사람, 웃는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삶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순전한 마음(simplicity of mind)이란 마음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쉽습니다. 어린이처럼 즐겁고 단순하게 살려면 성령 충만하십시오. “주여, 저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제 마음이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즐겁게 하옵소서.”

   둘째, 우리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47절). 성령 충만하면 사람이 변하여 좋아지니까 사람들이 칭찬합니다. 칭찬 받는 사람, 호감 주는 사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다윗도 요셉도 다니엘도 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예수님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총애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우리를 함께 좋아해야 합니다. 길은 한 가지, 성령 충만 입니다. 성화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변화되어 호감을 주고 칭찬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합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아한다면 여러분이 교회에 가자고 할 때 잘 따라옵니다.

   여러분이 성령 충만해서 칭찬받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통해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여러분을 통해 사람들을 이끄십니다. 성령께서는 복음과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왕성케 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저로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셨사오니, 이제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충만케 하여 주셔서 능력 있고 칭찬 받는 사람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게 하옵소서.”


출처/김상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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