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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 (누가복음 8:4-15)

by 【고동엽】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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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   (누가복음 8:4-15)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뿌린 씨는 길 가에도 떨어지고, 흙이 얇은 바위 위에도 떨어지며, 때로는 가시떨기 속에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농부가 뿌린 씨가 떨어진 마지막 좋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이 경우를 주님은 친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농부가 뿌린 씨는 모두 다 헛되이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다 무관심한 청중들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받는 즉시 사단이 그 말씀을 빼앗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기쁘게 듣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쁨이 지속되지 못할 뿐입니다. 또 어떤 이는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상당한 기간 동안에 아무 문제없이 생활합니다. 다만 세상의 염려와 세상의 유혹 때문에 그 결실이 저해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닙니다. 상당한 씨들이 부적절한 토양 속에 떨어지지만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씨앗들이 떨어지는 곳은 좋은 땅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다보면 길 가에 떨어질 수도 있고, 흙이 얇은 바위 위에 떨어질 수도 있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이야기의 전부일 수 없습니다. 씨를 그런 곳에만 뿌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뿌려지는 씨는 대부분이 좋은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잘못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지하게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들은 말씀을 그 삶 속에 적용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인내로 그 말씀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의 결실이 허비된 모든 씨앗을 보상하고 남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성도들 때문에 오늘도 설교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무관심한 가운데 앉아있는 이들을 볼 때에 어떤 때는 힘이 빠지기도 하고 마치 설교자를 위해서 듣고 있는 듯이 설교자와 눈이 마주칠 때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빠지기도 하고 주일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세상의 조류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때에 설교자가 기운을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듣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에 세상에 대한 염려와 세상의 사랑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볼 때에 정말 끝없는 절망감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 땅에 대한 이야기는 낙심 중에 있는 설교자를 격려하기에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고 주님이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설교자를 격려하기 위함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여러분 자신을 살피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설교를 듣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설교를 듣습니까? 들어주지 않으면 설교하는 사람이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들어 주려고 합니까? 목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까? 주일 아침에는 한 번쯤 와서 듣고 가야 그래도 신앙인답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네 번째 밭, 좋은 땅의 비유는 우리가 말씀을 받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은 듣고 지키기 위해서 듣습니다. 우리 삶 속에 이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들은 말씀으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거룩한 소원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들은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시키려는 거룩한 열망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예배 시간에 들어있는 중요한 순서로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대로 살고 싶어하는 거룩한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거룩한 소원을 품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은 열망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품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뿌려지는 씨는 앞에 말한 세 가지 종류의 땅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제부터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시간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요. 그러면 들은 말씀이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행동의 변화는 여러분의 열망과 비례합니다.

그냥 듣기만 한다고 듣는 것은 아닙니다. 들으면서 기뻐했다고 해서, 참 들을 만하다고 수긍했다고 해서 여러분의 삶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듣고 한 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간다고 해서 결실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인내해야만 결실합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자들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은 결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예배 순서의 하나로서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좀 교회가 멀기는 하지만 와서 들을만하다 생각해서 여러분은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복을 받겠다는 계산 때문에 교회에 주일이면 나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다만 듣고 지키기 위해서 말씀 앞에 나아오십시요. 여러분 안에 말씀을 듣는대로 그 말씀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순종하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말씀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결실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나이 많은 설교자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원래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 전에 와서 설교했던 본문을 그대로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겁니다. '나이가 많으니까 잊어버렸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들을 만 하다고생각하고 다음 해에 또 초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꼭 같은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있는 청년이 질문을 합니다. 왜 삼년째 똑 같은 말씀을 합니까? 그러니까 그 분 말씀이 '여러분의 삶이 이 말씀대로 살기까지는 내가 똑같은 말씀만 전할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그리고 잘 모셨다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첫 날 설교를 듣고 모두 은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주일에 똑같은 설교를 합니다. '아마 이사하기에 바빠서 설교 준비가 제대로 안돼서 그러나보다. 어쨌든 은혜있는 설교니까 한번 더 하려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주일에 같은 설교를 또 하는 겁니다. 아마 이분도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보기까지 같은 설교를 하기로 결심한 사람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남미의 어떤 교회는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한 번 설교를 하면 다음 설교를 하기까지는 몇 달씩 기다린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이 선포한 말씀에 따라 변화되기까지 기다립니다. 저는 그들의 행사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행동의 변화가 있기까지 기다리고 있지는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주일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포한 말씀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바램은 정당합니다.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말씀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설교를 듣는지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데살로니가인들은 짧은 기간에 소문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소문이 온 마게도니아 지방에 퍼졌습니다. 아름다운 소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하는 그들의 바람직한 자세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은 그들의 삶 속에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너희가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는데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의 삶을 바꾸어 놓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말씀을 듣지만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은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11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청중을 향해서 엄숙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크게 외쳤다고 했지요? 외치시면서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반드시 들으라고 소리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듣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들을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말씀을 듣는 태도는 여러분이 말씀을 어떻게 여기느냐는 평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듣는 말씀을 무슨 말씀이라고 평가하는가에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들을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무엇을 듣는지 조심하라 너희가 어떻게 듣는지 조심하라' 그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듣는지는 무엇을 듣는지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예배 순서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듣고 지나갈 겁니다. 시간만 지나가면 집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듣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귀밖으로 넘겨 들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오늘과 내일의 삶이 결정된다고 하면,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렇게 쉽게만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는 말씀을 평가하는 그 평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여기 나와서 듣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듣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삶이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설적이지만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여긴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이라고 간주한다면, 내가 그 말씀을 듣고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그렇게 다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의 종교적인 이야기로만 치부하려고 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느끼는 부담을 없이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 같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율법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와서 부탁을 했습니다. 20장 19절에 보면 백성들이 모세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제발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 죄인들의 속성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담화나 개인적인 간증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인 설교자의 말이 여러분에게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종교적인 상식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하면 여러분은 제 이야기를 묵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뭐라고 하든지 여러분의 이익과 배치되면 묵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 여러분의 생명의 주인이신 그 분이 말씀하실 때에 여러분은 그렇게 쉽게 묵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두렵고 영광스러운 체험들을 예배의 시간마다 사모하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영광스런 순간이 예배하는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사모하십시오. 그 때에 여러분과 저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사람은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말씀 앞에 두려워 떨게 됩니다. 엎드러지고 승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옛날 사무엘처럼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순종하려는 열망이 있을 때에는 누가 여러분 앞에 서서 말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이런 진리를 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집회를 하면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을 모셔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끼쳐 주는 사람을 초청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는 곳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들을려고 할 때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찾아 오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마다 집회를 앞두고 얼마나 장시간 논의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비참한 현실입니다. 누가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 밭에서 말씀을 받을 것인지가 오히려 중요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고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오시는 분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들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들은 말씀을 인내로 결실하기 까지는 기다려야만 합니다. 반드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들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려고 하는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방향 반대 편에서 바람을 불어 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나아가는 항해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건 고달픔을 감수해야 하는 길입니다. 애써야 합니다. 노력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따라 사는 삶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와서 듣고 즐기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에 잊어버리고 그냥 나가서 살면, 아무 노력하지 않고 살아도 여러분은 세상과 함께 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나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멸망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세상의 시험들이 닥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진대 이 말씀을 순종해야만 합니다. 제 말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선포하는 바에 따라서 여러분은 살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때나 기쁠 때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만 바라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그 고달픈 상황을 이겨낼 때에 그를 일컬어서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인은 잘 나가다가 어려운 순간 돌아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때에 들었던 말씀대로 굳건히 서서 나아가는 사람이 신앙의 사람입니다. 가장 기쁜 순간에 신앙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살기 편해지니까 점점 교회 나오는 횟수가 줄어드는 경우를 여러분은 그동안 보아오셨을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세상을 사는 날 동안에 어떻게 살까 하는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오자 마자 다 살기가 좋고 편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의외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그 때부터 어려움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우리에게 닥칠 그 때에, 여러분 신앙이 무엇인지 역할을 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어떠한 손해라도 감수하고 나갈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한 번 바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생각대로, 여러분의 판단대로 다 되어질 때야 뭐 그리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겠습니까? 하나님이 조금 도와주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일 날 기도하고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좀 도와주시기만 하면 내 재주대로 일은 풀려나갈 것이라고, 계획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역경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풍성한 삶이 주는 쾌락은 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신앙에서 떨어지게 만듭니다. 앞으로 주 5일 근무가 시작되면 그 때 여러분의 신앙이 또 한 번 테스트될 것입니다. 이틀을 가족과 함께 보낼 것인지, 예배하는 날 하루를 위해서 주말여행을 포기할 것인지, 여러분은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먹고 살기 다급할 때만 예수 믿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유한 삶이 의외로 우리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지켜서,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여러분의 삶을 평가하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사람들에게 이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주일 왜 교회에 가는가, 왜 나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하나님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 오십시오. 그런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깨어 나야 합니다. 언제나 그냥 말씀을 듣고, 듣고, 듣고, 그렇게 일 년, 이 년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주일처럼, 이 주일처럼, 다음 주일도 나아가기만 하면 말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으면 사람이 누구관대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순종하기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소원 가운데서 나아 오십시오. 그래서 그 말씀을 받으셔서 인내로 결실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쉽게 결실하지 않습니다. 농부가 뿌린 씨는 여름 한 철을 지나야만 합니다. 가을을 지나고 이제 풍성한 열매를 거둘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듣고 깨닫고 지키어서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몸부림칠 때에 비로소 열매가 맺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듣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그 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치하시기 시작할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듣는 만큼 불안해질 것입니다. 듣는 만큼 괴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려고 할 때 듣는 만큼 여러분의 마음이 밝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이 찾아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샘솟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천국 복음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귓전으로 넘기고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을 다스리시도록, 통치하시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고 여러분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하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상처난 내 삶을 치유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시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그 분의 손길을 사모하십시오. 그 분만이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순간에 여러분의 삶은 바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바꾸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의 새 빛이 비춰 올 때에 죄악된 내 삶의 어두움이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 아래 나아가십시오. 영광스러운 통치가 여러분의 마음에 임하는 것을 경험해 보십시오. 오늘 이 말씀의 씨가, 영광스러운 거룩한 말씀의 씨가 좋은 땅 같은 소원을 가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임해서 새로운 싹이 트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역사로 계속 자라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인내로 결실하는 풍성한 열매가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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