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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설교 : 패니 크로스비의 불행과 행복 이야기 (요9:1-3)

by 【고동엽】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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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 크로스비의 불행과 행복 이야기  (요9:1-3)

오늘 아침 설교는 보석과 같은 설교입니다. 제 설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제가 설교하려는 내용이 보석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은혜의 천사, 찬송의 천사, 사랑의 천사, 기쁨의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은 찬송시를 쓴 패니 크로스비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설교를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듣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제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서 제가 가장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는 찬송가들은 패니 크로스비 여사가 작사한 찬송가들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 보다 귀하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패니 크로스비가 작사한 찬송가가 우리 찬송가에 23개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찬송은 영혼의 춤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려면 호흡도 필요하고 춤도 필요합니다. 오늘 아침에서 “찬송가 작사자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의 불행과 행복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패니 크로스비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생후 6주부터 맹인이 되었습니다.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로 패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했습니다. 패니의 엄마 머시 크로스비는 어린 딸이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패니가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교회와 동네 사람들은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그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눈이 멀게 된 이후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패니가 한 살 되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하던 아버지 존 크로스비까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패니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패니는 가난과 슬픔에 버려진 불행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는 성장해서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던 맹인 교수 밴 앨스틴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38세 되던 해인 1858년 3월 8일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헌신과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두 사람에게 그윽한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와서 자연을 즐기며 조용히 살았는데 시골의 공기는 그녀의 영혼을 더욱 아름답게 소생시켰고 그윽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결혼 후 곧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곧 아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1859년에 일어났습니다. 패니 크로시비는 몇 달 동안을 아기를 잃은 슬픔에 잠겨 힘들게 보냈습니다. 이웃들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내려와서 우리의 아기를 데리고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하나님과 그 분의 왕좌에 맡겼습니다.” 패니와 밴 부부는 다시 뉴욕의 맨하튼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패니에게 찬송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패니는 일 주일에 6,7편의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곡에 붙일 가사를 그녀에게 부탁했습니다. 패니와 밴은 부부이자 서로를 돕는 배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와 밴은 많은 일을 했지만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불평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를 떠나 먼저 하늘로 갔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한 평생 수 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거듭해서 경험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둘째, 패니 크로스비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부흥 집회에 참석해서 간증을 많이 하곤 했는데 어느 부흥 집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패니 크로스비를 동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렇게도 많은 선물들을 주셨는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선물로 주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패니는 즉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왜 그렇습니까?” 라고 패니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when I get to heaven, the first face that shall ever gladden my sight will be that of my Savior!"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미국 메사츄세츠주 노스필드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디 엘 무디가 패니 크로스비 여사에게 개인적인 간증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좀 주저하다가 조용히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작사한 찬송가들 중에 아직 발표하지 않은 찬송가가 하나 있습니다. 저 스스로 부르는 찬송이지요. 저는 그 찬송을 제 ‘영혼의 찬송시’라고 부릅니다. 이제 제 ‘영혼의 찬송시’를 여러분들에게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었다고 합니다. 그 찬송시는 우리 찬송가 295장에 수록되어 있는 찬송시였습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후일에 장막 같은 몸 무너질 때는 모르나 정녕히 내가 알기는 주 예비하신 집 있네 후일에 석양 가까워 서산에 해가 질 때에 주께서 쉬라 하실 때 영원한 안식 얻겠네 그 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나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패니 크로스비가 자기 ‘영혼의 찬송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내려갈 때마다 무디 목사님을 비롯한 수 많은 청중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디 엘 무디 목사를 비롯한 수 많은 청중들이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 사람은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 이후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디 목사는 후에도 미국 교회들이 천국 신앙을 버리고 세상에 파묻히는 영적인 캄캄함에 빠져 있을 때 혼자 올간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 '후일에 생명 그칠 때'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한 평생을 살면서 수 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경험했지만 그는 거의 한 번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증오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85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한 순간도 어느 사람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를 품은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좋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를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나를 성별 시켜서 그 분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베푸신 그 많은 축복을 기억할 때 내가 어떻게 감히 불평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불행한 환경 중에서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증오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한 평생을 산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패니는 어렸을 때 이미 자기가 맹인 된 것이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도록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패니가 9살 났을 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내가 비록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세상에서 만족하면서 살기로 다짐했다오.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나는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한숨도 짓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오.” Oh, what a happy soul I am. Although I cannot see! I am resolved that in this world, Contented I will be. How many blessings I enjoy, That other people don't I. To weep and sigh I cannot and I won't, because I'm blind." 패니 크로스비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가장 행복하게 느끼면서 세상을 산 사람, 그는 분명히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주님과 천국을 이 세상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가장 순수하고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사모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9천여 개의 찬송시를 썼는데 그가 쓴 찬송시들이 지금 세계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시들이 되었습니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살던 시대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요한 스트라우스가 비엔나에서 왈츠의 왕으로 군림했고 존 필립 수사가 와싱톤에서 행진곡의 왕으로 군림했을 때 패니 크로스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에서 찬송가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패니 크로스비는 '찬송가의 여왕'으로만 군림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증자와 전도자와 설교자로서도 군림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그녀의 메시지는 창송가처럼 흘러 넘쳐 청중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곤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청중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가슴으로 느꼈고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청중을 향해서 가슴으로 은혜와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설교를 듣기 이해 먼 곳으로부터 와서 길게 줄을 서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한 두 시간씩 빗속에서 또는 추위에 떨면서도 그녀의 설교를 듣곤 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축복과 인생의 구원과 기쁨에 대해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설교할 때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중한 마음에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과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시력을 앗아 가셨을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 대신 끝 없는 에너지와 열정을 부어주셨습니다. 6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려고 했지만 패니 크로스비는 더 많은 찬송시를 썼고 새로운 일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에너지와 열정이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고동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작가가 패니 크로스비의 삶의 특징 다섯 가지를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녀는 매우 부지런했습니다. 둘째 그녀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녀는 이타적인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넷째 그녀는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태양빛과 같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다섯째 그녀에게는 항상 놀라운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의 특징들을 살펴볼 때 그녀만큼 행복한 사람도 이 세상에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패니 크로스비가 90세가 되었을 때 영적인 삶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고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포도주가 넘치는 풍부한 시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 많은 청중들이 교회당을 꽉 메웠습니다. 그녀는 장미꽃이 가득한 작은 탁자에 서서 그 꽃들을 만지면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때에 당신들을 만나게 되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나는 황혼이 아닌 영원한 일출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망의 별들이 지난 50년 보다 더 선명하게 지금 내가 가는 밤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시든 꽃이 아니며 오히려 부유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소망은 항상 내 노래와 함께 있어왔는데 그 소망의 빛은 오늘 밤에도 여전히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 빛은 나의 삶의 아침을 밝혔고 낮의 왕성한 활동을 뿜어내게 했으며 어두운 저녁 시간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어렵고 힘든 인생을 위해서 변함 없이 소망의 시를 써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하늘 도성에 들어갈 때까지 소망의 사역을 수행할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패니 크로스비의 간증 설교를 들으며 깊은 영감에 사로잡히고 있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간증 설교는 물 흐르듯 흘러갔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나이와 함께 발전해갔습니다. 큰 호수의 일몰이나 큰 파도의 출렁임은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달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장미꽃 향기는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가볍게 부는 바다 바람은 내 마음에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도시나 농촌에서 예술가들과 만나는 일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나의 방은 성탄절용 나무와 가지가 있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에는 백합과, 장미와 함께 지냈을 것입니다. 사실 나는 두려움보다 사랑하고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많은 슬픔들이 내 인생의 여정을 가로질러왔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 너머에서 들리는 천사의 목소리가 영원한 빛의 땅인 감람산에 도착하도록 했습니다. 나는 50년 전보다 지금 더 어린이들을 사랑합니다. 이 녀석들이 아주 편해요. 그래서 오늘 이곳의 많은 어린이들을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나는 항상 말합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세요. 패니 아주머니는 어린이들을 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라고요.”
  “나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내 시에 대한 대가로 첫 번째 수표를 받았을 때 나는 도울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넓게 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90년 동안 나는 사례를 위해 봉사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재정적인 결과에 구애 받지 않고 하루 종일 일하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그저 사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돈은 합당한 자리에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을 때 그것은 땅에 강하게 쳐 박히는 가시 면류관으로 변합니다. 사람이 없는 돈보다 돈 없는 사람이 더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내가 ‘신뢰와 복종’의 교훈을 배우고 난 후, 그분은 오랜 세월 동안 실패하지 않게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진실한 목자셨습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두 천사, 자비와 진실은 오랜 삶 가운데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참새가 떨어지는 것조차 아시는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나는 항상 주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15년 2월 12일 금요일 아침에 금세기의 가장 뛰어난 찬송가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조용히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인 목요일 오후 9시에 슬픔을 당한 한 여인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딸을 잃고 슬퍼하는 한 여인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나의 친한 친구에게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을 잃은 것에 대해 내 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나는 지금 너의 집에 흰 옷을 입은 천사와 너 혼자만이 쓸쓸하게 남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네 귓가에 속삭이고 있는 모든 것에 영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하나도 슬픈 것이 아니란다.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소중한 딸 롯이 예수의 품에서 평안하게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평화롭게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패니가 살았던 브리지포트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 장례식은 브리지포트 역사 이래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 쌓고 옛 친구와 동역자들이 마지막 사랑과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애도의 편지가 원근 각지에서 쇄도했습니다. 장례식 날 패니와 교류 했던 많은 사람들은 제비꽃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관속에 누워 있는 그녀 옆에 조용하게 다가섰습니다. 패니는 꽃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들은 교회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주례자는 디모데후서 4:7-8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의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실 것이니.”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패니를 생각하면서 설교를 경청했습니다. 패니는 지금 하늘에서 처음으로 눈을 뜨고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사모하던 그녀의 구속주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늘 사랑하며 섬겼던 분이었고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피조물’로 만든 분이기도 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모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을 부지런히 도우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패니 크로스비는 미국 동부 커넷티컷 주의 브리지포트란 도시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패니 아주머니”란 간단한 이름과 다음과 같은 그의 찬송시가 적혀 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셋째, 패니 크로스비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행복의 조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근본적인 조건은 생후 6주 후에 맹인이 된 불행한 사건이었고 그 불행을 섭리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그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도우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조상은 영국의 청교도들이었습니다. 1635년 런던에서 메사츄세츠로 이주해 온 청교도 신앙의 가문에서 패니는 태어났습니다. 신앙과 가문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패니가 생후 6주 때 맹인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그 돌팔이 의사를 잡아서 처벌을 하여야 하다고 아우성을 쳤을 때 패니의 아버지 존 크로스비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면서도 돌팔이 의사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슬퍼서 우는 아내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듯이라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길러야 하지 않겠소.”이와 같은 신앙적 감화를 어린 아기 패니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맹인이 된 어린 아이 패니에게 가장 깊은 신앙적 감화를 끼친 사람은 패니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부었던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였습니다. 패니의 어머니 머시 크로스비가 아기가 맹인이 되고 남편이 일찍 죽은 이중적인 슬픔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패니의 할머니는 패니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위로를 했습니다. “애야, 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란다.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좋고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 분명해. 그러니 그분께 더 가까이 가며 신뢰하자.” 패니의 엄마는 가정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엄마 대신 어린 패니를 안고 키우면서 패니의 눈과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패니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색깔의 아름다움과 숲 속 새들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과 사랑을 패니의 가슴과 영혼에 곱게곱게 심어주곤 했습니다. 패니는 자라면서 청각과 미각과 후각과 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했고 손 재주가 좋았고 영리하고 똑똑했습니다. 패니의 할머니는 무엇보다 성경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패니는 할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니고 할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매일 읽어주었지만 나를 성경으로 깊이 인도해주신 분은 할머니였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할머니의 입술에서 나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고 바로 그곳에 큰 뿌리를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경건과 기도의 여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자주 아주 오래된 흔들 의자로 나를 오게 한 다음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쏟아 부은 사랑을 패니는 평생 가슴에 담고 기억하며 용기와 희망과 행복을 느끼곤 했습니다. 패니의 할머니는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패니를 꼭 안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패니야 내가 하늘 나라에 가기 전에 너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패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할머니 뭔데요?" "저 높은 곳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할머니와 다시 곡 만나겠다고 말해주겠니?" 패니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곡 그렇게 할게요." 할머니는 "오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를 마친 후 하늘로 가셨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패니의 엄마도 패니에게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곤 했습니다. “패니야, 이제 너는 아름다운 세상의 만물들을 볼 수 없단다. 그러나 위대한 두 시인 호머와 밀턴도 맹인이었어. 때로는 주님께서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영적인 통찰력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신체에서 무엇인가를 가져가신단다.” 그리고 나서 엄마는 어린 패니에게 밀턴의 시를 감명 깊게 읽어주곤 했습니다. 디모데가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던 것처럼 패니도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신앙과 사랑을 물려받았습니다.
  패니 크로스비에게 위로와 격려와 용기와 사랑을 불어넣어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가 23년 동안 학생으로 또는 선생으로 머물고 있던 뉴욕의 맹아 학교는 패니에게 위로와 격려와 용기와 사랑을 불어넣어준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성경을 배웠고 천로역정과 문학 작품들을 배웠고 역사와 철학과 과학을 배웠고 노래와 올간과 기타와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두 권의 시집을 지어서 출판했습니다.
  1850년 11월 어느 감리교 부흥 집회에서 하나님께 항복하며 자신을 드리는 헌신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때 너무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다고 합니다. 1858년에는 밴 앨스틴과 결혼을 했는데 그는 패니에게 큰 위로와 격려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패니를 위해서 작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패니는 남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성실한 신자였습니다. 친절한 행동과 즐거운 말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꼭 같았습니다. 그는 내 찬송시에 작곡을 했습니다. 그는 뉴욕에 있는 교회에서 올간니스트로 봉사했고 성악과 기악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오랜 동안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패니 크로스비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분은 그의 삶을 사랑의 손길로 섭리하신 하나님 자신이었고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204).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219).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300).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446).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편히 쉬겠네.”(476).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찬송시를 써서 가장 많은 성도들에게 가장 깊은 영감을 끼친 찬송의 천사 은혜의 천사 패니 크로스비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 이상 추가할 말이 필요 없습니다.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에게 패니 크로스비는 지금 하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감사하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말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부지런하게 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패니 크로스비에게 주셨던 놀라운 은혜의 일부라도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명혁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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