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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준비하는 지혜 (누가복음16:1-9)
2007년 첫째주일입니다. 오늘부터 12월 30일까지 52주일을 거룩히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우리교회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다윗의 신앙적인 전통을 잇고,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섬김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는 교회, 종교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한 해를 ‘선한 청지기’로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청지기 서원작정주일로 지킵니다.
여러분의 선한 결심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16:1에 ‘청지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의 성경원어는 ‘오이코노모스’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주인에게 기용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종이긴 하지만, 주인에게 부림을 받는 종은 아닙니다. 이 종은 주인의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그 종들에게 일을 시키고, 감독하는 종입니다. 이 청지기는 위임받은 주인의 소유를 자기 소유처럼 관리합니다. 종이지만 주인의 권위를 가지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종입니다.
이를테면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보디발 집의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성실하게 일을 잘함으로 주인의 신뢰를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자기의 먹을거리와 아내를 제외한, 가사 전반을 다 맡겼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요셉 때문에 보디발 집의 모든 일들이 다 잘되었습니다. 요셉은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라를 아주 잘 다스리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입니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날, 요셉처럼 하나님께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인의 뜻대로 충성한 종들은 그 날에 크게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라.”
오늘 읽은 성경은 ‘불의한 청지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로서 주인에게 많은 손해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일을 맡기신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재산들을 낭비함으로 계속해서 주인을 걱정시켰습니다. 이 일을 안, 주인은 꽤 여러 날 동안 그의 변화를 기다렸습니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으나, 돌아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어느 날 청지기를 불러 들여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자네에게 이 일을 계속 맡길 수가 없네.” 언젠가 그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였으나 그 날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청지기 직이 끝난 다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래서 청지기로서 남은 마지막 시간에 자기를 위하여 할일을 하였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그 빚을 삭감해주었습니다. 기름 100말을 빚진 사람은 50말로 줄여주고, 밀 100석을 빚진 사람은 80석으로 삭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베푼 선심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행위는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불의한 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하였습니다.
누가복음16:8말씀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사실은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지기를 “불의하다” 하셨으니, 그 불의에 대해서 책망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책망은 고사하고 칭찬을 하였으니 불의를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가르치고자 함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솔직함입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의 잘못을 주인이 추궁하자 한마디 변명 없이 그대로 시인합니다. 자신이 저질은 일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이 사람의 지혜입니다. 이 사람은 그 동안 자신의 모든 행적을 주인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변명하려 들지 않고 깨끗이 잘못을 시인하였습니다.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터이니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이 이미 틀린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복음18:9-14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훨씬 바르게 살았습니다. 1주일에 두 번식 금식하고, 십일조헌금도 잘하였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세리는 성전에 들어와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바르게 사는 것보다 죄를 짓는 사람을 더 좋아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시인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법정으로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고, 죄없다하면서 징역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잘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 마디의 할 말이 있더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과하는 시간에는 사과 하나로 끝나야합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도 말하려고 했으면 할 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할 말이 많건만 더는 말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지혜라고 하셨습니다.
흔히들 죄를 짓게 되면 보통 사중죄를 짓게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짓고, 다음에는 죄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죄가 탄로 나면 변명하고, 마지막에는 그 죄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킵니다. 이것은 일찍이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족보가 있는 뿌리 깊은 관행입니다. 그러나 여기 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말씀하시는 주인의 판정을 인정했고, 주인의 옳음을 인정하고, 그 심판을 받아들였습니다. 주인의 심판과 판단을 수락하는 이 마음이 곧 회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는 한계인정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곧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언젠가는 주인에게 직분을 빼앗길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건강도, 지위도, 재물도 다 한계가 있다는 이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이것이 항상 내 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종말을 알고, 조금만 더 연장시켜달라고 간청하지 않고 깨끗하게 받아들입니다. 주님은 이 점을 지혜롭다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기회선용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계산해야하는 그 남은 시간에, 남은 권한을 잘 선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야할 줄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지 않았어야했는데 하고 후회하고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짧은 남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6개월밖에 살 수가 없다는 사형 선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몸과 마음이 풀어져서 살 용기가 없어지고, 당장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방황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 자기 바로 앞에 앉아서 인형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 못한 답답한 심정을 이 아이에게 해봅니다. “얘야, 나는 앞으로 6개월밖에 못산다는구나.” 그랬더니 이 철없는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6개월은 살잖아요.”그때에 이 사람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맞아! 6개월은 있지” 6개월밖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은 산다는 말입니다. 정신 차려서 그 6개월 동안, 어느 때보다 더 값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게 가능한 것이 무엇이냐를 알고 그것을 소중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많은 축복의 조건을 가지고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역까지 넘보다가 실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자기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을 알았습니다. 지혜는 허락되지 않은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게 허락된 것을 가지고 최상의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목사인 저에게는 허락된 것도 많지만 제한되어 있는 것도 많습니다. 음주, 흡연, 마약복용, 주일오락, 교인과 돈 거래, 부적절한 이성교제, 세상적인 명예와 쾌락, 무절제한 생활 등 많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제약 때문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제한들이 나를 나 되게 지켜준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별장과 애인은 갖는 그 날부터 부담이 된다는데 저에게는 그런 부담은 영원히 없습니다.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 예배, 설교, 격려, 축복, 배려 내게 허락된 것들을 가지고 살아도 다 사용하지 못할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못하는 것 때문에 목회 생활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함으로 삶의 보람과 기쁨과 만족을 찾습니다.
마지막으로 준비성입니다.
9절 말씀이 사실상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불의한 재물”은 본문에 나타난 이 비유 자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증서를 위조해가면서까지 빚은 탕감해주는 이 행위가 바로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선한 일을 했습니다. 자기의 현재 이후의 삶을 준비하였습니다. 영원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람의 지혜를 칭찬하였습니다. 어차피 없어질 것을 가지고 당분간이라도 내 손에 있을 때에, 죽기 전에 선한 일을 하라는 그 말입니다. 이 사람은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선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돈을 가져서 미래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심을 베풀어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그 점이 이 사람의 지혜로움입니다.
참존 화장품 김광석 사장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대대로 불교를 믿어오던 이 사람이 인생의 큰 시련의 시기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만난 한 친구의 말 한마디가 인생에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네, 십일조헌금을 제대로 하고 있나? 기업하는 사람은 십일조 제대로 해야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네. 10의 10 전부 하나님이 주시고, 10분의 1만 바치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드리지 않고 무슨 복 받기를 원해, 안 그런가?”
한국에 돌아와 십일조를 제대로 하기로 다짐하고, 한 주에 한 번씩 계산해 미리 봉투에 넣어두었다가 주일에 드리기를 1년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으로부터 또 한 번 비슷한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김사장님, 십일조 제대로 하세요?”
“예, 그런대로 하고 있습니다.”
“난 기업하는 사람치고 십일조를 제대로 하는 사람 못 봤는데, 김사장님은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 볼 자격이 있으시네요.”
“뭐라구요?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해요?”
그 사람은 말라기3:10말씀을 이러 주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들은 날로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한 십일조에 복을 배로 달라는 것이 아니고요, 그냥 이번 주에 효과가 그대로 나타나도록 배로 복을 주세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한 달 매출이 1억원일 때였는데, 그 달에 8억 원의 수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면 금방 얼마든지 주실 수 도 있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새벽기도를 하라시는데, 자신은 새벽기도만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자꾸 하라고 하시니까 어느 해 새해가 가까운 때에 연습 삼아 시작해 보겠다고 시작을 했습니다. 첫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갔다가 그 날 하루 종일 비몽사몽 헤매다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루 나가고 안 나가면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생각해서 다음 날도 나갔습니다. 그리고 3일째는 그래도 3번은 나가야지 하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1년이 되었고, 이제는 새벽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벽마다 메모한 2년치 노트를 복사해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받은 복은 참으로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1.믿음의 축복입니다. 2.건강의 축복입니다. 3.가정의 축복입니다. 직계존속이 모두 52명인데, 모두 건강하고, 가정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4.물질의 축복입니다. 5.명예도 주셨습니다. 6.사명의 축복이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성결의 사람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보면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하신 주님의 말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달리기를 마치고 골인하는 나를 주님께서 허다한 증인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나를 맞아주시는 그 날을 기대하며, 남은 삶도 청지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성공한 이 시대의 사람들”-가이드포스트사 편집부, 2006년 1월 출판)
“사랑에 빚진자-최태섭 장로”를 읽었습니다.
일생동안 한국유리 한 기업에 몰두하신 장로님은 이 책에서 말합니다.
“나는 항상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경영자는 모름지기 성실하게 청지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그것을 제멋대로 쓰지 않습니다. 재산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자기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인의 뜻과 지시에 따라 관리하고 사용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만한 성취를 허용하신 것은 그것으로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이 우주의 유일한 소유주이신 하나님은 청지기를 바꿔버리실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태해질 때마다 나를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의 신앙생활에서 유념해야할 것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입니다. 해외출장도 주일을 끼고는 나가지 않습니다. 나가셨다가도 주일에는 반드시 돌아와서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특별집회에도 반드시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은 수요일 오후에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만남의 시간이 좀 길어졌습니다. 장로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각하 오늘 저녁에 교회 예배시간이 되어 이제 그만 가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악한 시대를 삽니다. 게다가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잘못한 후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을 후회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오늘이요, 지금에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중요합니다. 오늘, 아니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배웁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짧은 기회를 잘 활용하여 미래,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선한 청지기로서
누구보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출처/최이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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