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요1:29-34)

by 【고동엽】 2022. 7. 26.
 
전체 목록가기 죄 목록 돌아가기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요1:29-34)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장엄하게 선언하는 말들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또 다른 한 사람의 요한인 세례 요한의 증언을 빌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요1:6-8에서 세례 요한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세례 요한의 증언의 일부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세례 요한을 소개한 요1:6-8의 말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주목합니다. 첫째는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듣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사람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자체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이 참됨을 확신시켜주고 있습니다. 본문 31절과 33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했습니다. 그것은 전에는 몰랐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그가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을 봅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무는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증언은 확실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형체를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육안으로 성령을 확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한 마리 비둘기나 아니면 비둘기처럼 보이는 어떤 물체나 형상이 하늘로부터 예수님께로 내려와서 머무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것이 곧 성령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둘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이 곧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라고 단정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례 요한의 주관적인 단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표지였다고 세례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33-34절을 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여기서 우리는 비둘기 같은 것이 예수님 위에 내려와 머물면 그것이 곧 성령이심을 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례 요한은 들은 바 있었기에 그는 곧바로 성령께서 예수님께 임하여 머무심을 확신했고, 그래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미루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메시야로 알아보는 특별한 계시의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는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진리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어린 양”이란 희생제물을 말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생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그가 대신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죽음을 면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을 가리키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지고 간 것이 “세상 죄”라 한 데 유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세상 죄”는 유대인만의 죄가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죄만을 대속하기 위한 유월절 양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유월절 양이 되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시기 위한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죽음, 고통, 슬픔, 분노, 갈등, 미움, 다툼, 불안, 초조 같은 것은 다 죄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의 불행은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여러분과 저 한 사람 한 사람의 죄, 어제의 죄, 오늘의 죄, 내일의 죄까지 다 지고 가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 사실입니까? 이 얼마나 크고 귀한 복음입니까? 그리고 이 복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확실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입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보다 뒤에 오셨지만 그보다 먼저 계셨던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을 봅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여기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사람”이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썼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는(요1:14) 요한의 출생보다 늦으셨지만 본래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요1:1) 곧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인보다 뛰어나시며 하나님의 일을 완수할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일은 이 세상에 속한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양 가지고는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양만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이가 그저 어떤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보다 더 우리의 속죄와 구원에 대해 확신하고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 말씀으로 인해서 또 다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양이요 만세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 자신임을 밝힌 세례 요한은 그 사실을 자기도 전에는 몰랐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에 나타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친족이었습니다(눅1:36). 그리고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질 것이란 천사의 예고를 받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해서(눅1:39-40) 석 달쯤 함께 있기도 했습니다(눅1:56). 이때 엘리사벳은 그의 많은 나이(눅1:18)에도 불구하고 대여섯 달 전부터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들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의 친척이었을 예수님을 요한이 몰랐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인 줄을 성령께서 그의 위에 내려와 머무시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본문 32-34절)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이 처음부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증언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망설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2-3) 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그런 요한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같은 큰 사람도 하나님나라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위대한 세례 요한 되게 한 것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 일이나 분봉왕 헤롯을 향해 그의 악행을 비판한 일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증언할 수 있었던 것 때문입니다. 즉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신의 사명(요1:6-9)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또 증언하기를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본문 32절).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으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수행하실 분이심을 증언하는 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확신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같이 역사하시는 이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은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본문 34절). 세례 요한은 이 증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밝힘으로써 그 확실성에 신뢰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33-34절을 다시 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세례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증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사도 요한이 앞선 1:6-7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고 그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 한 것입니다(본문 33절).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위에 성령이 부어질 때를 구속의 때로 예견해왔습니다. 따라서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된 구속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란 또 실제로 죄를 씻으시는 이란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로 행하는 세례는 죄 씻음에 대한 약속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성령으로 베푸시는 세례는 실제적인 죄 씻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세상의 죄를 씻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증언하기 위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은 세상의 죄를 친히 씻으시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31절에서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한 말이 바로 그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물로 세례를 베풀며 자기 뒤에 오실 이라고 말하던 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때가 왔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본문 29절) 한 것은 바로 그 선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신 복된 소식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이 구원의 진리를 믿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푸시는 생명과 모든 은혜와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이미 하늘나라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각자가 겪고 있는 이러저러한 실패와 고난과 시름과 염려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치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