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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전도법 (요 1:40-42)

by 【고동엽】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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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 전도법 (요 1:40-42)

사람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자신이 개발한 어떤 상품이나 기술을 가졌다는 것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요리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음식을 개발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음식이 있지만 어떤 음식이 내가 개발한 음식이라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써 가장 큰 명예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안동 간고등어, 전주 비빔밥, 안흥 찐빵처럼 그 지방을 떠 오르게 하는 음식도 있습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신앙생활의 한 유형을 개발하는 것은 참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사랑의 교회하면 제자 훈련이라는 신앙 교육형식을 개발하여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명성교회는 새벽기도라는 이미 있는 신앙 형식을 교회 부흥에 접목시켜서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한 교회가 신앙생활의 한 유형을 개발하였다면 그 교회는 복된 교회입니다.

요즘 어떤 이름을 붙인 전도법이 요즘 유행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법, 진돗개 전도법, 꿀방 전도법,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붙인 전도법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안드레 전도법, 빌립 전도법이 바로 그러한 전도입니다. 대학생 선교회는 사영리라는 전도방법을 개발하여 한국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시하는 중요한 원리를 제공했습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전도법이 개발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양식을 가지고도 민족마다 지역마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들이 다른 것처럼 상황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나 형식들이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들은 이미 개발된 전도의 방법이든지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의 전도의 방식을 통하든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써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성경 속에서 한 전도의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안드레 전도 방법입니다. 안드레가 그 형님인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한 전도 방법입니다. 안드레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따르는 충실한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요한이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향해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할 때 두 제자는 예수님을 찾아가서 어디 계십니까 묻게 됩니다. 이 때에 주님은 와 보라고 했고 두 제자는 예수님이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예수님과 지내게 됩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고 말하고 그 형인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고 했습니다. 안드레의 전도는 어찌보면 최초의 전도였고 전도자는 안드레였고 그 대상은 자기 가족이었습니다.

먼저 안드레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임을 깨달은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들임을 믿는 자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스승인 세례요한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갔고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지나 되었습니다. 이 하루에서 안드레는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깨달음을 그 형인 베드로에게 전한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임을 깨달았음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난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다리던 하나님의 메시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외쳐 말하기를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를 내가 보았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였던 것입니다. 이에 수가성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달려 나왔던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다른 조건은 전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전제는 모든 전도의 절대적인 조건인 것입니다. 전도자는 바로 이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바로 이 기준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마음입니다. 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적으로 불쌍한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빌립의 전도도 그렇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했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보면 전도의 모범 답안지 같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라고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도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안드레 전도에서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라고 했습니다.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먼저라는 말과 자기의 형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전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때로 쉬울 수도 있고 반대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쉽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접근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예수를 믿게 된 동기를 조사한 통계가 나왔는데 가족들에 의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일 년에 많은 분들이 교회에 등록하게 되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끌려 교회에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족이든지 이웃이든지 친척이든지 친구와 같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에게 인도되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많은 전도의 방법 가운데는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전도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내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타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나를 잘 아는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경우 가족은 가장 높은 영적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삶의 본이 되지 않으면 전도는 심한 부담감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이 걸림이 되지 않지만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행위가 또한 복음의 해석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이 지역 사회에 복음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안드레 전도에서 중요한 것은 찾아가는 전도입니다. 오늘말씀에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대상이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이 설명되는 것입니다. 배우기 위해 사람을 찾을 때도 있고 무엇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찾을 때도 있습니다. 남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서 타인을 찾을 때도 있고 병든 사람은 자신을 고쳐줄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경험에서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찾을 때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서 찾을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얻기 위해서 사람을 찾을 때는 일반적으로 육신적 기쁨과 기대감을 가지게 되지만 주기 위해서 사람을 찾을 때에는 그 마음에 영혼의 기쁨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주는 것이 귀한 것일수록 그 감정에서 느끼는 기분이 다릅니다.

전도는 사람을 찾을 때 생명의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이 기쁨은 평생을 두고서도 잊혀지지 않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한 영혼을 구원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만약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영혼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기 위해서 타인을 찾을 때와 타인이 반기지 않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타인을 찾을 때는 마음에 느끼는 부담감이 다릅니다.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주기 위해서 타인을 찾을 때는 마음에 부담감이 없지만 타인이 원하지 않는 것을 주기 위해서 찾아 갈 때는 마음에 부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다름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든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이는 약 먹기를 싫어하고 부모는 그것을 먹여야 아이가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먹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 전도는 바로 이러한 부담감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의 전도는 데리고 주님께 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 데리고 오니 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이면서 이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출처/조병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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