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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보람 있고 가치있게 살자 (마 16;13∼25)
인생을 보람되고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서야 어찌 의미 있고 보람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산 신앙고백을 하는 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7절) 이는 예수님께서 창조주 왕,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선지자,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구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교회에서만 신앙고백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원하십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앞에서 때로는 고난의 한복판이나 죽음 앞에서조차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산 신앙고백이 이어지는 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입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마6;33).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자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4절)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내해야 하는 고난이요,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종종 나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도 하고 그 결과로 손해, 고통, 고난, 박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를 져주시고 그것을 축복으로, 영광으로, 부활로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롬 8;18).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잘했다고 하든 못했다고 하든, 성원을 보내든 멸시를 보내든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중대한 문제는 주님께서 내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여기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는 그리스도,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살아있는 동안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믿음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고, 영의 일을 좇으며, 순종의 삶을 살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먼저 됩시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됩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합시다. 많은 일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예배와 섬김과 전도, 그것을 통해서 내 직장과 가정, 학교,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삽시다. 그리고 나중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주님이 칭찬하시고 모든 천군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는 날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둘째, 굳센 신앙을 갖고 주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라, 혹은 갈망하라"하는 뜻인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을 사모하라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돈이나 애인을 사모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요, 기뻐하기 때문이요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그 돈이나 그 애인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요 의지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귀중히 여기고 의지하고 믿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 42편 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뜨거운 여름에 목이 말라 시냇물을 먹고 싶어서 찾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갈망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며 갈망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이사야 45:22)
셋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18:1)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 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 3절)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간절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앞이 캄캄해도 낙심치 말고 기도하면 반드시 살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응답을 받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응답 받는 삶을 살아갑시다.
넷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침묵할 수 있을까요? 이제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이 복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14절, 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젊은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성경이 너무나 좋아서 읽다보니, 성경의 각 장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단순한 마음을 갖고 있던 이 청년은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이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저를 보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고 있던 이 젊은이는 너무나 마음이 뜨거워져서 한번은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에 찾아가서 "제가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선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리랜드 박사는 "젊은이 앉게!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자네가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네. 그런 광신자 같은 소리는 그만하게"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젊은이는 그 자리에 앉으면서 "박사님 맞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없이도 복음을 이방에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기는 하나님은 당신이나 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를 동조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서 인도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이 젊은이가 현대 선교의 문을 열었던 윌리암 케리입니다. 가지 않는다면 누가 복음을 전할까요?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들을 수가 있을까요? 듣지 못한다면 어찌 믿을 수가 있을까요?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멀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날마다 우리의 삶의 장에서 만나는 가까이에 잇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도 포함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다섯째, 신실하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행동은 참으로 신실치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교만하고 모순된 신자들이었나?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신실하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향한 그의 성실하심을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입으로만 주라 시인하며 또 다른 말로 주를 욕되게 하며 정직하고 올바르며 신실하게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몸과 마음과 행동이 모두 신실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신실치 못한 자가 어찌 주 예수 앞에 신실할 수 있겠습니까?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밑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여섯째, 이웃을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멸시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예물을 드리며 찬송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이웃 사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이웃에게 어떤 사랑을 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번은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받기 위해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율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고 너는 어떻게 읽느냐? 고 반문하셨습니다. 이 때 이 율법사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 이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결론으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그렇습니다마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 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아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랑은 실제로 행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개의 사랑은 혀끝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 사랑은 손끝에 있습니다.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처럼 실천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요한 1서 4장 7절 이하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 모두 주님의 명령 따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일곱째, 선(善)하게 살고 공의와 공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20-21)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 공평한 길로 행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느 무명 성도의 선행을 위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과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그것을 미루거나 핑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는 제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우리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선한 길을 걸어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과 정직 안에 모든 선한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행동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여 얻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여덟째,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잠11:6), "악한 자의 길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14:11),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잠15:19),“내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정직을 행하면 이같이 되리라”(신 13:18), 하는 말씀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번성하게 하시고 흥왕하게 하시고 그의 모든 삶을 윤택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한 세대 큰 지도자로 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수치를 겪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정직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아홉째,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절대로 사람은 지혜롭게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엡5:15)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지혜로운 삶이란 하나님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모두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서 이웃과 가족과 동료들에게 덕을 끼치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행복하게 가꾸시기를 기원합니다.
열 번째, 자기를 부인하고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 의사요, 복음을 전하는 설교가로 영혼을 구하는 일에 뛰어났던 월터 윌슨은 어느 날 밤, 성령님께 이렇게 고백함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내내 당신을 잘못 대해 왔습니다. 당신을 종처럼 취급했습니다. 저는 필요할 때만 당신에게 손짓해서 제 일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종의 자리에 놓았습니다. 저 혼자 결정하고 선택한 일에서, 기꺼이 저를 도와주는 종으로만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는 당신에게 제 몸을 드립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에게 드립니다. 제 손과 사지와 눈과 입, 두뇌를 드립니다. 제 안에 있는 것과 제 밖에 있는 것 모두를 당신에게 넘겨 드립니다. 당신이 제 몸 안에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이 몸을 아프리카로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암에 걸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눈을 멀게 하실 수도 있으며, 메시지를 주어 티벳으로 보내실 수도 있습니다. 이 순간부터 이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림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표현했던 마리아의 행동은 곳곳에 전하여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헌신으로 이끌었습니다. 윌슨의 고백도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몸을 드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전도의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육신으로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일들이, 헌신의 열매로 주께 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루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 23)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3:25)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감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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