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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에 감사하자 (고전15:10)

by 【고동엽】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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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에 감사하자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합니다. 이 세상은 상대적입니다.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 공장의 근로자들이나 회사의 사무원들이나 기업 경영자들이나 서로 공존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이 천하다고 해서 멸시 할 수는 없습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들 스스로 치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나 대신 해주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서로가 은혜를 끼치고 또 입고 있습니다.

1.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말은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는 것, 개인적인 소원이 우연찮게 이루어지는 것, 복잡한 문제를 누가 해결해 주는 것, 그런가 하면 교회에 나와서 건강을 얻고 기쁨을 얻는 것 등입니다.

(1)은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며(요엘 2:13), 오직 우리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느 9:17)

은혜란 자신의 개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낙심될 때에도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용기가 나고, 힘이 솟아납니다. 또 위로를 받게 해주시고 소망을 가지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 4:16). 하나님을 믿음으로 생활의 절제를 하게 됩니다. 억울함도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체가 곧 은혜입니다.

(2)나를 택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고(엡 1:7),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셨다(엡 1:13)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에는 조건이 많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학교에 입학하려 해도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서류상의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입학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는 일에 조건을 제시한다면 영생을 얻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죄인 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 중 하나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는 어떤 조건도 제시하시지 않았습니다. 한 강도의 고백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만일 그 때 예수께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셨다면 그 강도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6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그러므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데 앞장섰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잔해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사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살기가 등등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사도로 칭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될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자였습니다. 오늘 아침 이처럼 죄 가운데 살고 있으며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은 성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합니다.

(3)예수로 하여금 구원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구원이란 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악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환난 고통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전쟁에서 살아 남는 것도, 질병에서 고침받는 것도 모두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구원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홍해에서, 광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구원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베드로전서 1:9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121:5-8에서는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환난이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여!하고 부를 때 그것은 곧 구원의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영원히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과거의 모든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갈 4:4).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여!”라고 외친 것은 소경 된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실 구원자로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은 예수를 자기 질병에서 구원할 자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 여인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육신의 질병과 고통과 죽음에서부터 구원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경에 처했을 때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여’하고 부르는 자체가 곧 은혜입니다. 예수 이름 자체가 은혜입니다.

(4)의인의 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17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5:1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시편 1:5에는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의 총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의인의 회중이란 하나님의 보좌요 천국이며 영생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의 현실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참아 낼 수 있는 것을 바로 의인의 회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만족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더 나은 환경을 꿈꾼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이 진정한 은혜인 줄 믿습니다.


2.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맙시다.


고리도후서 6:1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할 때 은혜가 헛되게 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5:10을 봅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란 하나님이시며 예수님 자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롬 3:23)“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5).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온전한 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구속함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은혜를 은혜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가 많이 있습니다.

(1)율법 안에 있는 자가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1, 2).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사람들을 유혹해서 은혜에 의한 구원보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자기 의를 이루어 구원받으려는 것은 헛되 은혜입니다. 예수 안에서 몸도 건강해지고 가정에 우환도 없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그러다가 자식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는데 자식이 금나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을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하여 열심을 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의가 실패했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경우입니다(갈 3:3). 우리가 받은 은혜가 헛되이 육체로 마치지 않으려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며(갈 5:17)서로 대적합니다. 성령으로 살면서 성령 안에서 행하고 열매맺어야 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맙시다(갈 5:25, 26)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 23)

(2)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헛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사한 지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지막날에 홀연히 나타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4)

부활의 신앙이 없으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두개인과 같이 주님께로부터 저주와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3. 은혜에 보답합시다.

이 세상에는 배은망덕한 자가 많습니다. 은혜에 보답하지는 못할 망정 배은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큰 배은은 우상 숭배입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교회에 안나온다면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됩니다. 자기 자식들이 우상이 될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갖가지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살면서도 내일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목자가 되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다른 길은 ‘받은 바 은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속죄받을 수 없는 나였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부족한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은사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더불어 한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한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어 그 지체의 역할도 각기 다른 것입니다. 각 지체가 지체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 몸은 병신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불러 세우신 각 사람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받은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해야 합니다. 은사의 활용을 교회 생활에서만 발휘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은사가 활용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용해야 합니다. 또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며 섬기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헌신 봉사해야 합니다. 누구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속에 이루어지기 위해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나도 역시 주님과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는 희생 정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입니다. 주일 아침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시간의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하나하나가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의 몸의 각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무엇이든지 주를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할 수 있는 자원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따라 나설 때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이 있는 아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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