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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성공비결 (마7:7-12)
인생을 성공하고 싶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을 찾아가 인생의 성공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임금은 말없이 컵에다 포도주를 가득 따르고는 청년에게 건네어 주면서 별안간 큰소리로 군인을 하나 부르더니 다짜고짜“이 젊은 청년이 저 포도주잔을 들고 시내를 한바퀴 도는 동안 넌 칼을 빼어 들고 그를 따라라. 만약 저 청년이 포도주를 엎지를 때에는 그의 목을 내리쳐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잔을 들고 엎지르지 않고 시내를 한바퀴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청년이 시내를 도는 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큰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넌 거리에 있는 거지도 장사꾼들도 못보고 술집에서 노래하는 것도 못 들었던 말이냐?”청년은 다시 대답합니다.“네 저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그랬더니 임금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그렇다 이것이 네 인생의 교훈이다. 네가 거리를 한바퀴 돌면서도 그 잔만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시킨 것처럼 너의 인생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살면 성공할 것이고 유혹과 악한 소리도 네게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인생의 성공을 향한 집념을 말하고자하는 듯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그 비결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을 해가면서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위에 있는 다른 일들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며 그곳에서 더 큰 만족을 얻을 것처럼 생각을 하여 자꾸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다운 성공의 비결은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그 일에 성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음에 주어진 또 다른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스티븐 고비]라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성공할 수밖에 없는 습관이 있다고 분석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저런 모습에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있을 법한데 그런데 문제는 정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고 또 뛰어봅니다만 그렇게도 애쓰고 그렇게도 바라는 성공은 쉽사리 얻어지지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세상은 온통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스스로 성공했노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단 말입니다. 그 정도면 분명히 성공을 했을법한데 현실은 너나할 것 없이 거의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들뿐입니다. 왜입니까? 실제로 어떤 통계자료에 의하면 약 10%의 사람들은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약 80%의 사람들은 대중 속에 묻혀서 희망과 비전도 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나머지 10%의 사람만이 스스로 인생의 성공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참 유감스러운 것은 이 통계에 의하면 이 세상은 온통 실패자들뿐입니다. 진정 이 세상이 실패자들뿐이겠습니까? 또한 그렇게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여러분, 왜 성공에 대한 이런 통계가 나옵니까? 성공했어도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절망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성공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공을 잘못알고 있습니다. 왜곡된 성공에 대한 이해, 이것이 성공을 성공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라면 적어도 몇 가지에 답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 첫 번째는 <무엇이 성공이냐?>하는 것에 대한 답입니다. 지난날에도 그렇고,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도대체 나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느냐? 내 생의 목적을 결정해 주는 내 확실한 목표는 무엇이냐?”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무작정 뛴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아무 헤아림 없이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잘못 왔구나, 잘못 생각했구나,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구나’하고 탄식해봐야 늦은 것입니다. <무엇이 성공이냐?>라는 목적과 목표가 가 결정 되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인생은 그 목적과 목표에 의미가 있고 또 반드시 그 의미에 따르는 결론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은 출발 하실 때부터 십자가가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대해 예고하셨고, 십자가에 대해 가르치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돌아가실 때에는 마침내“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3년을 함께 지낸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말씀 하실 때마다 근심했고,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는 다 흩어지고 절망했습니다. 지난 일을 다 꿈으로 돌리고 갈릴리로 돌아가자며 실패의 낙향을 하게 됩니다. 왜 똑 같은 사건에서 한 쪽은 성공하여‘다 이루었다.’며 영광을 누리는데 한쪽은 실패를 맛봐야 했느냐는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나는 왜, 어디로 가는가? 내게 있어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공의 방법이 옳으냐?>에 대한 답입니다. 목표는 동쪽에 두고 있으면서 가기는 서쪽으로 간다면 어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동쪽에 있으면 몸도 동쪽으로 가야 성공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에 합당한 길을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으로 성공을 하겠노라 했으면 합당한 투자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근면한 생활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성실한 노력이 보태져야 할 것입니다. 합당한 방법인 이것 없이 다른 것으로 성공하겠노라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투자와 노력과 성실 없이 일확천금을 꿈꾼다면 분명 이것은 성공의 방법이 잘 못 된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목표를 향한 합당한 방법, 합당한 길을 물어야할 것이며,
성공을 위해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할 세 번째 문제는<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생각도 있고, 뜻도 있지만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헛것입니다. 게으름 피울 것 다 피우고, 남보다 몇 배나 잠자고도 무엇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어딘가 잘못 되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성공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두고 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성공에 대해 물을 때에<1등을 했느냐?>를 물을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느냐?>를 물을 것입니다. <얼마나 더 정성을 쏟았느냐?>,<얼마나 성실하게 집중했느냐?>를 물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성공을 위해 반드시 물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네 번째 문제는<성공을 성공으로 시인하느냐?>에 대한 답입니다.
이를테면 돈 천 만원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니까 천만 원을 가졌습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져보니까 이것을 성공으로 여기지 않고 다시 또 1억원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1억원이 생기면 또 10억원을 바라겠지요. 이러다가는 한번도 성공했다는 만족감을 가져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자기 욕심에 따라 수시로 성공의 이정표를 옮겨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성공이란 없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성공을 성공으로 인정할 줄 알 때 또 다른 성공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서 언제나 실패했다고 투덜거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성공을 위하여 노력도 하고 수고도 하십니까? 목적도 좋고, 방법도 좋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수고로만 되지 않는 별 도리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합니다. 모든 수고와 노력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해야 한다는 마음, 곧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울러 생각해야할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한 충분한 신앙과 소양과 인격적인 품성을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 믿음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그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있고 성공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복이 들어 올 자리가 없다면 마땅히 성공은 바라볼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의 복을 채울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본문에서 눈여겨봐야할 하나님의 복을 채워서 곧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약4:2,3에 보면“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달리표현하자면“너희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기도를 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니 욕심을 채우고자 기도했기 때문이다.”는 말씀이 됩니다.
보통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무슨 일이 실패를 하면 그 이유가 자본이 부족했다든지, 지식이 없었다든지, 경험이 짧았다는 식으로 후회를 합니다. 또는 누구누구 때문에 실패를 했다거나,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탓하기도 합니다. 조금 겸손한 사람이다 싶으면‘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하고 맙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신앙적으로 후회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십시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기도하지 않은데서오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결정했고, 기도 없이 대답했고, 기도 없이 판단했고, 기도 없이 절망했기 때문에 실패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도, 능력도 기도로 구해야지 다른 것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생활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는 기도생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관계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을 원하신다면 깨끗이 비운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아 말씀을 읽다보면 한 가지의 큰 깨달음이 옵니다. 못 받는 우리도 답답하지만 주시지 않는 하나님은 더 괴롭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먼저 알고 게십니다. 다만 그것을 구하고, 찾고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제일 유감인 속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입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이기 때문에 계속 쳐다보고 올라갈 방도를 연구해야 언젠가는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지레짐작하여 이것은 기도해도 불가능한일이라 여겨서 기도조차도 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는“절망, 그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에르 케고르]의 말이 새롭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는 일과 그 방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워야하고 하나님과 진실 된 교제를 나누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낸시 스피겔베르그]라는 사람이 이런 시를 적었습니다.
“주님, 저는 저의 빈 잔을 가지고/사막을 가로질러/당신께로 천천히 나아갔습니다./그것은 저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 줄/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러나/제가 주님을 제대로/알았더라면/커다란 양동이를 들고/뛰어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알면 알수록 보다 더 그분을 신뢰할 수 있고 더욱 더 의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구하는 마음, 찾는 자세, 두드리는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는 비어가고 새벽기도회 자리는 공허합니다. 이래놓고 저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아우성입니다. 못 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미래는 더 더욱이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공은 이미 허락되었습니다. 약속된 성공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때까지 구하고 찾을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되면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을 때까지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평생기도하고, 평생탐구하고, 평생인내와 겸손으로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성공의 비결은 실패의 원인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성공의 비결로 신앙의 멋진 성공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철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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