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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선택

선택의 기준 (잠 22:1~2)

by 【고동엽】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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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준    (잠 22:1~2)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소원이 있다. 집이 없어 전셋집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사람은 자기 집이 있기를 바라고, 몸이 연약하여 늘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건강한 몸을 원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원하는 처녀 총각들은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소원을 갖고서 산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줄테니 말을 하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로몬 왕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난 후에 잠을 자다가 꿈에 하나님을 만난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솔로몬이 대답하기를 부족한 제가 왕이 되었는데 이 나라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매우 흡족해 하셨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을 매우 칭찬하신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꿈속에서 하나님과 이러한 만남을 갖고 깨어보니 솔로몬이 너무 기뻤다.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이 모여서 함께 잔치를 하였다.
그러면 도대체 지혜가 무엇이기에 왜 하나님은 그렇게 기뻐하셨는가? 지혜는 곧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지혜이다.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의 아이라고 주장한다. 사흘 차이로 두 여자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여인이 자기 아이를 자다가 아들 위에 누워 결국 한 아이가 죽게 되었다. 아들을 잃은 이 여인이 몰래 밤에 가서 다른 아이를 자기 아들처럼 데리고 왔다.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분쟁이 벌어졌다. 솔로몬 왕 앞에 재판을 받으러 나왔다.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자 솔로몬은 이 아이를 둘로 나눠서 서로 나눠주라고 명을 내린다. 그러자 진짜 엄마가 그 아이를 그냥 저 여인에게 주라고 애원한다. 솔로몬의 지혜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서 옆의 나라에서 많은 선물을 갖고왔다. 똑같이 생긴 두 꽃을 화병에 꽂아 놓고 하나는 생화이고 하나는 조화인데 생화를 분별해 내라는 시험이었다. 솔로몬은 신하들에게 벌을 잡아오라고 요청한다. 그 꽃 앞에 벌을 풀어 놓으니 조화에는 한 마리의 벌도 얼씬거리지 않고 생화에 모든 벌들이 모여들어 생화를 구분했다고 한다.

이같이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많이 아는 지식도 아니다. 많은 경험을 구한 것도 아니다. 상황에 처했을 때에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이 사람이 다니던 회사가 합병되어 졸지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7개월째 어려움을 당한다. 아직 갚지 못한 자동차 할부금에 은행 잔고는 바닥이 나고 딸은 몸이 아파 수술을 해야 하고, 정말로 사면초과의 위기 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일곱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론을 얻게 된다.

과거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미래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내 손 안에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미래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의 과거는 결코 바꿀 수 없지만 오늘 내 행동을 바꿈으로써 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지나간 과거는 어짜피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다. 그러기에 변할 수 없는 과거는 나에게 나쁜 소식이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내가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미래가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바른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지혜이다.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살았다. 가축도 많아지고 식구들도 많아져서 결국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서로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고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롯은 요단지역을 택한다. 그곳에는 물이 많고 편안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간 곳은 산이 있는 지역을 택한다. 그 결과가 얼마나 다르게 나타났는가? 롯의 가정은 망하고 아브라함의 가정은 흥하였다.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우리에게는 순간마다 선택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명예보다 은총을 택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곧 선택의 기준이다. 이것이 곧 생명의 길로 인도함 받는 지혜이다.

재물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부자되기 바란다.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물질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준다. 돈이 있으면 버스타고, 돈이 더 있으면 택시타고, 더 있으면 좋은 차 타고 다닌다. 돈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준다. 나도 어디를 나갈 때에 수첩과 열쇠와 지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지갑이니라. 그 만큼 물질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또한 돈은 막힌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몇 년 전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티와나라는 곳에 갔다. 미국과 붙어 있으면서 멕시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관광지이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서 북새통을 이룬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사거리가 꽉 막혀서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발견하였다. 교통 정리를 하는 경찰이 사거리에서 돈을 내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손에는 한 움큼의 지폐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이같이 물질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물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명예를 택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자기의 명예를 더럽히며 사람을 속인다. 광우병에 걸린 가능성이 있는 곱창을 몰래 빼돌려서 판다. 돈은 벌었겠지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이다. 수입한 고기를 한우라고 속여서 판다. 돈은 벌겠지만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다. 분명한 것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것이 바로 선택의 기준이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사람들은 나를 긴 문장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여러 가지 많은 일로 기억하지 않는다. 아 그 사람 충성된 일꾼이었지. 우리 교회에 여러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다가 소천하셨다. 여경옥 권사님은 늘 새벽이면 교회 마당을 쓰시는 분이었다. 여경옥 권사님 그 분 새벽을 깨우는 분이지. 박남숙 장로님 주의 종을 정성으로 섬기는 분이었지. 노음전 장로님 그분 추진력있게 일 잘하시는 분이었지. 한 문장으로 우리를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명예롭게 기억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명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은총을 더욱 택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물질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지만 명예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선택의 기준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셨다. 자기 딸이 귀신 들려서 고통 중에 있는데 고쳐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하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신다. 너는 “개와 같다”는 아주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이 개가 되는 것이 상관이 없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은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인가? 자신이 개같은 사람으로 엄청난 명예 훼손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명예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중요한 것을 알았던 사람이다. “내가 개가 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라면 가진 것이 없어지면 어떻고, 나의 명예가 훼손되면 어떻습니까?라는 고백이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을 칭찬하셨다. 자기 자신의 자리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일이다. 지금 서울 목동인 양천 땅을 걷던 형제 가운데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웠다. 그중 한 덩이를 형에게 주고 양천강을 건너고자 배를 탔다. 강 복판에 이르렀을 때 아우가 주웠던 금덩이를 강물 속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형이 영문을 물었다. “황금을 나누어 갖고 보니 혹시 형에게 준 금덩이가 더 크지 않았나, 혹시 형은 내가 큰 걸 가졌다고 앙심을 품지는 않았나... 하는 등의 사특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 형제간에 우애를 위해서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형도 네 말이 옳다 하고 역시 그 횡재를 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이 형제는 재물보다 형제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재물보다 형제간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른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일이 달라진다. 지나간 과거는 어떻게 바꿀 수 없지만 내가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일이 달라질 수 있다.
많은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다. 이 둘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 둘은 열렬한 음악광이었으며, 인생의 황금기를 적도 부근에서 보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전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린 알버트 슈바이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이비 교주'로 불린 짐 존스다. 슈바이처는 사랑을 실천한 성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짐 존스는 비극적인 집단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인생의 출발과 과정은 유사했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단 하나였다. 슈바이처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복종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았고, 짐 존스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철저히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을 선택했으나 하나님 때문에 당하는 희생과 고난이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잘못된 선택인 것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기는 했지만 슈바이처는 재물보다는 명예를 명예보다는 은총을 택하는 바른 선택을 했고, 짐 존스는 은총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택하는 잘못된 판단을 통해서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바른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출처/곽주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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