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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전을 재건하라 (학개 1:2-11)

by 【고동엽】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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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성전을 재건하라   (학개 1:2-11)

<本文>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학1:2-11)

<序言>  
  제가 10여년 전에 목회를 사임하고 캐나다에 유학을 가기 위해 짐을 다 싸놓고 있을 때입니다. 장인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커브길에서 빗길에 밀려 마주오는 차량 두대를 들이받고 도로 밖 도랑에 뒤집혔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당했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라디오 극동방송을 틀었습니다. 그 방송에서 한 청년이 나와 자신이 주일날 예배에 참여해 은혜받은 내용을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 본문 말씀이었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관점과 같았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자세히 들어보니 제가 했던 설교를 듣고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건축 중에 있는 시골 교회 헌신예배에 초청을 받아 본문을 설교했는데 그 때 이 청년이 들은 것입니다. 서울에서 백혈병에 걸려 요양을 하기 위해 시골에 왔다가 그 예배에 참여하여 들은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는 것이 외국에 가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갈급한 영혼들을 위해 개척을 해서 목회를 하는 것이라는 거절할 수 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돈도 없는 상태에서 열린문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더더욱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도약하는 심정으로 본문을 전하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때에 선지자 학개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유다 백성이 BC 586년에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갔다가 약 70년이 지나서 고레스 칙령에 의해 유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불타버린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스3:1-13).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인해 성전건축을 중단하였고 14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이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다시 건축을 시작하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율법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언약 신앙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성전 건축 문제는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내적 성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성도 개인이 성전이고 성도들의 연합된 공동체인 교회가 성전입니다. 성도의 인격이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 영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고전3:16, 고후6:16). 그리고 그 성도들이 연합하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 교회 공동체들이 연합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 그 공동체와 연합체들이 하나님 나라로서의 역할을 바로 해 나가는 것이 영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유1:20, 엡2:22, 4:15).  

<本論>
     1. 솔로몬 성전에 비해 열등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3:12-13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 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불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성전지대를 놓았을 때 바벨론에 잡혀가기 전에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은 통곡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해 스룹바벨 성전의 지대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이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을 스스로 작은 일로 여기고 성전 건축하기를 중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은 다릅니다. 전자는 다윗 왕 때부터 준비되었고 이방 왕까지 협조하여 각양 고급 재료가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포로에서 갓 돌아온 자들이 황폐한 땅 위에 준비되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고 처음 개척교회를 할 때는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경험하게 되지만 시일이 지나면 처음 은혜를 누리기 힘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강권하는 은혜가 있지만 후에는 자기의 노력이 많아야 합니다. 비록 처음 은혜가 안 느껴지더라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적 성장도가 다른 것입니다. 나중 영광이 처음 영광보다 클 줄 알아야 합니다 (학2:5-9). "작은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서 가장 큰 일로 생각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슥4:10).

     2. 사마리아인의 방해 공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4:23-24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 년까지 이르니라"고 했습니다.

  강 서편 사마리아인들이 조롱을 하고 방백들에게 뇌물을 주어 행정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또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할 때 고소를 했고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거짓 고소를 해 왕으로 하여금 성전건축을 중단하라는 조서가 내려지도록 했습니다. 영적 성전건축에 있어서도 방해 공작이 있으면 중단하기 쉽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내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슥4:7).

     3.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사마리아인들이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고 지배국이었던 바사(페르시아)의 왕들이 성전건축 중단을 명령하니까 스스로 성전재건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상황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원수들의 공격보다 그 공격 때문에 아직 때가 아니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영적 성전건축에서도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그 상황에 대해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영적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지금이 은혜의 때요 긍휼의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6:2).

     4. 자기 육체의 평안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4절에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고 했고, 9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무했으나 자기들은 판벽한 집에 거했습니다. 자기 집 짓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여 짐승이 거하고 이방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성전은 생각지 않고 자기들의 육체를 위해 고급 목재로 집을 짓고 사치와 연락에 빠졌습니다. 영적 성전은 황무했는 데도 자기의 평안과 안일을 추구하면 성전 재건을 할 수 없습니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12:1).

<結言>
    성전건축을 중단한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5~6절에 보면 자기 소위를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었고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을지라도 따뜻하지 못하고 일꾼이 삯을 받아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9~11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을 그치게 하고 한파를 불러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등 땅의 모든 소산에 임하게 했기 때문이고, 사람과 육축과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바랬으나 도리어 소득이 적었고 그것을 집에 가져갔으나 불어 버려서 그것들이 소리지르며 날아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영적 성전건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은택이 끊어지고 심령이 마르고 영적 고갈과 곤고함을 당하고 생명의 열매가 맺히지 않고 맺히려 하다가도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의 것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소욕대로 취해도 그것들로 만족함이나 흡족함을 얻지 못하고 기쁨이 없었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영적인 성전건축을 해야 합니다. 상황을 보지 말고 말씀과 성령으로 영적 성전을 건축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학2:8). 고린도전서3:12에 만물이 다 우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8:32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출처/차용철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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