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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마 16:13-20)

by 【고동엽】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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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마 16:13-20)


설교자들은 신학을 무거운 것으로 생각한다. 신학은 지나치게 학문적이어서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신학이 교회의 상황을 외면한 채 단지 이론에만 몰두하면 정말로 골치 아프고 유용성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런 식의 신학이 도처에서 활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 때문에 설교자들이 신학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신학은 설교에 엄청난 힘을 불어넣으며 교회를 대단히 역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오랫동안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신학이 교회와 설교에서 찬란하게 꽃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설교자들이 절대로 "신학적 설교" (theological preaching)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먼저 설교자들 자신이 신학을 연마하기에 부지런해야 하고, 또한 신학을 설교에 연착륙시키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설교는 더욱 심화되고 풍성하며 능력있게 될 것이다. 마 16:13-20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요점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다.

1. 본문이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대화이다. 본문은 우선 예수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13-14)와 제자들의 견해 (15-16)를 말해준다. 여기에 교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 이어지고 (17-19),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자신의 신분을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본문은 끝난다 (20).

사람들의 견해 (13-14)
---> 교회에 관한 교훈 (17-19) ---> 경계 (20)
제자들의 견해 (15-16)

교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18)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어떤 단계가 있으며 (17-18),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어떤 단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8-19).

1) 발단 (16)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18)는 예수의 말씀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관련이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라는 말로 예수를 왕이며 제사장이며 선지자로 인정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예수를 인간의 문제를 초월하시는 구원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2)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 이전의 단계 (17-18)
그런데 교회건설에 관한 교훈에 이르기 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두 가지 사실을 정리해주셨다.
첫째로 그러나 이로부터 우리가 보통 알고 있듯이 교회는 신앙고백에 바탕을 둔다고 말하는 것은 속단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그 자신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베드로의 고백이 "육과 혈" (인간적인 것의 총체 - 참조. 요 1:13; 고전 15:50; 갈 1:16; 엡 6:12; 히 2:14)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계시하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마 16:17). 강조점은 베드로의 고백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의 신앙고백 이전에 하나님의 계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는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고백에 근거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에 이어서 비로소 베드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선언하신다 (이것은 그리스어 본문으로 보면 확연하게 나타난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네게 계시하셨다. 그래서 나도 네게 말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예수의 선언도 없다. 베드로가 예수를 향하여 "주 (그리스어로는 '너')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너는 베드로라"(18)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교회건설에 관하여 일러주셨다. 그러므로 교회건설은 예수에 대한 사람의 고백보다 사람에 대한 예수의 고백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의 고백은 쉽게 흔들리지만 (마 16:21-23 참조) 예수의 고백은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 (마 10:32). 따라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의 고백이다.

3)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 (18)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에서 분명한 것은 예수와 교회의 관계이다.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18). 여기에 두 가지 측면에서 기독론과 교회론의 철저한 결속이 표현된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교회를 건설하는 분이며 교회를 소유하는 분이라는 점이다.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다 ("내가").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의 교회이다 ("나의"). 그러므로 교회에 관한 한, 사람들에 의하여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예수가 중심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분께 모든 일에 첫 번째 자리를 내드려야 한다. 교회에서 사람은 언제나 예수를 앞서는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교회는 인간사(事) 이전에 예수사(事)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8). 여기에서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로 반석은 무엇인가? 우선 베드로와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래 베드로 (페트로스)라는 말은 작은 돌을 가리키고, 반석 (페트라)라는 말은 큰 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를 때 베드로는 비록 작은 돌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큰 반석같이 여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려 하신다. 여기에 교회에 관한 은혜 사상이 엿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대로 교회의 근본적인 바탕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다. 여기에서 "네 위에"라고 하지 않고 "이 반석 위에"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반석이라는 말로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계시를 지시하신다. 사실상 하나님이 반석이라는 사상은 비록 용어상 차이는 있지만 이미 구약에 널리 퍼져 있던 것이다 (신 32:4,31; 삼상 2:2; 시 18:2,31,46; 19:14; 31:3; 사 26:4 등등).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반석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또는 그의 계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교회건설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확인하고 난 다음인데,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결국 예수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다.
둘째로 반석 위에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말은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 (마 7:24-25)의 도움을 받으면 잘 해석된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는다". 비는 위로부터, 창수는 아래로부터, 바람은 사방에서 온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위와 아래 그리고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견고하게 선다. 이와 같이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에 어떠한 세력에 의하여도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위와 아래 그리고 사방에서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공격이 올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견고하기만 하다.

4)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 이후 단계 (18-19)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18)는 말씀에 이어 예수께서는 두 가지 사실을 교훈하셨다.
첫째로 교회와 음부(하데스)의 관계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덧붙이셨다(18).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음부의 문들이 그것을 (= 교회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 "문들"이라는 표현이 여러 겹의 문들을 뜻하는 것인지, 여러 면의 문들을 뜻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문은 방어적인 의미를 가지므로 음부가 방어적인 입장에서 설명되고 있다. 음부의 문들과 관련하여 사용된 단어는 "...보다 힘이 세다"는 전쟁용어이다. 이 단어는 부정사와 함께 사용될 때 "...보다 힘이 세지 못하다", 다시 말하자면 "...을 당하지 못하리라"는 뜻을 가진다. 그렇다면 사탄의 나라가 아무리 강한 문들을 가지고 방어를 한다고 해도, 교회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사탄의 나라는 교회의 세력 앞에 방어할 힘이 없다. 이것은 교회가 담대하게 어둠의 나라를 공격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교회는 공격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서 있기에 흔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나라를 흔든다.
둘째로 교회와 천국의 관계이다. 예수의 교회건설에 관한 말씀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19)로 나아간다.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단지 베드로와 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베드로만 언급된다 (마 18:18 참조). 교회의 일원인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는 것은 교회에 준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스어로 보면 열쇠는 복수로 사용되었다 ("열쇠들"). 교회는 천국의 열쇠들을 받는다. 교회는 음부에 대하여는 문들을 깨뜨리는 전투적인 모습을 가지지만, 천국에 대하여는 문을 순조롭게 여는 자격을 가진다. "천국의 열쇠들"을 가진다는 것은 선교적인 의미로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문을 여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마 23:13 참조). "열쇠들"은 교회가 다양한 방면에서 선교를 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 교회는 이러한 천국의 열쇠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게는 땅에서 하늘의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교회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게서도 풀릴 것이다" (19). 교회에게 하늘과 땅을 엮는 권세가 허락되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첫째로 교회가 얼마나 능력적인지를 배운다.

2. 설교의 요점 구상

교회는 신학적 설교를 듣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미숙아의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항상 허약한 체질을 벗어나지 못하며 조금만 건드려도 늘 넘어지고 만다. 신학은 교회를 견고하게 만든다. 본문에 나오는 교회론은 비록 간략하지만 교회의 근거와 교회의 소속과 교회의 능력을 치밀하게 설명해준다.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교회나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신분을 가지지 않은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 예수께서 설립자와 소유자가 되지 않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음부(하데스)의 문들을 깨뜨리지 못하거나 천국을 여는 열쇠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는 힘있는 교회가 아니다. 본문에 언급된 교회에 관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의 참된 기반이 무엇이며, 교회의 참된 소속이 무엇이며, 교회의 참된 능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교해주면 신자들에게 성숙함과 강인함과 견고함이 주어질 것이다.

3. 설교 작성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의 다섯 가지 말씀이 나온다 (17-19). 첫째는 하나님의 계시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근거라는 말씀이다 (17). 둘째로 베드로에 대한 것으로서 "너는 베드로(= 페트로스, 작은 돌)이다"라는 말씀이다 (18). 셋째로 예수에 대한 것으로서 "내가 이 반석 (= 페트라)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18). 넷째는 음부에 관한 것으로서 "음부의 문들이 그것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18). 다섯째는 천국에 관한 것으로서 "천국의 열쇠들을 너에게 줄 것이다"라는 말씀인데, 여기에 매는 것과 푸는 것의 권세에 대한 말씀이 곁들여진다 (19).
본문은 지금처럼 예수의 다섯 가지 말씀을 하나 씩 풀어나감으로써 설교화 될 수 있다. 이렇게 한 구절씩 해설하고 나서 매 단락마다 마지막에 신학적인 정리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면 훨씬 앞에서 본문을 이해한 것처럼 신학적 용어들(교회의 근거, 교회의 소속, 교회의 능력)을 소제목으로 걸어놓고 각 구절을 해설해도 괜찮다. 이런 방식은 청중에게 아예 교회론의 몇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주 명쾌한 설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교회론을 가르치는 이런 신학적인 설교가 성공한다면 청중은 교회의 부요함을 보다 더 크게 느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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