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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사귐과 연대로의 초대 -고후9:10-15

by 【고동엽】 2022. 7. 7.
사귐과 연대로의 초대
고후9:10-15
(2015/10/4, 세계성찬주일)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성찬례의 깊은 뜻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10월의 첫 주일인 오늘은 세계 성찬 주일로 지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상 도처에 흩어진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하나임을 재확인하기 위한 날입니다. 바울 사도는 일찍이 교회를 비롯한 온 세상의 일치에 대해 심오한 통찰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엡4:4-6)

이런저런 형태로 분열된 세상에 사느라 힘겹지만 이 구절을 반복하여 읽다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의 자리 앞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마지막 만찬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자리이지만 오늘 성찬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회의 수장이었던 로완 윌리엄스는 성찬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이 언제나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환영받는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김기철 옮김, 복있는사람, 2015년 7월 15일, p.73)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의 손님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냉대하였을지 몰라도 주님은 우리를 친절과 사랑으로 받아들여 주십니다. 성찬을 뜻하는 그리스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의 기본적 의미는 '감사'입니다. 성찬은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감사로의 초대입니다. 주님의 초대를 받아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또한 누군가를 자기 삶 속으로 초대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과 배고픔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는 난민들의 존재는 오늘의 문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물음표입니다. 예수님이시라면 기꺼이 그들의 품이 되어 주셨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 또한 낯선 타자들을 환대하고, 그들을 위해 우리의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 고통 나눔
오늘의 본문은 교회의 하나됨이 어떻게 정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교회는 개체교회로서 생존에 급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랬더라면 교회는 진작에 소멸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 사도는 각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공교회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단초가 되었던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겪고 있었던 곤경이었습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의연금 마련을 부탁했습니다. 그 지방 교회들은 기꺼이 그 부탁에 응했습니다. 왜 우리의 헌금을 낯모르는 이들을 위해 사용해야 되느냐는 저항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의 빚을 진 이들로서 모교회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워했습니다. 저는 이게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에 있는 여러 교회의 헌신을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고후8:2)

넉넉하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연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징표가 아닐까요?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나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남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그런 사랑의 연대에 동참하는 이들은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9:7). 자발적으로, 또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도 채워주시고, 그들의 삶을 부요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부요함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넉넉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유가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남과 더불어 나누려는 마음이 큰 사람이 진짜 부자인 것처럼, 자꾸 나누는 일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물질에 덜 얽매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게 진짜 부요함이 아닐까요?

• 은혜의 세계 속으로
바울은 성도들이 수행하는 이런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함을 채워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잘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과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복의 매개자가 되라 이르셨습니다. 이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일을 통해 우리가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헛된 칭찬을 구하거나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은 가리워집니다. 사랑의 실천은 우리의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대목이 제게는 아주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14). 낯모르는 이를 그리워한다는 것, 이것이 사랑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저만치에 믿음의 등불을 밝혀들고 서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든든해집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다가 엉뚱하게도 김소월의 <가는 길>이 떠올랐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는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누군가를 그립다고 말하는 순간 그리움이 강물처럼 밀려옵니다. 강물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서 따라오라고 내처 흐릅니다. 아련한 그리움이 절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움이야말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하나된 세상을 향한 그리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리움, 저만치에서 같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우리 속에 있는 한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앞서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이 손님임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스스로 환영받는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낯선 누군가를 우리 삶 속에 손님으로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이야말로 낯선 세상, 고장난 세상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끈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 주님이 기뻐 사용하실 사랑의 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5년 10월 04일 11시 57분 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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