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잉태하는 사람들 습3:14-20 (2014/11/30, 대림절 첫 주) [도성 시온아,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아, 즐거이 외쳐라. 도성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징벌을 그치셨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왕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할 것이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축제 때에 즐거워하듯 하실 것이다."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네가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겠다. 때가 되면, 너를 억누르는 자들을 내가 모두 벌하겠다. 없어진 이들을 찾아오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모으겠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부끄러움을 겪던 나의 백성이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겠다. 그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그 때에 내가 너희를 고향으로 인도하겠다. 사로잡혀 갔던 이들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데려오고, 이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영예와 칭송을 받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한다."] • 미친 세상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기다림의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할 때이지만, 올해의 기다림은 설렘보다는 아픔이 더 큽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고통 가운데 견뎌야 했던 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배신,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일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림절의 초를 하나 밝혀놓고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허망한 기다림이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 세상이 너무 흉포해져서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동거 중이던 10대들이 아기를 낳아 냉동실에 넣어놓고 나가 컴퓨터 게임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흉포함이 아니라 영혼 없음의 징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40대의 한 남자는 임신 7개월이었던 캄보디아 출신 아내 앞으로 95억 상당의 보험을 들어놓고는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 태중의 아이와 아내를 함께 죽였습니다. '돈 세상'이 만들어내는 살풍경입니다. 이쯤 되면 성경에 나오는 귀신 들림에 대한 이야기가 어리석은 옛 사람들의 신화적 기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퍼거슨 시에서 시작되어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사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공평과 인애의 터전 위에 세워진 곳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살의 아프리카계 미국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한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그 경찰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입주민의 모욕을 견디다 못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 아파트 경비원들이 전원 해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아파트의 명예를 실추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들은 정말 '명예'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들의 관심이 사실은 명예가 아니라 아파트 값 떨어질까 하는 염려라는 사실을 압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세상',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는 세상'의 꿈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주님을 기다립니다. •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예언자 스바냐는 왕족 출신으로 예루살렘의 정치상황을 잘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바냐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입니다. 스바냐서의 핵심어는 '여호와의 날'인데, 그 날은 곧 심판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이 오면 모든 이방 원수들이 벌을 받고 자기들이 역사의 중심 무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언자들은 그 날이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의 날이기도 하다고 외쳤습니다. 그날이 오면 사람들이 마련한 안전장치는 다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선민이라는 자부심, 애써 모은 재산, 사회적 명성은 모두 구름처럼 흩어지고, 벌거벗은 존재 하나로만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날은 신실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날입니다. 스바냐는 하나님의 분노(ira Dei)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의 눈에 비친 상류층들의 모습은 타락 그 자체입니다. 대신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과 같이 거들먹거리고, 재판관들은 저녁 이리 떼처럼 자기 이익에 발밭을 뿐 공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거만하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나 더럽히며 율법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총체적 난관입니다. 백성들조차 그런 풍조 속에서 제 살 길 찾기에 분주할 뿐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스바냐는 '주가 제물을 잡는 날'이라 이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 이방 풍속에 물들어 사회 정의를 저버린 자들, 폭력과 속임수로 제 잇속이나 차리는 사람들에게 그 날은 재앙의 날이 될 것입니다. 종교 의식은 번다하게 실시되지만 믿는 이들의 삶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현실, 즉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횡행하는 세상을 하나님은 차마 보고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의 심판 예언은 늘 참회의 권고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겸손한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2:3)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는 뜻의 스바냐의 이름이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과 호응하고 있습니다. • 별을 낳는 사람들 어느 시대에나 세상 논리에 물들지 않은 이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기에 어리석은 자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날이 오면 현실은 역전됩니다.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다. 이스라엘에 살아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3:12-13) 오늘 본문은 그 남은 자들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기쁨에의 초대입니다. 주님의 징벌이 그치고, 원수는 쫓겨나고, 왕이신 주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시니, 더 이상 해를 받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3:17) 예언자의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믿는 자들과 겸손한 자들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시는 주님의 모습, 왠지 정겹습니다. 어지럽기 이를 데 없는 시대, 폭력과 착취가 일상이 된 시대, 하나님은 뒷전이고 욕망이 신처럼 군림하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별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정진규 선생은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지금 대낮인 사람, 그러니까 스스로 밝다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별을 낳는 이들이 있습니다. 희망을 잉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흉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들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는 그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맥을 놓고 기다리면 안 됩니다. 진실한 기다림은 그 기다림의 내용을 우리 삶 속에서 앞당겨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면 지금 하나님 나라를 우리 가운데서 실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지금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지금 길을 잃은 사람을 찾아가고, 지금 배고픈 이들에게 상을 차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어둠을 더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이 힘을 쓸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에도 착수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별을 낳는 일입니다. 비판만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연대하여 서로에게 힘을 주어야 합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이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긴 싸움에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멋진 일에 동참하라는 부름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밝혀진 저 촛불은 미약합니다. 하지만 그 초가 하나 둘 늘어날 때 세상은 밝아질 겁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번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 내면에 환한 별이 밝혀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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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날 짜 | 2014년 11월 30일 11시 46분 22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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