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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거기 한 사람이 있었다 -행27:33-38

by 【고동엽】 2022. 7. 5.
거기 한 사람이 있었다
행27:33-38
(2014/10/5, 세계성찬주일)

[날이 새어 갈 때에,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빵을 들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떼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용기를 얻어서 음식을 먹었다. 배에 탄 우리의 수는 모두 이백일흔여섯 명이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 남은 식량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였다.]

• 불의의 연대
주님의 은총이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주중에 우리는 또 다시 가슴 철렁한 일을 만났습니다. 홍도 앞바다에서 유람선 바캉스호가 좌초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홍도 주민들의 적극적인 구조 활동으로 인명 피해가 나지 않았습니다. 좌초된 바캉스호는 선령이 27년 된 배로 역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것을 들여왔다고 합니다. 대형 사고를 겪은 후에도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여전합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세태에 변화가 없음을 재확인하는 마음이 씁쓸합니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이게 무너지고 있으니 우리 삶은 늘 위태롭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오늘의 본문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배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이사랴에 몇 해 동안 구금되어 있던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함으로써 로마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압송할 책임을 맡았던 백부장 율리오는 그들을 아드라뭇데노 호에 태웠습니다. 그 배는 지중해 연안을 끼고 항해하여 지금의 레바논 땅인 시돈에 이르렀고, 맞바람 때문에 키프로스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앞 바다를 가로질러 루기아에 있는 무라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탔습니다. 맞바람이 심했습니다. 배는 크레타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 항해하다가 크레타 남쪽 해안의 '아름다운 항구'에 닻을 내렸습니다. 항해하기에 위태로운 때였습니다. 바울은 그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기로 작정하고 항해를 서둘렀습니다.

항해 일자를 줄여 이득을 많이 남기려는 선장과 선주의 이해관계와 편하고 안락한 곳에서 쉬고 싶은 군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위험이 예기되었지만 그들은 '잘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댔습니다. 순하게 남풍이 불었고 항해는 순조로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섬 쪽에서 몰아치는 광풍 유라굴로를 만났습니다. 선원들이 배를 어떻게든 통제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속절없이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었습니다. 좌초를 막기 위해 짐을 바다에 던지고, 항해에 필요한 필수 장비마저 버렸습니다. 해도 별도 보이지 않는 날이 여러 날 계속되었습니다.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광풍을 잠잠케 하셨던 주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요나서의 선원들처럼 희생양을 선택하여 바다에 던지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에 탄 이들은 여러 날 먹지 못해 기운이 빠졌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영혼이 절망과 낙담의 바다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포와 원망이, 그리고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었을 겁니다. 작은 불꽃 하나만 튀어도 폭력적인 상황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아, 바울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옵니다. 그 희망은 경험 많은 선원들을 통해 오지 않았습니다. 침착하고 용감한 백부장을 통해 오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려는 한 사람, 바울을 통해 왔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살리려는 바울의 마음은 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곤경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안전 보장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증언은 절망의 심연에서 허덕이던 이들의 내면을 밝히는 실낱같은 빛이 되었을 겁니다.

그 후에도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열나흘째 밤이 되었을 때 그들이 탄 배는 아드리아 바다를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수심을 재보자 점점 얕아지고 있었습니다. 암초에 걸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선원들은 닻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선원들은 좌초할 지도 모를 배를 버려두고 자기들만 빠져나가기 위해 슬쩍 거룻배를 풀어 내렸습니다. 눈치 빠른 바울이 그 사실을 백부장에게 알려 선원들의 탈출을 막았습니다. 그런 소동 가운데 날이 샜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33-34)

그는 마음조리며 지낸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을 함께 겪었기에 그 공감은 진실합니다. '입장의 동일함'이야말로 관계의 최고 형태라지 않습니까?(신영복) 바울은 그들에게 음식을 권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음식 모티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압니다. 이세벨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가 로뎀나무 아래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위해 천사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을 준비해주었습니다(왕상19:5-8).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깊은 절망에 빠졌던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로 돌아갔을 때 해변에서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신 주님의 모습도 떠오릅니다(요21장). 음식을 먹는 행위처럼 거룩한 것이 없습니다. 음식 나눔은 타인을 내 삶속으로 영접하는 일이고, 따라서 경계선을 지우는 일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음식을 권함으로 그들의 육체의 필요를 채우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운명공동체로 빚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빵을 들어 모든 사람 앞에서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것을 떼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도 하늘을 우러러 축복기도를 올리신 후에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먼저 뗀 빵을 먹은 것이 차이라면 차이이겠지만 그것은 제 배를 먼저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용기를 얻어서 음식을 먹었다."(36) 그들은 '빵'이라는 물질을 먹었지만 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먹은 것이었습니다.

• 절망의 먹구름 속에서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위험 속으로 내모는 선주와 선장, 그리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군인들로 상징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나라는 풍랑을 만난 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아드리아 해를 표류하던 그 배에는 바울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과 지혜와 용기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런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깊이 접속된 사람은 세상이 절망의 먹구름으로 덮여 있다 하여 낙심하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영접합니다. 엘리야가 그랬듯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이 아름다운 성찬을 통해 또 다시 순례자로 살아갈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 하늘의 빛을 가져가십시오. 지금 울고 있는 이들 곁에 다가가십시오.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열기 위해 땀 흘리십시오. 하나님은 이웃의 운명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려는 이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4년 10월 05일 11시 55분 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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