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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예화 모음 23편

by 【고동엽】 2022. 6. 10.
[처음 목차 돌아가기]
 
 

1. 무거운 짐의 복

하루는 새 한 마리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무거운 날개를 두 개씩이나 양 어깨에 달아놓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날 수 있는 것은 그 무거운 날개 때문이란다”
우리는 하늘을 날기 원하지만 무거운 날개는 싫어합니다. 무거운 짐을 싫어합니다. 모세도,엘리야도 짐이 무거워 이제 죽여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그 짐 때문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선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에 선교를 갔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 가슴에 안겨주었습니다. 자신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 선교사는 그 이유를 강 중간쯤 왔을 때 알았습니다. 강 중간쯤에 급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만약 무거운 돌이 없었다면 급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무거운 짐이 자신들을 살린다는 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가볍고 편한 것만이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침체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2. 농부와 어미새

어미새 한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썩은 나뭇가지 위에다 둥지를 틀었다. 마침 이를 본 농부는 그 둥지를 헐어버렸다. 새는 다음날 똑같은 자리에 다시 둥지를 짓기 시작했지만 농부는그것마저 헐어냈다. 그러기를 수차례 마침내 새는 그 가지를 버리고 다른 가지로 옮겨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새가 안전한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것을 보며 비로소 농부는 빙그레 웃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뜻 모를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실한 성도들이나,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뜻 모를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곰곰 살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정확히 알고 계시며 무엇보다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3.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패배가 승리를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만 좋을까
지금의 실수가 완성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가난이 넉넉함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헤어짐이 새로운 만남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눈물이 웃음을 준비하는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어두움이 광명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핍박이 평안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병듦이 건강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신앙적 어려움이 천국을 위한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신복 목사

4. 시련 앞의 인생

불행해 보이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종일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지긋지긋한 가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큰오빠는 잔칫집에서 얻어온 상한 음식을 먹고 숨졌고 둘째오빠는 굶주린 가족을 위해 피와 쌀을 바꾸었다. 그녀는 공장에 다니면서도 희망만은 잃지 않았다. “내게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역경을 극복하면 반드시 희망의 날이 올 것이다.” 소녀는 기업체 부설 학교에 다니며 꿈을 키웠다. 그녀는 국내 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한 후 오스트리아로 유학,빈의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교 교수로 금의환향했다.
바로 창원대 이점자 교수이다. 그녀는 고난과 시련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성공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은 미풍에도 몸을 떤다. 사람의 운명은 시련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갈린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5. 시련과 훈계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 12:1)

이탈리아에 한 소아마비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비관해 깊은 밤중에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오히려 정신이 더 맑았습니다. 어머니가 딸의 자살의도를 눈치채고 독약이 든 병에 영양제를 넣어 놓은 것입니다. 소녀는 다음 날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주민들의 눈에 띄어 구조됐습니다. 어느 날, 소녀에게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야, 네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으련?” 소녀는 열심히 기도하며 그 대답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깨달은 그녀는 지금 방송국의 인생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온전한 인간을 만듭니다. 시련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재료입니다. 세계적인 작가들은 모두 그 시련을 재료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훈계는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훈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아집이 있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 받을 때 달게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인격적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하고 성숙되는 데에는 훈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훈계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이상 변화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6. 시련과 아이디어

전화를 발명한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햄 벨이다. 그는 평범한 교수였다. 그의 아내가 청각이 나빠서 그 교수는 아내에게 보청기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 노력의 부산물로 전화기가 발명되었다. 문제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위대하다. 모든 생물도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그것에 맞춰 변화한다. 그런 것들에 아이디어가 더해져 새로운 것들을 발명하게 된다. 까마귀는 호두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 까마귀들이 어떻게 호두를 까서 먹을까. 까마귀들은 호두를 물고 하늘 높이 날아가서 단단한 바위에 떨어지게 한다. 그러면 호두는 깨어지고 영리한 까마귀들이 급강하해 고소한 호두알을 먹어치운다.
사람은 실수와 시련을 통해 연단된다. 그러므로 문제가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그 시련의 순간이 내게 유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출처: 국민일보

7. 처칠의 좌우명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피하여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사노라면 몇 번인가 우리는 이런 위기와 대면하게 됩니다. 윈스턴 처칠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 절대로 뒤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위험은 두 배가 되는 법이다. 반대로 단호하게 거기에 맞서면 위기는 반감된다.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된다. 절대로 도망치지 말라.'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원치 않는 삶의 위기가 찾아와 도적처럼 내 삶을 훔치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굳건히 자신의 삶을 지키는 용기가 아닐까요?
< 오인숙 / 교단작가>

8. 정면 돌파

자기 이름을 걸고 식당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계신다. 한때 식당이 크게 번창하자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가 돈을 횡령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파동이 일면서 손님이 줄고, 공동 투자자들까지 압박을 가해왔다. 막다른 골목에서 도피할 생각도 했으나 기도하는 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문제를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전 재산으로 투자자들의 부채를 일부 갚고, 모자란 부분은 세월을 두고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재신임을 얻는 계기가 되어 다시 가게를 운영, 지금은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
위기 앞에선 누구나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과 용기로 난관을 향해 정면 돌파하는 사람은 전화위복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시 46:1)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9. 시련극복

중국의 유명한 복음전도사 이도슝 목사의 체험담이다. 그는 20대에 폐결핵과 협심증으로 살 소망이 없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자기가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양쯔강을 건너려고 하는데,강 한가운데쯤 가서 배가 큰 바위에 걸려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꿈 속에서 ‘하나님,내 배가 지나가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했다. 그때 ‘내가 바위를 옮겨줄까. 아니면 물이 불어나게 하여 바위를 덮어 배가 그 위로 지나가게 해줄까’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가 ‘물이 불어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자,순식간에 물이 불어나서 바위를 덮으니 바위에 걸린 배가 물위로 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의 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병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셨다. 그는 세계적인 전도사가 되어 69세까지 사역했다. 그가 바로 워치만 니라는 전도자다. 유혹은 피해야 하지만 시련은 극복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성령을 힘입어 시련을 극복한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10.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느 날, 한 전도사가 소록도를 방문해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통성기도 시간에 옆에서 한 형제가 통곡하며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데유."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도대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기에 그러나?”하고 그를 자세히 쳐다보자 그의 한쪽 눈은 골아서 없었고, 귀와 코는 문드러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입은 돌아간 상태였고, 손가락은 다 없어져 뭉뚝한 두 팔뚝만 보였다. 그 팔뚝으로 예배당 바닥을 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느냐?”고 울며 기도하는 것을 보고 전도사는 충격을 받아 그를 붙들고 함께 통곡하며 기도했다.

 


예배 후에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은혜를 그렇게 크게 받으셨나요?” 그가 말했다. “제가 병들자 제일 먼저 7년 연애하고 결혼한 아내부터 나를 버렸고, 곧 형제들도 나를 버렸고, 나중에는 저를 보고 눈물 짖던 부모님도 저를 버렸어요. 그래서 죽으려는데 그때 하나님이 저를 만나 주셨어요. 하나님은 찬송할 때마다 저를 반겨주셨고, 성경을 펼칠 때마다 저를 위로하셨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고,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셨으니 그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갚나요?”
그의 고백을 들으며 전도사는 마음의 고민과 상처가 다 녹아내리는 체험을 했다. 그 한센병 환자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보통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더 크게 고백해야 하는가?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보이고, 마음의 각종 상처도 다 씻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인간은 진흙이다. 토기장이가 인내로 토기를 빚는 것처럼 하나님은 주변 환경과 사람을 통해 나를 인내로 빚으신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는 나를 잘 빚으려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그를 통해 신앙인격과 가치관이 빚어진다. 성도는 어떤 현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미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며 녹로란 회전도구를 쓸 때 녹로의 속도를 잘 조절해 돌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각 사람의 환경을 배정하고 그 배정된 환경이 성도들을 빚는다. 그러므로 시련에도 감사하라. 위기란 ‘위험 속의 기회’이다. 위기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자기가 실수하거나 어리석어서 위기가 닥쳤어도 일단 그 위기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믿고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토기장이가 녹로를 통해 모양을 다 빚으면 뜨거운 가마에서 그것을 굽는다. 토기장이의 가마는 성도의 시련을 뜻한다. 그릇은 뜨거운 가마를 통과하기 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가마의 뜨거운 열이 그릇에 힘과 미를 주고 유용성과 가치를 높인다. 수많은 성인들은 다 뜨거운 가마를 통과했다. 성령의 불세례가 주어지는 주요한 목적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시련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한규

11. 불 시험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10여명이 모일 때였다. 교회 주변의 술집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때문에 예배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었다. 술꾼들의 유행가 소음은 번번이 설교를 방해했다. 어떤 때는 찬송가를 부르다가, 술집의 유행가에 말려드는 느낌도 들었다. 교인들은 마음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됐다. 술집이 밀집한 지역에 문제가 발생해 재건축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교회 주변은 아주 청정한 곳으로 변모했다.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우리는 경건한 예배의 감동을 몰랐을 것이다. 그 고난의 세월을 통해 예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금은 불 속에 들어가면 불순물이 제거된다. 교회와 성도는 이런 시험을 통해 정금처럼 연단된다. 고난 없이 얻어지는 것은 보통 무가치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시련의 용광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불 시험을 통과한 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12. 시련이 주는 유익

우리는 시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약하거나 우리의 감정이 너무나 지나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고통은 축복을 위한 수순이며 불행은 행복보다 값진 것이며 패배는 승리보다 좋은 것이라고 억지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두각시 조종자도 마술사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며 우리 생명의 원천이시며 모든 것들을 성장시켜 충만에 이르도록 하시는 선한 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련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관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위협적인 도전들과 파괴적인 공격 속에서, 순진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실패한 사람들이 겪는 역경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던져진 시련을 이해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가운데 시련이 내포하고 있는 각각의 차원들과 시련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값진 의미들을 조금씩 이해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바로 시련의 영성이다. 이처럼 시련의 영성은 어떤 과정 안에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의 모습을 더욱 성숙하게 변화시켜주는 촉매제이며 은혜의 선물이다.
- 「시련 그 특별한 은혜」/ 조안 D. 치티스터

13. 시련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보통 극한 고통을 만날 때 삶의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존 버니언은 얼음장같은 감옥 속에서 천로역정을 집필했다. 파스퇴르는 반신불수 상태에서 질병에 대한 면역체를 개발했다. 프란시스 파크맨은 시력이 약해 종이에 커다란 글씨로 ‘미국사’라는 20권의 대작을 집필했다. 에디슨은 청각장애자였으나 축음기를 발명했고 밀턴은 사각장애인이었으나 영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았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지체장애인이었으나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역사는 고통과 시련에 용감하게 맞선 사람들에 의해 새로 쓰여진다. 태풍이 몰아치면 닭은 자신의 날개속에 머리를 파묻고 잔뜩 움츠린다. 그러나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바람을 이용해 유유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바이킹은 북풍에 시달릴 때 큰 배를 만들었다. 위인들은 인생의 위기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시련을 ‘신의 저주’로 여기고 움츠리는 사람이다.

14. 시련의 열매

6.25전쟁은 민족의 고난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를 통해 각성과 변화 를 체험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鍊達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브리서12:1 1). 빈의 어떤 음악교수가 한 성악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은 천부 적인 소질이 있소.그러나 지금까지 너무 평탄한 길을 걸어왔소. 어느 땐가 큰 시련을 통한다면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성악가가 될 것이오』

15. 시련 없는 영광은 없다

시드니 올림픽 여자 다이빙에서 우승한 미국의 로라 윌킨슨. 그녀가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당한 것은 지난 3월. 코치는 윌킨슨을 향해 '올림픽 출전불가'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에 수십 번씩 한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림픽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금메달을 획득했다. 윌킨슨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성구는 빌립보서 4장 13절이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희망적인 성구 하나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운동선수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육상 여자 800m 금메달 수상자인 모잠비크의 무톨라. 포연이 걷히지 않는 전장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마땅한 놀이가 없어 남자들과 축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굶주림과 고독을 재료로 삼아 세계 최고의 육상선수로 우뚝 섰다.
시련 없는 영광은 없다. 고난은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최상의 재료다.

16. 그리스도인들이 겪은 시련

성경: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2세기경 기독교를 이교 및 유대교와 대조한 문서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에는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나라에 살지만 그냥 체류자들처럼 산다. 남들과 똑같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분담하면서도 체류자자들 처럼 산다. 남들과 똑같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분담하면서도 체류자들이 겪는 상황을 고스란히 참아낸다. 육체를 입고 살지만 육체를 따라 살지 않는다. 지상에서 세월을 보내지만 천상의 시민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규정된 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법을 능가하는 생활을 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비난을 받는다.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케한다.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매사에 넉넉히 지낸다. 불명예를 당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칭송을 받는다. 욕을 먹어도 복을 빈다. 모욕을 당해도 정중한 태도로 갚는다. 의를 행하면서도 행악자로 처벌을 받는다.
처벌을 받을 때에도 기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미워하는 이유를 대지 못한다."
/정존수 목사

17. 태풍이 주는 은혜

올 여름에도 벌써 몇 차례 태풍이 발생했다. 5호 태풍 라마순이 순하게 지나갔나 했더니 또 6호 태풍 차타안이 발생했다고 한다.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여 아시아 동부로 불어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대성 폭풍 이상을 태풍이라고 한다. 태풍은 발생 후 북진하여 우리나라 쪽으로 다가오다 동해쪽으로 빠져나가 태풍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태풍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큰 비구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추수기에 닥치는 늦은 태풍은 농부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태풍이 오지 않는 해는 바다농사를 망치게 마련이다. 태풍은 큰 놀을 일으켜 바닷속까지 산소를 공급해 풍어를 가져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고 바람의 길을 정하신다고 하였다. 세상의 큰바람 뒤에는 하나님의 잔잔한 은총이 숨어 있다. 태풍도 유익한 은혜이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18. 더 훌륭한 군대로 쓰려고

영국의 브링턴에 있는 한 교회 뜰에는 끊임없는 노력 덕택에 잡초 하나 없이 꽃들로 만발해 있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중앙에는 프레드릭 로버트슨(Fredrik Robertson)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부친은 영국 군대(미국 전쟁 중의)에서 전사했으며, 그는 어린 시절을 주로 레이스에 있는 요새 주위를 뛰놀면서 보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성격으로 해서 그는 영국군의 장교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이름은 총사령관 리스트에까지 올랐으나, 몇 가지 이유로 해서 끝내 임명되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옥스포드(Oxford Univ.)에의 입학을 허락받았으며, 마침내는 성직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전 크리스천들은 그가 군대로의 길은 막혔지만,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오늘날 매우 기뻐하고 있다.

19. 어부와 해초

어떤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이상하게 해초가 많아서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어부가 말하기를 "그렇지만 해초가 없으면 새우 새끼도 없단 말이다. 그리고 새우가 없으면 고기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정말 우리 생활 가운데 해초 같은 장해물이 늘비하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성도들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20.시련은 우리를 온전케 한다.

찰스 코우만 여사는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 동안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맨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저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 다닐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온 탓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이 없는 삶을 동경하며, 시련이 없는 삶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련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3,4.)
* 기도: 주님, 시련을 맞게 될 때 그 시련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저희에게 허락하시옵소서.

21. 아픔

인도에 의료 선교사로 나병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폴 브랜드' 박사는 자신도 나병에 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불안해하던 어느 날 그는 드디어 발뒤꿈치가 무감각해진 것을 느꼈고 그러자 즉시 주사 바늘로 찔러 보았다. 순간 커다란 아픔을 느끼자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축복된 아픔'이라고 감사했다 한다. 문둥병과 같은 죄가 우리의 영혼을 감염시켰을 때 하나님은 경고의 아픔을 주신다. 이 아픔은 그 영혼이 살아 있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계심을 알게 하는 아픔이며, 죄의 감염을 방지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죄를 범했을때 그것이 아픔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죄를 범해도 감각이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다

22. 생애 최고의 해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됩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23.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성경: 시편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시련과 고난은 우리에게 침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 그 아픔으로 인해 땅을 치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그 고난과 상처의 현장에서 진수 성찬을 성도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 어느 교회보다 능력 있고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된 것은 6·25전쟁이라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얻은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 그 고통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 부활과 영원한 영광, 만왕의 왕으로서의 보좌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련과 고난을 당하거든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탄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수 성찬이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승리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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