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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길 】예화모음 15편

by 【고동엽】 2022. 6. 9.
[처음 목차 돌아가기]
 
 
 
1.두 갈래 길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당신이 이루어야 할 귀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사십니까?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공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 버려 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또 헛된 것입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모, 형제, 처, 자식과 그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떠나야 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풍랑을 만나 고통중에 신음하는 이들이여
인생의 풍랑을 만나 절망의 늪을 헤메이는 이들이여
영혼의 풍랑을 만나 참평안과 자유를 모르는 이들이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당신을 구원하신 예수 이름을 믿고 지금 부르십시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눅8:24)
예수 믿고 지금 구원받으십시오.




 
 

2. 길 없는 길을 가는 사람

영국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리빙스턴의 친구 몇몇이 아프리카에서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그를 도울 사람 몇 명을 보내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끝에는 '…음, 그러니까 그곳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해!' 길이 없어도 가겠다는 사람, 그만큼 패기 있고 진실한 사람을 원한다는 뜻이겠지요. 혹 우리는 지금 너무 쉬운 길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미래가 보장된 안전한 길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진우 목사




 
 

3.처음 길을 내는 사람

우거진 숲 속에서 처음 길을 내며 가는 사람은 먼저 마음속으로 길을 구상한다.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네 삶은 유년 시절 꾸어본 그 꿈을 현실로 드러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김종록의《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1)》중에서 -

* 숲 속 오솔길도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달나라에 가고 명왕성에 이르는 저 먼 하늘길도 한 사람의 어린애 같은 천진무구한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여러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면 길이 없던 우거진 숲 속에도 길이 생깁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4.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

서 아프리카에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는 한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기도하는 밀실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마을 크리스천들은 오두막 뒤 숲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늘 기도하곤 했다. 그래서 모든 오두막 뒤에는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기게 되었다. 기도하러 들어가고 나가는 발걸음으로 인하여 생긴 거룩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열대 지방에서는 식목이 빨리 자라므로 이 길을 조금만 사용하지 않으면 잡초가 곧 무성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크리스천들이 지나다가 그 길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면 근심스런 표정으로 "형제여, 그길에 뭐가 많이 생겼군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 길이 그의 신앙의 척도로 판단하게까지 되었다. 기도는 크리스천들의 신앙 생활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호흡이 원할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빨리 고침을 받아야지 오래 가면 갈수록 합병증이 병발한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속히 고침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건강이 한 모퉁이로부터 계속 무너져가는 것이다. 마치 기도하러 들어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하듯 우리의 신앙의 길에 마귀가 뿌린 잡초가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5.길을 잘못 알려주면

미국 동부에 혹심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승객 중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내릴 역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내릴 역을 가르쳐 드리지요" 기차는 눈보라를 뚫고 서서히 달렸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어서자 신사가 여인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내리십시오" 여인은 신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안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신사는 머리를 감싸안으며 울부짖었다. 여인이 내려야 할 역은 바로 이곳이었다. 신사는 기차가 잠시 멈춘 줄도 모르고 여인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튼날 여인이 내린 철길 옆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을 한 눈덩이가 발견됐다. 여인은 철길에서 아기를 안은 채 얼어죽은 것이다. 사람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비극적인가. 하물며 영혼을 잘못 인도한다면 어찌되겠는가?


 
 



6.선한 길잡이를 만나는 행운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입니다. 다른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정하는 데도 길잡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암벽에 부딪쳤을 때에,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상황이 발생한 그 곳의 지리를 잘 알아서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좋은 길잡이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더 좋은 길잡이를 만났더라면 훨씬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좀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인생의 길잡이가 있는지요?
< 조승희 / 목사>


 
 



7.오직 한 길

길에는 보통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사람, 차, 배,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다. 육지에는 도로, 바다에는 해로, 하늘에는 항로가 있다. 둘째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이다. 세 번째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다. 그런데 죄인이 의인 되고 저주가 축복 되고 지옥이 천국 되는 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미국에는 샌프란시스코시와 마린반도를 연결하는 금문교가 있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건너는 데 3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10분도 안 걸린다. 공학도 조지프 스트라우스의 설계와 지휘로 완공된 이 다리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십자가로 연결해 놓은 구원의 길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는 길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8.인생의 길

이슬람교를 믿던 터키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사에게 들켜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문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전에 내가 어디를 가다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두 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길을 물어본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 봐야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 줄 알면서 왜 당신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라고 하십니까?"
당신들이 믿으라고 하는 마호메트는 죽은 사람이요,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예수는 산 예수입니다. 어찌 죽은 마호메트를 의지하겠습니까? 길 되신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 뻔한 노릇인데 참된 인도자를 찾아가는 나를 왜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교사는 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24:3,4)


 
 



9.영생에 이르는 길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은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죽어가는 펠릭스 리치라는 환자가 목사님 한 분과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가겠다고 약속하고 급히 차를 몰아 그의 병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리치는 “목사님! 제 삼촌도 목사님이었는데 하나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전 듣지 않았답니다. 제 아내가 늘 저를 교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전 가지 않았어요. 이제 저는 창조주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제 일생은 죄로 가득합니다. 아! 어떻게 하죠?”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와 용서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진실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 리치는 회개하고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목사님은 문병을 갔는데 놀랍게도 리치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주 후에 그는 퇴원을 하고 주일에 목사님의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 후로 8년 동안 매주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0.구원의 길

미국에서는 매해 미식축구를 하다가 2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만 명이 부상을 당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게다가 희생자의 40%는 15- 19세의 청소년들입니다. 미식축구는 워낙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튼튼한 헬멧과 여러 가지 부상 방지용 장비를 갖추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비가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상대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줄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방비 도구란 이렇게 하찮은 것입니다. 율법이니 도덕이니 하는 으리으리한 장비도 인간을 죄에서 건져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고행을 하고, 선한 의지를 갖고 있어도 죄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독생자 예수를 통한 구원의 길뿐입니다. 때로는 세상의 방법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외형만 그럴 뿐 실상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는 잠시 덮어두거나 임시 방편으로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죄 앞에서 인간은 생명이냐 사망이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생명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 기도: 세상의 어느 것도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11.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하나

신문 1면에 나란히 실린 13살 난 두 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그 지방의 철자 맞추기 대회에서 우승해 전국 결승전에 출전한다는 기사였고, 또 한 소년은 살인죄로 체포되어 변호사들과 형사상 기소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두 소년은 놀랍게도 쌍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소년의 삶이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소년은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또 다른 소년은 결국 살인자로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같은 환경이 부여되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죄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짐으로써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을 드렸고,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마음을 고치고 순종하면 그를 용납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항하여 아벨을 죽였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아벨의 순종의 길입니까? 아니면 가인의 죄악의 길입니까?


 
 



12.하늘의 길과 땅의 길

나그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아득했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높은 산과 바다와 골짜기도 넘어야 했습니다.
한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노라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다른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길이란 땅에 있습니다. 땅을 보면서 걸어가야 합니다. 하늘을 본다고 길이 보입니까?” 한 나그네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을 보면 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을 보고 가렵니다.” 그러자 다른 나그네가 대답합니다. “땅을 보아야 길을 찾을 수 있지요. 나는 땅을 보면서 가겠습니다.” 이렇게 두 나그네는 서로 자기 의견만 고집하다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한 나그네는 부지런히 하늘을 보며 걸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이 길을 비추어 주었고, 별들이 반짝이며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눈비가 올 것을 알려 주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도 알려 주었습니다. 나그네는 하늘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반면 다른 나그네는 땅만 보며 걸었습니다. 길이 없는 숲속을 헤매고 골짜기를 건너 열심히 걸었지만 캄캄한 어둠뿐이었습니다. 몇 날을 걸어도 산도 하나 넘지 못한 채 오던 길만 뱅뱅 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영혼의 샘터 / 김요한




 
 

13.바른 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연합군의 독일의 숨통을 끊고자 6개월의 준비 끝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운데 토막작전'(The Battle of Bulge)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전은 독일군의 엉뚱한 책략에 의해 지연되고 말았습니다. 미군으로 위장한 독일군이 몇 대의 지프에 나눠 타고 연합군 지역에 침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심한 폭우가 내리는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합군이 세워 놓은 방향표시판들을 아무렇게나 바꾸어 놓았습니다. 잘못된 방향 설정은 결국 연합군에게 큰 혼란을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기에 이릅니다. 신앙의 표지판이 잘못되었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인간의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로서 가야할 길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동일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기도와 말씀 위에 믿음의 표지판을 꽂아 놓고 바른 길을 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성경: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3)
* 기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 우리가 늘 신앙의 표지판을 점검하게 하소서.




 
 

14. 옆집 가는 방법

많은 사람은 자기가 어느 정도는 착해져야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실상 가장 쉬운 일이다. 옆집에 가는 길이 두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옆집까지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그냥 바로 가는 방법이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수고를 다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부족, 자기 잘못, 자기 악습, 자기 죄의식을 다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 처절한 자기 훈련에 들어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영적 변화는 자기 성취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냥 받는 것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서 그냥 “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거기가 바로 옆집이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먼 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15.길

인간의 생활에는 제각기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스승은 사도를 걸어야 하고, 가정 주부는 부도를 걸어야 하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가 있고 예술가에게는 예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야할 길을 바로 걸어야 합니다. 현대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문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이 길을 내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인들이 고속도로와 철도를 많이 건설했기 때문에 그처럼 발달된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랭킹 제9위의 고속도로 국가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전 세계에서 최소공비, 최단시일에 시공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뚫리고 11년동안 보수비가 건설비를 웃돌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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