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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 예화모음 13편

by 【고동엽】 2022. 6. 9.
[처음 목차 돌아가기]
 
 
 
 
1.너그러운 마음

옛날 중국에 자매가 다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욕심이 많고 심술꾸러기였지만, 동생은 그저 착하기만 했습니다. 자매는 성장하여 언니는 대궐 같은 부잣집으로, 동생은 산에 화전이나 일구어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하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언니는 하인들을 부리며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동생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 펼 틈도 없이 농사일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나무를 해서 먼 시장에까지 내다 팔곤 했습니다. 쌀밥은 커녕 보리쌀에 나물을 넣어 끓인 죽으로 한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산다는 것이 너무나 고단했답니다. 동생은 한 짐 가득히 한 나무를 미처 다 팔지 못하고 다시 그것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에는 기운이 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울면서 나무의 일부분을 바닷물 속에 던져 넣기도 했지요. 그런 고단한 삶이 언제 끝날지 아득하기만 했지만, 그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동생은 팔지 못한 나무를 머리에 이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던져 넣으려고 바닷가에 멍하니 서 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바닷물이 갑자기 용솟음치더니 용궁의 시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용왕님이 부인을 모시고 오랍니다. 같이 가시지요.˝ 동생은 시녀를 따라 용궁으로 가서 용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용왕은 그녀에게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겨 주면서 주의의 말을 일러주었습니다. 매일 그 녀석에게 다섯 홉의 팥을 먹이거라. 그 이상 먹이면 절대로 안 되니라.˝ 동생은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용왕의 말대로 팥 다섯 홉씩을 먹였습니다.


고양이는 매일 누런 색의 똥을 누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황금이 아니겠습니까. 동생은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욕심 많은 언니가 가만있을 리 없지요. 그녀는 동생을 찾아와 그 고양이를 빌려 달라고 했고, 거절을 못하는 착한 동생은 순순히 고양이를 내주었습니다. 언니는 빨리 부자가 될 욕심으로 다섯 홉이 아닌 열 홉의 팥을 매일 주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황금 똥을 누기는커녕 죽고 말았답니다. 언니는 그 죽은 고양이를 동생에게 돌려주면서 비록 자신이 황금을 얻지 못했지만 동생이 더 이상 부자가 되지 못하게 된 것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동생은 죽은 고양이를 안뜰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나더니 노란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의 오렌지가 그 열매였지요.



 
 

2.봄바람 같은 마음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장발장, 또 한 사람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히는 형사 자베르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 장발장을 추종하던 청년대원들은 눈엣가시 같던 형사 자베르를 잡아와 총살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그를 풀어줍니다. 충격을 받은 자베르는 장발장을 향해 외칩니다.
“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나를 살려줍니까?” 그러자 장발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장발장의 말에 차갑고 냉혹한 자베르 형사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얼어붙은 골짜기는 봄바람만이 녹일 수 있습니다. 모질어진 가슴은 관대한 마음만이 녹여줄 수 있습니다.
- 이진우 / 기윤실 집행위원 -




 
 

3.어느 무뢰한의 눈물

궁궐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왕과 신하가 흥겨운 마음으로 잔치를 즐기고 있을 즈음,느닷없이그 안의 불이 모두 꺼져버렸지. 때는 깊은 밤이라 주위는 그대로 암흑이었고, 이때를 틈타 누군가가 왕이 가장 총애하는 애첩의 입을 맞춰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애첩은 엉겁결에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뗐고, 곧이어 분한 목소리로 왕에게 고했어.
"폐하, 지금 어느 놈이 신첩에게 해괴망측한 짓을 하기에 그 놈의 갓끈을 잡아떼어 놓았나이다. 어서 그 놈을 잡아내 능지처참하소서."


그러자 이 말에 왕은 노발대발, 당장에라도 그 놈을 잡아죽일 듯이 노기등등했어. 그러나 다음 순간 왕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들으렷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갓끈을 떼지 않는 자가 있으면 용서치 않겠다!"


이러한 왕의 호령에 신하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모두 서둘러 갓끈을 떼어내는 것이었어.따라서, 이후 불을 다시 켜 주위는 밝아졌으나 모두가 다 갓끈을 떼어냈는지라 아까의 무례한 작자를 가려낼 방도가 없었지. 다시금 왕이 말했습니다.
"나의 애첩에게 입을 맞춘 무례한 놈은 살려둘 수 없다. 허나,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이번만은 없던 일로 하겠다. 그러니 그대들은 더 이상 그 일에 신경쓰지 말고 계속 잔치를 즐기라."


그리하여 풍악은 다시 울렸고, 왕과 신하는 또다시 흔쾌한 마음으로 그 밤이 새도록 흥겹게 놀았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라에 위급한 일이 닥쳤습니다.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이웃의 강대국이 급기야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침범해온 것이야.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 마당에 왕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웃나라의 대병을 막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어. 그때였지. 별안간 어떤 장수 하나가 날래디 날랜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비호처럼 나타나 적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던 것이야. 참으로 용맹하기 짝이 없는 장수와 군사들이었지. 그러자 적군은 마침내 패퇴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왕의 감격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럴 수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오? 장군은 도대체 누구요? 누구길래 나를 .......?"
그러자 그 장수는 왕 앞에 무릎을 꿇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폐하께서 저에게 베푼 은혜를 오늘에야 조금 갚았을 뿐입니다. 몇 년 전 궁에서 베푼 연회를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바로 그날 폐하의 애첩에게 불측한 짓을 저지른 무뢰한입니다. 하오나 폐하의 은혜를 입어 무사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언제고 폐하께 목숨을 바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남 몰래 군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자신의 앞에 꿇어앉은 그 장수의 손을 잡는 임금의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어. 그때의 관용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듯 조그마한 관용 하나를 베풀면 그것이 태산보다 더한 보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4.용서와 관용이 있는 세상

당신이 만일 용서와 관용을 선택한다면,무엇보다도 당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의 편안함과 관용과 자비가 샘솟듯이 밀려오게 되며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거짓말처럼 다 이해가 되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용서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다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이는 즉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입니다. 지금 현재를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이 축복임’을 선언하게 된다면 결국 불행은 우리의 곁을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의 유일한 파트너는 축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은 나에게로 다가와 입을 맞추며,손 가락지를 끼워주며,나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함빡 웃으면서 절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하길,“당신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오직 나 축복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축복을 원하신다면 축복 외엔 아무것도 선택해선 안됩니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고 온몸의 느낌에 가만히 집중하면서 그러나 우주의 무게로 진지하게 나의 존재 전체와 온 우주를 향해 이렇게 선언하십시오.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그 순간,당신의 온몸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생기가 돌게 되며 긴장되고 두려웠던 마음,원망과 미움,걱정하고 고민하던 마음이 다 녹아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희망이 생겨나고 답답하던 마음이 탁 트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모습과 말과 행동을 지금 당장 하십시오. 과거도 미래도 몽땅 갖고 와서 지금을 기뻐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지금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을 기뻐하십시오. 과거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듯이 당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표정을 계속 연습함으로써 당신 자신에게서 그 분의 모습과 향기가 흐르게 하십시오. 또한 은은한 내면의 기쁨을 당신 인생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편에 서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늘과 세상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펴고 두 손을 내밀며 맘껏 소리치십시오. ‘모든 것은 축복’입니다.




 
 

5.잘못한 사람을 칭찬하기

남아프리카의 바벰바 부족사회에서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행여나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상당히 흥미로운 의식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계도한다고 합니다. 만일 누군가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저지르면 그 부족원을 마을 한가운데에 세우고 모든 부족원이 모여듭니다. 모여든 부족원들은 잘못한 그 부족원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차례로 돌아가면서 가운데 세워진 부족원이 그동안 베풀었던 선행을 하나씩 말합니다. 그의 건설적인 능력과 선행, 친절한 행위 등이 빠짐없이 열거됩니다.


반면 그에 대한 불만이나 무책임하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족원 전체가 잘못을 저지른 그 부족원의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게 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은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환영받으며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판은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그로 하여금 부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상대방의 약점에 대해 그것을 가만 두려 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용서할 줄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빌면 그것을 받아주는 관용과 아량이 필요한데 그렇지가 못합니다. 진심어린 회개와 용서는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보니까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과오를 은폐하려 하고 흠이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사회는 위선과 거짓,독설과 정죄만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길 원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 5:8).

손이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시 24:3∼4).
우리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교훈을 잘 새겨야 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심판해야 할 자리에서 행해진 예수님 말씀의 울림이 모인 사람들의 손에서 돌을 버리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내가 심판과 정죄의 자리가 아닌, 용서와 사랑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롬 12:17)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롬 12:21).




 
 

6.뉴턴의 열린 마음

뉴턴은 자타가 인정하는 미래지향적인 과학자였다. 그가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건이 있었다. 뉴턴이 어느날 책상 앞에 앉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눈앞에서 빙빙 돌며 귀찮게 굴었다. 여러번 쫓았지만 다시 와서 얼굴 주위를 맴돌았다. 뉴턴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그는 벌떡 일어나서 파리를 잡았다. 죽이지는 않고 창문을 열고 밖에 내던졌다. 그리고 한 말 “세계는 넓은데 왜 내 얼굴 주위만 맴돌며 괴롭히느냐”
좁은 테두리에서 매일 빙빙돌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 높고 넓은 영적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7. 뺨 맞은 어느 집사님

우리 교회 이모 집사님은 직장전도훈련(BBS)에 열심이신데, 그 BBS 동료인 A 라고 하는 어느 집사님의 실제 얘기입니다.
A 집사님은 어느날, 직장 회식 자리에서, 자꾸 권하는 술을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써, 계속 거절하다가, 세상에! 화가 난 직장 상급자에게서 빰을 맞게 되었답니다. 처자식이 있고, 나이도 있는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얼마나 창피하고, 분하겠습니까? 집에 와서, 며칠 동안 회사도 무단결근하며, 분을 삭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 두려고 결심하고, 사표를 내기 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드렸답니다. 뺨 맞은 서러운 생각, 분한 마음, 막상 직장을 그만 두려니 막막한 두려움 등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중, 뜻밖의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너는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으로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하느냐? 나는 모든 이에게 멸시천대와 고난을 받았고,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다...."


침 뱉음을 당하고, 저주와 욕설, 살을 찢는 채찍으로 맞으시면서, 아무런 자존심도, 혈기도, 변명도 없이 묵묵히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오르셨던 우리 예수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조롱하던 그 무리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의 음성이 아닙니까? 뺨 한대 맞은 것은 어찌 고난이라고, 분해하고, 직장까지 그만두려했을까요?



A 집사님은 그 신비한 음성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하셨습니다. 며칠 간의 무단 결근 후의 출근이었죠. 근데, 회사에서는 그 며칠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져있었습니다. 그의 뺨을 때린 그 상급자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징계를 받을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상급자가 회사에서 처리했던 여러 일들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그 중에서 A 집사님의 빰을 때린 사건도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A 집사님은 자신의 뺨을 때린 그 분을 두둔하며, 그 분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A 집사님이 적극 나서서 그 분을 도우니, 결국 회사에서 내리려던 징계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뺨을 때렸던 그 상급자는 A 집사님의 "이해하지 못할" 관용과 사랑에 감동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요, 지금은 직장 선교회의 한 지부의 leader(지도자)가 되어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술 안마신다고 뺨을 때렸던 바로 그 사람이 말입니다.


A 집사님께서 자신의 빰을 때린 그 분을 용서하고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 나온 힘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 엄청난 구원을 너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진 않는지요.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모든 것을 쏟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우리를 향한 그 한없는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그리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 모두 늘 사랑하며 섬깁시다.



 
 

8.꽃다발과 사랑

국립묘지 옆에서 묘지를 찾는 이들에게 꽃다발을 파는 꽃가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길거리에서 꽃다발을 팔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거지 노인이었습니다. 꽃가게 아들이 보니 자기 가게에서 판 꽃다발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국립묘지를 돌면서 묘지 앞에 놓여 있는 꽃다발들을 모아 파는 것이었습니다. 자본금 없이 장사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들은 분개하여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노인을 고발해요? 그럴 수가 있어요? 남의 산소에 꽃다발을 갖다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눈이 많이 온 날이었습니다. 산소를 찾는 이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수입이 없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산소로 가서 뿌려 놓고 왔습니다. 그 꽃다발을 주으러 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웃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사랑에 울어 버렸습니다.
- 우리 마음을 아릅답게 하는 103 가지 이야기 -




 
 

9.양보와 관용

1989년 7월 11일 흑백 대결의 양상을 띤 뉴욕 시장 선거에서 흑인 딘킨즈가 2%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의 선거에는 승패가 결정된 직후 낙선자가 '양보연설'을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사실 당선 연설은 쉬워도 양보 연설은 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심정도 침통하지만 열심히 뛰어준 운동원들과 가족 앞에 패자의 변을 늘어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낙선자 줄리아니는 힘주어 양보 연설을 하였습니다. "저를 지지해준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시장은 단킨즈씨입니다. 뉴욕 시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대는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면 무능하게 생각되고, 발 빠르게 자기 잇속을 차리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작은 자동차접촉 사고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러 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와 관용을 베풀수 있어야 합니다. 관용과 용서는 낙선자의 양보 연설처럼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 성경: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마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9)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관용을 베풀게 하소서




 
 

10.관용하라

성경: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인생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라는 색안경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한 인류 공동체라는 관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관용하는 마음이란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대개 각박하고 몰인정하고 포악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속에는 절대로 평강이 깃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너그러워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용하는 마음이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눈을 눈으로, 이는 이로 갚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또한 관용하는 마음이란 후덕한 마음입니다. 이해심이 얕고 좁은 마음 이 아니라 깊고 넓은 마음입니다. 관용하는 마음은 겸허한 마음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차별 대우하지 않고 모두를 후하게 대해 주는 마음이 겸허한 마음입니다. 이처럼 너그러운 마음, 용서하는 마음, 후덕한 마음, 겸허한 마음이 관용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관용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11.관용을 보인 결과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가 수그러지게 한다. 프랜시스와 그의 제자들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데 악명 높은 산적 셋이 찾아왔다. 그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용기를 다하여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너희들은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는 것이냐!”
도적들은 마음이 찔렸는지 그대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돌아오시자 이 소년은 자랑스러운 듯이 있었던 일을 고했는데 프랜시스가 섭섭한 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실수했다. 지금 곧 도적들에게 가서 이 빵과 포도즙을 주고 오너라.”
소년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바로 쫓아가서 빵과 포도즙이 든 선물을 전달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먹지 않고 소년을 따라 수도원으로 왔으며, 회개하고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되었다. 성도가 관대함을 보일 때 이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12.관용을 알게 하라

성경: 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이안 맥라렌 (Ian MacLaren)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존 왓슨 목사가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그는 원고 없이 설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메모만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말할 내용이 떠오르질 않아 여러 번 당황하게 되었고 그럴 때면 "여러분, 이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 지난 토요일, 설교 준비를 할 때는 분명했었는데... 자,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초조해 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바싹 마르고 나이가 꽤 든 어떤 교인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앞으로 설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땐 우리에게 찬송가를 한 곡 지정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설교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희들은 찬송을 부를게요. 저희 모두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한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왓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목회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시골 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자비심과 온정 때문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자며 기독교인이었다." (Gospel Herald)
관용의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관용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삶




 
 

13.관용

성경: 딛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옛날, 중국 제 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장사를 해서, 관중이 이익을 더 많이 가지면, 포숙은 "그가 집이 가난한 때문이야"하고 이해하였고, 또 관중이 사업에 실패하고, 과거에도 세번이나 낙방을 했을 때에도 포숙은, "관중이 때를 잘 못 만난 탓이야. 그의 재능이 아까다!"하고 아쉬워 했습니다. 관중이 전쟁에 나가 세번이나 도망쳤을 때에도, "그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때문이야"하고 포숙은 끝까지 관중의 인품과 처지를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훗날, 관중은 "세상에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은 오직 포숙뿐이다!"하였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우정, 뗄 수 없이 가까운 사이를 일컬어, '관포지교'라 하지 않던가! 오래 지킬수록 빛나는 것은 우정입니다!
오늘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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