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21회] - 목회자의 소명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8)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70억 인구의 거의 대부분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물론 직업이 없는 백수건달들도 있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세상에 직업이 몇 종류나 되냐고 묻는다면 “알 수 없다.”가 정답입니다. 직업은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고 소멸됩니다.
목사가 직업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도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를 받아, 먹고 산다는 측면에서는 직업임에 틀림없습니다. 직업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목회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는 일이여서, 비록 생활비를 받지 못해도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이므로 직업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022년 5월 30일에서 6월 12일까지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목사 47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목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태어나도 목회자가 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44.7%,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31.1%,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24.2%라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 한 가지 다른 통계가 나와 있는데 2022년 4월 장로교회 목사 981명을 대상으로 ‘번 아웃’-burn out-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번 아웃이란 지나치게 일에 몰두한 나머지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며, 무력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번 아웃된 원인은 재정적으로 회복이 어려워서, 교인들이 계속 줄어들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육체적 건강이 안 좋아서, 장로, 안수집사. 교인들과 갈등이 심해서 등의 이유였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소명(召命)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신학교 입학시험 면접 때, 교수들이 중점적으로 묻는 질문은 소명감입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소명 없이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목회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끊임없이 문제와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 중심에 바로 목사가 서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하는 목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목회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목회자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약 44.7%, ‘아니다.’가 31%, ‘모르겠다’가 24%라는 것은, 다시 태어나서 목회자가 되겠다는 목사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된 연유를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으나, 목회자들이 목회자의 길이 무엇인지 자각(自覺)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목회는 영혼을 돌보는 직책입니다. 이 직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 예수께 받은 소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기 아니하노라.”(행 20:24)고 술회(述懷)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소명을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에게 무겁게 지워주셨습니다.
이 소명은 다시 태어나도 계속 수행해야하는 절대 명령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수행해야하는 어려운 직책입니다.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그만 두는 직책이 아닙니다. 죽기까지 복종해야 하는 소임(所任)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자는 매년 신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첫 강의 시간, 첫 마디가, “여러분 신학은 공부하되 가능한 한 목사 안수는 받지 마세요. 목사직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고, 순교가 각오된 사람만이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직은 영광스런 일이지만, 죽음의 길로 가는 소명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입니다. 초기 교회 신도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할 때, 십자가의 죽음, 굶주린 맹수의 굴속에 생명을 던지는 각오,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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