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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에 나오는 산의 이름과 의미

by 【고동엽】 2022. 4. 18.
 
 


성서 속에 나오는 산의 이름과 의미


[시내산]
뜻: 수풀
홍해 북에 돌출한 시내 반도 안에 있는 산.
(1)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1년간 유하는 동안에 여호와가 모세를 불러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출20:1-17).
(2)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경배한 일이 있다 (출32:4,행7:30,46).
(3) 백성의 수를 조사한 것, 아비후가 거룩하지 못한 불로 분향하므로 멸망 받은 곳, 모세가 성막을 처음친 곳이 전부 이 산이다(민1:18,레10:1-2출26:30).
(4) 엘리야 선지가 이세벨을 피해 40일 만에 이 산에 이르렀다(왕상19:8).


* 1859년 독일 학자 디신딥이 이 산중 한 사원에서 고분 성경을 발견 하였는데 주후 300년경에 초한 것으로 현재에 전래하는 최고의 시내 사본인데 소련의 베드로그라드 헬라 교회당에 보관되어 있다.


홍해 북에 돌출한 시내 반도 안에 있는 산으로 모세가 출애굽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바위산이다. 붉은빛이 감돌고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긴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더욱 신비로운 생동감을 주는데, 시간에 따라 그 빛깔이 바뀐다.


시내산은 시내광야의 산악지대에 있는 한 산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가장 유력시 되는 견해는 시내산을 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나오는 호렙산 줄기의 최고봉 무사산(아랍명 Jebel Musa(모세의 산); 2286m)과 그로부터 3.2km 서남쪽에 있는 카타린산(아랍명 Jeble Katarin; 2,621m)과 서북쪽에 있는 '라스 에스 사프사페(Ras es-Safsafeh; 1993m) 사이의 세 정상중 한 곳으로 잡고 있다. 전통적인 주장은 무사산이라고 생각된다. 이 ‘무사산’ 동쪽 기슭에 있는 그리스정교의 성(聖)카타리나 수도원 서고에서 1844년 시나이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시나이 사본은 4세기에 만들어진 헤브라이어 성서 사본으로서 성경 원문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이 산은 일찍부터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서, '야훼의 산'으로도 불렀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이 산에 올라 타지 않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리는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소명을 받은 다음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고, 다시 이 산에 올라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감람산(올리브산)
예루살렘 동편 높이 2700 피트의 산으로 감람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이라 하였다.
(1) 갈릴리 봉(행1:11)
(2) 승천산, 멸망산, 선지산(왕상11:7 23:13)
(3) 겟세마네 동산(마26:36)
(4)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이곳에서 피하였다(삼하15:30,16:1-30)
(5) 예수님은 이 산의 선지봉과 멸망봉 사이로 나귀를 타고 입성(마21:9)
(6) 만찬을 잡수신 후 이 산으로 가심(마26:30)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4개의 봉우리를 가진 조그마한 언덕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약 800 m 정도인 이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 Tree)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 m 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으나, AD 1세기 경에 숲이 다 망가져 버렸다. 유대인들은 이 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일련의 봉화들을 밝혀두곤 하였는데, 바벨론으로 끌려간 동족들에게 새로운 달이 시작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유대인들은 죽은자들이 감람산 위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예부터 이곳 감람산은 무덤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아리랏산]
1) 바벨론 북방 알메니아국의 앗시스산 (해발 5,185m)인데 홍수때 노아의 방주가 정박하였던 산이다(창8:4).
(2) 앗수르왕 산헤립을 죽인 두 아들이 이 지방으로 도망하였다(왕하19:37, 사37:38).
이산을 바사인은 구이누(노아의 산)이라 하고 터키인은 아그리다(험한 산)라 하는데 그 중복에 그는 본래 알굴 이라는 동네가 있다가 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어 매몰되었고, 전설에 노아가 그 동리에서 폰를 재배하였다 하여 그 아래 잔짓여완 이라고 하는 곳에 노아의 분묘가 있다 한다.


아라랏'은 아르메니아 지방에 있는 나라 이름인데, 앗수르식 이름은 '우라르투 (Urartu)'이다. KJV 성경에서는 아라랏을 아르메니아 땅(The land of Armenia)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아라랏산은 흑해(Black Sea)의 남동쪽, 하란의 북쪽 그리고 오늘날 터키의 동쪽 경계에 있는 산맥으로 우라르투 지역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산의 정상은 해발 약 5,200m 의 대아라랏과 해발 4,000m 의 소아라랏으로 구분되는데, 여기서 부터 흐르는 시냇물은 티그리스와 유브라데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




[헤르몬산]
뜻: 신에게 바쳐진 곳
(1) 팔레스틴의 북방 안지레바논 산맥의 남단에 있는 최고봉으로 높이 2,850m 이다.
(2) 팔레스틴 전토를 내려다 볼 수 있고 사시를 통하여 눈이 녹지 않는다.
(3) 이 산의 면적은 남북이 30km로 중앙부에 3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어 시편 기자는 42:6에 헤르몬산들이라고 하였다.
(4) 북봉과 남봉은 가장 높고 서봉은 약 30미터 가량 낮아 사람의 조각품 처럼 선이 선명한 산이며 동편은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하부는 완경사로 다메섹 평원에 연하였고 서편은 완경사로 자우란의 고원이 전개 되었으며 산령의 저온이 대기중의 수분을 급격히 냉각하므로 야간에는 비와같 이 충분한 이슬이 내린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라고 노래하였다(시133:3, 아5:2).
(5) 요단강의 여러 지류는 이 산에서 발원하였다.
시돈인은 이 산을 시론이라 하고 아모리인은 스닐이라고 불렀다(신3:9, 시29:6).
(6) 지금은 아라비아어로 제벨에식(추장 곧 백발의 산)이라 부른다.
(7) 예수님이 변화하신 산을 높은 산이라 하였으므로 이 산으로 추측하여 변화산이라 부른다(마17:1, 막9:2)
(8) 시89:12에는 헐몬이라 하였다.
(9) 고대에는 이 산에서 베니게의 선재를 공급하였고 또 야수도 많았다 겔27:5,아4:8).




[에발산]
뜻: 벗은 산
일명"저주산"으로 알려진 이 산은 높이 920m, 현재의 벨 에슬라미예'(Jebel Eslamiyeh)에 해당하는 에발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해발 약 860m의 그리심산 북쪽에 위치 한다. 두 산사이에는 중요한 동서 교통로가 지나가는데, 동쪽 입구에는 세겜이 있으며 또 이 골짜기에는 오늘날의 '나블루스(Nablus)'가 있다.
(1) 에발산은 벗은 산이요 그리심산은 수목이 무성하다(삿9:7-8).
(2) 율법을 거역한 자에게 저주를 하게하고 여호와가 큰 제단을 쌓고 제사 하였다(신11:29, 27:2-13, 수8:30-31)




[다볼산]
이스르엘 골짜기 가운데 북동쪽 산, 나사렛 동남쪽 9.6km 지점으로 현재의 벨 엣 투르(Jebel et-Tur)에 다볼산이 있고 이곳에서 갈릴리바다 남서쪽을 다볼로 보고있다.
[1] 이스라엘 평원 동북편에 누각처럼 솟아있는 1,312피트의 높은 산이며 시야가 매우 넓다(시89:12, 렘46:18).
잇사갈과 스볼론 지경 사이에 있다(수19:22).
[2] 스볼론의 한 성. 므라리인에게 준 땅(수19:22, 대상6:77).
[3] 평원 혹은 다볼 상수리 나무라 기록되어 있는데 벧엘 근처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길로 돌아 갔다(삼상10:3).




현재 이즈르엘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 588m의 종모양을 한 산으로 다볼산 정상에는 서기 4세기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에 서기 192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의 변화(Trasfiguration)를 기념하고 있으며, 십자군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또한 그리이스 정교회의 엘리아 기념교회도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나사렛에서 갈릴리호수를 향해 동남쪽으로 10여㎞를 가면 이스르엘평야 한가운데 마치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둥근 바위산이 나타난다.푸른 평야 위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해발 5백76m의 별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편이다.산허리를 돌아 정상에 올라서면 이스르엘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인 이스르엘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이곳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요새화됐다.평야에 우뚝 솟아있는 고립된 위치,험한 비탈 때문에 갈멜산과 헬몬산에 견줄 만큼 위용을 자랑한다. 이 산이 다볼산이다.일명 변화산이라고 하는 이곳은 이스라엘의 사사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기원전 1200년경,이스라엘민족의 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은 가나안 야빈왕의 군대를 이곳에서 물리쳤다.모압왕 에글론을 살해하고 80년동안 평화를 유지했던 이스라엘민족은 다시 하나님을 잊고 악을 행하다 20년동안 야빈의 강압통치에 빠지고 말았다.야빈은 철병거 9백승을 가지고 이스라엘민족을 학대했다. 이때 나타난 지도자가 이스라엘의 유일한 여사사 드보라였다.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스볼론과 납달리지파 사람 1만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올라간다.그리고 이스르엘평야를 가득 매운 야빈왕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사들과 대치했다. 시스라가 가나안의 최대도시 하솔에서 군사를 이끌고 므깃도를 거쳐 기손강을 건넌 뒤 다볼산을 포위한 다음날 드보라의 명령대로 이스라엘병사들은 쏜살같이 다볼산을 내려가 시스라의 병사를 물리쳤다.악명 높던 시스라의 병거는 땅에 파묻혀 무용지물이 됐고 병사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다볼산은 헬레니즘시대인 기원전 218년에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요새화됐다. 그러나 다볼산이 유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산에서 변화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신약성서에 나오는 변화산은 전통적으로 다볼산으로 알려져 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로부터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미래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며 삼일 뒤에 부활할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6일 뒤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돌아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간다.다볼산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는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이 제자들 눈에 보였다. 성서에 기록된 높은 산이 다볼산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다볼산이 변화산일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에 힘입어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서기 326년경 다볼산 정상에 교회를 세웠다.7세기까지 다볼산정상에는 예수 모세 엘리야에게 바쳐진 세개의 교회가 건립됐다.이후 4세기동안 교회와 수도원이 계속 세워졌다.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수도사들이 순교당했다.십자군시대에 큰 규모의 교회가 다시 재건됐으나 이 모든 건물들은 1187년 살라딘에 의해 파괴됐다.1212년 살라딘의 동생이 이곳을 요새화 했지만 13세기말 파괴됐고 그후 6백년동안 폐허로 남아있었다. 1873년 프란체스코수도회에서 교회를 재건하기 시작해 1924년 봉헌됐다.이 교회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로치가 설계했다.


교회안에는 예수와 양쪽에 제자가 있고 모세 엘리야가 나타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교회입구 왼쪽에는 모세기념예배실,오른쪽에는 엘리야기념예배실이 있다. 십자군시대의 교회터에는 희랍정교회 소속의 엘리야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그 안에는 멜기세덱의 동굴이 있다.이 동굴은 멜기세덱이 다마사쿠스 옆에 있는 호바에서 조카 룻을 구해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나사렛의 교외, 하나하나의 돌에까지 역사와 종교가 베어있는 듯한 이 지방에는,다볼산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라비아어로는 [숫소의 산]이라 불려, 이것은 오래된 페니키아 제례를 연상시켰다. 다볼의 이름은 성서 속에도 종종 등장하고, 이산은 저브룬,이사간,나프타리의 부족 지배지의 경계였던(여호수아가 기옥 제19장 10,17.32절).


이 산 정상에서 여자 예언자 데보라는 바락에 20년간 이스라엘민을 괴롭혔던 가나안왕 야빈에 대해 1만인의 군대를 인솔해서 싸우도록 명령하고(사사기 제4장1절), 또 우상숭배에 빠진 제사장들의 타락을 예언자 호세아도 이 산의 이름을 때(호세아서 제5장 1절). 그리스도 변용의 기적이 일어난 것도 여기였다고 말해지고 있다.(마태에 의한 복음서 제17장,누가에의한 복음서 제9장). 이 완성을 기념해서 1923년 이곳에 변모함 바실리카가 세워졌지만,이것도 또 과거의 전쟁에 의한 파괴된 건조물의 재건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온산]
뜻:봉오리
나사렛 동쪽 다볼산 남동쪽 약 25km 지점, 또는 아윤 에쉬 샤인(Ayun esh-Shain), 혹은 시린(Sirin)으로 추정한다.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 의 언덕을 가리킨다.
시온은 처음에 기드론-두로베온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 였다.
후에는 예루살렘 동쪽 능선 전부를 시온이라 부르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 전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 본래 예루살렘의 기드론과 두로뵈온 두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이다.
그 후에는 동쪽 등성이를 시온이라 불렀고 예루살렘을 찬칭하여 시온 성이라 불렀다(시126:1, 사 1:26, 10:24).
(2) 옛날 다윗이 이곳을 쳐서 수도로 삼고 정치적 중심지를 만들었다(삼하5: 6-9, 왕상 8:1, 대상11:5), 대하 5:2).
(3) 그리고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 종교적 중심지를 삼았다(삼하6:12-18).
(4) 다윗은 산등성이에 있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사서 제단 을 쌓았고 후일에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세웠다(삼하 24:18, 왕상8:1)
(5) 시온은 "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으로 불렀고" 시적인 표현으로 흔히 사용하였다(시2:6, 9:11, 24:3, 132:13, 48:2, 69:35, 76:2, 87:2, 133:3, 사2:3, 3:16, 4:3, 52:1, 60:14)
(6) "시온의 딸이란 말은 예루살렘 주민의 시적인 표현이다(시9:14, 사1:8, 37:32, 아3:11, 슥2:10).
(7) 신약 성서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의 상징작인 용어로도 사용되었다(히12:22, 계14:1).
시온산은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히브리어 'Zion'의 어원에 관하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유사 파생어로 '바위'(rock), '산성' (stronghold, Zaion), 혹은 '건조한 곳'(dry place) 등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처음 사용되는 곳은 예루살렘의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여브스족이 머물던 "시온산성을 다윗이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라 " (City of David, 삼하 5:7, 왕상 8:1) 일컬어졌다. 지형적인 의미에서 '시온'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산이 각각 구별되기도 하였다 (미 3:12)


그러나 시온은 넓은 의미에서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사 2:3, 33:14, 요엘 3:5), '시온의 딸' (사 1:8, 30:16, 아 1:5),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 (사 10:24, 51:11), '유대백성' (사 51:16, 59:20), '성전산','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요 4:17, 시 20:3) 등 많은 파생어를 낳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온산'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






[느보산]
뜻:바벨론 신 느보에서 유래한 이름과 고지나 높은곳을 의미하는 아랍어에서 온 '네보'로서 지리적 위치를 나타낸다.
(1) 느보성은 르우벤 지파가 건설함(민32:3, 대상5:8)
(2) 느보산, 높이 805미터, 모세가 죽기 전에 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내려다 보았다(민33:47, 신32:49, 34:1-4)


해발 835m의 느보산은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이다. 40년 동안의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조망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민 21:20, 23장, 신 4:49) 느보산은 성경의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과 동일한 장소로 히브리어로 '비스가' 란 '꼭대기' 라는 의미이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의 온 지경을 점령하고 이 지역에 머물러 살기를 원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요단 동편 지역을 분배해 주게 되는데 느보는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민 32:3,38 대상5:8) 기원전 9세기의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 의하면 느보읍은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의 도시였다. 그런가 하면 성경은 느보가 모압의 도시였다는 보도를 남기고 있다. (사15:2 렘48:1,22)


1933년 시야가 산이 바가티의 지휘하에 발굴이 시작된 이래 1935년, 1937년에 수도원의 모자이크를 발견하였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기원 후 4세기 말엽 비잔틴 시대에 모세 기념 교회가 시야가 산 정상에 세워졌으며 교회는 각종 새와 동물들이 새겨진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 6세기 후반에 첨가된 새 예배당에는 무덤 터가 파괴된 후 그곳에 새로운 침례소가 설치되었는데 대략 597~8년경에 건설되었다. 현재 느보산 정상에는 모세의 무덤 위에 처음 세웠다는 교회 터가 다시 복원되어 있으며, 1932년에 세워진 프란체스칸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모세의 무덤이 이곳에 있었다고도 하며, 초대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순례하거나 수도원을 짓기도 하였다. 물론 느보산 또는 비스가 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이 산맥의 한 지점일 것만은 분명하다.


느보산 모세 기념 교회 앞 공터 전망대에서 살펴보면 멀리 사해와 여리고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은 날은 그 시야가 더 넓게 펼쳐져 예루살렘의 감람산 지역까지도 식별이 가능하다. 이곳 정원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놋뱀과, 인류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합시킨 의미 깊은 작품으로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를 인하여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이다. (민 21:6-10) 시야가 교회 왼쪽으로 있는 둥근 언덕은 브올의 아들 발락이 발람에서 모압 평지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요청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갈멜산]


뜻: 나무가 많다
[1]
(1) 높이 540미터 샤론과 에스드리엘론의 두평원 사이에 높은 솟은 산으로 석굴이 많고 수목이 울창하며 산 아래 기손강이 흐르고 있다. 양대 평원과 지중해까지 내려다 볼수있는 아름다운 경치의산(사35:2).
(2) 아셀지파의 경내에 있다.(수19:26).
(3) 여호수아가 이 산에서 욕느암왕을 격멸(왕상18:20-40).
(4)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과 대결하여 격멸(왕상18:20-40).
(5)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왕이 엘리야를 잡으러50부장과 50명을 두번 보낸 것을 천화로써 죽임(왕하1:9-12).
(6) 엘리야 승천후 엘리사가 잠시 유함(왕하2:5).
(7) 엘리사가 이 산에 있다가 수넴 여인을 만나 같이 그 집에 가서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림(왕하4:25-35).


[2] 유다 지파의 산곡에 있는 촌락이름(수15:55).
(1) 사울왕이 아말렉을 이기고 승전비를 세움(삼상15:12).
(2) 악인 나발의 거주지(삼상25:2-3).
(3) 웃시아 왕의 포도원이 이다(대하26:10).






[모리아산]
뜻:높은
골고다 언덕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1) 이삭을 하나님에게 제사 하려던 산(창22:2).
(2) 후세에는 성전의 언덕을 모리아 산이라고 불렀다(대하3:1).


당시 예루살렘 언덕에 붙여졌던 이름이 모리아산이었는데 이곳은 아브라함이 그의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서 솔로몬 성전의 유적이기도 하다(대하 3:1) 이 성전 언덕의 정상 바위는 오늘날 이곳에 세워진 오마르 모스크에 안치되어 있다.


현재 모리아 산이라고 추정하는 이스라엘 성지에는 바위 사원 실내에는 폭 12야드 길이 15야드 높이 2야드의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슬람들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세계의 3대 성도가 되는 것이다.


모리아산의 대속 제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겨우 생긴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를 드리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시험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는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여호와 이레'의 신앙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창 22:8)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https://cafe.daum.net/kmc4755/AT6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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