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강 죄로 인한 심판(8:7-10)
8:7-10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지는 7절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맹세"라고 하는 양식을 빌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악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대지는 8∼9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자연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지진으로 나타나고, 9절에서는 일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지가 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잔칫집이 변해서 초상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절씩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8: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맹세의 양식입니다. 아모스서에는 맹세의 양식이 세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4:2에 나오고, 두번째로는 6:8에 나오고, 세번째가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암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서에서는 하나님의 맹세가 언제나 심판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야곱의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영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경우에 따라서 교만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교만을 꺾지 않음같이 나 여호와도 내 뜻을 꺾지 않고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이 해석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항상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맹세하셨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영광"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과 관련해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야곱의 자랑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되." 이렇게 본다면 무슨 의도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오히려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시고,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자도 아니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뒤바뀌어진 상황을 맹세의 양식을 빌어서 강하고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미 네번째 묵시에서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8:2의 끝 부분에 보니까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치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학대한 소위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모스가 말하는 "저희의 모든 소위"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앞 4∼6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8:4∼6)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곧 이어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리라고 맹세하신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8)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이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인하여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 진노로 인해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을 8절 이하에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절은 두 개의 질문과 두 개의 서술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봅니다. "땅이 떨지 않겠으며." 땅이 떨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묘사이겠습니까? 지진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모스서에 보면 지진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암2: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암9: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땅이 떨 때 인간들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두번째 질문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애통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이미 아모스가 본 네번째 묵시 가운데 예언되었던 내용입니다.
(암8:3)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절 하반부에 보면 지진에 대한 묘사가 두 개의 서술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이며, 둘째는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입니다. 이 서술들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수나 애굽 강은 무슨 강을 의미합니까? 애굽 강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일 강입니다. 매우 크기로 유명한 강입니다. 또한 나일 강은 범람하는 것이 연중 행사처럼 되어 있을 정도로 자주 넘쳐 흐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땅이 그 큰 나일 강처럼 완전히 위로 쑥 올랐다가 다시금 아래로 내려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물어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진의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드라마틱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땅이 나일 강처럼 쑥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올라왔다가는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8절 하반부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뭐하다가 낮아진다고 했습니까? "뛰놀다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일단 솟아올라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마음대로 뛰논다는 것입니다. 지각 변동에 의해서 땅이 깨지고 부서지는 상황을 뛰논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9절은 일식에 대한 묘사입니다.
(8:9)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하나님의 진노는 땅에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태양에도 역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라는 것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미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에서 그날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하였습니다.
(암5: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암5:20)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여러분, 일식을 일으키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여기서 "내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 앞에서 인간은 무능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런데 환한 대낮에 갑자기 캄캄해지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참고로 앗수르에서 발견된 토판에 의하면 그 무렵에 중동 지방에서는 이미 두 번의 일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가 주전 784년 2월 9일에 있었고, 두번째가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아모스가 의도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들이 육신적 안일만 돌보다가는 결국은 대낮에 지는 해처럼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10절 말씀은 심판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8: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절기를 지켰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삼대 절기가 나옵니다.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을 삼대 절기라고 합니다. 이 삼대 절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입니다. 아모스 당시 남방 유다 왕국에서는 어디에 모이겠습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 모이겠지요? 그러면 북방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5:4∼5에 있는 말씀을 찾아봅니다.
(암5: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금송아지가 있는 벧엘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길갈로 가든지, 심지어는 저 남방의 브엘세바까지 순례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절기 때는 당연히 축제가 열립니다. 모두가 기뻐할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절기를 애통으로 바꾸시겠다고 했습니다. 잔칫집을 초상집으로 바꾸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잔칫집에서는 흥겹고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초상집이 되어 버렸으니까 죽음을 애통하는 애가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곧 이어서 우리는 아모스 당시의 장례식 관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습니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굵은 베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굵은 베는 염소 털이나 낙타 털로 짜서 만든 옷입니다. 상복으로 쓰였습니다. 또는 선지자들이 입기도 했습니다. 입는 방법은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죽으로 만든 띠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왕하1: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사15: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사20:2)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사22:12) 그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막1: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또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머리를 밀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슬픔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 또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가슴을 치기도 하고, 옷을 찢기도 하고, 먼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을 것입니다.
10절 끝 부분을 보면 슬픔을 더욱더 고조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독자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대를 이어나갈 아들이 없습니다. 가정의 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독자가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스라엘에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주 큰 슬픔을 나타낼 때 "독자를 잃음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렘6:26)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건의 결과는 기쁨과 승리가 아니라, 고난과 파멸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단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모스가 예언한 그대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945년 8월이었습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원자탄을 투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고장을 뿌렸습니다. "시민 여러분! 8월 6일 오후가 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 투하될 것입니다. 시의 중심지에서 적어도 반경 50㎞ 밖으로 다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중에서 전단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경고장을 보고 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고장을 무시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드디어 8월 6일 오후 경고한 대로 원자탄이 투하되었습니다. 피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등법원으로, 대법원으로 계속해서 끌고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 이후의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때는 아무리 울며불며 뉘우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지는 7절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맹세"라고 하는 양식을 빌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악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대지는 8∼9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자연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지진으로 나타나고, 9절에서는 일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지가 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잔칫집이 변해서 초상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절씩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8: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맹세의 양식입니다. 아모스서에는 맹세의 양식이 세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4:2에 나오고, 두번째로는 6:8에 나오고, 세번째가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암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서에서는 하나님의 맹세가 언제나 심판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야곱의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영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경우에 따라서 교만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교만을 꺾지 않음같이 나 여호와도 내 뜻을 꺾지 않고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이 해석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항상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맹세하셨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영광"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과 관련해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야곱의 자랑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되." 이렇게 본다면 무슨 의도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오히려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시고,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자도 아니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뒤바뀌어진 상황을 맹세의 양식을 빌어서 강하고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미 네번째 묵시에서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8:2의 끝 부분에 보니까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치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학대한 소위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모스가 말하는 "저희의 모든 소위"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앞 4∼6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8:4∼6)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곧 이어서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리라고 맹세하신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8)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이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인하여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 진노로 인해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을 8절 이하에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절은 두 개의 질문과 두 개의 서술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봅니다. "땅이 떨지 않겠으며." 땅이 떨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묘사이겠습니까? 지진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모스서에 보면 지진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암2: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암9: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땅이 떨 때 인간들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두번째 질문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애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애통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이미 아모스가 본 네번째 묵시 가운데 예언되었던 내용입니다.
(암8:3)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절 하반부에 보면 지진에 대한 묘사가 두 개의 서술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이며, 둘째는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입니다. 이 서술들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수나 애굽 강은 무슨 강을 의미합니까? 애굽 강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일 강입니다. 매우 크기로 유명한 강입니다. 또한 나일 강은 범람하는 것이 연중 행사처럼 되어 있을 정도로 자주 넘쳐 흐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땅이 그 큰 나일 강처럼 완전히 위로 쑥 올랐다가 다시금 아래로 내려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물어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진의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드라마틱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땅이 나일 강처럼 쑥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올라왔다가는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8절 하반부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뭐하다가 낮아진다고 했습니까? "뛰놀다가"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일단 솟아올라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마음대로 뛰논다는 것입니다. 지각 변동에 의해서 땅이 깨지고 부서지는 상황을 뛰논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9절은 일식에 대한 묘사입니다.
(8:9)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하나님의 진노는 땅에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태양에도 역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라는 것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미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에서 그날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하였습니다.
(암5: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암5:20)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여러분, 일식을 일으키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여기서 "내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 앞에서 인간은 무능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런데 환한 대낮에 갑자기 캄캄해지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참고로 앗수르에서 발견된 토판에 의하면 그 무렵에 중동 지방에서는 이미 두 번의 일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가 주전 784년 2월 9일에 있었고, 두번째가 주전 763년 6월 15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아모스가 의도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들이 육신적 안일만 돌보다가는 결국은 대낮에 지는 해처럼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10절 말씀은 심판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8: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절기를 지켰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삼대 절기가 나옵니다.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을 삼대 절기라고 합니다. 이 삼대 절기가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입니다. 아모스 당시 남방 유다 왕국에서는 어디에 모이겠습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 모이겠지요? 그러면 북방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5:4∼5에 있는 말씀을 찾아봅니다.
(암5: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금송아지가 있는 벧엘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길갈로 가든지, 심지어는 저 남방의 브엘세바까지 순례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절기 때는 당연히 축제가 열립니다. 모두가 기뻐할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절기를 애통으로 바꾸시겠다고 했습니다. 잔칫집을 초상집으로 바꾸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잔칫집에서는 흥겹고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초상집이 되어 버렸으니까 죽음을 애통하는 애가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곧 이어서 우리는 아모스 당시의 장례식 관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습니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굵은 베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굵은 베는 염소 털이나 낙타 털로 짜서 만든 옷입니다. 상복으로 쓰였습니다. 또는 선지자들이 입기도 했습니다. 입는 방법은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죽으로 만든 띠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왕하1: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사15:3)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사20:2) 곧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사22:12) 그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막1: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또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머리를 밀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슬픔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 또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가슴을 치기도 하고, 옷을 찢기도 하고, 먼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을 것입니다.
10절 끝 부분을 보면 슬픔을 더욱더 고조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독자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대를 이어나갈 아들이 없습니다. 가정의 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독자가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스라엘에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주 큰 슬픔을 나타낼 때 "독자를 잃음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렘6:26)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건의 결과는 기쁨과 승리가 아니라, 고난과 파멸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단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모스가 예언한 그대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945년 8월이었습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원자탄을 투하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고장을 뿌렸습니다. "시민 여러분! 8월 6일 오후가 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 투하될 것입니다. 시의 중심지에서 적어도 반경 50㎞ 밖으로 다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중에서 전단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경고장을 보고 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고장을 무시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드디어 8월 6일 오후 경고한 대로 원자탄이 투하되었습니다. 피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등법원으로, 대법원으로 계속해서 끌고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 이후의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때는 아무리 울며불며 뉘우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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